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여자의 향기(3)
* * *
다슬은 말없이 상준의 손가락을 쥐고 가만히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창 밖 백사장에 몇몇 학생들이 친구를 물에 밀어 넣으려는 듯 장난을 치고 있었고 그 뒤를 따라 같은 일행으로 보이는 학생 커플이 앞 사람들의 장남을 보며 웃고있었다.
“우리 점심 먹을까?”
오후 두시가 가까워졌을 때 상준은 다슬이에게 물었다.
“우리 아침 늦게먹어서. 오빠 배고파요?”
“그런건 아닌데 혹시 네가?”
“전 괜찮아요. 집에가서 어머니와 함께 먹어요.”
사실 자신도 점심 생각은 별로없었다. 기장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둘러볼때 시장통에서 호떡 하나씩을 먹은것이 식욕이 생기지 않은 이유같았다.
‘왜 갑자기 어머니 댁으로 가려할까?’
상준은 다슬의 생각이 궁금하여 몇번 망설이다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부산 어머니께 갈 생각을 했어?”
“그냥 보고 싶더라구요.”
상준은 다슬이의 행동이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차분하면서도 침착하게 앉아있는 다슬을 보니 무엇인가 스스로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자꾸 그녀의 눈치를 보게되었다.
‘내가 지나쳤나?’
“우리 내러가서 백사장 좀 걸을까?”
“.....?”
“미안, 내가 좀 이래.” 다슬인 지금 걸음이 불편한 걸 뻔히 알면서도 그새 그걸 잊고 또 말실수를 했다.
‘내가 자꾸 왜이러지.’
휴대폰을 꺼내 이리저리 뒤져보다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분식집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무렵. 좀 분비는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다슬의 손을 잡으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언제는 상준에게 다슬이가 너무 도도하고 콧대가 높을것 같다면서 달갑지않게 말씀하시더니 그때하고는 완전히 바뀌셨다.
다슬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갑자기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리고는 이제 대놓고 울었다.
다슬이 울음을 터뜨리자 상준의 어머니는 깜짝놀라 다슬을 안아주면서 도우미 아주머니께 부탁을 하셨다.
“새댁, 잠깐만 애들하고 이야기 좀 하게 주방도 좀 봐줘.”
“다슬아. 왜?”
당황한 어머니는 주방일을 도우미 아주머니께 부탁하고 다슬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상준은 무슨일인가 어안이 벙벙하였다.
“다슬아, 왜? 무슨 일 있었나?”
그래도 다슬은 대답도 하지않고 울기만 하였다.
“무슨 일이야? 다슬아, 말좀 해봐.”
“아니에요. 어머니.”
“그럼, 상준이가 뭐 잘못했나? 그렇지? 저눔 자식이 저거 아무것도 모른다. 여자 맘은 더 모른다.”
문 밖에서 듣고있던 상준이도 어찌된 영문을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아니에요. 그냥 어머니보니 눈물이 나서.”
“글나, 난 괜찮다. 니 보기엔 내가 고생하는것 같아도 난 재미있다.”
“예, 어머니.”
“그래, 진정해라. 내 걱정 하지마라. 난 이런 게 좋아서 한다.”
어머니는 다슬이가 와 우는지 진심을 모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상준이 너도 여기 들어와 바라.”
밀창문을 열고 식당 홀을 내다보며 엉거주춤 서있는 상준을 보고 방으로 불러들였다.
“니는 자슥아. 뭐 어에 했길래 애가 여기와서 이리 우노?”
“.....?”
“아니에요. 어머니.”
어머니는 다슬의 등을 도닥거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겨주었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얼굴에 돋아난 땀방울을 꼭꼭 눌러 닦아주었다.
잠시 후에 다슬이 진정되자
“너희들 집에가 있어라. 내 금방 마치고 갈게”
어머니의 권고에도 다슬은 저녁내내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 질때까지 주방과 홀에서 어머니 일을 도와드렸다.
일을 마친 어머니는 상준과 다슬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자 다슬은 준비해온 식자재로 요리를 한다고 법석을 떨었고 저녁을 기다리는 상준은 배가고파 죽는 줄 알았다.
식탁에 마주앉은 어머니는 상준을 보고 한마디하였다.
“자슥아, 세상에 제일 못난놈이 뭔지 알아? 바로 여자 울리는 놈이야.”
그리고는 다슬이를 보고
“이놈이 잘못하면 전부 내한데 다 일러라. 내가 혼 좀 내주께.”
“네, 어머니.”
“.....?”
‘내가 뭐 어쨌길래.’
그날 밤 어머니는 다슬을 데리고 자기방에서 잤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지 두사람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때때로 들리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상준의 잠을 방해하고 있었다. 상준은 지금끗 어머니와 살면서 한번도 저런 시간은 가져보지 못했다.
상준은 혼자 상미방에서 자는둥 마는둥 하룻밤을 그냥보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새벽이 되자 식당에 필요한 식자재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일찍나가셨다. 새벽녘에야 잠이든 상준은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다슬이가 들어와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상준의 코에 넣어 간질이기 전까지 단잠을 자고있었다.
코끝이 간질간질하여 손으로 만져보다 잡히는 건 없고 재채기가 터져나왔다.
“에취.”
‘벌레인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니 다슬은 웃음을 참지 못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상준은 잠에서 깨었으나 뭣 때문에 놀라는지 자각을 못한 채 까르르 웃고있는 그녀의 팔목을 잡고 이불속으로 끌어당겼다.
“오빠. 어머님께서.”
“응?”
상준은 후다닥 침대에서 내러와 부리나케 옷을 챙겨입는다. 다슬이 다시 까르르 웃자 놀란 표정으로 다슬을 보며
“엄마가 왜?”
“빨리 식사하고 가게로 오래요.”
“응, 난또 뭐라고.”
결국 상준과 다슬은 식사를 한후 어머니가 하시는 식당으로 나갔다. 오전 시간이라 손님은 거의 없었다.
“원래 우리 식당엔 손님이 별로 없었어. 그러다 상준이 소식이 뉴스에 나가면서 손님들이 밀려들었지.”
“요즘은 없어요?”
“한때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셋이나 썼는데 차츰차츰 빠지더니 이제 제대로 됐어.”
“지금은 한명인가 봐요?”
“응, 지금이 딱 알맞아. 도우미 하나가 내힘에 꼭 맞아. 난 지금이 딱 좋아.”
“예, 어머니. 손님이 너무 많아도 힘이 많이들테니.”
“그래서 지금이 딱 좋아.”
점심시간이 되어갈 무렵부터 손님이 찾아오더니 12시 30분경부터 오후 2시까지가 피크를 이루었다.
어머니는 그때쯤 잔치국수를 말아 다슬이와 상준에게 내어주고 어머니와 도우미 아주머니는 밥으로 점심식사를 드셨다.
“상준이 여기오면 늘 잔치국수를 찾지. 애미가 해주는 잔치국수가 제일맛있다고 해서.”
“그래요. 어머니, 저도 잔치국수 좋아해요.”
다슬은 어머니의 말을받아 자신도 잔치국수를 좋아한다고 한술 떳다.
“그래, 너도 잔치국수 좋아해?”
“네, 어머니.”
정말 상준은 어머니가 말아주시는 잔치국수를 좋아했다. 수고하시는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려는 상준의 의도인지, 진짜 잔치국수를 좋아하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머니가 말아주시는 잔치국수는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한 그릇 더 말아주랴?”
“네, 어머니.”
오늘도 상준은 잔치 국수를 두그릇이나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슬은 상준에게 물었다.
“오빠, 정말 잔치국수 좋아해?”
“응, 엄마가 말아주시는 잔치국수만.”
“나도 국수 잘하는데?”
“마, 됐고.”
다슬은 언젠가는 상준에게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겠다고 벼르게되었다.
‘나도 어머님 솜씨 못지않게 국수는 잘할 수 있는데, 맛도보지 않고 사양을 하다니.’
그러나 상준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잘못하면 이제 잔치국수 통에 들어가게 생겼구나.’
*
휴가를 마친 상준은 즉시 확대 간부회의를 소집하였다.
간부회의는 부장이상이 참여하는 회의지만 확대간부회의는 팀장이상이 모두 참석한다. 그것은 아쿠아리움 건설부지 매입을 최종 확정하여 종료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공개적인 아쿠아리움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비밀리에 부지 매입을 추진하고 있던 중 비밀이 누설되어 소문을 들은 몇몇 지주들이 시가의 몇 배를 요구하며 끝까지 버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게되면 오히려 더 공사만 지연되어 더큰 피해가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상준은 지주들이 요구하는 대금을 모두 지불하고 거래 약정을 맺어짐으로서 부지수용을 일단락 지었다. 비밀수용을 책임져온 부동산업자의 보고를 들어보니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상준의 판단은 정확하였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비밀로 추진해온 사업 비밀을 누가 누설한 것이냐에 달려있다. 바로 중계업자 자신이 아니면 누가 흘렸겠는가? 만약 본인이 아니라면 그들 소속의 직원에 의한 것일 테고...
상준은 비밀 누설은 분명 그들이 의도적으로 흘렸을 것으로 본 것이다.
현 시가의 몇배를 요구하며 알박기를 한 당사자들은 분명 업자들의 측근이거나 아니면 그들과 관련된 사람이 분명할 거란 것이다.
‘이럴땐 그냥 모른척하고 속아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것이 앞으로 또 다른 사업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의 포부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아니라 앞으로 더 큰 계획이 있기때문이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
속는 셈치고 과감하게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일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상준은 생각했다.
“저가 오늘 확대간부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미 소문을 듣고 알고 계신분도 있겠지만 우리 회사의 다음 목표를 발표하기 위해섭니다.”
“......”
“저의 목표는 아쿠아리움 건설에 있습니다.”
“예?, 아쿠아리움을요?”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아쿠아리움 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당장 부지확보가 문제가 될 것이구요."
대표의 발표에 흥미로워하는 간부도 있었지만 걱정을 미리 앞세우는 간부들도 있었다.
“저는 아쿠라리움 건립을 위해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계획을 세워 추진해 왔습니다. 이것을 공개할 수 없었던 이유는 사전 공개하여 부지 매입을 서두르게 되면 뜻하지 않게 지주들에게 발목이 잡혀 예상보다 엄청난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직원 여러분들께도 비공개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점은 여기에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어느 부지를 확보하셨는지요?”
“그래서 총무부와 협의하여 부지 확보가 끝났기에 이제 공개적으로 아쿠아리움 건립을 추진하면서 여러분의 양해와 아울러 협조부탁을 드립니다. 상세한 것은 총무부장께서 설명하겠습니다.”
그러자 신용만 총무부장이 전면에 나서서 사업설명서를 배부한 뒤 설명을 이어 갔다.
“여기 이 화면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시다시피 이 화면은 현재 우리 해양박물관이 위치한 해수욕장 주변과 해수욕장 상가일대 평면도입니다.
모두들 그림을 살펴보며 위치 파악을 하느라 부심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저곳이 우리 박물관 아니야?”
“저 섬이 해자도고 저 산이 해자산 같은데? 갑자기 펼쳐진 그림이라 모두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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