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47화 (47/105)

47. 쿵푸팬더 같지 않아요?

47.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그 살얼음 낀 분위기 사이로 희망찬 미래를 노래하는 음악이 들려왔다. 대체 이 노래의 근원이 어디인지 두리번대던 선유와 제운의 시선이 소민이 지금 막 꺼내고 있는 그녀의 핸드폰으로 향했다.

“그거 설마 댁 벨소리야?”

“여보세요?”

매번 어떻게 남들의 시선을 끌기 딱 좋은 벨소리만 골라 설정해 놓는지 선유가 경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치자 소민이 전화를 받으며 한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누나! 지금 어디야?

귀청이 떨어질 듯 소리를 지르는 민규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그녀가 통화 볼륨을 낮췄음에도 민규의 목소리는 수화기 너머로 우렁차게 들려왔다.

평상시보다 2옥타브는 높은 듯한 목소리에 ‘이놈이 성대에 확성기를 달았나. 왜 이래?’ 하는 생각을 한 소민이 한쪽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폈다.

“나? 목포에 촬영 있어서 왔는데 왜?”

-아무 일 없어?

“무슨 소리야?”

-대박! 이거 완전 좀비 같은데?

“좀비?”

-누나, 지금 인터넷 검색어 10위권 안에서 누나가 왔다 갔다 하는 거 알아?

“내가? 내가 왜?”

-나 참, 이 꼴을 하고 찍고 싶단 생각이 들디? 뭔 자신감이야?

“아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건데?”

-백문이 불여일견.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누나가 한 번 보는 게 나을걸?

“뭐? 야? 야? 제대로 설명해!”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전화는 더 이상 민규의 목소리를 전해주지 않았다. 핸드폰을 때리다 보면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듯 잔뜩 흥분해 소리치며 지 용건만 마치고 전화를 끊어버린 동생이 아프기라도 하는 양 핸드폰을 탁탁 때리던 소민이 불현듯 자신을 보고 있는 두 남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하하하하하. 제운 씨 방금 이건 그러니까 동생이 너무 당황스러운 말을 하고 제대로 설명도 안 해줘서 그런 거예요. 이해해주실 수 있죠?”

얼마든지 이해가 가능하다는 듯 제운이 웃어 보였고, 그런 둘의 모습에 선유의 미간이 다시 꿈틀하고 움직였다.

“근데 제운 씨 하실 얘기가.”

어서 화제를 돌리고 싶었던 그녀가 제운에게 그렇게 묻자 제운이 다시 한 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동생분이 하신 얘기랑 같은 얘기예요.”

“네?”

*

“이…… 이게 뭔?”

그녀가 자신의 시력을 부인하며 눈을 감았다 뜨고 고개를 붕붕 저어보기도 했지만 화면 안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화제의 중심이 됐네. 축하해.”

동생의 말대로 직접 눈으로 확인한 내용을 함께 본 선유는 별로 충격을 받지도 않고 덤덤하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다 알고 있었죠?”

“어.”

변명도 않는 그의 말에서 쿨워터향이 느껴졌다. 살인의 충동과 함께. 지금이 쿨 한 척할 때인가 말이다.

그런 소민과 무관하게 이미 잡지 광고면에 실릴 베스트 컷을 봤던 선유는 별반 동요가 없었다.

“몇 권 사 둬. 살 때 내 거도 같이 사주고. 서로 기념으로 하나씩 갖고 있지.”

“미쳤어요? 이걸 왜 사요?”

“난 사놓을 건데?”

염장을 지르는 선유를 노려보는데 제운이 살며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민 씨 괜찮아요?”

그런 제운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치면서 선유가 소민을 향해 말했다.

“나랑 같이 화보 찍으면서 그런 것도 예상 못 했어? 잘 나오고, 잘 팔리고, 알려질 수도 있다는 거.”

걱정하는 제운과 달리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말하는 이 앞의 남자가 미워졌다. 물론 모델료를 받았기에 자신이 실릴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일이 이 정도로 커질 줄은 몰랐다.

“광고에 나올 건 각오하긴 한 건데 제가 왜 검색어에 올라야 하는 거죠?”

울상을 지은 소민이 그렇게 말했고, 선유가 뭐라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댓글을 훑어본 제운이 소민을 위로했다.

“소민 씨, 소민 씨 사진이 워낙에 잘 나와서 이슈가 된 거예요.”

“정말요?”

“예. 제가 먼저 댓글을 봤는데, 소민 씨 팬이 200만 정도 생긴 것 같아요.”

과장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소민에게 홀딱 반하겠다는 댓글이 수두룩했으니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유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녀의 팬이라면, 게다가 저 모습에 반한 거라면 자신과 같은 성별인 남자들일 텐데 그게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물론, 그의 안목이 옳다는 거니까 기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런 모습을 자신만 알고 싶단 기분에 잡지를 자신이 다 사들이기라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인터넷에 오른 사진까지 내릴 방법은 없었다.

촬영할 때도 좋았고 사진을 확인할 때까지도 좋았는데 막상 그게 잡지로 나오니 왠지 모를 걱정이 밀려왔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민은 정신을 놓고 멍하니 핸드폰만 들여다보다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하!”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깜짝 놀란 남자 둘이 그녀를 쳐다봤다.

“아 배야. 저 화장 이렇게 해 놓으니까 꼭 쿵푸팬더 같지 않아요? 어떡해. 작가님 속상하셨겠다. 마녀라 그랬는데. 팬더가 나왔어. 크크크크크크크큭. 현장에서 그러실 만했네. 내가 봐도 웃겨.”

큭큭거리는 웃음소리와 셀프디 스를 하며 남을 염려하는 저 여자의 정신상태가 염려된 선유가 제운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밀어내고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선유의 목소리에 소민이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어깨에 얹힌 선유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답했다.

“네. 괜찮아요. 어쩌겠어요. 이미 나온 거.”

포기하고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 소민이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한 말과는 달리 상황은 괜찮지가 않았다. 촬영 현장에서부터가 난리였다.

별 얘기도 못했는데 촬영을 재개한다는 소리에 제운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자 소민 역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특히 남자 조연들, 엑스트라들이 촬영 시간이 비는 틈에 그녀의 주변을 서성이다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말을 걸자 그 뒤로는 줄줄이 소민에게 한 마디씩 건넬 틈을 노렸다. 그 덕에 분위기는 꽤나 어수선했고, 선유가 그들을 막고는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선유가 배우인지라 그것도 자신들과는 급이 다르게 유명한 사람인지라 함부로 하지는 못했지만 집요하게 들이대는 까닭에 꽤나 힘들어 보였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소민은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또 한 명의 남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막느라 진땀을 뺀 선유가 꽤나 지친 기색으로 이마에 땀을 닦아냈다. 그런 선유의 모습을 소민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가 정말 계약 건 때문에 왔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로 온 건 아닐 게 분명했다. 경호만 받고 살게 생긴 저 남자가 자신을 경호하느라 괜스레 힘을 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촬영장을 둘러본 소민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제운의 촬영을 지켜보러 온 것인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이렇게 있으면 촬영 분위기에도 제운에게도 민폐만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운전을 하기는 자신이 없어 버스를 타고 들어온 터라 지금 상황이 되고 보니 차가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가져올 건데 하고 고민을 하던 소민이 자신의 앞에선 선유를 바라봤다.

“한선유 씨.”

“왜?”

또 다시 다가오는 남자에게 사나운 표정을 보인 그가 그녀를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혹시 여기 올 때 어떻게 왔어요?”

“차타고 왔지.”

“본인 차로요?”

“그럼 버스타고 왔을까? 그랬음 인터넷이 채소민 사진이 아니라 내 대중교통 이용기로 넘쳤을걸. 차라리 그럴 걸 그랬나?”

“그럼…… 저 버스 터미널까지만 태워다 주면 안 돼요?”

뭔가를 후회하는 듯한 선유의 말에 그렇게 부탁한 소민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버스 타고 올라가야 할까 봐요. 제운 씨 연기하는 거 같이 봐주고 싶었는데 계속 있다가는 제가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로 올라간다는 소민의 말에 선유의 입이 반달 모양을 그렸다.

“그럼 어차피 나도 올라가야 하니까 서울까지 내가 태워다 주도록 하지.”

“그래요.”

순순히 선유의 제안을 받아들인 소민이 촬영을 하는 제운을 향해 눈길을 한 번 주고는 제운의 매니저 유찬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

촬영을 마친 제운이 자리에 돌아왔을 때는 소민의 모습이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았다.

“유찬!”

“네!”

“소민 씨는?”

“아, 아까 올라가신다고 가셨어요. 아무래도 여기 계속 있으면 촬영에 방해될 것 같다고.”

“혼자?”

“아니요. 한선유 씨랑 같이 올라가시는 것 같던데요?”

“그래...?”

“네.”

얼굴색이 어두워진 제운을 보며 무슨 일이냐는 듯 유찬이 그를 바라보자 제운이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알겠어. 고마워.”

“네. 전 다음 촬영 일정 알아보고 올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제운을 뒤로 한 유찬이 멀어지자 제운이 핸드폰을 들었다. 아까처럼 뜨겁진 않아도 여전히 실시간 검색어에는 소민의 사진이 포함 돼 있었다. 제운이 핸드폰으로 다시금 사진을 바라봤다. 다시 사진을 보고 있자니 아까의 소란스러움이 떠올랐다.

선유와 소민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쪽에서 여자 스태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야, 김제운 씨 캐스팅 디렉터 이름이 뭐야?”

“왜?”

“지금 인터넷에 한선유 씨 화보 올라왔거든. 근데 같이 찍은 여자가 낯이 익더라고. 어디서 봤나 했는데 김제운 씨 캐스팅해온 그 디렉터 같아.”

“헐, 대박! 그럼 아까 그 채소민 씨가 한선유 씨랑 화보 찍은 그 여자란 말이야?”

소민의 이름에 고개가 절로 그리로 돌아가고, 청각이 예민하게 그 소리를 좇았다.

“그러니까 정말 맞는지 잘은 모르겠는데 지금 인터넷에 난리야.”

“근데 채소민 씨가 모델이야? 아니잖아? 근데 왜 화보 찍은 거지?”

“거야 모르지. 근데 그 정도 외모면 내가 촬영감독이래도 한 컷 찍어보고 싶겠다.”

그녀들의 대화 가운데 주요 단어들이 한 단어도 빠짐없이 그의 머리에 깊게 새겨졌고 그가 움직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인지 확인부터 해야 했다.

“유찬 씨! 유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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