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25화 (25/72)

〈 25화 〉 여행

* * *

띠리릭­

익숙한 기계음을 들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저 왔어요"

"어 그래 왔어?"

"네. 진아는요?"

"걔도 곧 도착할 거야. 이리 와서 이거 맛 좀 보렴"

본가에 도착을 하니 고소한 냄새가 내 코를 간지럽혔다.

우리가 오기 전에 미리 부쳐놨는지 식탁에는 다양한 전과 음식들이 가득 놓여 있었고 나는 곧장 젓가락을 꺼내 전 몇 개를 집어 먹었다.

"음~ 맛있는데요? 잘 부치셨네"

"그래? 다행이네. 나중에 니들 올라갈 때 싸줄테니까 가지고 올라가렴"

설거지를 하며 말하는 아빠의 모습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빠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워낙 집안이 보수적이여서 전에는 엄마가 모든 집안일을 다 하셨는데... 아무래도 역전이 되고 나서는 아빠가 모든 집안일을 다 맡으셨나보다.

엄마는 집에 없으셨다. 대충 아빠에게 들어보니 회사에 뭘 두고 오신게 있으셔 그걸 가지러 다시 회사로 가셨다고...

띠리릭­

뭐 어쨌든 그러는 도중 다시 한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떠나기 전 뭔가를 잔뜩 꾸몄는지 꽤나 화려한 기색에 진아가 집에 들어온 것이었다.

"우와... 냄새 뭐야? 기름진 냄새가 엄청 나는데?"

문이 열리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진아는 코를 씰룩 거리며 빠르게 신발을 벗어 던졌다.

"너도 왔구나. 와서 이것 좀 먹어보렴"

"아뜨뜨...! 으어... 이거 엄청 고소하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손으로 전을 집어먹은 진아는 전이 뜨거웠는지 입을 벌린 체로 바람을 불며 김을 내뱉었다.

전에는 볼 수 없던 진아의 엉뚱한 행동에 나는 묘한 느낌을 받으며 아빠에게 받은 젓가락을 건네줬다.

배가고팠는지 내가 건넨 젓가락을 쥐고 빠르게 전이 담겨진 바구니로 젓가락질을 하는 진아에게 아빠는 그러지 말라며 그릇에 적당량에 전을 담아 진아에게 건네주셨다.

"우물우물... 울 아빠가 음식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한다니까?"

"참나... 씨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거 다 먹으면 청소기라도 한 바퀴 돌려라"

"네네 알겠어요~"

행복한 미소로 입가에 기름칠을 잔뜩 묻히면서 진아는 전을 먹었다.

"진성이 너도 저기 거실에 널려 있는 빨래 좀 개줄레?"

"아 네. 갠 다음에 넣기 까지 해요?

"그러면 너무 고맙고"

역전이 됐지만 집안에서 나와 진아의 위치는 딱히 변한 게 없어 보인다.

힐끗 전을 먹고 있는 진아를 바라보다 나는 부엌을 나와 옷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거실로 갔다.

'... 뭔 이틀치를 한 번에 돌리셨나? 왜 이렇게 많아 보이지?'

둘만 사시면서 생각보다 많은 빨래양에 혀를 내두르며 자리를 잡기 위해 대충 자리를 정리했다.

[... 네 오늘 모신 게스트는 바로바로~]

그냥 가만히 앉아서 옷만 개기엔 지루하니 티비도 키고 마침 추석 특집으로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옷을 개기 시작했다.

세계가 바뀌고 나서 예능은 처음 봐보는데 확실히 고정 출연진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여자였고 재미는... 뭐 그럭저럭 볼 만은 했다.

나는 뭐 남녀가 바뀌고 나서 옷차림이나 화장법도 다 바뀌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 저 화면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에 옷차림만 비교해 봐도 전혀 어색한 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다행인 거지. 만약에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고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는다고 한다면...'

"... 어우 씨발. 생각만 해도 역겹네"

아마 내게 있어선 정말로 끔찍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오빠. 아빠가 이거 먹으레"

"어 그래. 여기에 냅둬"

별거지 같은 상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전을 다 처먹었는지 이제는 사과를 처먹으며 진아가 내게 과일을 가져다주었다.

"응? 저거 라인식스 아니야?"

"... 라인식스?"

쟤네들 이름이 라인식스였구나... 이름 한번 괴상하네.

그릇에 담긴 사과를 꺼내먹으며 중얼거렸다.

잠깐만 그러면 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연예인들은 모두 어떻게 되는 거지? 아까 보니까 눈에 익은 연예인들은 딱히 없어 보였는데.

내가 모르는 눈빛을 하자 진아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빠 쟤네 몰라? 저번에 오빠네 학교에 라인식스가 공연하러 오지 않았어?"

"... 그랬나? 난 잘 모르겠는데"

"... 모른다고? 오빠 축제에서 쟤네랑 사진도 같이 찍었잖아. 그 사진 나한테도 있는데?"

"..."

이건 또 뭔 소리야. 라인식슨지 라임식슨지 오늘 처음 알게 된 연예인인데 저 사람들이 우리 학교 축제에 와서 나랑 같이 사진을 찍었다고?

"... 찾았다. 봐봐. 이거 내가 찍어줬잖아"

진아가 내민 휴대폰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사진 속에선 활짝 웃고 있는 라인식스와 그 사이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내가 담겨져 있었다.

축제가 저번년도에 벌어졌는데 아마 그때 찍은 것 같았다.

"어떻게 이걸 기억 못해? 저 때 라인식스 팬들이 라인식스랑 사진 찍으려고 온갖 지랄을 떨쳤는데"

"... 어 뭐 조금 기억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뭐래. 표정 꼬라지 보니까 하나도 기억 못 하는 것 같은데"

"... 뭐 문제있냐?"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은 없는데..."

자기 몫에 사과를 다 처먹고 진아는 자연스럽게 내 그릇에 담긴 사과를 집어 먹었다.

나는 나대로 머리가 아파 그런 진아를 신경 쓰지 못했다.

'기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기억이 아에 없는데 내가 뭘 어떻게 알아 씨발? 이걸 설명할 수도 없고...'

혹시 모르니까 예전에 있었 던 일들도 다시 한번 세세히 살펴봐야겠다 생각한 나였다.

내가 모르는 이런 일이 또 있을지도 모르니까.

"야야 그만 좀 처먹어! 도대체 몇 개를 먹는거야"

"... 쳇! 까짓것 동생에게 나눠 줄 수도 있는거지"

사과 6조각이 담긴 그릇이 어느새 한조각으로 줄어들었다.

내가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 진아가 4조각을 처먹은 것이었다.

그렇게나 처먹었음에도 아직 배가 덜 불렀는지 다시 부엌으로 가는 진아를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사진으로 돌려 버렸다.

그래도 사진 속에 있는 내 모습을 보니까 딱히 성격은 지금과 똑같은 것 같은데...

아마 이 성격 그대로 살아왔다면 생각보다 별일은 없을 것이다.

성격상 껄끄러운 일은 남겨두지 않는 편이니까 뭐.

[좋아한다고 말해주세요~]

대학가에서 몇 번 들렸던 멜로디가 티비에서 흘러나왔다.

마지막 하나 남은 사과를 포크로 찍어 먹으며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렸다.

확실히 인기 있는 아이돌이라 그런지 노래는 나쁘지 않았다.

***

첫날에 모든 일정을 소화시키기 위해 아침에 친가를 가고 저녁을 외가에서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도 성격들이 다양해졌지만 그렇다고 딱히 불편하거나 역겨울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친가 외가 둘 다 보수적인 가문이어서 그냥 우리 부모님의 확장판이라 생각했다.

다만 위치가 뒤바뀌어서 평소에는 방에서 편히 티비를 보는 나였지만 오늘은 바쁘게 움직이며 어른들을 도와드렸다.

그렇게 친가와 외가를 모두 거쳐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게 된 우리 가족은 내일 있을 여행을 위해 짐을 싸고 일찍 잠이 들었다.

마침내 여행 당일 날.

"잠 좀 적당히 깨고 이것 좀 엄마랑 같이 차에 실어"

"으아아함... 네에..."

"밥은 도착해서 먹을 거니까 혹시라도 배고프면 가는 길에 빵이라도 먹고"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아침 일찍 도착해서 아침을 먹을 생각으로 우리 가족은 차에 올라탔다.

나와 진아는 피곤함에 쩐 상태로 시트에 앉자마자 다시 잠에 빠졌고 눈 깜짝하는 사이 그렇게 어느새 바다에 도착했다.

"... 우와 진짜 바다네. 원래 바닷가 풍경이 이렇게 예뻤나?"

미리 예약을 해 둔 펜션 주차장에서 차는 멈춰 섰고 차에서 내리고 하품을 길게 내 쉰 진아가 짧게나마 감탄사를 뱉었다.

진아의 말에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새하얀 모래사장과 출렁거리는 파도, 그리고 적당한 구름에 햇빛도 밝게 비추는 하늘은 몹시나 아름다웠다.

그렇게 잠깐 동안 풍경을 바라보고 부모님을 도와 나와 진아는 펜션으로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드렸다.

털썩­

짐을 옮기고 모두 옮기고 진아는 커다란 침대에 자기 몸을 내던졌다.

"우리 집보다 좋은 것 같아. 안 그래 오빠?"

"그럼 당연히 우리 집보다 좋겠지"

"으음... 나중에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하는데"

턱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몸을 뒹구는 진아를 나는 한심하게 쳐다봤다.

확실히 펜션도 해변의 풍경 못지않게 예뻤다.

정말 있을 건 다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베란다엔 테라스가 설치돼있어 넓게 펼쳐진 바닷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 어우 일찍 왔네? 우리도 일찍 출발했는데 새벽에 출발했나 봐?"

"왔어? 일단 짐 풀고 밥부터 먹자"

"그래. 얘들 배고프겠다"

윗층에서 노가리를 까던 와중 아랫층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수아네 가족 까지 모두 펜션에 도착을 하고 우리는 조금 늦은 아침을 해결하러 근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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