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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83화 (83/651)

제83화: 오흐브와흐 무(Au revoir Monsieur)레지옹 에트랑제(legion etrangere) 잘있거라 외인부대여(2)

면회라는 말에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작아졌다.

면회 올 사람도 없다.

면회왔다는 오민철의 말에 몇몇 동료는 깜빡 속아 헛걸음을 한 적도 있었다.

“걔들이래. 민간 보안기업.”

그제서야 권총수는 표정을 바꾸었다.

벌써 다섯 번째 찾아온다.

“뭐해, 심심한데 나가보자.”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돈 얘기는 없었다.

양쪽 모두 치열한 탐색전이다.

권총수쪽은 더 받고 싶고, 상대는 어떻게 해서라도 적게 주기 위해 발버둥쳤다.

“가서 이빨이나 털자고.”

권총수는 오민철이 자꾸 재촉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났다.

“게이 형도 가.”

“내가 뭐하러.”

“가 그냥!”

권총수는 세르게이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세 사람이 면회실로 들어섰다.

면회실은 여단사령부가 철수해서 인지 그다지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명목상 IS가 궤멸되면서 이라크를 들어오는 항공편이 늘어났다.

또한 본토 외인부대 사령부에서 이라크에 파병된 병사들 가족에 한해 왕복 항공권 일부를 지원해준 관계로 찾아오는 부담이 조금 준 탓이다.

면회실 행정병이 한쪽을 가리켰다.

평범한 사복차림의 백인 남자 둘이다.

권총수가 다가가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메올라입니다.”

“카를로스요.”

세 사람 모두 두 남자와 악수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명함입니다.”

메올라란 사내가 내민 명함을 받아 든 오민철의 이마가 약간 찌푸려졌다.

‘레드 초코’

민간 보안 기업에 나름 해박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오민철이지만 처음 듣는 이름인 듯 했다.

오민철의 표정을 읽은 듯 메올라란 사내가 말했다.

“역사는 깊습니다. 단지 활동영역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다 보니 언론의 조명을 자주 받지 못하죠. 더욱이 종교적이거나 정치적 사건은 아예 받지 않기도 하고.”

한 마디로 민간 보안업계에서는 중소기업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또한 정치적 종교적 사건 의뢰를 받지 않는다는 건 위험한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자 세르게이가 반응을 보였다.

세르게이가 두 눈을 빛내며 메올라의 설명을 심각하게 듣기 시작했다.

잠을 못자고 계속 뒤척인다.

보다 못한 권총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이 형.”

툭! 치면서 권총수가 담배를 쥐고 밖으로 나갔다.

세르게이는 걸어가는 권총수를 바라보고 있더니 천천히 일어나 따라 나갔다.

어둠속에서 빨간 담뱃불이 타올랐다.

권총수는 슬리퍼 차림으로 다가오는 세르게이에게 담배를 권하고 불을 붙여 주었다.

“고민 하는 거야?”

세르게이는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 연방법은 외국에서 정부의 허락이 없는 정치적 목적의 전쟁 참여를 금하고 있어. 러시아 국민이 이를 위반 할 때는 최고 종신형에 처해지지.”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왜 이제야 세르게이가 용병시장 진출을 불편해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세르게이 정도의 실력이면 무조건 A급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외인부대 지원은 러시아 정부의 허가 아래 이뤄졌다.

그러나 용병시장은 틀리다.

잘못하면 러시아 정부군과 총을 맞댈 수도 있다.

또한 러시아가 지원하는 혈맹국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반역죄로 처벌한다.

“그럼 레드 초코에 가면 되겠네. 거긴 종교와 정치적 목적의 사건은 절대 의뢰받지 않는다잖아.”

“그래서 생각 중이야.”

“계약금이 얼마라고 했지?”

“5만 달러.”

“일급은?”

“최대 400달러.”

“가라!”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부추겼다.

스페츠나츠 출신이 5만달러 계약금에 4백달러 일급이면 수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 연방법에 위배되지 않는 다는 것으로 세르게이는 만족했다.

“게이 형 스펙에 비하면 헐값이지만 대신 맘은 편하잖아.”

세르게이는 말없이 연기를 내 뿜었다.

* * *

2019년 7월 11일.

터키 국경 인근 시리아 이들리브.

거주 인구 60,000여명의 시리아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리아 곳곳에서 전쟁과 학살을 피해 몰려온 난민들로 인해 인구는 일백오십만 명으로 불어났다.

난민들로 인해 20배가 넘게 인구가 늘어나면서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많은 국제 구호단체들이 식량과 물을 보내줄 것을 호소하고 있으나 시리아 주변국들의 이해가 엉키면서 물자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토마토가 얼마인가요?”

흰 색의 히잡을 둘러 쓴 무슬림 여성이 토마토가게에 들어섰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난민들이 몰려들기 이전인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곳 이들리브에서 과일 가격은 누구나 쉽게 맛을 볼 수 있을 만큼 저렴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르는게 값이다.

“1kg에 10달러요.”

가치와 신용이 떨어진 시리아 화폐인 파운드는 받지도 않는다.

모든 건 달러로만 통했다.

1kg이라고 해봤자 아이들 주먹 크기의 토마토는 몇 개 되지도 않는다.

여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달러를 꺼냈다.

10달러를 건네주고 1kg의 토마토를 가져온 검정색 자루에 담아 돌아섰다.

가게를 나온 여인은 토마토를 담은 검은 자루를 들고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갔고 버스 정류장에서 걸음을 멈췄다.

정류장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은 우두커니 20여분 서 있었는데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얼마쯤 지났을 때 덜컹 거리며 파랑색 시외 버스 한 대가 다가왔는데 이미 승객들로 만원이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더 이상 들어설 곳이 없을 것 같은 버스 안으로 사람들이 조금씩 밀려들어가고 버스는 다시 출발을 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버스가 서서히 멈춰 섰다.

끼이익!

차가 완전히 멈추고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내렸다.

부우웅!

버스는 다시 덜컹 거리며 떠났고 여자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토마토가 든 검은 자루를 들고 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로 들어섰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마을 입구의 나무 이정표가 있었는데 ‘브리사’란 이름이 쓰여 있었다.

마을 골목을 따라 올라가던 여인은 자그마한 농가로 사라졌다.

“확인!”

“확인!”

“확인!”

여인이 농가로 사라지고 어디선가 무전을 주고받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내는 검은색 수염을 길렀다.

마당에서 공을 차고 뛰어 노는 세 명의 아들을 바라보는 사내의 얼굴에 부드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게 아니야, 알하르지. 상체를 앞으로 굽힐수록 공은 공중으로 뜬 단다.”

아빠로부터 지적을 받은 올해 열 살이 되는 알하르지는 눈을 빛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킥한 축구공이 뜨고 안 뜨고는 상체의 각도와 연관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단다.”

“네 아빠!”

세 아들은 모두 한 살 터울로 큰아들 알하르지, 둘째 하산, 막내 살만이다.

세 아들의 꿈은 묘하게도 하나같이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유럽이나 남미의 아이들처럼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고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배우는 환경은 아니지만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늑대!”

올해 여덟 살이 되는 막내 살만이 멀리 마을 뒤쪽 언덕을 가리켰다.

언덕 위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서 있었다.

오늘 처음 나타난 건 아니지만 묘하게 신경이 쓰인 듯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늑대 두 마리는 먹잇감을 찾으려는 듯 마을을 살피고 있었다.

요 며칠 동네 주민이 키우는 양 두 마리가 사라졌다.

물론 주민들은 언덕위에 있는 늑대들 소행으로 단정했다.

‘사막의 늑대’

사내는 중얼거리며 몸을 돌려 사라지는 늑대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사막에 늑대가 산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사막 여우나, 잘하면 가끔 코요테가 있긴 했으나 늑대는 아주 드물었다.

인근 땅이 기름지고, 특히 올리브나무 숲과 토마토 농사가 활기를 띠면서 조류와 파충류 활동이 그 어느 때 보다 활발하지만 늑대의 먹이가 될 만한 먹잇감은 그다지 없었다.

사내는 여전히 늑대의 출몰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들이 돌아왔다. 사내는 개들의 귀속에서 아주 작은 검정색 칩을 꺼내 가지고 들어갔다.

곧장 컴퓨터 장치에 연결하고 화면을 조정하자 자신들이 감시하고 있던 농가가 내려다 보였다.

오늘도 두 마리의 개는 또 다시 같은 장소를 다녀왔다.

2차 대전 때 소련군이 잘 훈련시킨 개의 몸에 강력한 폭탄을 설치하여 독일군 진지나 탱크를 향해 달려들도록 만든데에서 힌트를 얻어 훈련시킨 두 마리의 군견.

개들은 한 여자의 냄새에 익숙해져 있었다.

오늘도 여인은 5킬로 떨어진 이들리브 시장을 다녀왔고 개들은 여자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 언덕위에 멈췄다.

지난 두 달 동안 개들은 특정 냄새에 대한 훈련을 했고 그 여자가 나타나면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정확히 찾아냈다.

무인 위성을 통해 여자의 동선을 살피지만 후각이 뛰어난 개를 이용한 감시도 병행하고 있었다.

잘 훈련된 개들은 단 한 차례도 실망시키지 않고 있었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은 정리된 듯 싶다.

10월에 접어들었다.

대낮 기온은 여름보다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한 낮에는 36,7도를 예사로 넘나든다.

모두가 잠이든 캄캄한 밤이다.

사사삭!

어둠속에서 많은 군인들이 나타났다.

사막색 전투복의 군인들 모두 4안식 야시경을 썼고 손에는 HK416 소총이 들려 있었다.

위장 크림으로 얼굴을 가렸고 부대를 나타내는 마크도 없는 군복을 걸친 이들은 미특수작전사령부 소속 제1특수부대작전분견대, 흔히 델타포스로 불리는 대원들이다.

드르륵!

정적을 깨는 총소리가 들렸다.

농가 근처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두 명의 IS가 쓰러졌다.

총소리와 함께 마을이 시끄러워 지기 시작했다.

드르륵! 두두두!

AK와 HK416이 어둠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퍽!

털썩!

농가를 지키고 있던 IS는 델타포스 대원들의 조준 사격에 맥을 못 추고 나동그라졌다.

두두두! 양쪽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 세대의 아파치 헬기가 나타났다.

그러자 농가를 지키고 있던 IS 대원들이 헬기를 향해 사격을 하기 시작했으나 그다지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번쩍!

하는 불빛이 일어났다.

슈우우우!

AGM-114 헬파이어다.

전차사냥에 최고의 위력을 보이는 미사일이며 ‘지옥불’로 불린다.

세대의 아파치에서 여섯기의 헬파이어가 발사됐고 농가를 불속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쾅!

콰콰쾅!

농가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사내는 세 아이와 토마토를 샀던 아내를 데리고 도망쳤다.

다행히 헬기의 미사일 공격이 있기 전 곧바로 집을 뛰쳐나온 바람에 살아 날 수 있었다.

드르르르!

요란한 총소리가 들리며 흙과 돌멩이가 튀어 올랐다.

도주사실이 발각된 듯싶다.

투투투!

파팍!

엄청난 총알이 날아왔지만 묘하게도 주위에 떨어질 뿐이다.

HK416은 미군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특수부대만 사용하는 총기이며 그들은 한번쯤 지옥을 다녀온 사람들로 구성된다고 들었다.

그런 그들이 이만큼 수십 발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자신을 생포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투항해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런 의미의 사격이다.

웡웡!

개 짖는 소리가 들렸고 두 마리의 덩치 큰 개가 달려오고 있었다.

화악!

사내의 눈이 커졌다.

늑대다.

자신의 집 마당에서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자주 나타났던 두 마리의 늑대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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