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55화 (555/651)

제555화: 잿더미(3)

그건 상대를 최대한 존경한다는 마피아식 인사였는데 네그레도의 행동에 프레드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서오게 나의 친구.”

프레드 역시도 흡족한 표정으로 맞이한다.

“토레스 우리 친구의 자리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카이드!”

토레스는 왼쪽으로 걸어가 빈 의자 앞에 섰다.

“네그레도 이곳에 앉게.”

네그레도는 토레스가 권하는 의자로 걸어가 자리에 앉는다.

“토레스를 통해 이상한 얘기를 하나 들었지. 그대가 잘 아는 전장의 친구를 이곳 리우에서 봤다고 들었네?”

“조금 알고 있죠.”

“호오 그래 어떤 친군가?”

네그레도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권총수를 떠올리는 것이다.

“대단했죠. 스나이퍼였는데 속사에 능했습니다.”

“스나이퍼가 어떻게 속사에 능할 수가 있죠?”

맞은편에 앉은 사내가 이마를 찡그렸다.

아무리 솜씨 좋은 스나이퍼도 한 발을 쏘고 다음 방아쇠를 당기는데 최소 4초에서 5초는 걸린다.

쏘는 시간만 그 정도 걸릴 뿐이고 명중한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쏘면 관측병이 아무리 날씨 상태를 잘 설명하고 표적에 대한 설명이 좋다고 해도 타겟을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결코 2초를 넘지 않았죠.”

“말도 안돼.”

“거짓말!”

여기저기서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하고 과학적으로도 스나이퍼가 그런 사격을 한다는 건 어렵다.

물론 표적은 상관없이 그냥 쏘는 것이라면 가능하다.

“모두가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난 직접 보며 경험한 사실만 얘기합니다.”

“공중을 날아간다는 말은 어찌된 거요?”

비쩍 마른 사내가 미심쩍게 묻는다.

네그레도는 지체 않고 대답했다.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막의 흑새와 근무했던 용병들 모두 그 말을 믿죠.”

“흐음 어떻게 날아간다던가?”

네그레도가 정색하며 하는 말에 프레드 역시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여러 형태라고 들었죠. 비행기처럼 날아가기도 하고 안개처럼 흩어졌다 모이기도 하고.”

“그만하쇼.”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는 듯 왼쪽 귀가 없는 멜루나가 버럭 소릴 질렀다.

무기밀매를 관여하고 있다.

즉 누구보다도 총기에 대해서는 잘 알기 때문에 네그레도의 말을 자른 것이다.

네그레도는 전혀 불쾌해 한다거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자신도 처음 듣고서는 절대 믿지 않았다.

“분명한 건 얼마전 이곳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것만 분명히 말씀드리죠.”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개소리!”

“용병들이란 작자들은 콧김도 거짓말이야.”

무기밀매상 멜루나가 투덜거렸다.

“카이드 저런 자들의 말은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술이라도 한 잔 들어가면 혼자서 IS 수백명을 죽였다는 말을 너무 천연덕스럽게 하죠.”

여기저기서 개소리라고 웅성거렸지만 프레드의 표정은 달랐다.

사막의 흑새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그에게는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특출한 능력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 당시 기자의 말이었다.

프레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드르륵!

창문을 열자 눅눅한 바람이 불어온다.

들고 있던 핸드폰 번호 하나를 눌렀다.

“어딘가?”

둥가다.

그는 지금 친위대 레드베저를 이끌고 리우 시내를 수색하고 있다.

“추적의 방향을 사막의 흑새로 돌려야겠네.”

사막의 흑새란 말에 둥가는 다소 놀란 듯 말이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내용을 안가에 은거해 있는 프레드가 콕 찍어 말했기 때문이다.

그건 이 모든 사태의 배후에 사막의 흑새가 있다는 말이었다.

“둥가, 내 말 잘 듣게, 글로보 사회부 차장 엔리케를 찾아가서 사막의 흑새에 대한 자료를 부탁하게. 내가 전화할 테니 지금 곧바로 가게.”

몇 마디 더 건넨 프레드는 다시 번호를 눌렀다.

글로보는 브라질 최대 미디어 그룹이다.

프레드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날세.”

프레도가 웃는 걸 보면 상대가 무척 굽실거리는 것 같았다.

“일하는 아이가 갈테니 사막의 흑새란 친구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는가?”

잠시 듣고 있던 프레드가 말했다.

“자넨 언제나 뛰어난 친구야. 오랜만에 골프 한 번 치지. 말 나온 김에 아예 날짜를 잡자고.”

두 사람은 웃으면서 통화를 끝냈다.

“카이드, 네그레도의 말을 믿는단 말입니까?”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 우두머리가 누구 손에 죽었다고 했지?”

“공식적으로는 반란이었지만 사막의 흑새가 정리했다는 것이 바닥의 정보입니다.”

“오늘부터!”

프레드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모든 조직은 사막의 흑새를 잡는데 전력을 쏟는다. 물론 진행중인 사업은 계속 이어져야 하겠지만 언제 어디서든지 사막의 흑새를 발견하거나 사건이 터지면 지체 말고 지원하도록.”

모두가 무거운 얼굴이다.

대보스의 명령은 곧 하늘의 뜻이다.

“아직 분명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프레드의 눈이 가늘어 진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 일단 잡아서 물어보면 될 것 아닌가. 네그레도 말처럼 바쁜 그가 한가하게 관광을 위해 리우에 왔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어. 내 말뜻을 알겠나?”

그것으로 끝났다.

마침내 코만도 조직에서 사막의 흑새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권총수는 술잔을 부딪쳤다.

상대는 안토니오 중령과 미우 주재 미국영사 벨이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지만 너무 완벽한 작전이었기에 영사 벨이 직접 주재한 단촐한 자리인 것이다.

물론 케인도 있고 오민철도 있었다.

간단한 와인이 전부였고 권총수는 안토니오 중령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와 고마움을 전했다.

‘서른 중반이라고 들었다’

권총수를 바라보는 안토니오 씰 4팀장의 눈이 빛난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인생을 이제 시작한다 할 수 있는 나이거늘 이토록 겸손하고 차분하단 말인가’

권총수의 능력은 이미 소문과 증언, 목격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번 작전도 행동만 씰팀이었지 모든 전략은 권총수가 짠 것이다.

너무 완벽한 전략이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틈이 없었고, 완전히 성공했다.

최소한 앞으로 반년 동안은 코만도 측에서 절대 코카인을 제조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기술자를 다시 양성하자면 일 년이 넘을 수도 있다.

“오우, 프레지던트.”

영사 벨이 놀란다.

백악관의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모앙이었다.

몇 마디 주고 받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해 놓고서 권총수에게 다가왔다.

“백악관입니다. 전화 좀 받아 보시죠.”

권총수는 술잔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권총수입니다. 대통령 각하.”

권총수는 웃으며 받았다.

오민철은 통화를 하는 권총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나도 한 번 통화 해보고 싶다’

그러나 백악관에서 자신을 찾진 않으니 방법이 없다.

권총수에 가려서 그렇지 자신도 이번 일에 굉장히 공헌을 했다고 자부한다.

“부러우신 모양이군요?”

옆에 있던 캐인이 말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 대통령입니다. 지구상에서 제일 쎈 사람 아닙니까?”

“나도 부럽습니다. 아직까지 나름대로 공을 세웠지만 백악관 전화는 받지 못했습니다.”

캐인도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언제든지 불러주시면 가겠습니다.”

전 대통령과는 잘 알지만 새로 바뀐 백악관 주인과는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권총수는 영사 벨에게 전화기를 넘겨주며 미소를 지었다.

“뭐든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군요.”

“대통령께서도 기대가 큰 모양입니다.”

그러자 오민철이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권대표의 인생이 쫙쫙 펴는구나.”

“인생?”

권총수가 돌아보았다.

오민철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야 미국의 대통령이 조기축구 회장이냐. 그 사람이 인상 써버리면 온 세계가 숨죽이잖아. 그런 분과 이제 안면 텄으니 탄탄대로인 거지.”

오민철은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하긴 개인적으로는 동생이지만 회사 대표이고 보안시장은 묘하게도 국가권력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더욱이 미국은 보안시장에서 가장 큰 고객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보안기업 대표들이 미국의 고위관료들과 손을 닿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 블랙잭은 미국 대통령이란 분명한 우군을 하나 만들었다면서 오민철은 싱글벙글했다.

그러나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권총수는 적당한 선에서 자리를 파하자면서 손에서 술잔을 놓았다.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미국영사관을 나오고 있었다.

핸들은 권총수가 잡았다.

몸속의 술기운을 전부 손가락 끝으로 모아 일거에 태워 버렸다.

주정(酒晶)이라 한다.

몸속의 술기운을 구슬로 모아 손가락 끝으로 옮긴 뒤 내공으로 태우는 것이다.

지이잉!

영사관을 나와 대로를 달리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런데 액정에 에이(A)라고만 찍혀 있었다.

권총수는 비상 라이트를 켜더니 차를 오른쪽 길가로 조심스럽게 정차시켰다.

“아라나!”

권총수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권총수는 가만있다.

상대의 얘기를 듣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 분여 듣고만 있던 권총수가 지금 곧장 가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조수석 유리를 조금 내려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던 오민철이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아라나?”

누군지 모르는 듯 오민철이 이마를 찌푸렸다.

“자르델 경감이 소개 시켜준 후배 경찰.”

“아아!”

그제서야 오민철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르델 경감은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얻어먹나 싶었는지 커피도 계속 추가를 시켰다.

“내가 자네에게 선물 하나를 주고 싶네.”

선물이라는 말에 권총수는 눈을 빛냈다.

은퇴한 경찰관이 주겠다는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라나 경위를 아는가?”

브라질 경찰이 한두 명도 아니고 알 리 없다.

“내가 굉장히 아끼는 후배지. 워낙 술을 좋아해서 가끔 사고를 치긴 하지만 인격이 높고 덕망도 풍부한 선비형 경찰관이랄까.”

오민철까지 눈을 빛내며 자르델 경감의 입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에 아내가 죽었네. 그의 손에 붙잡힌 아주 나쁜 범죄자가 출옥하여 시장 다녀오는 길의 아내를 차로 밀어 버렸지.”

“진짭니까?”

너무 대담한 보복이기에 오민철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오...?”

“오민철이라고 했잖습니까?”

쭈욱!

커피를 길게 한 모금 마시더니 눈을 좁혀 떴다.

“솔직히 처음부터 난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네.”

“네에?”

오민철이 깜짝 놀란다.

“여기 캡틴은 내가 말을 하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묻기도 하면서 상대에 대한 예의를 드러내는데 자네는 별로야. 내가 이런 말을 해도 그러려니, 저런 말을 해도 시큰둥했어.”

날 지금 의심하느냐는 뜻이었다.

“제가요?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날 무슨 지나가는 개새끼로 아나?”

오민철 또한 마주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는데 권총수의 전음이 들렸다.

‘형 죄송하다고 해. 자르델 경감 기분 나빠지면 죽도 밥도 안돼’

그러자 오민철은 재빨리 목소리를 낮췄다.

“그렇게 보였다면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 하겠습니다.”

“주의해야 해. 그런 태도 나빠.”

“시정하겠습니다.”

“어흠!”

자르델 경감은 헛기침을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