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72화 (272/325)

[272]

"공 다섯 개라고 했지?"

"네, 그 이상 던지면 내려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들도 동팔에게 휴식을 부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승리를 확실히 지키기 위해 동팔이 스스로 마운드에 오르기로 했다.

이미 대타로 나왔으니 또 교체할 필요가 없었다.

한 타자를 상대로 던지다가 교체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선수 보호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대비한 규정이 있다.

그리고 아무리 승리를 위한다고 한들, 투수는 공을 던지다 아웃카운트를 채우기도 전에 교체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공을 던져보니 지금 투수로는 상대 타자를 이길 수 없다고 확신하지 않고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수 자원에도 한계가 있으니 굳이 상대하는 타자와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교체하는 건 실제로 좋지 않았다. 덤으로 치졸한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팬들이 떠날 우려가 크니 잘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러니 공 다섯 개라고 동팔이 말을 했지만, 꼭 다섯 개가 아니더라도 그 이상 던진 상태에서 아웃카운트를 채우면 바로 교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휘익~ 타악!!

방금 전 지완이 한 것처럼 3구 삼자범퇴까지는 아니었지만, 동팔은 공 8개로 보스턴의 마지막 기회를 완전히 봉쇄하였다.

결국 점수는 4대3으로 양키즈의 역전승.

한참 홈에서 이기고 있다가 역전을 당한 보스턴 팬들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전부 벙어리가 된 것처럼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계를 통해서 보는 양키즈의 팬들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들은 동팔이 마운드에 올라오자마자 이미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예~!!!!"

"빨간 양말에 구멍이 숭숭 나는구나!!!"

"끝났네, 끝났어."

비록 보스턴에서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중계화면을 통해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었다. 양키즈 선수가 타석에 올라왔을 때마다 쏟아지는 야유소리는 그대로 전파를 통해 전해졌다.

밤비노의 저주 이후로 보스턴이 양키즈와 앙숙으로 생각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들이 일방적으로 야유 받는 모습이 좋을 수는 없었다. 양키즈 팬들도 속이 좋지 않을 때, 마침 지완이 화려하게 복귀하여 두 이닝을 완벽하게 지웠다.

그것도 고작 12개의 공으로.

그런 와중에 동팔이 마지막에 타석에 오르더니 추격포를 터트렸고, 흔들리고 있는 보스턴을 두들기며 2점을 추가했다.

정말로 9회 2아웃 상태에서 역전을 하니 이보다 짜릿할 수 있을까?

물론 역전을 당한 보스턴의 입장에선 속에서 열불이 튀어나오겠지만, 양키즈는 그와 정반대로 아주 시원한 사이다를 들이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누가 승리투수지? 지완? 아니면 강동팔?"

한 사람의 의문에 공식기록은 이렇게 나왔다.

이로 인해 승리투수는 7,8회말을 지킨 남궁지완이, 동팔은 선발투수로선 기록하기 힘든 세이브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승리와 패배의 기록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뜨거운 여름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시간이 다가왔다.

# 응징

이번 정규시즌이 끝나자마자 그 결과에 따라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는 팀이 결정되었다.

뉴욕 양키즈는 다른 팀에 비해 타격이 약하지만 동팔을 필두로 단단한 마운드를 구축했다. 그리고 지완이 매 경기마다 1~2이닝을 완벽히 지우면서 뒷문을 지켰다.

그로인해 높은 승률을 끝까지 유지한 양키즈는 아메리칸 동부 리그의 우승을 연이어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젠 마의 5할 타율을 정복한 동욱이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아메리칸 중부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덤으로 아메리칸 서부 리그의 우승은 작년과 같은 시애틀 매리너스였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는 승률이 높지만 뉴욕 양키즈에 밀린 보스턴 레드삭스. 그리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밀린 미네소타 트윈스였다.

이렇게 되자 메이저리그 팬들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각 지역 우승팀이 작년에 우승한 팀과 같잖아?"

"와일드카드 빼고는 바뀐게 없어."

어떻게 보면 작년과 거의 같은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기 때문에 식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팀이 경기를 한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야구만 아니라 어느 종목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식상한 것이 없을 수 없다. 그건 바로 작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난 상대를 디비전 시리즈에서 또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와일드카드와 만나지 않은 두 팀, 양키즈와 매리너스는 분위기가 달랐다.

작년에 디비전에서 패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양키즈는 이를 갈고 있었다. 반면 매리너스는 작년에 이긴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고 연속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한편 작년 와일드카드에선 텍사스가 올라왔지만, 올해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올라왔다.

상대하는 팀이 작년과 달라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게 편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거리가 먼 동부와 서부보다, 중부인 그들은 어느 지역의 팀을 상대하더라도 양키즈나 매리너스보다 편했다.

반면 보스턴 레드삭스는 간만에 올라온 포스트시즌에서 이를 갈고 있음은 당연했다.

"기록으로 보나, 선수로 보나, 양키즈가 챔피언십에 올라올 가능성이 높아. 리그에서 당한 치용을 챔피언십에서 갚는다!!"

약간의 차이로 지역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보스턴은 시애틀 매리너스를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아메리칸 리그만 볼 경우, 보스턴의 승률이 시애틀 매리너스보다 높았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불운이라면 자신보다 더 높은 승률을 기록한 팀이 같은 지역에 있다는 것.

그게 아니었다면 보스턴이 시애틀 매리너스를 누르고 와일드카드가 아닌 지역 우승으로 진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룰은 룰이었고, 이전부터 진행된 방식이 바뀌는 것에는 많은 진통이 따른다. 그리고 이 또한 메이저리그의 팬들이 즐기는 요소 중 하나였다.

물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불행의 타킷이 아니라는 전제에 한정되겠지만.

기록과 직접 상대한 것을 바탕으로 보스턴의 예상은 이러했다.

양키즈가 압도적으로 시애틀을 누르고 챔피언십에 올라갈 것이라고. 그러니 설욕을 하기 위해선 클리블랜드라는 거대한 산을 먼저 넘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압도적인 타선의 폭발력을 가진 제일 큰 이유인 한동욱을 어떻게든 상대해야 했다.

전문적으로 선수들의 역할이 분업화가 된 이후, 최초의 5할 타자인 한동욱은 이번에도 아메리칸 리그 MVP가 거의 확정이었다.

작년과 달리 기복이 있었지만, 결국 정규시즌이 끝날 때 몰아치듯 안타를 쳐서 5할을 넘은 것이다.

당연히 클리블랜드를 상대할 보스턴으로선 제일 경계할 타자 1순위로 뽑아야 함은 당연한 일. 그리고 이는 클리블랜드만 아니라 모른 팀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 선수를 상대하는 것이 버겁더라도, 하나의 팀을 상대하는 관점으로 보면 방법은 있었다.

'한동욱의 안타를 피할 수 없다면, 그의 앞에 가능한 주자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5할이란 타격을 하면 절반은 안타, 나머지 절반은 범타로 끝난다는 의미. 그러니 미리 겁을 먹을 필요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고 대처를 하더라도 대비해야 할 선수는 한동욱만이 아니다. 그가 제일 두각을 나타낼 뿐, 클리블랜드에는 뛰어난 타자가 많았다.

어떻게든 클리블랜드보다 점수를 내지 못하면 진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강한 타선에 비해 마운드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이었다.

재정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타선을 보강하다보니, 마운드를 보강하는데 미진할 수밖에 없었다.

정규시즌에선 서로가 흐름에 따라 승리와 패배가 결정된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포스트시즌 중 디비전은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5전 3선승 하는 팀이 챔피언십에 진출한다.

당연히 처음부터 3연승을 하여 챔피언십을 여유롭게 준비하고 싶은 것은 어느 팀이라도 마찬가지.

그래서 더 치열하게 접전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위해서 지난 반년 동안 기나긴 여정의 시험을 통과하지 않았던가.

특히나 월드시리즈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첫 관문에서 잃는다면 더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당연히 한동욱을 필두로 하는 클리블랜드의 막강한 타선을 넘기 위해선, 보스턴 역시 최대한의 화력을 가동하며 맞서야 했다.

"양키 놈들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리한다!!"

하지만 정작 한동욱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한 투지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늘부터 디비전이니 양키즈랑 시애틀도 같이 경기를 하지? 결과가 어떻게 나오려나……?'

그는 자신이 해야 할 경기보다 오히려 다른 디비전 시리즈의 결과를 신경쓰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애틀의 경기 결과였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야구 경기 중 하나였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쟁의 말 중에 하나가 자신이라는 것 또한.

그러니 동욱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다른 예상을 하고 있었다.

'동팔과 지완이 쉽지 않겠어. 아무리 지완이가 이닝을 지우더라도 데미안의 모든 타석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동팔이 선발로 나오는 경기는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전과 달리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완이 양키즈의 마무리 투수라는 것이다.

동팔이 아닌 투수가 선발로 등판하더라도, 그들보다 구위가 더 뛰어난 지완이 뒷문을 단단히 지킨다.

이것은 양키즈의 입장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게 만든다. 양키즈의 공격 기회는 9회지만, 상대팀의 공격 기회는 지완이 이닝을 완벽히 지워버림으로 인해 7~8이닝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욱은 양키즈가 아닌 시애틀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동팔이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를 포기하는 대신, 헤럴드가 다른 경기에 등판하도록 해서 1승 1패로 만든다. 그리고 나머지 세 경기에서 데미안이 양키즈의 다른 선발을 뚫어버리면……?'

애초에 시애틀의 승률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다른 구단보다 낮은 건 이유가 있었다. 이것은 시애틀의 보이지 않는 중추 선수인 헤럴드와 데미안의 목적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메이저리그에 있는 목적은 단 하나. 악마와 계약을 한 사람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여 해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니 계약자가 있는 팀이 우승할 수 없게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지 않는 것은 기본. 그리고 상대할 기회가 많지 않아 막을 수 없다면 포스트시즌에서 막으면 된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지역의 우승이다. 높은 승률이든, 낮은 승률이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적당히 얕잡아 보이기 위해 눈에 띄는 기록을 세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선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상대를 저지한다. 그걸 알고 있는 동욱은 양키즈보다 시애틀이 더 껄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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