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36화 (36/170)

<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 >

“각별은 무슨 각별이요. 그냥 하다 보니까 하는 거지.”

채희의 이 말에 출연진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나와 채희를 바라봤다.

그 확신에 찬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어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데, 채희는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우리 매니저님이 좀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한.”

그렇게 말하면 매니저가 뭐가 되냐는 둥, 무슨 스타일인지 느낌 확 온다는 둥, 매니저 분 일단 진정하시라는 둥, 매니저가 과자냐는 둥.

예능꾼들인 고정 출연자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채희의 대답에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웃음을 만들어냈다.

확실했다.

이건 절대 편집이 되지 않을 거다.

아무튼, 피디는 당연히 틀렸다고 답했고, 채희와 함께 팀이 된 고정 출연자들도 채희의 대답과 비슷한 대답들을 내뱉으며 분량을 만들어냈다.

“뭐 좀 친하긴 합니다.”

“틀렸습니다!”

“원치 않게 그렇게 됐네요. 근데 딱히 각별까지는 좀 그렇고.”

“틀렸습니다!”

하도 잘 살리는 출연진들 덕분에 웃음은 많이 만들어지는데, 내 얼굴에선 도저히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이들이 웃음을 더 많이 만들어낼수록 내 이미지가 이상해질 테니까.

젠장, 왜 핫한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결국 문제는 못 맞췄고, 피디는 영상을 재생해줬다.

-아, 그럼 둘이 각별하겠네요?

-각별하죠. 처음 맡아서 그런 게 아니라 애가 워낙 착하고 순수하거든요.

“···!”

“···!”

“채희 씨가 나빴네! 매니저분 겉도 촉촉하시잖아!”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러다가 설마 인터넷에서 겉바속촉 매니저로 불리는 거 아냐?’

내가 입매를 삐뚜름하게 비틀며 채희를 바라보고 있는데.

채희는 화면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틀렸네요. 맞출 줄 알았는데.”

전혀 틀린 사람의 표정이 아니다.

저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삐뚜름해졌던 내 입술도 도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자, 이제 다음 문제 나갑니다! 집중해주세요!”

“오케이! 파이팅! 채희 씨, 이제 좀 맞춰봐요!”

“알겠어요! 이젠 꼭 맞출게요!”

모두가 TV를 바라보자, 곧바로 화면이 재생되었다.

여전히 떡갈비를 씹어 먹고 있는 내 모습.

-그래요? 그럼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알겠네요. 채희 씨도 매니저님에 대해서 잘 알아요?

화면은 멈췄고 채희는 또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정답!”

“네, 말씀하세요.”

“걘 아무것도 모르죠. 제가 워낙 신비주의라.”

내가 언제 신비주의라고 했다고.

신비의 ‘신’ 자도 꺼낸 적이 없거늘.

실소를 터뜨리며 채희를 봤는데.

그녀는 틀렸음에도 여전히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보니까 그냥 즐기는 거네.’

아예 맞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냥··· 재밌어하고 있었다.

예능에서 내 문제가 나와서 그런지, 아니면 이전 문제의 정답이 그녀를 저렇게 기분 좋게 만든 건지, 그도 아니면 그냥 날 전국적으로 겉바속촉 매니저로 만드는 게 재밌어서 그러는 건지.

아무튼 분량도 뽑히는데 재밌어하기까지 하니, 날 속인 제작진들과 나에게 약간의 언질도 주지 않은 한실장님에 대한 원망은 거두어도 될 것 같았다.

결국 문제는 또 못 맞췄고, 답은 다시 화면을 통해 흘러나왔다.

-잘 알죠. 채희가 스스로도 모르는 걸 제가 알듯이, 채희도 그럴 거예요. 붙어있는 시간도 많고 대화도 많이 하니까요.

틀렸음에도 환한 미소를 그리고 있는 채희.

제작진은 말했다.

“원래 다음 질문도 문제였는데, 매니저 분 답변이 너무 길어서 그냥 보고 넘어갈게요.”

이젠 채희뿐만이 아니라 출연진들도 아주 흥미진진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닌데.

-어휴. 그럼 엄청 친한가 보다. 투정이나 짜증 같은 거 부린 적은 없어요? 친구끼리 그러듯이.

-있기야 하죠. 그런데 그게 재밌어서 제가 더 자극할 때도 있어요. 투정이나 짜증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뭐라 해야 할까. 서로 의지하고 믿는 느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덜 친한 사람한테는 오해하거나 기분 상해할까 봐 신경 써서 말하는데, 정말 친한 사람들끼리는 감정 상할 걱정 자체를 안 하는 거. 그렇다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도 아니라서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 이후로도 몇 문제.

채희 팀은 문제를 단 하나도 맞추지 못했지만, 분량은 상당히 많이 뽑은 것 같았다.

내내 웃음이 그치질 않았으니까.

물론 채희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그치질 않았고.

아무튼 그렇게 꼴등을 한 덕분에 채희 팀은 도전과제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고.

결국 아무도 고르지 않은 ‘퀴즈’에 도전하게 되었다.

‘연예’ 부문이 있는 퀴즈에.

***

팀별 미션까지 선택한 뒤 가진 쉬는 시간.

채희는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출연진들과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고.

나는 한실장님의 뻔뻔한 미소를 마주해야만 했다.

“한울아, 다 이해하지? 채희 분량이 제일 재밌었어.”

첫 순서로 나선 채희 차례에서 출연진들과 채희가 빵빵 터뜨린 덕분에.

이어진 뒷순서들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얼굴과 이미지를 팔게 된 거, 채희가 대중들의 머릿속에 콱 박힐 수만 있으면 좋지. 내 얼굴도 함께 콱 박힌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편집된 부분이 하나도 없는 게 더 마음에 드네. 짜식, 내가 너 믿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언질 안 준 거야.”

다른 팀에서 웃음이 좀 덜 나온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나처럼 쭉 영상이 이어지지 않고 듬성듬성 편집이 된 사람도 있었고.

미리 약간의 언질이라도 받았는지, 영 부자연스럽게 답한 사람도 있었으니까.

어쩌면 나만 방송에 나갈지도 모르겠다.

“이해하죠. 괜찮아요.”

우리 아버지가 HJ엔터 대표라는 걸 감안해도 내 얼굴이 팔리는 건 문제될 게 없었다.

애초에 친구도 그리 많지 않기도 한데, 그중에서도 우리 아버지가 HJ엔터 대표라는 걸 알고 있는 애들은 어디 가서 떠벌릴 애들은 아니니까.

어렸을 적 집에 놀러와서 얼굴을 봤던 가수, 작가, 감독과 같은 분들도 지금은 훌쩍 큰 나를 못 알아볼 테고, 만에 하나 알아본다 한들 아버지께 전화나 한 통 하는 정도일 테니까.

왜냐하면 그런 사소한 거에 신경을 쓰기엔 대부분이 현재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고, 소수는 거물이 되어 있거든.

“저기요, 부적 씨.”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박송이.

예능 경험이 적지 않아서 그런지 여유롭게 쉬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내게 다가와서 이런 소리를 했다.

“···저요?”

“네, 그쪽이요. 채희가 그쪽 보고 부적이라고 하던데요? 그런데 역시 효과가 좋긴 한가 봐요.”

부적이라.

그런 소리를 박송이한테 했어?

나는 픽 웃고는 말했다.

“그래서 송이 씨도 효험 보려고 저한테 오신 거예요? 죄송해요. 오늘은 채희 전용이라.”

“전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근데 채희 엄청 아끼시나 봐요? 부럽네.”

듬성듬성 편집된 영상.

박송이의 매니저 촬영본이 그러했다.

뭐가 찔리기는 한 모양인지 불편한 얼굴로 저 멀리서 이쪽을 흘깃거리고 있었고.

내 알 바가 아니긴 해서 난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부적이 어떤 분일지 궁금했는데, 저 영상 보니까 조금은 알 것 같네요. 아, 이래서 부적이구나?”

자꾸 부적, 부적.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은 딱히 없고, 그냥 시간 난 김에 나랑 대화 좀 해보려고 온 모양이다.

그럼 나도 이렇게 대화하게 된 김에 말해야지.

“오늘 우리 채희 좀 잘 챙겨주세요.”

“···제가 안 챙겨도 저보다 더 잘하는 것 같던데요? 그리고 부적도 옆에 있는데 제가 뭘 도와요. 이왕 얼굴 팔리게 된 거, 그냥 옆에 꼭 붙어 계시면 효과 더 좋을 것 같은데. 아예 녹화에 합류하시죠?”

“어째 비아냥거리는 걸로 들리는데 제가 잘 이해하고 있는 거 맞나요?”

“아뇨. 비아냥거린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좋은 말 한 것도 아니긴 하고요. 그쪽이랑 채희 때문에 얼마 전까지 좀 스트레스 받은 게 있어서. 아직 앙금이 좀 남았어요.”

“드라마에서 분량 먹힌 거요?”

“···꼭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야 돼요?”

의외로 타격감이 있다.

채희보다는 덜 예쁘지만 그래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주연배우다.

그 예쁜 얼굴 위에서 미간이 좁혀지는 걸 보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래, 박송이 입장에선 나랑 채희가 빌런이 맞겠지.

“죄송해요. 말씀하시는 거 보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거 좋아하시는 줄 알았어요.”

“뭐··· 나도 똑같긴 하네···. 아무튼 이렇게 된 거 오늘 예능 분량이라도 좀 가져가야겠어요. 여기서라도 이기고 싶어서.”

이 사람도 참 웃기는 사람이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솔직하고 순수하다고 해야 돼, 아니면 사차원이라고 해야 돼?

아무튼 경쟁심 강한 거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다.

“그래요, 열심히 해보세요.”

“여기서도 분량 뺏기면 다음에 작품에서 만날 때 조금도 양보 안 하고 다 뺏어버릴 테니까 각오하시고요.”

“파이팅. 응원합니다.”

“···.”

역시 타격감이 좋다.

이제 처음 대화하는데 벌써부터 재밌어.

‘제발 다른 작품에서 만났으면 좋겠네.’

그땐 채희가 주연으로, 박송이가 조연으로.

박송이가 미간을 더 좁게 좁히며 뭐라고 말하려 했는데.

그때 스태프 중 한 명이 큰 목소리로 녹화가 다시 재개됨을 알렸다.

박송이는 날 한 번 째려보고는 뒤돌아 걸어갔고.

옆에서 모든 대화를 지켜보던 한실장님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그러게요.”

뭐지?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물론, 응원은 하되 채희보다는 덜 잘하는 쪽으로.

아무튼 불이 들어온 카메라 앞으로 모든 출연진들이 모였고.

슬레이트가 딱! 소리 나게 쳐지자, 피디가 입을 열었다.

“도전과제마다 점수를 산정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정채희 씨 팀의 경우엔 20문제 중 몇 문제를 맞추느냐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다른 팀의 도전과제 역시 등급으로 나눠서 가장 등급이 낮은 팀이 벌칙을 받게 됩니다.”

불과 첫 미션일 뿐이었다.

미션과 벌칙을 반복하는 프로그램.

등급이 가장 높은 팀이 다음 미션의 우선 선택권이 주어질 뿐이었다.

“첫 번째로 정채희 씨 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왜 또 우리가 먼전데!”

“채희 한 문제도 못 맞췄다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득달같이 달려드는 출연자들.

채희와 한 팀이 되어, 바로 전에 웃음을 많이 터뜨렸기 때문인지 텐션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앞으로도 이런 텐션을 유지하면 정말 채희의 분량이 더 많아질 건 자명했다.

피디는 그런 출연자들에게 몇 번이나 고이 접혀진 노란색 종이들을 내밀었다.

“찬스 뽑으시죠.”

채희의 팀원 두 명이 찬스 종이를 두고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눴다.

“이번엔 진짜 제대로 된 거 뽑는다. 또 ‘한 사람 추가’ 이런 쓸데없는 거 뽑으면 큰일 나는 거야.”

“채희 씨, 제 손이 또 황금손이에요. 저만 믿으시죠. ‘스마트폰’ 뽑을 테니까.”

“그거 뽑으면 문제당 10초 제한이라서 또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지.”

“그래도 ‘한 사람 추가’보다는 낫잖아.”

“그건 그래. 그건 그냥 쓰레기야!”

언뜻 좋아보이지만 지금까지 좋은 효과를 봤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한 사람 추가’ 찬스.

‘스마트폰’ 찬스가 10초 제한이 있는 것처럼, 사람이 추가되면 문제가 추가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들로.

그러니 이들이 꺼리는 건 당연했다.

다른 팀원들을 뽑아도 열심히 해줄 리가 없고, 스태프들을 뽑아도 몇몇 부문들을 제외하고는 영 쓸모가 없었으니까.

“채희 씨가 뽑으실래요?”

“채희 씨 말고 내가 뽑으면 어때? 나 황금손인데.”

“채희 씨가 게스트잖아! 뽑게 해드려!”

자잘한 과정들을 거치고 채희가 뽑은 찬스권.

펼친 종이 속에는 ‘한 사람 추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아 씨! 망했어!”

그런데.

그런 팀원들 사이에서 정채희만 홀로 웃고 있었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아, 제발···.’

속으로 빌고 있는데, 채희는 여지없이 입을 열었다.

“혹시 추가할 사람 제가 뽑아도 돼요?”

“네?”

“누구요?”

“자칭 컨텐츠 덕후라는 분을 알아서요. 연예 부문 잘 맞출 것 같은데.”

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 채희의 시선을 따라.

다른 이들의 시선 역시 내 쪽으로 향했다.

“···좋은데?”

“큭큭. 뭐하세요? 안 오시고?”

내 옆에 있을 한실장님을 슬쩍 바라봤는데.

카메라에 잡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대단한지, 어느새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선 채로.

남의 집 불구경 하듯이.

“오빠! 빨리 와요!”

나는 피할 구석이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한 몸 희생해서 오늘 촬영의 주인공을 채희로 만들어야겠다.

문제를 다 맞춘다면 주인공으로 확실히 도장 찍을 수 있겠지.

이슈 돼서 클립 영상 같은 게 많이 돌면 더 좋고.

“오빠, 잘 맞출 수 있죠?”

“연예 문제라면.”

그렇게 우리 네 명은 한 팀이 되었고, 피디는 이런 흐름이 마음에 드는지 활짝 펴진 얼굴로 말했다.

“첫 번째 문제의 부문을 선택해주세요.”

“연예지! 우린 처음부터 끝까지 연예 문제로 간다!”

연예계 관련 문제들.

“기회는 한 번입니다. 1번 문제, 송하연의 첫 번째 정규앨범의 1번 트랙 제목은 무엇일까요? 보기 1번-“

나는 첫 번째 문제를 듣자마자, 보기도 들을 필요 없이 대답했다.

“정답. 친구는 싫어.”

“···정답입니다.”

“···!”

“우와! 뭐야!”

“보기도 안 들어!?”

이어서.

“정답. 열네 곡.”

“정답. 김은영 작가님의 ‘소곤소곤’ 8회.”

“정답. 바다보다 푸른 밤.”

2번째 문제도, 3번째 문제도··· 그리고 20번째 문제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정답을 맞춰냈다.

“와···. 미쳤다, 진짜.”

“이 사람 진짜 장난 아니야!”

“아니, 대체 뭐하시던 분이세요?”

이쯤 되니 살짝 고개가 기울여졌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데?

채희가 아니라.

“전 그냥 채희 매니저죠.”

“와! 진짜 이 콤비 짱이다! 이제 둘이 한꺼번에 섭외 엄청 들어올 것 같은데?”

···그건 생각 좀 해봐야지.

그런데 내게 포커싱이 쏠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채희는 자기가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쫙 펴고 턱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저 편에 선 박송이랑은 다르게 말이다.

박송이는 눈빛으로 나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라고.

***

결국 우리가 다 해먹었다.

나는 추가된 10문제 포함, 30문제를 전부 맞췄고, 분량 걱정이 사라진 채희의 팀원들은 더욱 텐션이 살아나 아주 녹화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재밌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녹화가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

채희는 아직도 즐거운 여운이 식지 않았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와! 진짜 재밌었다! 저 이렇게 재밌는 녹화 처음이에요!”

그야 그럴 수밖에.

이미 초반부터 존재감이 높아진 덕분에, 뭐가 있을 때마다 포커스가 채희에게로 향했으니까.

“같은 팀원분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분량도 많을 것 같아요!”

“너도 잘하긴 했어.”

차를 운전하며 대답하고 있는데 오른쪽에서 얼굴이 튀어나왔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채희가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오빠 새로운 면들도 많이 봐서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오빠가 절 그렇게 생각해줄 줄은 몰랐네.”

“새로운 면은 무슨.”

낯간지럽게.

채희는 내가 이렇게 반응하든 말든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인심 썼다! 오빠한테 삐지거나 서운해할 만한 일 있어도 세 번은 면죄권 줄게요. 딱 세 번이에요?”

그런 게 굳이 필요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입술이 하루에도 열댓 번은 튀어나오는 애한테 그런 걸 받아서 무슨 소용이라고.

“됐어, 필요 없어.”

“에이. 그래도 언젠간 쓸데가 있겠죠. 이거 진짜 인심 쓴 거거든요? 오빠가 저 그렇게 생각해주시는데 제가 이 정도야 못하려고요.”

입을 가만히 다물고 있는데.

큭큭, 웃는 한실장님의 웃음소리 뒤로 채희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고마워요, 오빠.”

<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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