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40화 (140/200)

140. 적반하장

“허어. 난감하군.”

“정말 난감한 일이지 말입니다. 촌장님. 어찌할까요?”

“후우―”

평소라면 밭을 갈고, 씨를 뿌렸을 촌장.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서재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 촌장의 앞에는 대장간에서 땀을 흘리고 있어야 할 스미스 씨가 서 있었다.

스미스는 불법건축물이 대거 들어서자 그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려고 즉시 촌장에게 달려온 터였다.

탁탁―

촌장의 주름진 손가락이 책상을 톡톡 두드리자 스미스가 넌지시 말했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래. 그렇겠지.”

촌장은 이 상황이 처음인지라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본래 마을에 건물을 지으려면 그 마을의 관리자, 촌장에게 허가를 받아야 했다.

건축 허가를 받는 과정은 까다롭고 돈이 많이 들어서 보통 하기 힘들지만.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경우가 달랐다.

“꼼수를 부리는 놈들이 늘었군.”

허가를 받지 않고 건물을 짓는 꼼수.

그런 꼼수를 이용해서 마을을 어지럽히는 일을, 촌장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남의 인기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이리 많을 줄이야.”

촌장도, 그 앞에 자리한 스미스도 요정의 쉼터가 인기가 많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요나스 마을은 본래 유동인구는 많지만 대부분 지나가는 사람들뿐, 그저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런데 점점 마을에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마을 경기도 살아났다.

모두 한 사람, 호준이 등장하고 난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싹 다 밀어버립시다. 우리가 우습게 보이면, 앞으로 저런 불법 건축물을 짓는 녀석들이 또 몰려올 겁니다.”

“흠. 맞는 말이네. 그렇지만 밀어버린다고 해결책은 아니지.”

“무슨 뜻입니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네. 선례를 잘못 두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빈발할 수 있어.”

대장간 일을 제쳐두고 달려온 스미스는, 그 말에 잠시 멍해 있다가 이내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의 말대로였다.

호준의 가게가 유명해질수록, 가짜 음식점이 빈발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유명한 것 하나가 생기면 우후죽순 다 따라 하곤 하니까.’

다만 문제는 그 후발주자들이 호준의 가게와 구분이 가기 힘들 만큼, 유사하게 따라 한다는 것이었다.

건축물도 비슷하고.

더군다나 음식점 사장들은, 호준에게 허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아 손님들을 현혹했다.

그들이 똑같은 맛이고 더 싸다고 유혹하면, 잘 모르는 손님들은 낚이는 것이다.

지금만 봐도 낚인 손님들이 맛없는 음식을 비싼 돈으로 사 먹고 욕을 하며 마을을 떠났다.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뭐라도 해야지요.”

“그래. 자네 말이 맞네. 짝퉁 가게와 진짜를 구분할 만한 것. 그것이 있으면 되겠지.”

촌장이 진지한 눈빛을 띠고 스미스를 올려다보았고, 스미스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말입니까. 짝퉁 가게가 들어서지 않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법은 있지.”

“네? 정말인가요?”

“그래.”

“하지만 어떻게 말입니까?”

“조금 기다려 보게. 진정하고.”

촌장의 주름진 입가에 여유 있는 미소가 그려졌다.

촌장은 스미스가 저렇게 안타까워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호준이 마을에 나타난 뒤로, 마을 경기는 활짝 피었다.

유동인구가 늘어나니, 판매량도 늘고 풍요로워졌다.

지갑이 두둑해지니 마을 사람들은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명이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힘들 게야.’

그렇기에 요정의 쉼터는 요나스 마을의 상징이었고, 아껴줘야 할 존재였다.

요정의 쉼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마을 사람들은 발벗고 나설 정도.

스미스 이전에 잡화점 제나, 목장의 루돌프 할배, 여관주인 유나, 텔레포트 장치 관리자인 올라, 그리고 길드사무소 관리자까지 왔다 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짝퉁 가게를 처리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순번으로 치면 스미스는 가장 늦게 도착한 축에 속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곧 도착하겠군.’

촌장은 이미 필요한 조치를 해 놓은 상태였다.

잠시 기다리기만 하면 될뿐.

촌장도 나름대로 호준에 대한 정이 깊었다.

처음 호준이 토지를 사러 왔을 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돈이 아무리 많아져도, 힘이 아무리 강해져도 늘 예의 바르고 욕심이 별로 없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더 비싸게 팔아도 되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지. 그래서 마을 사람들도 종종 가서 먹을 정도고.’

욕심에 매몰되지 않은 사람을 보기란 도통 쉽지 않은 일이다.

촌장은 잘 키운 손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흐뭇한 미소로 멀리서 지켜보았다.

호준을 계속 지켜봐 온 촌장에게 있어 새로 나타난 사람들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뜨내기장사를 하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손님에게 사기 치고.

거짓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찰 리가.

‘호준이 100배, 1000배 낫지.’

촌장이 고개를 끄덕하며 그렇지 그렇지 중얼거리는데.

“촌장님?”

스미스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촌장을 바라보았다.

촌장은 그 눈빛을 마주하자 뭐라 입을 열려다 꾹 다물었다.

촌장의 시선이 문가로 향했다.

또각 또각―

문 너머로 구두 굽 소리가 들리고.

스미스도 촌장을 따라 문가를 바라보았다.

똑똑―

“들어오게.”

허락과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로브를 쓴 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묵직한 상자를 안은 채로 촌장에게 꾸벅 인사했다.

촌장은 휘휘 젓고는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물건은 준비됐나.”

“네. 말씀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바로 가지.”

“네. 촌장님.”

“스미스. 자네도 따라오게.”

촌장이 자리에서 일어서 앞장섰다.

스미스, 그리고 상자를 든 사내가 그 뒤를 따라 길을 걸었다.

스미스가 고개를 길게 빼고 물어보았다.

“촌장님. 그게 대체 뭡니까?”

지팡이를 짚고 걷는 촌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자리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지.”

어리둥절한 스미스를 보며 촌장은 피식 웃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촌장의 풍채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

* * *

“흐흥흥흥~”

앞치마를 한 여자가 콧노래를 불렀다.

보라색 단발머리, 등에 스태프를 끼운 채로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그녀의 이름은 모나.

호준의 요정의 쉼터 2호점, 그 앞에 가짜 가게를 세운 장본인이었다.

모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역시 잘 팔리네?’

행복의 원천은 바로, 오늘 벌어들인 매출 덕분이었다.

【오늘의 매상 : 3,600골드】

모나가 유명한 가게 옆에 짝퉁 가게를 세우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먼저 타겟을 선정했다.

요정의 쉼터 뉴스를 TV와 인터넷으로 접하자마자 그녀는 타겟을 호준으로 정했고.

가지고 있던 재산을 처분하고 모조리 요리재료를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설마 한 번에 철거하라고는 못 하겠지.’

돈 없는 주위 플레이어들을 부추겨 함께 장사를 시작한 것도 그녀의 노림수였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면, 쉽게 관리자들이 덤비지 못할 테니까.

‘며칠만 더 버티자.’

현실에서 그러하듯, 건물 철거과정은 보통 유예기간을 두었다.

마을 관리자들 중에 성실히 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서 철거를 앞두고 며칠 정도.

그 며칠 동안 뽕을 뽑아먹을 수 있었다.

굳이 불법까지 저지르는 이유는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꽤 돈이 되니까.

“요정의 쉼터 분점 맞아요? 요리가 영 시원찮은데?”

“벽화 있어서 들어왔는데. 가짜 아니에요?”

“흠. 이상한데.”

요리를 맛본 손님들이 불만을 토로하거나, 의심을 해도 그녀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벽화 못 보셨어요? 호준 님이 장사를 하라고 했으니, 벽화도 그리고 장사를 하죠. 저처럼 그냥 고용된 플레이어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냥 일개 직원일 뿐이에요.”

“흠….”

“그, 그런가요.”

모나가 자신이 약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에게 되레 화를 냈다.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그녀는 오히려 화를 내면, 사람들이 믿고는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모나는 은근슬쩍 음식 재료가 본점하고는 다르다면서 재료 탓을 했다.

은근슬쩍 호준에게로 화살을 돌린 것이다.

“본점에서만 좋은 재료로 파는구만. 방송으로 좀 유명해졌다고 배부른 모양이네. 이런 걸 300골드나 받고 팔고 말야.”

“그러게. 괜히 왔어.”

“저기 저 집도 분점이라는데 다 이 모양인가?”

“대체 그 사람은 음식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모나의 의도대로, 비난의 화살은 호준에게로 향했다.

그러면 씩 웃고는 그저 음식점을 운영하면 된다.

참 쉽지 않은가.

모나는 앞치마를 올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씩 웃었다.

딸랑―

“여기 자리 있나요?”

“네네! 자리 많습니다!”

새로운 호구, 아니 고객을 맞이하는 모나의 얼굴은 활짝 핀 꽃과 같았다.

모나의 자본주의 미소를 알아차리지 못한 손님은 안내된 자리에 앉았다.

“여기가 그 요정의 쉼터 분점 맞죠?”

“네. 맞고 말고요. 호준 님이 주시는 재료로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럼 괜찮겠네. 다들 앉자고.”

“스테이크랑 치킨 좀 넉넉히 주세요. 기본 맛으로 2마리씩이요!”

“네네! 갑니다~”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줄줄 들어왔다.

모나는 칸막이로 가려진 주방 안에 들어가 싼값으로 사둔 치킨을 꺼냈다.

6등급 치킨은, 자태부터가 호준이 팔던 것과는 달랐지만.

그런 것쯤이야 모나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선불로 돈 받아 챙기면 그만이고.

‘환불은 안 된다고 못 박을 거니까.’

대충 그릇에 요리를 세팅해놓고서 모나는 손님들에게 걸어갔다.

“손님. 금액은 선불로 지급하셔야…. 응?”

앞치마에 물기 묻은 손을 벅벅 닦으며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손님들은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있지 않았다.

“뭐지? 저기 왜 저렇게 사람이 많아?”

“무슨 일 났나 봐!”

“계속 모여드는데?”

손님들은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바깥을 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모나는 갸웃하며 창문가로 향했고,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저건…?”

왼쪽 가슴에 금빛 브로치를 건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채로 걷고.

그 뒤를 따라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10여 명 정도 뒤따랐다.

브로치를 한 자, 마을 관리자. 촌장.

모나는 눈치 빠르게 상대를 파악했다.

‘벌써 움직인단 말야?’

보통 가게 철거는 관리자에 따라 다르지만, 일주일 정도까지 질질 끄는 게 일상적이었다.

관리자가 부지런할수록 철거기간이 줄어들곤 하는데.

‘가게를 지은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움직여?’

당황한 모나는 노인이 요정의 쉼터 2호점, 진짜 가게 앞에 서자 입술을 짓씹었다.

모나의 가게는 2호점 바로 앞이기에 촌장과 그 앞에 몰려든 사람들이 잘 보였다.

촌장이 브로치를 떼어내 입가에 갖다 대자, 낮은 목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퍼졌다.

“요나스 마을을 찾아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본 마을의 촌장으로서, 오늘은 본 마을의 위상을 드높인 공으로 요정의 쉼터 2호점에 간판을 전달하겠습니다. 참고로 호준 님의 2호점은 이 가게가 유일함을 알려드립니다. 건축허가를 받지 않은 가게는 호준 님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모든 분들이 보기 쉽게 이 간판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럼 저 가게 말고 나머지는 다 짜가야?”

“그런가 보네. 요즘 짝퉁 가게들이 판을 친다더니. 여기도 그런 모양이야.”

“어쩐지.”

“마을 전체를 개발한 게 아니었군.”

촌장의 발언으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낚으려고 가게 밖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음식점 사장들 몇몇은, 꼬랑지를 말고 가게로 들어가버렸다.

촌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요정의 쉼터는 저희 마을 부흥에 큰 기여를 하여, 많은 주민들이 간판 수여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바. 이 간판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간판을 공개하겠습니다!”

촌장이 손을 휘휘 젓자 스미스와 로브를 쓴 남자가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서 꺼낸 간판은 길이가 쭉 늘어나, 번들번들한 황금빛 간판이 되었다.

“100퍼센트 순금으로 만든 간판입니다. 여기 찍힌 직인으로 요나스 마을의 상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순금으로 만든 간판 오른편에는 촌장의 직인이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그 누구도 따라 그릴 수 없는, 공식 직인.

직인이 찍힌 간판을 보자 사람들은 안심하듯 가게 앞으로 모여들었다.

“저게 진짜네.”

“괜히 딴 데 갈 뻔했잖아.”

모나는 간판이 설치되는 과정을 보며, 입술을 짓이겼다.

그런 모나에게 손님들은 비난의 말을 내뱉으며 가게를 박차고 나갔다.

“이봐요. 사기 치지 마쇼.”

“진짜. 사람이 곱게 살아야지 말야. 왜 그렇게 못났어? 어?”

“멀쩡하게 생겨서는 말야. 인과응보라고 남한테 못된 짓 하면, 다 돌려받어!”

간판이 하필이면 왜 오늘.

공식 직인이 찍힌 간판은, 따라 할 수도, 그릴 수조차 없었다.

간판이 있고 없고로 가짜와 진짜가 판가름 나는 상황.

더 이상 요정의 쉼터 이름에 얹혀서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젠장할.”

사납게 구겨진 얼굴을 한 모나는 입술을 짓이기며 욕지거리를 날렸다.

그러나 청천벽력같은 소식은 더 들려왔다.

“불법건축물 철거는 오늘 내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촌장의 말은 곧, 다 부숴버리겠다는 소리였다.

지금 당장.

“젠장. 무슨 촌장이 저렇게 나대! 아아―!”

모나는 홧김에 문을 세게 걷어찼다가 발가락이 문간에 집히는 바람에 데굴데굴 굴렀다.

초라한 얼굴을 한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드는데.

“저기 오시는군요! 역시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는 법입니다. 허허허!”

커다란 그림자가 생겨나더니 하늘에서 누군가 내려왔다.

배가 볼록한 초록색 용,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동물들.

호준과 그의 식구들이었다.

“호준 님! 마음고생 많으셨죠?”

“이제 저 간판만 있으면 진짜가 누군지 알게 될 겁니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호준에게 달려갔다.

호준을 알아본 손님들도 그 뒤를 따르기는 매한가지였다.

호준을 구심점으로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고.

“가만 안 둬.”

홀로 바닥에 주저앉아 사납게 호준을 노려보는 모나에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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