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게 무슨 짓이야?
그의 말에 놀란 그녀가 아까만큼 커다래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며 중얼거리는 말로 자신의 말을 변명하는 것이었다.
“집 안에 감금해놓으면 어디다가 제보하지는 못하겠지. 감시 안에 두면 관리도 쉬울 거고.”
“절 먹여 살리시겠다는 소리예요?”
타는 목에 국을 넘기던 그가 그녀의 말에 국을 뿜고야 말았다.
“아. 디러.”
앞치마를 입고서도 옷에 튀었다면 옷을 탈탈 터는 그녀를 쳐다보다 그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더럽다며 옷을 터는 그녀의 모습 뒤로 자신의 집 거실이 오버랩 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잠이 심하게 모자라는 것 같았다.
사흘을 철야로 작업해도 거뜬했던 게 얼마 전이었는데 아무래도 체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널 먹여 살리겠다는 소리는 아니야.”
“그럼 절 집에 가둬두고 굶겨 죽이시겠다구요?”
“글쎄... 거기까지는 생각 안했는데... 그럼...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은 줄게.”
있지도 않을 상황을 진지하게 얘기하며 받아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싸가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조금은 순진한 구석이 있는지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던 그녀가 순간 고개를 흔들었다.
웃기는 생각이었다. 소문난 카사노바 한선유에게 순진이라니 전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데 어쩌다 그 단어가 떠오른 걸까.
고개를 저은 소민이 자신의 답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자신을 꼼꼼히 살피는 그의 시선을 모른 척하며 식판으로 눈을 돌렸다.
“밥이나 얼른 드세요.”
방금 전까지는 잘도 조잘대던 여자가 갑작스레 정색을 하더니 새초롬하게 말을 하고는 식판을 벅벅 닦아대는 것을 보며 선유가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한선유씨!!!!!”
고개를 돌려보니 조연출이 자신을 애타게 찾는 것이 보였다.
너무 오래 현장을 비웠는지 자신이 찍을 씬이 돌아와 있었다.
“어? 다 안 먹어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에게 소민이 그렇게 묻자, 선유는 아무 말 없이 식판을 그녀에게 건넸다.
“아니 잔반을 이렇게 많이 남기면 어떻게 해요!! 이게 뭐예요!! 많이 담아준 것도 아닌데 엄청 남겼네. 아까도 깍두기 안 먹는다 그러고 편식해요?”
“깍두기를 안 먹는 게 아니라 무를 안 먹는 거야.”
“헐. 편식해요? 정말? 그 나이에?”
자신을 유치원생 보듯 보는 그녀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정확히는 편식을 하는 게 아니었다.
“편식이 아니라 난 무는 절대 안 먹어. 아무튼 이거 버려.”
“제가 이걸 왜 버려야 되는 데요?”
버리라는 말에 톡 쏘며 반발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가 별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
“너 밥 차 알바생이라며. 당연히 네가 해야 하는 일 아니야?”
그의 말에 그녀의 눈이 빛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아마 영화감독이 자신을 날로 집어 삼키려 할 것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자 왠지 마음도 느긋해져 촬영도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으로 식판을 그녀에게 떠넘긴 채 선유가 자리를 떠났다.
“무를 싫어하시는구만? 딱 잘 됐어.”
선유가 넘겨준 식판을 보다 선유의 뒷모습에 싱긋 미소를 지은 소민이 고무장갑을 벗어 집어 던지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봉숙아. 나야. 그럼~ 잘 지내지~ 너희 부모님 아직도 영월에 계시니?... 어. 그래~ 잘 됐다! 혹시 너희 부모님 무 농사도 지으셔? 어머 딱 좋다. 지금 무 나오지? 아까 오는 길에 보니까 무 엄청 많이 팔던데. 내가 무가 엄청 많이 필요해서 말이야. 너네 밭 무 내가 한 100인분 정도만 살게. 어? 뭐에 쓸 거냐고?”
전화를 끊고 해실해실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에서 나이를 잊은 때 늦은 악동의 기운이 묻어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그 여자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눠주고 있었다.
게다가 아침에 밥 차 주인 부부가 깐 양파와 당근이 잡채를 위한 것이었던지 잡채밥이 나오자 선유는 흐뭇한 마음으로 밥을 그득 퍼서는 먹었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먹은 데다 오전 내내 고된 와이어촬영을 한 터라 몸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기름진 음식으로 체력을 채우기 위해 잡채를 먹으며 힘을 충전하고는 저녁에도 이 정도만 나오면 좋겠다고 바랐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밥상에 무열풍이라도 분 것인지 온통 무 투성이었다.
무국, 무생채, 무나물에 밥까지 무밥이었다. 심지어 그가 진절머리를 쳤던 깍두기까지 있었다.
누굴 베지테리언으로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무 밭을 통째로 사기라도 한 것인지 배추김치를 제외하고는 한 군데의 빈틈도 없이 온통 무였다.
다른 스태프들은 좋다며 잘도 퍼 먹고 있었지만 그는 숟가락을 밥에 대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 한선유씨 왜 안 먹어요? 입맛이 없나?”
“입맛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먹어야 힘을 내지. 오늘 촬영 좀만 더 하면 끝나니까 기운 냅시다.”
“예...”
아무 것도 모르는 스태프들은 주변에서 선유에게 뭐라고 한마디씩 건네고 있었지만 선유는 지금 그 어느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그가 몸 관리를 위해 그토록 혐오하던 라면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그 때 그의 눈 앞으로 구세주와도 같은 그녀가 지나갔다.
“이봐.”
“......”
“야.”
“......”
“어이.”
“......”
“밥 차 알바.”
하지만 그 어떤 호칭을 불러도 그녀는 돌아보지를 않았으니 무심한 사람이 따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불러 세우기 위해 선유가 벌떡 일어나 그녀의 뒤로 다가가 그대로 그녀를 자신을 향해 돌려 세웠다.
그런데 아뿔사...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무국이 그만 그가 돌리는 반동에 의해 주변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흩날린 국물은 사방팔방 빗방울마냥 흩어져 내려앉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이 없는 빈 테이블인 곳이었다는 것이지만 자신의 옷을 내려다 본 선유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귀에서 이어폰을 뺀 그녀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이어폰 때문에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건지 그저 맑은 눈으로 그를 슥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목울대가 크게 동요하긴 했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이 옷 어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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