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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52화 (552/651)

제552화: 바람의 구멍(2)

마치 열대 과일 마냥 다섯 개의 초록색 뭉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진짜인데.”

러시아 육군 지원화기중 하나인 RGN수류탄이다.

중동에서 전장을 누빌 때 자주 목격했고 전리품으로 획득한 적도 있다.

UDZS라는 특수한 2중 신관을 쓴다.

충격신관은 착탄후 1초에서 1.8초후 폭발하는데 20미터의 살상 반경을 갖고 있다.

미군의 신형 ET-MP(Enhanced Tactical Multi-Purpose) 다목적 수류탄 보다 살상 반경은 앞선다.

“이쪽에는 일곱 개를 걸어놨는데.”

오른쪽에 다섯 개 왼쪽에 일곱 개, 합하면 열두 개다.

만약 줄을 건드렸다면 열두 개의 수류탄이 폭발한다.

지상 최고의 경신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파편보다 빠를 수 없고, 금강불괴라면 모를까 그 전단계라면 비산하는 파편들을 호신강기로 막기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길도 없는 밀림속에 공장을 만들어놨다고는 해도 경계병 한 명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누군가 정글을 탐사하다 무심결에 공장을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경계병 정도는 세워야 한다.

이제 왜 경비 한 명 보이지 않는지 이해가 된 것이다.

“이런 부비트랩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얘긴데.”

권총수는 주위를 예리한 눈으로 살폈다.

하지만 부비트랩은 후각이나 청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오직 눈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또 다른 부비트랩을 찾아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동일한 방식의 부비트랩만 설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럴 때는 오로지 목표로 한 통로만 개척하고 일체 주위는 건들지 않는 것이 좋다.

“GPS 가능합니까?”

캐인은 GPS 어플이 깔린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작동했다.

“가능할 듯싶습니다.”

“부비트랩 조심하라고 귀띔해 주세요.”

캐인은 권총수의 지시를 받아 핸드폰의 번호 한 개를 눌렀다.

자신들만 아는 암호로 날아갈 것이다.

잠시 후 일행은 다시 이동했고 마침내 공장 벽에 붙어 섰다.

안에서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는데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웅웅하는 형태로 들린다.

왜 그러느냐는 듯 오민철이 권총수를 바라보자 중간에 있던 캐인이 작은 소리로 설명했다.

“아마 독한 냄새 때문에 방독면을 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민철은 그제야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은 열려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흘러나온다.

냄새가 독해 오민철과 캐인은 옆구리에 매달고 있던 가방을 열어 방독면을 꺼냈다.

악취를 계산하여 미리 준비한 것이다.

권총수는 어느 정도의 시간은 호흡을 중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방독면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세 사람은 천천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권총수는 슬며시 숨을 들이마셨다.

머리가 띵 할 만큼 강력한 화학약품 냄새였다.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려 호흡을 중단한 권총수는 원뿔형태의 투명 플라스틱 통에 검정색 가루를 쏟아 넣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모든 공정과정에서 냄새가 쏟아지는 건 아니다.

화약약품으로 정화하는 특정 단계에서 냄새가 뿜어 나오며 코카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바람이 불어도 안 되고 햇빛이 들어와도 안 되며 비가 내린다거나 습한 물질이 있어도 코카인의 품질을 급전직하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한 냄새를 알고서도 어쩔 수 없이 폐쇄형 공장에서 제조하는 것이다.

사내는 방독면을 썼는데 아무것도 쓰지 않는 권총수를 보더니 멈칫했다.

그리고 방독면을 밑에서 위로 밀어 올려 벗더니 물었다.

“너 뭐야? 어!”

그 뒤로 서 있는 캐인과 오민철까지 발견하고 놀란다.

“그것이 이른바 코카 원액인 셈인가?”

투명 플라스틱 속에 채워진 검정색 가루를 보며 권총수가 물었다.

사내의 눈빛이 흔들린다.

총을 들었다.

한눈에 심상찮은 인물들이라는 걸 알아차렸고 자신들이 모르는 인물은 무조건 경찰이나 마약 단속반으로 확신하고 방아쇠를 당기라는 상부의 지시를 떠올렸다.

휙!

허리에 꽂은 권총을 뽑으려고 했으나 권총수의 오른손이 더 빨랐다.

투욱!

권총수의 오른손 검지에서 소림의 탄지신통이 발출되었다.

지풍은 사내의 미간을 정확히 관통해 버렸고 아픔도 전혀 느끼지 못한 듯 사내는 망연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주르륵!

뚫린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사내는 주저앉았다.

탁!

권총수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 무형의 경기로 사내를 천천히 넘어지도록 했다.

“일단 보이는 대로 죽여.”

권총수의 말에 오민철과 캐인이 사라졌다.

타탕!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총소리가 울렸다.

M4소리다.

권총수는 통로와 기계들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며 빠져 나갔다.

그가 찾고자 하는 인물은 세르지뉴 한 명이다.

기술자가 없으면 마약조직은 무너진다.

스으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불영보가 펼쳐지고 총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드르륵!

드륵!

권총소리도 있지만 거의 들리는 건 M4다.

그건 오민철과 캐인의 기습이 제대로 통하고 있다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다.

공장 곳곳을 수색하며 세르지뉴를 찾고 있다.

설혹 자신들을 먼저 발견하고 도망쳤다고 해도 길은 없다.

즉 육로를 이용한 탈출은 불가능하다.

정글은 재규어와 악어 천국이므로 반드시 비행기로만 빠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탕! 탕!

자동사격 보다는 단발성이 많은 걸 보면 확인사살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서로가 특정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기고 조준사격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슈우우우!

권총수의 몸이 바깥으로 날아갔다.

숙소로 추정했던 건물을 살피려는 것이다.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예상대로 코카인을 제조하는 사내들의 숙소였다.

넓은 방에 1층과 2층에는 2단 침대가 있고 이부자리들이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권총수의 눈이 방안을 예리하게 살폈다.

‘여기 있었군’

비록 열대우림 지역이지만 인간이 뿜어내는 냄새와 자연이 풍기는 것은 차이가 있다.

사람의 냄새다.

덮고 자는 이불에서 나는 묵은 냄새가 아니라 조금 전까지 누군가 여기 있다가 떠났음을 알려주는 비린내가 맡아진다.

코카인과 땀 냄새가 섞인 비린내.

누군가 이곳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뒷 처리 잘해. 난 놈을 추적할 테니까.’

오민철에게 전음을 보내고 난 권총수는 숙소를 나와 맞은편 숲을 바라보았다.

세르지뉴가 어디로 도망쳤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휘이익!

권총수의 몸이 번쩍 떠오르는가 싶었는데 밀림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빼곡한 밀림에서는 신법보다는 보법이 훨씬 유용하게 사용된다.

보법은 적과 싸울 때 사용하는 걸음으로 찰라와 같은 순간에 방향전환과 이동이 가능하다.

신법은 이동의 수단으로 가장 위력을 보이고 보법은 싸울 때 제일 유용한 무공이다.

그래서 보법이 좋으면 자신보다 한 단계 높은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스스스!

안개처럼 권총수의 몸이 나무와 나무사이를 지나갔다.

조금 넓은 공간이면 정상적인 모습이지만 나무들이 촘촘한 지역에서는 고무줄이 늘어지듯 몸이 가늘어지면서 빠져나가는데 소리도 없고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지금 권총수가 가고 있는 곳은 비행기 활주로였다.

활주로는 코만도 조직에서 이곳을 출입하기 위해 일일이 나무들을 베어내고 만들어 놓았는데 공장에서 남동쪽으로 1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그곳을 향해 지금 가고 있을 확률이 백퍼센트다.

중동이나 한국의 산은 한 가지 냄새로 뭉쳐 있다.

그런데 이곳은 열대우림답게 수많은 냄새가 흘러 다닌다.

빠른 추적은 흔적이 아닌 냄새로 해야 하는데 내가 고수인데도 여러 가지 강한 냄새들이 자주 나타나 혼란스럽다.

냄새로 쫓는 일이 쉽지 않다.

흔적도 모래 사막과는 다르다.

수북히 쌓인 낙엽더미 위를 밟고 지나갔지만 눌린 자국이 스펀지처럼 다시 일어나버린다.

여러 가지 조건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고생을 더 하느냐 덜 하느냐 차이일 뿐이다.

권총수는 반노환동에 들어선 내공이다.

그의 눈은 이미 원상태로 돌아왔지만 낙엽 위에 찍힌 발자국을 발견했고 놓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코는 방안에서 맡았던 냄새를 확실히 저장하고 있었다.

스으!

스으윽!

늘어졌다 원래 모습대로 되길 반복하는 권총수의 신형은 마치 밀림속 유령 같았다.

길게 늘어진 안개 한 줄기가 뭉치더니 사람으로 변했다.

권총수다.

피식!

갑자기 실소를 터뜨렸다.

한 사내가 AK 한 자루를 들고서 밀림 속을 달리고 있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도주하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세르지뉴라는 걸 단박에 알아보았다.

시야에 잡혔으므로 이제 벗어나지 못한다.

그물에 걸린 고기는 누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세르지뉴는 필사적이었다.

온 몸에 땀이 흥건했고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빌어먹을!’

급박하게 도망치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혹은 도대체 이곳을 FBI가 어떻게 알았느냐이다.

브라질 경찰은 죽어도 아니다.

그들이라면 미리 덮친다는 정보를 흘려주게 되어있다.

자신들과 대치관계인 브라질 경찰도 아직 공장의 위치들을 모르고 있다.

더욱이 하필 많은 공장들을 놔두고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심장부와 같은 가장 큰 장소를 공격해오다니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헉헉헉!

거친 숨을 쉬며 마침내 밀림을 벗어났다.

멀리 비행장이 나타났다.

길이는 백 미터 정도 되었다.

경비행기가 이착륙하는데 장애가 될 만한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냈고 웬만한 풀은 그냥 내버려 두어 쭈그리고 앉으면 찾기 어렵다.

자주 비행기를 이용하면서 바퀴가 닿는 지면의 풀만 눌려 죽었고 나머지는 완전 숲이다.

“연락 한 지가 언젠데. 죽일 놈들, 빨리 오라니까!”

총소리가 들린 순간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을 알아차리고 토스탕에게 무전을 보냈다.

‘당장 비행기를 몰고 오도록’

무전을 한지 50분 정도 시간이 흘렀으므로 지금쯤 한참 날아오고 있을 것이다.

최고 속도로 날아오라고 했으므로 평소보다 2,30분은 빨리 올 가능성이 높다.

“개자식! 찢어죽일.”

누군지 모르지만 배신자가 있다.

내부에서 흘러나가지 않았다면 절대 공장의 위치가 발각될 리 없다. 자신이 이렇게 거품물고 도망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돌아간 뒤 대대적으로 조직 소탕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귀를 기울였다.

총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물론 거리가 멀기도 했고, 밀림이기 때문에 총소리는 숲에 가로막힌다.

도심이나 야전과는 소리 거리가 또 다른 것이다.

“어떤 놈인지 반드시 잡는다. 잡아서 그놈은 물론 가족까지 갈기갈기 뜯어 뼈를 발라 먹겠다.”

솟구치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세르지뉴가 멈칫했다.

멀리서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쓰슥!

눈에 땀이 들어갔나 싶어 손등으로 비비고 다시 봐도 사람이 틀림없다.

그런데 바라보던 세르지뉴의 눈이 풍선처럼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어...어떻게 사람이.”

키만큼 자란 열대우림의 숲 위를 바람처럼 스치며 날아오고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숲을 밟고 오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새도 나뭇가지가 아닌 가느다란 풀 잎사귀에 내려앉지는 못한다.

‘사...사람이’

도무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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