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말평가 >
월말평가.
지금까지 YU엔터에서 수십 번은 거쳐왔던 그 살 떨리는 현장에.
유현지는 환경을 바꿔 이곳에서 다시 월말평가를 맞이했다.
이곳도 살 떨리기는 마찬가지.
회사 내 모든 프로듀서들과 트레이너들, 그리고 매니지먼트2팀 팀장과 본부장, 게다가 대표까지 와 있었다.
그들과 모든 연습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자 연습생 B팀은 가만히 선 채 혹평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별로 발전한 게 없는데? 너네 연습은 제대로 한 거 맞아?”
“파트를 왜 이렇게 정했어? 안무 짠 것도 너무 조잡해. 의상도 하나도 안 어울려. 보컬도 안 돼, 춤도 안 돼, 음악적 센스도 없어, 하다못해 의상이라도 보기 좋게 꾸몄어야지.”
“잘했어, 잘했는데 부족한 거 잘 알고 있지? 노래할 때 배에 힘을 안 줘서 음이 많이 흔들리잖아. 삑사리도 나고. 그래도 색깔은 있어서 좋네. 너희 색깔은 있어.”
누군가는 아주 따가운 혹평을, 누군가는 자상하게 혹평을 쏟는다.
부담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는 분위기.
좋은 무대를 보여줘도 TV속 관객들과 같은 호응이 나오지는 않으니, 몇 년간이나 버텨온 연습생들도 차례를 앞두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게 호평과 혹평으로 연습생들이 번갈아 천당과 지옥을 몇 차례 오갔을 때.
마침내 유현지의 차례가 다가왔다.
정확히는 유현지와 함께 하는 팀의 차례.
여기서 매니저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현지는 긴장감이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이 팀의 무대를 보여드린 적이 없긴 해도, 자신에 대해서는 매니저님께 이미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노래에서는 가능성에 대한 극찬을 들은 적 있었고.
댄스만큼은 자신이 봐도 엄청 발전했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오늘의 무기가 댄스라면, 다음의 무기는 노래까지 포함일 터.
이번 월말평가는 그저 스쳐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저희는 플라워라이트!””
“안녕하세요! 김현주입니다!”
“안녕하세요. 유현지입니다.”
“안녕하세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적막함 속에서, 모두가 인사하고.
유현지와 팀원들은 자세를 잡았다.
평가하는 것은 단체곡 하나, 솔로 댄스곡 하나, 솔로 보컬곡 하나.
왠지 대표와 본부장의 눈이 지금까지 중 가장 날카롭게 쏘아지고 있는 와중에, 첫 번째 평가 항목인 단체곡이 시작되었다.
***
연습생들이 모두 나간 연습실.
몇 시간 동안 평가하느라 다들 진이 빠져 있는데, 한 프로듀서가 물었다.
“다들 어떻게 보셨어요?”
매긴 점수대로 순위를 나누겠지만, 그럼에도 월말평가가 끝나면 이렇게 대화를 나누곤 한다.
대답을 한 건 매니지먼트2팀의 고팀장이었다.
“괜찮은 애들 있긴 했는데, 전 유현지. 얘가 제일 괜찮더라고요.”
작은 키에,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
그는 명단에 적힌 유현지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고팀장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인개발팀의 댄스 트레이너 또한 말을 덧붙였다.
“갑자기 얼마 전부터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어요. 개인연습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어보니까, 재즈랑 댄스스포츠 하고 있다네요?”
“재즈랑 댄스스포츠요? 왜요?”
“다들 아시다시피 유현지가 YU엔터에 있다가 얼마 전까지는 댄스팀에 있었잖아요. 다른 장르를 안 해봤대요. 새로운 장르 덕분에 전반적으로 실력이 는 거죠.”
프로듀서 중 한 명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다른 애들도 이렇게 해야 하는데, 애들이 열정이 부족해요. 아무튼 잘 됐네. 근데 무대장악력까지 끝내주더라고요. 아예 같은 팀원들도 다 지워버리던데요? 이런 애는 솔로로 가야지.”
고팀장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이에 동조했다.
“네, 이런 애는 솔로 아이돌로 가야죠. 이왕이면 저희 팀에서 키우고 싶은데.”
고팀장의 말에 모든 이들의 눈이 박대표와 김본부장을 향했다.
데뷔에 대한 본격적인 얘기가 나오기 전에 미리 침을 발라놓는 것.
하지만 박대표와 김본부장은 이러한 얘기들을 듣고도 그저 조용히 평가지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대화가 지속되고, 자리가 파했을 때.
이 둘은 곧바로 함께 대표실로 올라갔다.
탁, 대표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소파에 채 앉기도 전에 김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내 아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확실히 안목이 있어. 재즈랑 댄스스포츠는 어떻게 떠올린 거야?”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박대표.
그는 당장이라도 아들에게 연락해서 묻고 싶은지, 손에 잡고 있는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이미 오후 6시는 훌쩍 넘은 시간. 그런데 지금도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일개 로드 매니저를 대표실로 오라고 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퇴근 후를 기약하기로 했다.
“우리 아들이 알려준 거 맞겠지?”
“아무렴 어떻습니까. 결국 이렇게 빨리 성장했는데.”
이들은 얼마 전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지금 있는 이 장소에서 유현지의 연습 영상을 보며 얘기했었다.
그렇게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기다리다 보면 답이 나올 거라고.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빠르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잠깐 기다렸을 뿐인데, 굉장한 게 튀어나와버렸다.
“춤이 더 사니까, 무대장악력까지 살아났어. 전엔 솔로로 성공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다들 이 아이를 솔로로 데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박대표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는 물었다.
“어쩔까?”
“뭐가 말입니까?”
“유현지랑 한울이.”
유현지의 데뷔, 그리고 이미 차고 넘치도록 제 능력을 증명한 박한울.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 둘 다 맡기기에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한울이한테 바로 실장 달아줄 수도 없고.”
김본부장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 다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그걸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죠.”
허나 아무리 그래도 1년도 안 됐고 경험도 부족한데 바로 실장을 달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
이렇게 빨리 데뷔를 시켜야 할 줄은 몰랐지만 처음부터 박한울이 부탁했던 조건이 그거였기도 헸다.
자신에게 맡기는 것.
둘은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했다.
“그냥 유현지도 한울이한테 맡기자. 데뷔는 준비되는 대로 바로 프로젝트 꾸리기로 하고.”
“예.”
십여 분 뒤.
연습생 월말평가 순위가 적힌 종이가 둘 사이에 놓여졌고.
둘의 시선은 종이의 최상단으로 향했다.
1. 유현지
***
‘짝꿍끼리’의 녹화가 끝나고도 채희는 여러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같이 스케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 촬영이 있을 때보단 당연히 일정이 훨씬 널널했고.
나는 오늘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허나, 일찍 퇴근하고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푹 쉴 수는 없었다.
기다리고 있는 소식이 있어서.
‘잘하고 있겠지?’
오늘은 유현지의 월말평가가 있는 날.
나는 초조하지 않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마음 같아선 직접 그 평가 자리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아직 그럴 수 있을 만한 위치는 아니었고.
월말평가가 끝난 뒤에는 유현지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노래를 봐주는 건 내일부터 하기로 했다.
얼마간은 그녀도 월말평가를 준비한다고 바빠서 지금까지도 노래를 못 봐주고 있었거든.
그렇게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기다리길 몇 시간.
지이잉- 핸드폰을 꼭 쥐고 있던 손에 진동이 울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유현지의 연락.
난 곧바로 전화를 받으며 누워있던 몸을 바로세웠다.
“여보세요? 현지 씨, 잘 끝났어요?”
전화기 너머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네. 종합 1등했어요.
내 입가로 진한 미소가 번졌다.
초조한 건 절대 아니었고 자신감 또한 있었지만, 역시 결과로 전해들으니 뿌듯하기 이를 데 없다.
“수고 많았어요. 많이 힘들죠?”
-아뇨. 너무 기뻐서 하나도 안 힘들어요. 저 지금까지 월말평가하면서 1등한 거 처음이에요.
“축하해요. 만약 지금 실력으로 YU엔터에서 월말평가 봤어도 1등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덕분이에요.
이런 얘기를 나눌 때가 제일 좋다.
고맙다, 덕분이다, 축하한다.
다 기쁜 일을 나누며 행복해할 때가 아닌가.
나는 아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방을 거닐었다.
가만히 앉아있기엔 뭔가 좀이 쑤시는 느낌이다.
에너지가 가득 차서 그런가.
“평가는 어땠는데요?”
-다 좋은 말들이었어요. 엄청 좋았어요.
어째 칭찬은 그녀가 들었는데, 조곤조곤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녀가 내게 칭찬을 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
“잘했어요. 제 덕분이 아니라 현지 씨가 잘한 거예요.”
-아니에요. 매니저님 덕분이에요.
우리는 한참을 서로에게 공을 돌리며 서로에게 금칠을 해주다가, 내일 보자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월말평가 종합 1위.
어깨가 절로 으쓱거리는 느낌이다.
“당연하지, 누가 골랐는데.”
보람이 느껴지고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구석을 뒹굴거리고 있는데.
현관에서 도어락 비밀번호 입력하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일 터, 나는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를 맞이해드렸다.
“오셨어요?”
느낌인데, 지금 아버지가 짓고 있는 표정과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은 매우 흡사할 것 같았다.
씨익 웃고 있는 얼굴과 쫙 펴진 어깨.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어디에서나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버지는 말했다.
“유현지 1등했어.”
“들었어요. 당연한 결과죠.”
내 미소는 더욱 진해졌고, 아버지는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알려줄 것도 있으니까 앉아봐.”
“네.”
어머니가 우리를 쳐다도 안 보고 TV에 열중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마치 중요한 자리라도 된다는 듯 식탁에 앉아 무게를 잡았다.
정말 중요한 얘기가 나올 것 같거든.
“고팀장 알지? 매니지2팀 팀장.”
“네, 알죠.”
“고팀장이 유현지 자기네 팀에서 키우고 싶다더라.”
눈매가 확 날카로워지려는데, 아버지의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는 픽 식어버렸다.
내가 아빠를 모를까.
“장난 그만 치시고요.”
“큭큭. 너 일에 진심인 거 보는 게 좋아서 그래, 인마. 그러니까 작작 놀았어야지.”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돼서 이렇게 결과가 좋은 거 아니에요. 암튼 애간장 그만 태우시고 말씀해보세요.”
“고팀장 말하는 거 귓등으로도 안 들었어. 어차피 네가 다 맡기로 했으니까 네가 다 맡아. 유현지랑 정채희 둘 다.”
당연한 얘기를 뭘 새삼스레.
나는 말 대신 표정으로 이런 생각을 전달했는데, 아버지는 새삼스레 이런 얘기를 한 이유를 그제서야 꺼내셨다.
“바로 솔로 데뷔 준비하기로 했어. 이제 프로젝트 꾸릴 거다.”
내 입에서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안 돼요.”
“네가 아직 두 명 맡기엔 너무 빨라도 유현지 실력이 그렇게 올라왔는데 어떡해. 주변에서 말이 좀 많겠지만 다 무시해버려. 문제될 것 같으면 김본부장이랑 내가 해결할 테니까.”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다.
애초에 난 그런 부분은 아예 신경 자체를 쓰지 않았고.
“제 말은 지금 바로 데뷔 준비하긴 이르다는 거예요.”
“뭐? 왜? 이미 걘 솔로 아티스트야. 무대장악력도-”
자꾸 얘기가 빙빙 돌고 있으니, 나는 아버지의 말허리를 자르며 그 이유를 말했다.
“아직 노래를 안 봐줬어요. 데뷔는 노래까지 더 다듬은 다음에. 그때 해야 돼요. 아직 현지 씨의 진면모가 다 안 나왔어요.”
남들은 이 정도로도 데뷔해도 좋을 것 같다 말하지만.
나는 채희를 매니지하며, 첫인상으로 주는 임팩트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작가와 감독, 그리고 제작사 대표나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도 처음의 임팩트가 그렇게 중요할진데, 그 대상이 대중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데뷔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요.”
노래를 다듬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데뷔를 준비하면 댄스가 메인이 되는 컨셉과 싱글이 만들어질 테니까.
이미 컨셉과 싱글이 준비되고 있는 상태에서 보컬을 다듬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직원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게, 그녀가 가진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게 만든 뒤에 컨셉과 싱글을 정해야만 한다.
“···괜한 말 하는 거 아니지?”
이렇게 묻는 아버지의 입은 이미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 제가 허튼 소리 하는 거 보셨어요?”
“그럼 나 기대해도 되냐?”
내가 그녀를 괴물로 만드는 게 아니다.
단지 그녀가 괴물 같은 재능을 갖고 있을 뿐이지.
잠재되어 있는 그 괴물 같은 재능이 겉으로 드러나게 됐을 때는, 누가 어떤 기대를 품고 있든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이리라 확신했다.
그 기대가 얼마나 클지라도 반드시.
“당연하죠. 얼마든지 기대하셔도 돼요.”
나는 이미 증명된 사실을 말하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 월말평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