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3화 (3/102)

〈 3화 〉 방출.

* * *

“....루나. 앞으로 나와라."

..어?

원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을 듣자마자 사고가 정지한다.

"잠깐만요, 원장님..!"

내가 순간적으로 튀어나오자, 원장이 윽박질렀다.

"자리로 돌아가, 사야!"

"제가 아니라 루나라니, 이유가 뭐에요…?!"

아이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싶겠지. 방출되고 싶어 안달 난 아이라니.

"투표로 정해진 결과다. 정 나가고 싶다면 같이 나가!"

"으윽…"

잠깐 루나와 눈을 마주쳤다.

물론 상황에 따라선, 루나와 같이 이곳을 나가는 것도 생각해봤다.

혼자서라면 굶든 목마르든 나무뿌리, 흙탕물로라도 배를 채워가며 버틸 생각이다.

하지만 루나까지 함께라면?

"...그건…."

그건 이기적인 생각이다.

지금의 이제 겨우 나는 빈털터리 7세 여자아이다. 매일 굶주려서 영양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고, 루나까지 먹여 살릴 생각을 한다는 건 분하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보육원장은 매정한 눈으로 나를 흘겨보더니, 휙 돌아섰다.

"그래.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는 잘 알겠지. 그리 멍청한 아이는 아니니까."

"제가 대신 갈게요."

그곳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사야, 내가 지금 장난칠 기분으로..”

"방출은 제가 대신할게요. 루나에게는 1년만 더 시간을 주세요."

말없이 진지한 눈으로 원장을 노려봤다. 이제 농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겠지.

"..얘기 좀 하지. 잠깐 따라오너라."

무어라 말하고 싶은 눈치인 루나를 뒤로하고, 원장실로 따라 들어갔다.

"너.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어떤 아인 줄 알아?"

원장은 서랍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심란한 일이 있거나, 특별한 날에만 피었던 거로 기억한다.

"...결함이 있는 아이요?"

"그것도 물론 싫지. 부자들은커녕 평민들도 꺼리니까."

그녀는 눈을 감고 책상을 쾅, 내려친다.

"바로 병신처럼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리는 아이!

이걸로 7번이다! 7번! 루나 그 아이가 제 발로 입양될 기회를 차버린 게 자그마치 7번이라고!"

원장은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파이프를 쭉 빨아들인다.

최근에는 루나를 마음에 들어 한 아저씨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바람에 그녀가 무릎 꿇고 사죄한 적도 있었지.

"그 지랄을 떨고 있는데 내가 저년을 안 내보내고 배겨!?"

거기엔 어느 정도 내 잘못도 있었다.

루나가 그런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매정하게 나무랐어야 했는데.

좀만 더, 조금 더 같이 있으려던 게 결국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원인이 되어버렸다.

"제가 보증할게요.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네가? 어떻게?"

루나의 문제행동의 원인은 전적으로 나의 존재 때문이다.

내가 보육원에서 없어지면, 루나가 이곳을 고집할 이유는 없어진다.

"설득할 수 있어요. 제 말이라면 들을 테니까."

"...."

후 ­ 원장은 입에 머금고 있던 연기를 내뿜었다. 마음을 정리한 듯 파이프를 다시 넣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좋아. 어떤 식으로 설득할진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교정해둬라."

"..물론입니다."

­

"싫어! 나도 따라가면 안 돼? 나 때문에 왜 사야가 나가야 하는 거야…!?"

아아….

예상은 했지만, 역시 루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에 콧물 범벅이 돼선, 세상 서럽게 운다.

"밖에서도 사야 말 잘 들을게. 울지도 않고 투정도 안 할게..!"

"루나."

"빗질도 혼자서 하고, 또…."

"루나!"

루나의 어깨를 강하게 쥐고,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지금 나로서는, 너를 데려갈 능력이 없어. 그게 현실이야."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눈앞의 현실을 담백하게 전달했다.

"흑…. 흐윽.."

서럽게 우는 그녀를 타이르면서, 나 역시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7년을 같이하면서 이제는 거의 친동생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는데, 이별하지 않으면 둘 다 살아남을 수 없다.

"다음번에 입양 기회가 오면, 얌전히 있겠다고 약속해."

"흐윽…. 흑, 그럼, 사야, 다시 볼 수 있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도 모른다.

애초에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떻게든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루나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모른다. 모르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응."

"그러니까, 꼭 말 잘 듣고 좋은 곳으로 입양 가야 해. 알았지?"

"..응."

이것만큼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나 또한 무너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날 저녁, 헬레나가 편의를 봐줘서 다음 날 아침까지는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별다를 것 없이, 평소와 같이 하루를 보냈다.

식사를 하고 루나의 머리를 빗겨준다.

“...수도에 가면, 뭘 할 거야. 사야?”

“아카데미에 들어갈 거야. 령사가 돼야만 하거든.”

“령사…”

아카데미가 뭔지, 령사가 뭔지 그녀가 이해하든 말든 상관없다.

그냥, 한마디라도 더 대화를 해두고 싶었을 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감촉을 기억하기 위해 정성스레 한 올 한 올 빗질했다.

다음 날 아침, 준비를 마치고 헬레나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조심해서 가렴. 나쁜 어른들 조심하고."

"루나는요?"

어째서인지, 루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인사하자고 했더니, 얼굴까지 이불을 쓰고 누워버리더구나. 희한하지? 너라면 죽고 못 살던 애가."

"..아뇨. 괜찮아요."

아마도 루나는, 내가 없는 생활에 빨리 적응하려고 하는 것 같다. 장하네.

"잠깐 기다리렴, 사야. 줄 게 있단다."

헬레나는 주머니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이거…. 어디서 본듯한…."

"원장님이 전달하라고 해서. 끊으신다고 하던걸."

"그 원장이…?"

파이프 담배는 루덴가에서는 사치품으로 분류될 만큼 고가의 물건이었다.

철저하게 악역이라고 믿었던 그녀가, 작지만 선물을 남겨주었다.

다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인걸까.

"야, 검정! 빨리 와. 이딴 똥통에 무슨 미련이 남는다고…."

나를 검정이라고 부르는 저놈은, 같이 방출당하게 된 어거스트.

말했었지만 보육원아 두 명을 물어뜯고 얼굴에 흉터를 남긴 전적이 있다.

"어거스트. 그래도 우릴 키워준 곳인데…."

"어, 뭐라했냐?"

"아…. 아니야."

그런 어거스트한테 위축되는 저 녀석은 절름발이 길리언.

평소에도 어거스트한테 당하고 살았던 게 눈에 훤하다.

"다 챙겼어. 출발하자."

7살 여자아이 하나에, 6살 남자아이 둘.

우선은 살아남기 필요한 골드를 벌기 위해 만물상이 있는 루덴 상점가로 향하기로 했다.

골드를 독점하면 좋을 텐데 왜 같이 행동하느냐고?

어거스트는 심성이 포악한 놈이긴 하나 10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발육이 빨랐다.

그에 비하면 내 몸은 거의 뭐 앙상한 스켈레톤 그 자체니까. 이런 놈이라도 옆에 있으면 조금은 나을 거다.

무엇보다, 루덴가의 이방인들은 전부 믿을 수가 없었기도 하고.

문제는 절름발이 길리언인데, 산수도 잘하고 착하지만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리였다.

아까부터 길리언의 속도에 맞추던 탓에, 좀처럼 상점가까지 도착할 기미가 안 보였다.

"아이씨…! 답답해 죽겠네!"

결국, 터져버린 어거스트가 신경질적으로 짐을 쿵, 내려놓는다.

"야, 검정. 이런 자식은 내버려두고 가면 안되냐?? 이놈 때문에 해가 저물게 생겼다고."

`아주 제대로 흥분했군.`

길리언의 얼굴을 쳐다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마 자기 때문에 속도가 늦어지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

"조금만 참자. 길리언 짐은 내가 들게. 그럼 좀 속도가 나지 않겠어?"

"...체."

다행히, 파이프 담배가 나한테 있기에 아직은 녀석도 내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고, 고마워. 사야."

길리언이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남자애 중에는 사야가 제일 잘해줬었지."

"뭘, 같은 처지끼리…."

근데, 방금 이상한 단어를 들은것 같은데.

"잠깐, 바로 전에 뭐라고?"

"...남자애 중에는, 사야가 제일 잘해줬다…. 고."

"길리언."

"으응?"

"나, 여자야."

"....어, 어어!? 미안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충격적이다.

아무리 이런 꼬락서니라곤 해도, 7년 동안 남자로 알았다니.

나는 기분이 나빠야 하는가, 아니면 남성성을 잃지 않았음에 안심해야 하는가.

그 뒤론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길리언과 나는 한참을 말없이 걸어갔다.

두 시간쯤 걸었을까? 길리언의 짐까지 들쳐메는 바람에 솔직히 팔이 한계였지만 어떻게든 끝이 난 것 같다.

"도착했네. 둘은 여기서 기다려. 이걸 만물상에 팔고 올게."

"잠깐."

어거스트가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

"검정, 너만 가격을 알고 있으면 우리한테 속여서 적게 분배할지 누가 알아? 혼자서는 못 보내지."

어거스트 이 망할 꼬맹이. 공부엔 영 인연이 없어 보이더니 이럴 때는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가나 보다.

"네가 따라오게?"

어거스트는 잠시 생각하더니 길리언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네가 같이 다녀와라. 짜고 치면 다른 쪽 다리도 부러트릴 거니까 잡생각은 버리고."

우와….

이게 6살짜리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문장이라니.

"이럴 거면 짐 챙겨서 셋이 같이 다녀오면 되잖아."

"짐 가지고 저런 뒷골목에 들어갔다가 도적이라도 만나면 가진 거 다 털리고 뒤지게?"

아차. 여긴 루덴이지. 중세판 슬럼가. 그건 생각 못 하고 있었다.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짐은 전부 내가 맡아둔다. 그럼, 둘이서 다녀오라고."

확실히 어려서부터 남자애들을 통솔하고 다닌 경험이 그에게 나이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을 길러 준 듯하다.

`파이프 담배가 못해도 30골드…. 가방이랑 안에 식량이랑 내용물 전부 합치면 35골드 정도 나오려나…?"

"사야, 어떡할까…?"

"..다녀오자."

씁. 아무래도 어거스트를 너무 얕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위험을 좀 감수하더라도 따로 행동했다면 좋았을걸.

우선은 파이프 담배를 처분하고 뒷일을 생각하는 수밖에. 파이프 담배가 내 생각보다 가격이 더 나간다면 짐은 좀 아깝지만 길리언과만 골드를 나누고 도망갈 수도 있다

.

"검정, 잠깐 기다려."

발걸음을 옮기려는 길리언과 나를 불러세웠다.

"이번엔 또 뭐야?"

"생각해보니까 이쪽이 좀 불리한 것 같아서 말이야."

미친놈, 골드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구나.

"뭘 원하는데?"

그는 씨익 웃더니, 내 가슴팍을 가리켰다.

"네 목걸이, 내가 맡아두마."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몸에서 뺀 적이 없었던, 그 목걸이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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