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생 최고의 캐스팅-13화 (13/105)

13. 한선유씨 빠순이라고 쳐요

“아... 아까 차에 갔는데 너무 곤히 주무셔서 깨우기 그랬거든요. 많이 피곤하셨나봐요. 그죠?”

“어? 어... 그랬지...”

그들의 말에 밥차 주인부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어제 밤샘촬영이 있었단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에 쉽게 납득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요. 그럼 소민씨 조오기 있는 반찬통에서 반찬이랑 조금씩 해서 한배우 좀 줄래요? 점심시간 맞추려면 양파랑 당근을 빨리 처리해야 해서.”

“걱정 마세요.”

사장 부부의 말대로 소민은 통을 열 때였다.

“그거 깍두기인가?”

“그런데요?”

“안 먹어.”

“지금 반찬 투정하는 거예요?”

“반찬투정이든 뭐든 좋을 대로 생각하는데 얼른 뚜껑 좀 닫지? 냄새나.”

“깍두기 냄새가 뭐 어때서요?”

그녀가 그의 앞에 깍두기가 담긴 통을 흔들자 마치 똥이라도 피하듯 선유는 뒤로 물러났다.

“정말 안 먹어요?”

“안 먹는다니까.”

버럭 소리를 높이는 선유를 노려보며 소민이 중얼거렸다.

“안 먹으면 안 먹는다고 말하면 돼지. 소리는 왜 지르고 그래요?”

“안 먹는다고 말했잖아.”

“에비~”

깍두기 통을 내려놓는 척하자 금세 다가오는 선유를 향해 소민이 장난삼아 내려놓는 척하던 깍두기 통을 들어 흔들자 선유가 펄쩍 뛰며 다시금 멀어졌다.

“하지 마.”

“아하하하하하하. 냄새가 뭐 어떻다고. 아, 웃겨.”

한참이나 깔깔거리던 소민이 겨우 깍두기 통을 내려놓고 깍두기 통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선유가 다시 다가왔다. 그런 그에게 소민이 깍두기를 제외한 반찬을 적당히 덜어 선유에게 건넸다.

“아까 그 일은 고맙다고 해두도록 하지.”

설거지를 하러 가는 자신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더니 굳이 그녀의 앞에 와서 굳이 쭈그리고 앉아 식판을 내려놓으며 대뜸 그녀를 향해 던진 그의 말이 그랬다.

제대로 된 감사도 아니고 그렇게 해두자는 말을 던지는 한선유라는 남자를 소민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일이라면 아까 점심 갔다 주러 갔다가 본 거, 그거 얘기 하는 거예요?”

그녀의 말에 선유가 고개를 끄덕이자 감사를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기왕지사 말이 나온 김에 제대로 된 감사도 하지 않는 모습에 소민이 가자미 눈을 떴다.

“지금 그게 고맙단 인사는 아니겠죠?”

“아니겠죠? 왜 아니라고 생각하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건가?”

“알죠.”

“하긴. 내 빠순이가 날 모를 ㄹ.”

“왕.싸.가.지.”

“뭐?”

“아니, 남자가 고마우면 고맙다. 딱 한 마디하면 될 걸. 고맙다고 해두는 건 뭔데요?”

“하! 고맙다고 해두잔 말을 괜히 한 줄 알아? 고마울 일인지 아닌지 지켜봐야 아는 거지.”

“그건 뭔 소리예요?”

“나중에 네가 내 뒤통수를 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자신의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선유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그래, 해 봐. 해도 돼. 어차피 스캔들기사 하나 더 터진다고 지구가 멸망하지는 않거든.”

“맞아요. 한선유씨 때문에 지구가 멸망하지는 않죠. 근데 한선유씨는 폭삭 망할 수도 있잖아요?”

“뭐 스캔들 하나 더 한다고 망할 것 같음 진작 망했겠지. 게다가 넌 증거도 없잖아.”

“아... 증거...”

순간 입을 닫고 아무말 못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픽 웃는 그에게 다시 그녀의 말이 날아들었다.

“증거는 없지만 증인은 있죠?”

자신을 놀리는 건지 협박하는 건지 모를 이 와중에도 씨익 웃는 그녀의 얼굴이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가 되물었다.

“증인?”

그녀의 고무장갑을 낀 손이 자신을 가리키더니 그 다음엔 제 몸을 향했다.

그 명료한 손짓에 그가 기가 찬 웃음을 지었다.

“나는 잡아 뗄 거고, 그러면 너는 혼자 나한테 덤터기 씌우는 이상한 애가 되는 거야.”

“한 명 더 있잖아요. 아마 그 아가씨는 제가 소문 내주면 엄청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에 선유가 그녀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러다가는 곧 생각을 고쳐먹고는 그녀를 향해 전 국민이 반했다는 그만의 전매특허 미소를 날리며 말했다.

“어디 해보려면 해봐. 그런데 넌 그렇게 못해.”

그의 이번 작전은 영 틀리지는 않았는지 종알거리면서도 쉬지 않고 식판을 닦던 소민의 손이 뚝 멎었다.

“왜요?”

“너는 내 빠순이잖아.”

당당한 그의 말에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식판을 열심히 문지르며 말했다.

“제가 빠순이란 증거가 어디 있는데요?”

통한 줄 알았는데 그의 미소도 통하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철옹성이었다. 계속해서 자신의 말에 반기를 드는 그녀가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신기했다.

“넌 네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그런 태도가 나와?”

“한선유씨죠.”

“그래. 나 한선유야. 대한민국 탑 배우.”

“근데요?”

“근데요라니?”

“배우도 똑같이 배고프고, 잠자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나랑 다를 게 없는데요? 그럼 같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 대접해주면 되지. 무슨 대우를 그렇게 바라요?”

그녀의 말에 그가 소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꽤나 당돌한 여자였다. 그리고 틀린 말 하나 없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한다는 그 말이.

“그래요. 좋아요. 제가 한선유씨 빠순이라고 쳐요. 근데 제가 영원히 그 쪽 빠순이란 보장 있어요? 사람 마음은 금방 바뀌는 거예요.”

“글쎄... 그렇긴 하지. 그럼 나도 하나 묻지.”

그가 뭐라고 반발하면 뭐라고 받아칠까 궁리하는데 느닷없이 그가 묻겠다는 말에 그녀의 눈이 선유를 향했다. 그의 표정은 뭔가 묘한 느낌이었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어딘가 기쁜 듯, 또 한편으로는 주저하는 듯 한 기색이 엿보였다.

“뭔데요?”

“만약 그쪽이 내 빠순이를 그만둬도 사람 대 사람으로 대접해 주는 건가?”

그의 질문에 소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빠순이를 그만두면 당신이 사람이 아니라 다른 뭐가 돼요? 아니잖아요. 난 당신 팬이든 아니든 당신이 사람인 이상 사람으로 대하는 게 당연한 건데 뭘 그걸 새삼스레 물어요?”

그녀의 말에 그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긴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 그러네. 간단하네.”

뭐라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는데 이내 선유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나한테 빠진 사람이 마음이 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텐데?”

“그렇다고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그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그런 날이 오면 알려줘.”

“왜요? 저 어디 야산에 묻기라도 하시게요?”

“아니. 잡아다가 내 집에 감금해놓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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