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10화 - >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에프람은 확신했다. 귀가 찢어질 듯 울려 퍼지는 그 소리가 자신의 검에 요상한 금속 덩어리가 깨지는 소리라고. 깔끔하게 울리는, 서걱 소리가 아닌 것은 의아했으나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튕겨냈던 전적이 있지 않은가. 자신도 모르게 잘라버리는 것이 아닌 부셔버릴 정도로 과한 힘을 주었다고 판단했다.
‘그래. 내가 방심했던 것뿐이야.’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이 또한 그보다는 못할 지라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방심할 상대는 아니었는데, 전력을 다할 가치가 있는 상대였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최후에 이기는 건 나다.’
방금 전의 한 수가 그의 최고의 한 수였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전투 내내 그보다 가벼운 공격이 이어졌으니까.
아무런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면 굳이 기회라고 생각했을 때만, 확실하다고 판단했을 때만 사용할 필요는 없었을 터. 그 비장의 수단을 정면에서 깨부순 이상 결투는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개를 돌려 레닐의 낭패한 얼굴을 보려했을 때, 그는 손아귀에서, 내부로부터 극심한 고통이 올라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
깨달았으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고통이 밀려온단 말인가. 금속 덩어리 산산조각 났을 테지만 그 중 몸에 박힌 것은 단 한 조각도 없었을 텐데. 게다가 어째서 피륙의 고통이 아닌 내부에서 고통이 올라온단 말인가.
의아함에 손에 쥔 검을 향해 시선을 옮겼을 때 쨍그랑 이라는 소리가 어디에서부터 울려 퍼진 것인지, 어째서 피부가 아닌 단전에서부터 고통이 올라오는 것인지.
그야 당연했다. 깨진 것은 탄환이 아닌 그의 오러였으니까. 중심이 되어야 할 검은 덜덜 떨리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금이 가 있어 결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마법사의 경우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수인과 영창을 외는 도중 방해를 받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기사라고 이야기가 다를까. 유지하고 있는 오러가 강제로 깨어진다면 그 피드백이 올 수밖에 없었다.
‘오러 블레이드는 무적이······아니었나?’
이런 경우 최대한 빠르게 뒷수습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빠르게 대처를 할수록 회복에 필요한 기간이 줄어드니까. 자그마한 실수도 목숨과 직결되는 전쟁터도 아니고 결투를 중단한 뒤, 빠르게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에프람에게는 그럴 만한 정신이 없었다.
만약 이 곳이 서로의 목숨을 두고 싸우는 전쟁터였다면, 레닐이 승리를 확신하고 다음 수를 거둬들이지 않았다면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더 큰 상처를 입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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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군.’
특수질량탄을 개발하게 된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었다. 타이탄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을 생각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으니까.
타이탄은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는 막강한 방어력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민첩한 기동성을 동시에 갖췄다. 특히나 미스릴 코팅을 통해 물리력이 부족한 마법에 대해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항마력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전두 지휘하여 개발해냈지만 마법사의 천적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문제점이 뻔히 보이는데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겠는가.
그렇게 탄생한 탄환이 특수질량탄이었다. 미스릴은 강한 항마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강도는 비교적 약했다. 그래서 튼튼함을 원한다면 합금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고. 즉 무식하면 무식할수록 좋았다.
게다가 탄속이 비교적 느리다고 한들 타이탄의 기동성을 앞지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크기가 손가락 수준으로 작다보니 타이탄이 대처하기도 어려웠다. 아예 웅크려서 탑승자가 위치한 곳만 방어한다면 모를까.
애초에 인간을 대상으로 쓰일 만한 무기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꺼내봤던 것인데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데.’
일반적인 기사들의 수준에서는 백 번 시도해도 백 번 못 막는다. 단순한 추측이 아닌 경험을 통해 밝혀진 사실. 그러나 마스터를 상대로도 이만한 위력을 보여줄 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면 저 사람이 2% 부족하던가.’
사람들은 우리들을 보고 소드 마스터니 7서클 마스터니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뭉그러뜨려 말하기에는 이 영역이 너무나 넓었다. 초인의 영역에 다다르기 전까지 걸었던 모든 길을 합하더라도 이후에 걸어가야 할 길이 더 길 정도로.
그러다보니 같은 경지라고 일컬어지더라도 실력의 편차는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과 중간, 중간과 끝, 처음과 끝.
적어도 린체스터 백작은 이 영역에서만큼은 갓 기어다니기 시작한 아기였다. 단순히 신체적인 능력을 떠나 검술이 되었건 마력을 다루는 기술이 되었건. 그런 만큼 생각 이상의 결과가 나온 것일 수도 있었다.
“승부는 결정 난 것 같고, 내일부터는 그런 망발을 하기 전에 한 번쯤은 머리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를 바라지. 더불어 전용기를 바란다면 조금 더 실력을 키우도록 하고.”
“기, 기다려라······. 아직 승부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한 눈에 보더라도 린체스터 백작은 더 이상 전투를 끌고 나갈 힘이 없었다. 외상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지만 내부는 말이 아니리라. 한 때, 마력 과포화현상을 몸으로 겪었었기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거지? 어서 린체스터 백작을 옮겨라!”
그러자 황급히 몇 사람이 달려 나와 린체스터 백작을 부축하더니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인 뒤 서둘러 밖을 향해 빠져나갔다. 그들도 머리가 있다면 린체스터 백작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모르지 않을 테니 급하겠지.
“시간만 버렸군.”
같은 경지에 도달한 이이니만큼 조금이나마 얻는 게 있을 줄 알았는데, 덕분에 기분은 조금 나아졌다지만 말 그대로 돈과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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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의 여파는 결코 작지 않았다. 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입단속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결과에 대한 소식이 퍼져나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덕분에 한동안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나와도 붙어보자!”
루인의 제작이 완료됨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발걸음을 끊었던 퐁크 후작이 찾아와 자신과도 붙어보자며 난리를 피웠기 때문이었다.
린체스터 백작과는 내가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설사 조금 고전하더라도 내가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퐁크 후작은 린체스터 백작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였다. 게다가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대련 도중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사리 장담할 수 없었으니 부상을 조심해야 하는 입장에서 섣불리 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도, 돌려보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결국 북부 정벌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 때, 대련에 응하겠다는 약속을 잡고서야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휴즈 백작님. 지금 바로 황궁으로 입궁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령이십니다.”
“황제 폐하께서?”
“예.”
“······알겠네. 앞장서겠나?”
결투가 있은 날로부터 며칠이 흐르고서야 찾아온 황제의 부름. 그러나 황제는 그 일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는지 전혀 관련 없는, 그러나 내가 기대하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내후년 봄이라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다짜고짜 내후년 봄이라니, 그러나 별다른 설명이 없었음에도 황제가 말하고자 하는 시기가 무엇을 위함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습니까.”
“하루 이틀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지. 동시에 실패는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고. 그러니 준비하는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내후년 봄.
시간으로 따지면 약 1년 6개월 정도.
그 때가 황제가 생각하고 있는 정벌이 시작하는 때였으며 나 또한 황도에서 보내던 나름대로 평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야할 시기이기도 했다.
‘적당한 시기로군.’
황제의 말처럼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일이 아니다. 적어도 년 단위. 게다가 황제의 계획대로라면 단시일 내에 최대한 많은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만큼 겨울은 최대한 피할 필요가 있었다. 북부의 강추위에도 타이탄이 이상 없이 작동한다는 것은 수차례 반복된 실험을 통해 검증받았지만 북부에 투입되는 전력이 타이탄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백작도 그에 맞춰 준비를 해줬으면 좋겠군.”
당연한 말이다. 누구의 바람 때문에 여기까지 끌고 온 일인데, 효율성을 이유로 - 내가 아무리 유능해도 혼자서 열 개의 손을, 백 개의 손을 커버하기란 어려운 일이니 - 전장의 주역을 타이탄에게 넘겨주었지만 뒷방늙은이마냥 뒤로 물러나 바라만 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설령 그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말리면 억지를 써서라도 갈려고 했는데, 다행이군.’
사실 효율을 따진다면 내가 수도에 남는 편이 나을 지도 몰랐다. 내가 아무리 유능할지라도 결국 개인, 물론 초인을 개인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한계는 존재했다.
정벌의 중심이 될 타이탄의 제조를 원활이 하기 위해서, 코어의 제작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 외에도 전투에 더 넓은 영향을 미치려면 직접 참전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다수가 쓸 수 있는 효율성 좋은 병기를 제작하는 편이 더 나으리라.
그러나 그러하지 않은 것은 내가 풀기로 한 매듭을 남의 손에 의해 풀려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나마 내가 손수 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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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후년이요?”
“그래. 아마 꽤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할 거야.”
그 날 저녁,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소식을 전했다. 그녀에게는 종종 내 미래에 대해서 말하곤 했기에 생각 이상으로 내 말에 담담하게 반응했다.
“여기 남아있어도 되고 한동안 지크 영지로 돌아가 있어도 돼.”
“여기 남아있을게요. 언제가 되었건 당신이 돌아왔을 때, 당신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 날의 여행 이후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기존에 사이가 나빴다는 뜻은 아니었으나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읍!”
“······왜 그래?”
“미, 미안해요. 잠시······.”
갑작스럽게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식당을 빠져나가는 그녀. 그 모습을 시중을 들던 메이드들이 파리한 안색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음식에는 딱히 문제가 없었다. 나도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으니까.
‘혹시?’
혹시나는 항상 역시나라고 했던가. 누가 했는지 모를 그 명언은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10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