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3화: 잿더미(1)
처억!
세르지뉴는 재빨리 AK를 들어올리려는데 갑자기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엇!”
깜짝 놀라며 온힘을 다쏟아냈지만 총이 꼼짝하지 않았다.
3.3킬로그램 짜리 AK-12가 요지부동이다.
그 사이 사내는 자신과 3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땅으로 내려섰다.
권총수는 주위를 한 번 훑는다.
“비행기 기다리는 모양이죠. 비행기 오지 않습니다.”
권총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세르지뉴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자신이 비행기를 불렀다는 걸 알고 있을까.
파파팟!
세르지뉴의 눈에서 섬광이 피어난다.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보인 것이다.
“토스탕?”
토스탕이 배신을 했느냐고 묻는 것이다.
“오스발두는 이미 미국으로 떠났소. 토스탕도 우릴 태우기 위한 이번 비행이 브라질에서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세르지뉴는 어떻게 AK를 움직여 보기 위해 이마에 힘줄이 불거지도록 힘을 썼지만 꼼짝하지 못했다.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세르지뉴 손에 있던 러시아 최신 제식소총 AK-12가 힘없이 다가왔다.
세르지뉴는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총을 빼앗기자 멍한 얼굴을 했다.
자신은 너무 무거워 들지도 못한 총을 직접 손으로 확 잡아당기는 것도 아니고 쇠붙이가 자석에 붙듯 권총수가 손을 뻗자 스르르 끌려간 것이다.
“AK-12 정말 좋은 총이죠.”
그리고 활주로 공중을 날아가는 한 마리 새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울리고 허공 높이 날아가던 새가 깃털을 떨어뜨리며 추락한다.
놀라운 사격에 세르지뉴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든다.
타탁!
권총수의 손끝에서 지풍이 나오자 세르지뉴의 몸은 석상처럼 마비되었다.
탁!
권총수는 세르지뉴를 어깨에 둘러메더니 땅을 박찬다.
쉬이이이!
허공을 날아가는 권총수를 보며 세르지뉴는 입을 벌리고 말았다.
사람이 날아간다.
비행기가 아닌 사람이 날아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꿈인가 싶다.
아니면 여기가 지옥인가.
시신은 모두 열여섯 구였다.
한 구가 빈다.
권총수는 열일곱 명의 기척을 감지했다고 말했다.
나머지 한 구는 보나마나 권총수가 추적하고 있는 세르지뉴일 것이다.
시신을 모두 공장 밖으로 꺼낸 캐인은 방독면을 벗기고 일일이 얼굴 사진을 찍고 지문까지 받았다.
또한 FBI에 지명 수배된 사내 두 명이 시신속에 들어있다고 했다.
슈우욱!
그때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권총수가 날아 내렸다.
퍼억!
어깨에 메고 있던 세르지뉴를 바닥에 던지듯 놓았다.
“윽!”
세르지뉴는 비명을 질렀는데 캐인을 발견하고 표정이 굳는다.
캐인은 세르지뉴를 보며 웃었다.
“당신이 세르지뉴라니.”
예전부터 얼굴은 알고 있었고 단지 이름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우리 노트에는 디아블로란 이름으로 기록된 것으로 아는데.”
캐인은 세르지뉴를 보며 불편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포함한 FBI가 너무 허무할 만큼 1인2역으로 살아가는 세르지뉴에게 놀아난 것이다.
“형 저기 숙소에 P-126무전기 있던데 안토니오 팀장과 교신 좀 해봐.”
“뭐야. P-126이면 구 소련시절 무전기 아냐.”
“무거워서 그렇지 잘 터져. 써봤잖아.”
영국 보안기업 KAS에서는 가끔 P-126 부품 몇 가지 만을 손봐 사용한다.
요즘은 GPS를 통하기 때문에 웬만한 곳과는 얼마든지 연락이 가능하지만 불과 20년 전만해도 철저히 무전기 성능에 따라 작전의 성패가 좌우된 시절이었다.
오민철은 숙소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권총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커다란 브라질 고무나무가 만들어낸 그늘 아래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캐인은 세르지뉴를 상대로 코만도 조직에 대한 취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듯 캐인의 목소리가 자꾸 높아졌다.
흘긋!
권총수는 20여 미터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두 사람을 슬쩍 한 번 바라보았다.
캐인도 전문가다.
캐인 정도의 베테랑이면 상대의 심리와 정신상태를 분석하는 능력이 정신과 전문의 이상이다.
그런데도 큰 소득을 얻지 못한 듯 소리가 높아졌고 자주 흥분했다.
그때 무전을 보내러 갔던 오민철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주파수 때문에 애먹었네, 성공했어. 그쪽도 완전히 정리했나봐. 아직 2공장 4공장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는데 별일 없을거라더라고.”
네이비 씰이다.
아무리 무자비한 마약조직이라고 해도 혹독한 훈련으로 무장된 그들의 총구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아 참 그리고 토스탕에게도 연락했어. 이제 와도 된다고, 잔뜩 긴장해 있더라고.”
권총수는 알았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캐인과 세르지뉴가 앉아있는 고무나무 아래로 천천히 걸어갔다.
발자국 소리에 캐인이 돌아보았는데 표정이 딱딱해져 있었다.
“잠시 쉬죠.”
캐인은 아무 말 않고 일어나 오민철 곁으로 걸어갔다.
권총수는 세르지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르지뉴씨, 난 당신이 코만도의 5인 평의회 멤버라는 걸 압니다.”
세르지뉴는 놀라지 않았다.
“2부 리그지만 축구팀 구단주이기도 하시고?”
세르지뉴는 흠칫 놀란다.
캐인은 축구단에 대한 질문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구단주이면서도 축구도박을 즐겨 하셨던데 우리 내기 하나 해보겠습니까?”
도박이라는 말에 세르지뉴 눈이 가늘어졌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난 지금부터 당신에게 고문을 가할 생각입니다.”
세르지뉴의 눈이 빛난다.
무엇을 내기 하자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도박이라면 자신 있었다.
“간단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고문을 가해 당신이 입을 열면 지는 것이고, 끝까지 함구하면 내가 패하는 것이죠. 물론 내가 패하면 목숨을 살려주는 것입니다.”
세르지뉴는 잠시 생각하는 듯 권총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이오?”
“그렇소. 할 의향이 있습니까?”
“버티면 분명히 내 목숨을 보장해 주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아름답게 보내 드리죠.”
순간 세르지뉴 눈에 생기가 돌았다.
살아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윽!
권총수가 손을 뻗었다.
툭!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말라 비틀어진 손가락 굵기의 나뭇가지가 자석에 이끌린 듯 천천히 끌려온다.
이미 풀 위를 날아오는 권총수의 능력을 보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다.
세르지뉴는 철저히 마법이거나 아니면 마술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니면 위기에 처하다 보니 자신이 착시현상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직접 보고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
툭!
권총수는 손에 잡힌 마른 나뭇가지를 30센티 정도 길이로 부러뜨렸다.
마른 나뭇가지를 이모저모 살피더니 말했다.
“코만도의 우두머리가 누구라는 건 이미 밝혀냈고 나머지 두 명, 즉 오인평의회 다섯 중 당신과 보스 프레드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누구요?”
세르지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촥악!
눈 앞에 뭔가 움직였다.
막대기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십여 개로 보였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권총수의 오른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막대기 역시 그대로였다.
“헉!”
갑자기 세르지뉴는 비명을 질렀다.
“으으...허거걱!”
세르지뉴는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투!
투투투!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며 온 몸을 떨었다.
한 손의 손가락은 다섯 개다.
그런데 오른 손가락이 다섯 개가 아닌 열 개가 되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일 없었던 손가락이 정확히 둘로 쪼개지면서 자신의 의지와 통제를 벗어났다.
파르르!
쪼개면서 신경을 건드려서인지 손가락들이 떨려왔다.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손가락들은 밑으로 힘없이 쳐져 있기도 했고 벌레처럼 꿈틀대기도 했다.
세르지뉴는 말이 없이 그저 자신의 손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마치 부채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얇게 썰 듯 갈라놓은 부채살 같았다.
세르지뉴는 고통도 잊은 듯 열 개의 손가락을 망연자실한 얼굴로 보았다
뚝뚝!
손가락에서 핏물이 떨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픔이 밀려온다.
세르지뉴는 새어나오는 신음을 삼키기 위해 이를 악물었지만 소용 없었다.
“아우우우!”
격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른손이 불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듯 뜨겁다.
고통이 강할수록 뜨겁게 느껴진다.
“다시 묻습니다. 오인 평의회 멤버중 당신과 프레드를 제외한 나머지 셋의 명단을 말해 보시죠?”
세르지뉴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대신 권총수를 바라보는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으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대답을 거부하면 계속 몸을 망가뜨릴 것이다.
죽이지 않는다고 약속은 했지만 온 몸이 난도질 당하고 목숨을 부지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음은 왼손, 그리고 양 발까지 국수 뽑듯 쪼개버린다면 오히려 죽은 목숨만 못하다.
‘아!’
세르지뉴는 그제서야 탄식했다.
어차피 자신이 이길 수 없는 내기였다.
도박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냉정해야 한다.
앞뒤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혹시 내가 모르는 상대의 의도가 숨겨 있는지 여러번 곱씹어 봐야 한다.
그런데 포로라는 절박감이 냉정을 앗아갔다.
고문에 견딜 자신이 있다는 생각만 했지 이렇게 몸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살아도 스스로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몸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세 사람은!”
순간 고무나무 아래 앉아 있던 캐인과 오민철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경험에 비춰 범죄조직은 위로 올라갈수록 견디는 힘이 강했다.
어지간한 고문에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캐인의 경우 단 한마디도 얻어내지 못했기에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카날레스, 로드리고.”
잠시 입을 닫는다.
부담스러울 것이다.
세르지뉴가 느끼는 부담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는 그런 종류의 부담과는 천지 차이다.
5인평의회 인물 정도면 그 자존심과 명예는 일반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
경찰에 붙잡혀 종신형을 선고 받을 지언정 결코 조직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아야 하고, 심지어 가족이 위기에 빠져도 잠시의 흔들림은 있으나 끝내 침묵해야 한다.
“헤수스.”
“헤수스라면.”
캐인이 재빨리 다가왔다.
“플라나우투 넘버 투 비서실장?”
세르지뉴가 캐인을 바라보았다.
캐인은 대답을 듣기 위해 더욱 눈을 빛냈고 세르지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플라나우트는 브라질 대통령궁이다.
그곳의 서열 2위는 당연히 비서실장이 되는데 캐인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한참을 꼼짝하지 않았다.
“나머지 두 사람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오민철이 다가와 묻는다.
세르지뉴는 다시 눈을 감았는데 눈자위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집권 노동자당(PT)의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무척 높은 카날레스 재무장관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브라질 정재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모두 모였는데 그 중에는 코만도 조직의 우두머리인 프레드도 보였다.
카날레스는 많은 참가자들과 악수를 하고 술잔을 부딪쳤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동작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건 틈만 나며 프레드 자리에 다가와 얘길 나눈다는 것이다.
잘 보이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