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71화 (271/325)

[271]

던질 수 있는 구종이 적은 것과 체력의 부족함에 한계가 눈앞에 보였다. 하지만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것은 싫다.

적어도 동팔을 돌려세우지 않으면 투수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끝낸다. 어떻게든…….'

신중한 생각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간만에 하는 모험이었다.

스윽~ 휙!!

투수가 던진 공은 약간 뜬 것처럼 높이 날아갔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 윗부분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과연 공은 평범한 직구인지, 아니면 싱커로 내려가는 것을 감안해 던진 것인지? 그에 대한 판단을 동팔은 0.3초 이내. 아니 0.1초 보다 더 빨리 내려야 했다.

휙~ 타악!!

동팔이 선택한 것은 싱커. 그리고 다행히 동팔의 예상이 맞았는지 공이 배트에 맞았다. 하지만 빗맞았는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공은 뒤로 튀어 올랐다.

파울로 인해 볼카운트는 1스트라이크 2볼.

동팔에게 조금 불리해졌지만, 실제로 더 압박을 받는 쪽은 투수였다.

'싱커라는 것을 알아차렸어? 오타니도 아니고 투수가 타자까지?'

투타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투수와 타자로서 재능을 둘 다 발전시키는 것에는 더 많은 시간과 집중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어정쩡한 투수와 타자로서 능력을 가지는 것보다,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 것이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프로리그 진출에 훨씬 유리하다.

그래도 아주 간혹 두 가지의 능력을 메이저리그에 와서도 꽃피우는 선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 이루기 위해선 천재적인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과, 부상을 당하지 않는 행운과 자신을 절제하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하루 이틀이 아닌, 한 해 두 해가 아닌, 이후에도 은퇴할 때까지 계속.

비록 오타니까지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동안 타격 훈련을 한 보람이 있었다.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동팔은 방금 전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나 해서 찍었는데 맞았어…….'

두 개의 답 중 하나인 이상, 절반의 확률이 존재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맞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대응이 달라진다.

파울이 되긴 했지만, 더 긴장하고 던질 투수와, 투수의 마음과 생각을 짐작하고 배트를 휘두를 수 있는 동팔.

이렇게 되자 투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뭐가 되든… 지금부턴 모든 것이 결정구야!!'

스윽~ 휙!!!

이번은 빠르게 공을 뿌린 투수. 그리고 투수의 던지는 모습을 보자 동팔도 이번에 들어오는 공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포심 패스트볼. 전력!!'

강속구의 대응은 오직 빠른 반응뿐. 빠른 반응이 불가능하다면 미리 움직이는 것이다.

어느 곳으로 날아올지 몰라도, 상대는 제구가 되는 강속구를 던지니 볼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그러니 휘두르는 선택을 했다.

타악!

하지만 이번에도 빗맞는 바람에 파울이 되고 말았다. 볼카운트는 이제 2스트라이크 2볼.

동팔은 이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되었지만, 투수는 하나의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이지,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포심 패스트볼? 하지만 과연 제구가 될까? 방금 전은 운이 좋아서 제구가 되었지만, 다음에 던지는 건 장담할 수 없는데…….'

속도를 올릴 수 있어도 공이 제대로 가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하지만 강속구를 던진다면 동팔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 볼이라 생각하고 휘두르지 않을 수 있고, 어떻게 되든 일단 휘두를 수도 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자신에게 남은 공은 싱커. 물론 제구가 된다는 조건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강속구는 여전히 유효했다.

어차피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모르는 것이고, 설령 동팔이 홈런을 친다고 하들, 실점하는 것은 1점이 고작이다.

그 상황이 투수로 하여금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후우……."

투수는 심호흡을 한 다음, 잠시 약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동팔이 자세를 잡자, 바로 공을 빠르게 뿌렸다.

'또 포심?'

동팔은 투수가 던지는 동작을 보자 이번에도 어떤 공을 던질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미 타석에 준비하기 전에 어떤 대응을 할지도 생각해 두었다.

'어차피 힘이 떨어진 상태라면 제구가 되지 않아. 포심이든, 싱커든 일단 지켜본다.'

위험한 선택이다. 하지만 섣불리 휘둘렀다간 볼을 얻을 길도 막힌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이니 구속이 제대로 나올 가능성은 낮았다. 그럼에도 투수가 강속구를 던졌다는 것은 모든 것을 천운에 맡기겠다는 것.

운이 따르면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도 동팔이 섣불리 배트를 휘두르면 헛스윙으로 삼진이 된다.

쉭~ 퍽.

하지만 어느 쪽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팔은 순간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이 떴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바로 배트를 뒤로 뺐다.

포수는 동팔의 배트가 휘둘러졌는지 심판을 통해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동팔의 배트는 돌지 않았다.

결국 풀카운트까지 가게 되었다.

어느 쪽도 유리하지 않은 카운트. 그러나 투수는 여전히 압박을 받고 있었다.

'젠장… 힘이 떨어졌어. 방금 전이라면 제대로 던질 수 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한 이닝에 전력으로 던질 수 있는 공의 한계가 있었다. 그것도 계속 노력하면서 쌓은 자신의 체력이었다.

전에는 12~15개의 공으로 이닝을 마무리했으니 드러나지 않는 단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타자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내려올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단점이 드러났다.

'지금이라도 교체를 해달라고 할까?'

이성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평상시의 자신이라면 타자인 동팔을 가볍게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체력이 떨어진 상태라 버거웠다.

그러나 이성과 달리 자존심은 그러길 거부했다.

'아냐. 하나만 잡으면 돼. 하나만 제대로 던지면 그걸로 경기는 우리의 승리로 끝나!!'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만 넘어가면, 단 하나만 넘어가면 승리의 고지가 눈앞에 있었다. 그런 강렬한 유혹이 투수로 하여금 마운드에서 내려가지 않게 만들었다.

이미 자신은 어느 공이라도 완벽하게 던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투수가 선택해야 할 목표는 타자 강동팔을 아웃으로 잡을지. 아니면 볼넷으로 내보내는 것도 감안할지를 결정했다.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제구가 되지 않는 포심 패스트볼. 아니면 역시 볼 끝의 움직임이 떨어진 싱커였다.

목표와 수단을 선택한 투수는 자세를 잡고, 준비를 하고 있는 동팔에게 공을 던졌다.

휙~!!

투수가 공을 던지자 동팔은 이번에도 시간을 아주 조금 들여 지켜봤다.

'어차피 포심 패스트볼이라도 전보다 빠르지 않아.'

빠르면 빠를수록 제구도 그만큼 불안정해진다. 투수가 운에 맡기고 강속구를 던질지. 아니면 싱커로 자신을 속이려 할지. 그것도 아니면 밋밋한 싱커가 날아올지 알 수 없다.

아무리 체력이 떨어져 구위가 떨어졌다지만, 클래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동팔은 날아오는 공을 보자 확실히 방금 전보다 구속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파악했다.

'포심 패스트볼. 하지만 생각보다 느려!!'

동팔은 투수의 의도를 확실히 알았다. 자신을 결코 볼넷으로 보낼 생각이 없다. 그리고 본인이 이 경기를 끝낼 생각이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 않는 공을 던졌다가 동팔이 배트를 휘두르지 않으면 볼넷이 되니 그것만은 절대로 피한다.

당연히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싱커라면 포심보다 높은 곳을 향해야 하고, 포심이라면 정직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다.

지금 공이 향하는 쪽은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에 근접했다. 그리고 포심 패스트볼치곤 생각보다 구속이 느렸다.

확신을 하는 순간, 동팔의 팔이 움직였다.

휭~!!

예상되는 궤적을 향해.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맞추기 위해 배트를 휘둘렀다. 이제 볼넷조차 불가능해진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

따악!!

경쾌하고 깔끔한 타격음이 울리자 투수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서, 설마?'

아무리 타격음이 좋아도 타구가 향하는 방향과 높이가 중요했다. 제대로 맞은 타구라도 외야 플라이로 끝날 때가 많다.

하지만 동팔의 타구는 높이 뜨지 않았다. 뜨더라도 빠르게 홈플레이트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바람도 불지 않아 다른 변수조차 없었다.

휘익~ 텅.

야구공은 펜스 너머에 있는 관중석 옆의 계단에 떨어졌다. 결과는 홈런.

일부 관중이 홈런볼을 줍기 위해 움직였지만, 대부분의 관중은 동팔의 홈런에 멍하니 있었다.

이곳은 보스턴. 그리고 아직 진 것은 아니지만, 2점 차이가 1점 차이로 좁혀지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이기고 있더라도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다음에 혹시 또 홈런을 치면… 동점?'

비기면 9회말 공격 때 어떻게든 점수를 내야 한다. 안 그러면 연장전으로 들어가 승부가 날 때까지 경기가 진행된다.

방금 전만 해도 9회말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남은 아웃카운트를 실점 없이 채우지 못하게 되면 9회말을 해야 한다.

그러니 이기고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주자가 없는 상태였으니 다행이지, 만약 주자가 있었다면 최소 동점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설마 투수인 동팔에게 홈런을 허용할 줄은 몰랐다.

결국 이번 홈런으로 인해 보스턴은 체력이 떨어진 투수를 교체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불펜 투수가 없었고, 이미 흐름이 바닥인 상태에서 홈런까지 허용하자 수비에서도 실책이 이어졌다.

어찌하여 겨우 아웃카운트를 마저 채웠지만, 그 사이 2점을 얻은 양키즈는 여유 있게 9회말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공격과 수비가 교대되면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과 뉴욕 양키즈의 팬은 생각했다.

"이제 동팔을 대신해서 대수비로 누군가 나오겠지?"

당연한 생각의 흐름이었다. 설마 1선발인 동팔을 계속 구장에 내보낼 이유가 없었다. 홈런까지 친 상황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양키즈 팬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동팔은 다시 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강동팔이다."

"또 나왔어?"

"설마 다른 수비도 가능한 거야? 외야일까 내야일까."

"투수니까 외야……."

그런데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팔은 자신이 수비할 곳에 섰다. 그곳은 당연히 동팔에게 익숙한 마운드였다.

"……."

"……."

지완이 7회와 8회를 간단히 막은 것도 황당했다. 그런데 설마, 이제 보스턴에게 남은 마지막 공격 기회를 봉쇄하기 위해 동팔을 올려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야!! 이 양키 새끼들아!!!"

"니들이 사람이야?"

"어제 선발로 나온 투수를 혹사시키는 것이 말이 돼?"

보스턴 팬들은 의도한 것과 다르게 동팔의 팔과 안위를 걱정해줬다. 정확히 말하면 패배 직전인 자신의 팀이 허무하게 지는 것을 확정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존 지라디 감독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제 선발로 나온 동팔을 마지막에 올려놓은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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