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불꽃, 생명을 다하다(1)
그건 늑대가 아니라 개였다.
사내는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자신은 오랫동안 감시받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잡힌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제든지 세상과 이별하고 알라 곁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입고 있던 폭탄조끼의 스위치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첫째 알하르지, 둘째 하산, 막내 살만이 바라본다.
캄캄한 어둠속이지만 분명하게 보였는데 그건 죽기 싫다는 무언의 외침이었다.
사내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아내 파티마를 바라보았다.
웃는다.
어둠속에서 파티마가 웃고 있었다.
그건 행복이었고 당신과의 삶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파티마는 세 아이를 끌어안았다.
“엄마!”
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어둠속으로 신은 위대하다는 사내의 외침이 터져 나왔고 오른손 엄지가 힘껏 스위치를 눌렀다.
콰아!
콰아아아아!
불빛이 번쩍 하는가 싶더니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졌고 커다란 구덩이 한 개가 만들어졌다.
군인들이 다가왔다.
시신이 없다.
폭발에 흔적도 없이 갈기갈기 찢어져 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때 현장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타나 움푹 패인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무전기를 꺼내 입을 열었다.
“사냥 끝, 반복한다. 작전명 케일라 뮐러(Kayla Mueller) 종료.”
2015년 IS에 피랍된 후 알 바그다디의 성노예가 되었다가 개종을 거부하고 살해당한 크리스천 단체 소속 여성 자원봉사자 케일라 뮐러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칼리프 사냥 끝.”
2014년에 칼리프 국가를 선언하여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수니파 무장단체 IS 우두머리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그렇게 사망했다.
* * *
2019년 10월10일.
연병장에는 외인 7중대원 전원이 도열했다.
오늘 지난 5년간의 외인부대 의무 복무기간을 마치고 제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권총수와, 오민철과 세르게이였다.
나머지 동료들은 6개월씩 연장근무를 신청했다.
외인부대는 6개월씩 계속 연장근무를 신청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전역을 요청하면 군복을 벗을 수 있다.
일주일전 외인부대 역사상 최초로 사령관 프라즉 소장이 직접 찾아와 부대 잔류를 요청했다.
하지만 권총수는 프라즉 소장의 요청을 수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전역식이 이뤄지는 것이다.
UAE에 주둔하고 있는 13외인 여단에서 온 군악대의 힘찬 연주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편안하지, 우리는 거칠고 강인해
보통 사람들이 아니지
우리는 가끔 우리의 어두운 분위기에 빠져들지, 우리는 외인부대원들이야.
통킹에서의, 불멸의 외인부대, 뚜옌꽝(베트남)에서는 우리의 깃발을 명예롭게 했으며
카메론(멕시코 지명)의 영웅들과 다른 형제들이여.
무덤속에서 안식을 누리소서.
우리의 선조들은 죽었지, 외인부대의 영광을 위해, 우리도 모두 사라질거야, 전통대로 말이야.
머나먼 곳에서의 작전도, 열과 불에 직면하는 것도, 우리의 슬픔을 잃는 것도, 죽음도, 그것은 잊기엔 너무 작지. 우리는 외인부대니
외인부대 군가‘르 부댕(Le Boudin)’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13외인여단장은 권총수와 오민철, 세르게이의 전역식을 빛내주었다.
“앞길에 행운이 넘치길 빈다.”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힘차게 악수를 하며 말했다.
오민철 역시 13여단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넌 최고의 군인이다. 대한민국 707은 가장 완벽하다.”
“그렇습니다.”
오민철은 고개를 뒤로 제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세르게이 역시 스페츠나츠의 용맹함과 과감함에 대해 칭찬을 들었다.
여전히 세르게이는 조용히 웃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외인부대를 걸어 나왔다.
부대를 나온 두 사람은 곧장 아르빌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이라크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서 조금씩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그다드행 버스표 두 장 주시오.”
권총수는 매표소에서 버스표 두 장을 받았다.
“진짜 다섯 시간 걸리는 거야?”
오민철이 건네주는 표를 받아 재빨리 살핀다.
“고속버스가 고작 300킬로 정도 가는데 무슨 다섯 시간씩이나 걸리냐.”
오민철이 투덜거린다.
전쟁으로 인해 고속도로 곳곳이 끊어지거나 훼손되어 복구 중이었다.
후세인 시절에도 그다지 도로망은 잘 되어있지는 않았는데 두 사람은 담배를 한 개비씩 피우고 난 뒤 버스에 올랐다.
도로는 생각보다 더 나빴다.
미군들이 이라크 전쟁부터 시작해 얼마 전까지 반군들을 토벌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이 보급품 차단이었다.
수송기나 헬기등 공중 이동 수단이 없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도로 뿐이었다.
미군은 의도적으로 도로를 파괴했고 그중에서 고속도로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파괴한 고속도로를 복구하는 건설회사는 미국 기업이다.
“그야말로 아이러니로군.”
오민철이 중얼 거렸다.
버스는 20여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
모두 현지인들로 보였다.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 때문일까. 오민철은 잠을 자보려고 해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반면 권총수는 버스에 오르고 얼마되지 않아 곧장 코를 골기 시작했다.
“세월 좋구나.”
오민철은 골아떨어진 권총수를 보며 투덜 거렸다.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버스는 애초 다섯 시간보다 무려 40분이 늦었다.
특히 바그다드 시내가 연일 폭탄테러로 어수선 한 바람에 평소 택시로 30분이면 도착하는 공항까지 두 배인 1시간이 걸렸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허겁지겁 수속을 밟고 예약된 에미레이트 항공편에 올랐다.
두바이를 경유해 인천으로 들어갈 것이다.
두바이까지는 대략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아직 치안이 안정되지 않은 이라크였기 때문에 공항에서의 검색이 무척 엄격했다.
기내 서비스를 받고 잠깐 잡담을 나누는 사이 비행기는 두바이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생각지 못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바로 가스통이었다.
스나이퍼 스쿨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던 사나이.
그는 놀랍게도 권총수가 온다는 걸 알고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전역자는 이미 민간인이다.
그러나 권총수에 대한 이슬람쪽 공기는 살벌했다.
군인 신분이든 민간인이든 발견하면 죽여야 한다는 무언의 맹세를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외인부대에서는 권총수의 전역소식을 3급 비밀로 인가했다.
최소한 중동을 떠날 때까지는 권총수의 동선은 철저히 보호됐다.
하지만 이미 세르죵(하사)로 진급했고 13외인여단으로 파견 나온 가스통은 3급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 가버리면 더 이상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기다렸다고 했다.
페허로 변한 잿빛의 나라 이라크와는 확연이 다르다.
마치 서울 중심가에 온 듯한 두바이의 풍경은 화려했고 힘이 있었다.
대한항공으로 갈아타는데 2시간 정도 시간의 여유가 있어 세 사람은 커피 숍에 마주 앉았다.
권총수는 가스통을 오민철에게 소개했다.
오민철은 특유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반갑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스나이퍼 스쿨 시절로 잠시 돌아간 두 사람은 당시를 회상하며 즐겁게 얘길 나눴다.
그러다 가스통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어왔다.
외인부대에 계속 남아있으면 뛰어난 군인이기 때문에 진급은 물론 여러가지에서 좋은 일이 많을텐데 하며 아쉬워 했다.
“글쎄,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민간 보안회사로 진출 할 것 같은데.”
민간보안회사라는 말에 가스통의 눈이 커졌다.
“용병?”
“생각중이야.”
“너 정도 되면 몸값이 꽤 비쌀 거야.”
가스통이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부러움이 아닌 연민이었다.
권총수는 가스통의 눈빛이 왜 그렇게 변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용병과 군인은 다르다.
용병은 고용주를 위해 일하고, 군인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가스통의 신념과 가치관으로서 용병을 판단 한다면 돈만 아는 돈 벌레들인 것이다.
특히 세계 도처에서 용병들로 인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때 동료였고 유일하게 존경하는 권총수가 용병진출을 고려한다는 말에 안타까운 것이다.
“오흐부아(Au revoir: 잘가).”
“오흐부아.”
권총수는 가스통과 굳게 악수를 하며 청춘의 한 시절 만났던 프랑스 청년과 이별을 했다.
* * *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전번과는 달리 오민철을 마중 나온 사람은 큰 누나 한 명뿐이었다.
“누님!”
오민철이 다가갔지만 큰 누님은 비켜나며 권총수에게 다가왔다.
“어서와요 총수씨, 전역을 축하 드려요.”
오민철이 단단히 교육을 시킨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구부렸다.
“전번보다 얼굴이 좋아 졌어요.”
“예!”
“누님, 난 안보여. 나 동생이야.”
“시끄러.”
오민철의 큰 누님은 눈을 흘기며 다시 권총수를 향해 웃었다.
“배고프죠. 가요. 제가 저녁 살게요.”
권총수는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서툴긴 하지만 자신을 위해 배려하고 준비한 오민철과 큰 누님의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다.
권총수는 모른 체 하며 손을 빼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치밀한 계획을 세운 모양이었다.
북한산 깊은 곳에 자리한 북악정이라는 한식당에서 갈비 대접을 받았다.
권총수는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갈대로 엮어 만든 작은 꽃무늬 모자를 꺼냈다.
쿠르드족 여인들이 즐겨 쓰는 전통모자였다.
치열한 전쟁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 모자를 팔고 있는 쿠르드 여인을 보고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나 주는 거야?”
“예, 누님 드리려고 사왔습니다. 한 번 써보시죠.”
“세상에 너무 이쁘다.”
오민철의 큰 누님은 파마를 하여 수북하게 올라온 머리 위로 모자를 슬쩍 얹었다.
“야 죽인다. 우리 누님.”
오민철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말?”
너무 좋아했다.
권총수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호텔방으로 들어섰다.
오민철은 식당에서 곧장 큰 누님 집으로 돌아갔다.
윗도리를 벗어 옷걸이에 건 권총수는 창문 커텐을 젖혔다.
멀리 한강이 보였다.
‘빌어먹을 한강’
오래전 술을 마시고 한강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뛰어들지는 못했다.
딱!
냉장고에 있던 캔 맥주 한 개를 따서 마시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잉!
액정에‘부동산 사장님’이란 글씨가 떴다.
“여보세요.”
“사장님?”
“네 그렇습니다. 말씀하세요.”
“한국 오신 거죠?”
“지금 호텔입니다.”
“집이 한 채 나오긴 했는데, 내일 어떻게 한번 보시겠습니까?”
집을 구해야 했다.
그래서 전역 직전 부동산에 조그만 전세 집을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지금 연락이 온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제가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끄고 단번에 캔 맥주 한 개를 비웠다.
자리에서 일어난 권총수는 옷을 벗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20여분 뒤 속옷 차림으로 나온 권총수는 소파에 주저 앉으며 텔레비전 리모컨을 눌렀다.
텔레비전에서는 드라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저기 화면을 돌리다 뉴스 채널이 걸렸다.
마감뉴스라는 자막이 화면에 뜬 가운데 한 사람이 군인들에게 삼정검(三精檢)을 건네고 있었다.
권철태 대통령이 오늘 장군진급자 15명에게 삼정검을 수여했다는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