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2화 (2/102)

〈 2화 〉 보육원 (2)

* * *

"일동 차렷!"

보육원장의 우렁찬 호령에 아이들이 일렬로 벽에 바짝 붙었다.

"윌리엄 가문 어르신께서 들어오신다. 최대한 예쁜 얼굴로 웃어!"

아아….

난 이 시간이 가장 싫다. 귀족들 앞에서 억지로 잇몸이 보이도록 웃어야 하는데, 입에 경련이 올 것만 같다.

"허허. 다들 하나같이 예쁜 아이들뿐이로군요."

머리가 하얗게 센, 백발의 신사가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오며 말했다.

"그럼요. 저희 보육원에선 하루 세끼 빠짐없이 먹고 열심히 뛰어놀게 해준답니다."

웃기고 있네. 굶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사야, 웃어야지?"

"...헤..헤헤."

보육원장. 그 잠깐사이에 정색한 걸 잡아냈다. 무서운 여자라니까.

"이중에서는…“

노인은 우리 앞을 천천히 지나치며 얼굴, 키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정했다는 듯이 한 아이의 앞에 멈춰선다.

"이 아이가 좋겠군요."

루나였다.

백금발의 풍성한 곱슬머리, 에메랄드 눈은 역시 귀족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그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문제는….

"안 가!"

"...?"

"입양 안 간다구! 이상한 할아버지! 못생겼어!"

아이고.

보육원장과 나는 동시에, 이마에 손을 탁 집었다.

­

"루나.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간, 곱게 안 넘어간다. 알아들었어!?"

"...훌쩍."

원장실이 떠나도록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보육원의 체벌은 꽤 엄한 편이었다. 5살 조금 넘긴 아이한테도 종아리가 퉁퉁 붓는 게 보일 정도로 후린다.

"귀족분들은 널 데려가겠다고 난린데. 왜 그렇게 말썽인 거니? 도대체가…."

루나의 돌발행동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일전에 꽤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찾아왔을 때도 드러누워서 제대로 난동을 부려준 덕에 다른 아이가 입양됐었지…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루나가 원장실에서 나왔다.

"...아파. 짜증 나!"

보통 한번 체벌 당했던 아이는 무서워서 귀신같이 얌전해지기 마련인데, 루나는 역시 장군감이다.

"루나. 외부인들만 오면 왜 그러는거야? 평소에는 어른한테 대든 적 한 번도 없잖아."

"입양 가면 사야랑 떨어지는 거잖아.싫어."

...아이고. 아빠가 딸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 이런 걸까?

왠지 감동해서 루나를 꼭 껴안았다.

풍성한 머리에 파묻혀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사야?"

늦든 빠르든, 루나는 언젠가 입양될 거다. 적당히 사는 집안에 들어가도 사랑 많은 아이로 자라줄 거고, 귀족가에 들어가게 된다면 인품까지 갖춘 아이로 자라주겠지.

… 어쩌면, 한시 빨리 나와 떨어지는 게 그녀를 위한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루나와 헬레나의 선물 덕분에 이후 3개월 만에 놀라울 만큼 언어를 성장시켰다.

막히는 부분은 헬레나가 꾸준히 짚어주었고, 루나는 옆에서 응원해준다.

그렇게 미친 듯이 공부하고 또 공부.

'이거, 끝나기는 해?'

라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_띠링_

'떴다!'

<퀘스트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 서브퀘스트 : 아르모니아어를 익히시오. ] 달성도 : 100% 보상 : [아르모니아 전기] 제 1장

드디어. 마침내.

거의 1년간의 노력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어떤 식으로 지급하는 거지?‘

<보상아이템을 지급합니다.="" 아르모니아="" 전기="" 제="" 1장.=""/>

안내문과 함께 공책이 저절로 펼쳐진다.

비어있던 공책의 빈장에 글자가 빼곡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오. 해포터 같은 데서 본 거 같은 방식이야.

퀘스트창인지 뭔지는 게임처럼 뿅 띄워주진 않는구만.

"어디, 작가 솜씨 한번 볼까?"

참고로 여기서 작가는 저입니다.

….

개쓰레기다.

아니, 쓰레기한테 미안하다.

오글거리는 특수문자.

중2병 제대로 걸린 고유명사.

괜히 선작수 2에 댓글 0개 받고 완결낸 소설이 아니었다.

심지어 선작 한 개는 내꺼다. 글 쓰는 걸 접기 잘했다. 장하다! 나 자신!

하여튼, 1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귀족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17세가 되는 해에

[아르모니아 령사 아카데미]라는 곳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먼치킨 주인공답게 무시무시한 기록으로 입학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주목받으면서 1장은 끝이다.

사실, 평범하게 내용이 궁금했던 거라면 이런 쓰레기를 이렇게 어렵게 얻어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궁금한 건 소설의 세부사항에 있었다.

'찾았다!'

<아르모니아력 187년="" 3월="" 1일.=""/>

바로 주인공 유리 프리지아의 아카데미 입학날짜다.

무슨 소설에 날짜까지?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진심이었다. 특히 설정 쪽에….

페이지를 펼쳐 그 부분에 동그라미를 쳐둔다.

187년. 지금이 175년이니까, 12년 남았다.

길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 같은 스트릿 출신이 12년 안에 아카데미 입학까지 도달하려면, 몇 가지 애로사항이 발생한다.

첫째, 거리.

내가 태어나 자란 이곳은 루덴이라는 빈민가로, 중세판 슬럼가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문제는 이 루덴에서 수도까지 무시무시한 거리라는 거다. 말을 타고 10일은 꾸준히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라고 설정했었다.어지럽네.

둘째는 금전.

령사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소녀들은 절대다수가 귀족이다. 굳이 소녀라고 언급한 이유는 후술하고, 대부분이 귀족 집안의 자녀거나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평민 집안의 자녀였기에, 입학금은 말 안 해도 입이 떡 벌어질 금액이다.

마지막으로, 신분.

아르모니아 제국의 신분제도를 설정할 때 평민, 귀족 이외에 딱히 세부적인 계층을 나누거나 하진 않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인 인식이다.

나는 검은 머리 아이다. 아르모니아 농담 중에는, ‘짐승 바로 위에 검은 머리 짐승이 있다’라는 농담이 있다.

나는 사회적으로 수인보다 약간 나은 정도라는거다. 불행을 불러일으킨다는 미신 때문에. 참고로 수인족에겐 미안하지만, 작품 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는 설정이다.

"나도 참 지독한 작가였구만…."

막상 소설엔 언급이나 될까 말까 한 자잘한 설정들까지 전부 구현되어있다. 이럴 거면 현실성 따진다고 종족 차별 같은 거 만들지 말걸…. 하….

그럼 각설하고, 정리하자면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서는 수도로 가서 아카데미에 입학해야 한다.

그런데 수도는 굉장히 멀고, 또 입학비는 비싸고, 내 사회적 신분은 완전 개차반이다.

187년까지 12년.

나는 그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곳에 입학해야 한다.

소설대로면 17살의 임무 중에, 주인공은 죽게 되니까.

그렇게되면 세계는 멸망한다.

­

2년의 시간이 더 흘러 7살이 되었다.

그 뒤로 온갖 노력을 더 해보았지만, 애석하게도 그때처럼 퀘스트라든지 하는 것은 생기지 않았다.

지금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방출이다.

입양되지 못한 6세부터 10세까지의 아이들을 투표를 통해 길거리로 내보내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말이 10세지, 사실 루나와 나 빼고는 모두 7살 아래다.

매정한 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중세 보육원은 성장기 아이들을 굶어 죽지 않도록 한 끼 겨우 먹이는 게 고작일 정도로 재정이 빈곤하다.

새삼 5살 생일에 받았던 공책과 펜이 얼마나 큰 지불이였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원장님, 부탁드릴게요. 딱 1년만 더…."

"우리도 재정이 무한한 게 아니에요! 이젠 더는 못 미룹니다. 내일까지 투표로 정할 거니 그렇게 아세요, 헬레나."

원장실 문틈으로 몰래 엿본 풍경 속에서, 고개 숙인 헬레나와 결심에 찬 보육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방출일은 2년 전 오늘이었다.

그러나 헬레나가 빌고 빌어서, 기어코 오늘까지 방출을 미뤄왔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었다.

'내일이면, 밖으로 나가게 되는 건가.'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한때는 글씨 연습장으로 썼던 놀이터가 얼마 전 세워진 창고로 인해 사라진 것을 보며, 내심 한편으로 씁쓸했다.

원장실 문이 덜컥 열리며, 원장과 여자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그럼 내일 아침에 공표하는걸로 하고, 이만 들어가죠."

무언가 후련해 보이는 원장의 얼굴과는 달리 헬레나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다.

괜찮아요. 마음의 준비는 해뒀으니까.

생각해보면 검은 머리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지.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웃는 루나의 머리를 빗질하면서, 스르르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아침.

원장은 복도에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두고 말했다.

"투표로 방출자가 정해졌다. 지금부터 호명된 아이들은 앞으로 나와서 짐을 챙겨라."

그녀는 담담하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아이들이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길리언."

절름발이 길리언.

나름 성실했고 착했지만,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결함품을 꺼렸다.

"어거스트."

그래, 어거스트. 너는 예상했지.

보육원 제일의 문제아로, 원생 두 명을 물어뜯어서 얼굴에 흉터를 만든 전적이 있다.

지금부터 짐을 싸야 하는 저 두 녀석과 달리 나는 일주일 전부터 짐을 싸놨지.

어른의 여유라고 해둘까.

“..하.”

...그래도 역시, 막상 닥쳐오니 우울하다.

"마지막으로…."

의외로 원장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래도 보육자는 보육자라는 거네.

잘 있어라, 보육원.

잘 지내, 루나. 헬레나.

결과는 알고 있기에,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루나. 앞으로 나와라."

...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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