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54화 (554/651)

제554화: 잿더미(2)

다른 사람들은 한 번 만나면 더 이상 찾지 않는데 프레드에 대한 대접은 틀렸다.

그건 프레드로부터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올해 연말에 벌어질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갈 것이다.

‘돈이 대통령을 만든다’

그 사람의 정책이나 살아왔던 과거의 모습이 대통령을 뽑는데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뿌리느냐가 당락을 좌우한다.

현 대통령이 선거때 쓴 자금이 50억 달러가 넘는다고 어느 정치 평론가는 말했다

물론 대통령 측에서는 곧장 부인을 했지만 어쨌든 그런 거액을 쓰고서도 아슬아슬하게 당선이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전하게 당선권에 진입 하려면 50억 달러로는 안된다.

카날레스는 최소 백억 달러는 뿌리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그런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았다.

그중 한 명이 프레드인데 그에게서 십 분의 일, 약10억 달러는 기대하고 있었다.

아마존에 묻혀있는 엄청난 지하자원을 노리는 외국기업들로부터 50억 달러를 예상한다.

나머지 40억 달러는 당연히 브라질 국내기업들이 도와줘야 한다.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카날레스가 붉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프레드는 빙긋 웃는다.

“기침 몇 번 한 것 가지고 하도 아이들이 가보라는 통에.”

별것 아니었다는 뜻이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튼튼한 몸으로 우리 브라질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셔야죠.”

“일억 달러는 조금전 전달 됐을 것입니다.”

“아이쿠, 감사합니다. 카이드(Caïd: 프랑스어로 빅보스, 대두목).”

순간 프레드의 눈이 빛났다.

지금까지 여러차례 통화를 하고 일 년에 서너번씩 만나 식사를 하며 골프를 즐겼지만 카날레스 입에서 카이드라는 호칭이 나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조금 전 일억 달러 효과 때문일까.

아니면 완전한 동지 의식일까.

어쨌든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비록 일하는 터전은 서로가 다르지만 둘은 깊은 결속을 맺고 있다.

언젠가부터 한 번은 반드시 카이드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자신을 카이드라고 부른다는 건 곧 종속적인 의미다.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카이드 당신에게 저당 잡혀있다는 그런 의미로 읽힌다.

“장관님!”

카날레스의 비서가 다가왔다.

살짝 프레드의 눈치를 살피더니 지금 막 도착한 손님이 있다면서 보고를 하자 카날레스는 양해를 구하며 돌아섰다.

“흐음!”

프레드는 흐뭇한 표정으로 사람 사이를 헤집고 사라지는 카날레스를 바라보았다.

‘재주가 좋은 친구야’

프레드는 와인 한 모금을 마셨다.

그때 만찬이 열리고 있는 정원 입구 쪽에서 낯익은 사내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친위대 레드베저의 수장인 둥가였다.

둥가는 주위를 살피며 가까이 다가오더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카이드.”

“뭔 일인데 그러나?”

둥가는 보고하기가 난감하다는 듯 잠시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경호원 파블로와 루이스를 슬쩍 바라보았다.

“공장들이 모조리 파괴되었습니다.”

프레드는 눈썹을 좁혔다.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는 뜻이다.

공장이 무엇을 의미한지는 알지만 워낙 은밀한 곳에 세워졌기에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않는다.

“퓰리에 있는 1공장부터 동쪽 끝 7공장까지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둥가.”

“예, 카미노.”

“다시 말해보거라. 우리 공장이 잿더미가 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카미노, 슬픈 일이지만 저의 보고는 사실입니다.”

경호원 파블로와 루이스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에게 보고를 받았나?”

“공장 인근에 있는 우리쪽 원주민들로부터 전달되어온 내용입니다.”

일부 원주민들에게 적당한 생활지원을 하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정글이다 보니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다.

휘익!

프레드는 들고 있던 술잔을 잔디밭에 던져 버리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프레드의 어금니가 강하게 물렸고 밤은 더욱 깊어갔다.

사내들이 나타났다.

AK로 무장한 그들은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시신들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제3공장이다.

일곱 개의 공장중 가장 많은 양의 코카인을 만들어 낸다.

창고 안을 살피고 숙소 건물까지 확인한 둥가의 표정은 얼음장이었다.

“없습니다.”

“숙소에도 없습니다.”

레드베저 대원들이 AK를 쥐며 다가와 말했다.

“역시 세르지뉴 시신은 없습니다. 혹시 파묻어 버렸을까요?”

“파묻어? 죽였으면 됐지 파묻을 이유는 또 뭐야?”

사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워낙 기술이 좋으니까 납치해 갔을 수도 있다.

물론 적이 아직 누군지 밝혀진 바는 없다.

“한 번 더 살핀다.”

모였던 대원들이 다시 흩어졌고 둥가는 숙소로 걸어가 걸려있는 무전기를 들었다.

“3공장입니다. 세르지뉴는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죽었나?”

상대는 프레드였다.

“예! 총에 맞았습니다. 경찰 같지는 않고.”

“조금 전 브라질 경찰에서 연락이 왔네. 씰이라는 거야. 씰이 습격을 했어.”

“미군이 작전을 벌였단 말입니까?”

둥가는 깜짝 놀랐다.

마약은 FBI 몫이다.

마약단속국이 있으나 국외 마약은 FBI 제7국이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격을 했다면 FBI가 되어야 하는데 군 병력이 투입되었다는 건 뭔가 섬칫한 느낌이 든다.

그것도 일반 보병들이 아닌 미국의 위협에 심각한 방해가 되거나 위협하는 테러조직이나 거물들을 제거할 때 투입되는 미군의 정예들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무전을 끊은 둥가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씰’

그들이 지나가면 남아나는 것이 없다.

그리고 한 번 표적이 되면 반드시 끝장을 내고 만다.

퍼억!

일단 무전기부터 부쉈다.

혹시라도 코만도에 대한 어떤 정보가 담겼을지도 모른다.

바깥으로 나온 둥가는 다시 빈손으로 모이고 있는 부하들을 보며 무겁게 숨을 쉬었다.

비상회의가 열렸다.

코만도 조직이 결성된 이후 이토록 큰 회의는 없었다.

각 구역장들을 포함해 중간급 간부 일백여명이 참석한 회의는 무척 무거웠고 미국에 대한 증오와 원한으로 살기가 등등했다.

부하들 얘기를 주로 듣는 프레드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프레드의 입에서 수많은 단어가 쏟아졌다.

복수, 공격, 몰살, 당장 미국 대사관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카이드.”

한 사내가 입을 열어 말했다.

“토레스.”

토레스라는 파마머리 사내는 리우의 사창가를 장악하고 있다.

리우 매춘 사업의 90퍼센트를 쥐고 있다.

코만도 조직이 손을 뻗고 있는 십여 개의 사업중 코카인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매출을 기록한다.

“지금 리우 뒷골목에는 한 가지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소문이라면?”

“지금 우릴 조여오고 있는 자가 FBI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순간 모든 사내들이 일제히 토레스를 바라보았다.

“물론 FBI와 같이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우릴 상대하기 위해 외부의 요원을 데려 왔다는 것이 정설인 듯 보입니다.”

“누굴 데려왔지? FBI 보다도 더 막강한 능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단 말인가? 말해봐.”

“혹시 사막의 흑새라는 자를 알고 있습니까?”

“알지. 내가 왜 그 친구를 모르겠나. 만나 본적은 없지만 이미 신문을 통해서 봤어. 그런데 왜 그 친구 이름을 꺼내지?”

“브라질계 미국인으로 씰 부대에서 근무한 뒤 아카데미 용병으로 활동하던 네그레도란 친구가 있죠?”

토레스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토레스의 말인즉 며칠 전 친구 네그레도가 우연히 뒷골목에서 사막의 흑새를 보았다는 것이다.

사막의 흑새와 개인적 친분은 없으나 한때 다인코프에서 같이 생활을 했었다.

“자세히 말 좀 해봐. 그가 리우에 오지 말란 법은 없어.”

“그렇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이 시기에 관광을 왔을 리는 절대 없습니다. 그는 관광을 다니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죠.”

프레드의 눈빛이 빛났다.

“그래서 자네 말은 그자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군?”

“확신합니다. FBI와 어떤 거래가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미국 정치에 매우 해박하고 깊이 관계하고 있죠. 이미 CIA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깊은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CIA와 깊은 사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네그레도에게 들은 정보입니다.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허튼소리를 하는 친구는 아닙니다.”

“그 친구를 불어 올수 있나? 내가 직접 들어보고 싶군.”

“연락해보겠습니다.”

토레스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모든 시선이 토레스에게 집중되고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 네그레도 나야. 지금 여기로 올 수 있나? 별것 아니야. 잠깐 왔다 가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야. 오케이. 고맙군. 기다리겠네.”

토레스는 전화를 끊고 빛나는 시선으로 프레드를 바라보았다.

“지금 바로 온다고 합니다.”

그때, 쉰은 되어 보이는 약간 뚱뚱한 체구의 대머리 사내가 나섰다.

“카이드, 만약 사막의 흑새가 맞다면 문제가 간단치 않습니다.”

장기적출을 위해 인신매매만 전문적으로 하는 티아고였다.

그에게 어떤 장기를 부탁하면 다섯 시간 이내에 반드시 구해 온다.

‘인간도 많고 장기도 많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면 정말로 회사의 사훈처럼 떡 하니 매직으로 써 붙여 놨다.

그야말로 짐승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악명이 자자하다.

“간단치 않다니 그놈의 머리통에는 총알이 안 들어간다던가.”

프레드가 피식 웃는다.

“그게 아니라 워낙 신출귀몰하여.”

“신출귀몰? 그래도 인간 아닌가?”

그래봤자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공중으로 날아간다는 말도 있고.”

프레드가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과거 전쟁은 특정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수천 개의 폭탄을 일정 범위에 쏟아 붓는 이른바 ‘융단 폭격’을 사용했지. 이는 정확도뿐 아니라 효율성도 크게 떨어지는 방식이야. 이후 정밀도를 높인 레이저 유도 폭탄이 등장했지만 파일럿의 시각, 지형, 날씨에 영향을 크게 받아 여전히 효과적이지 못했어. 그런데 이라크 전쟁에서는 한 발의 미사일이 원하는 타격지점을 정확히 때렸다네.”

“위성확인시스템.”

언더 보스들의 눈이 커졌다.

프레드의 말은 총으로 안 되면 미사일로 쏴버리겠다는 뜻이다.

프레드는 모든 일이 끝났다는 듯 가볍게 허리를 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때 문이 열리고 수행경호원중 한 명인 파블로가 나타났다.

“네그레도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활짝 문을 열어주었다.

청바지에 자켓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회의장에 들어섰다.

사내는 실내에 앉아 있는 코만도의 간부들을 훑어보더니 토레스를 발견하고 씨익 웃었다.

“어서오게 네그레도.”

토레스가 일어났다.

네그레도가 다가가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는다.

“네그레도 인사하게. 우리의 주인인 카이드 일세.”

토레스가 프레드를 가리켰다.

네그레도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존경합니다. 대보스.”

네그레도는 가까이 다가가 프레드의 오른손 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