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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139화 (139/200)

139. 카피캣

현대사회, 굶주림과는 거리가 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호준은, 굶주림에 익숙하지 않았다.

학교 다니면서 굶주리는 친구를 본 기억도 없고.

그는 오히려 굷주림보다는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스스로 굶주림을 택한 친구들을 더 많이 봤다.

단기간에 살을 아주 많이 빼면, 뉴스가 되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시대.

그런 시대에 살아왔기에 호준은 말라깽이 카심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못 먹었는지, 녀석은 피골이 상접하다시피 했다.

‘불쌍하네.’

연민이 절로 드는 외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볼이 홀쭉한 카심을 본 순간,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카심은 살아 움직이는 장작개비 같았으니까.

공격성도 없어 보였다.

찹찹찹―

“으으음― 과즙이 톡 터지니까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카심은 어깨를 부르르 떨며 감탄을 쏟아냈다.

녀석이 얼마나 과일을 맛있어하는지는 몸짓과 표정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먹어라.”

“넵 찹찹찹―”

호준은 앙상한 카심의 팔목, 그리고 눈물 젖은 눈망울을 슬쩍 보고 모른 체하며 드래곤 푸르트의 껍질을 깠다.

호준이 먹기 좋게 잘 잘린 드래곤 푸르트 한 접시를 내밀자, 카심은 감사하다고 크게 외치고는 새 접시와 빈 접시를 바꾸었다.

그렇게 카심이 과일이란 과일은 다 먹고 배가 올챙이배처럼 볼록해지자, 식사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너 혼자 이곳을 관리했다는 거로군.”

“네. 맞습니다! 이 카심이 정원을 관리한 지 벌써 713년이 넘었지요!”

“덩치에 비해 꽤 오래 살았구나!”

“헷… 제가 조금 오래 살기는 했지요 흠흠!”

“훗, 그래.”

무릎까지도 안 오는 녀석이 오래 살았다고 말하니 조금 웃겼지만, 호준은 피식 웃고 말았다.

호준은 카심과의 대화로 비밀의 정원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이 관리자로 일하고.’

비밀의 정원 관리자 카심의 정성스러운 돌봄 덕분에 성스러운 씨앗의 나무에서 씨앗이 나오고.

카심은 그 씨앗을 심어 이렇게 거대한 숲을 이루었단다.

긴 시간을 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700년 넘는 시간이라.

참으로 아득한 시간이었다.

“700년 넘게 혼자였다면 많이 심심했겠는데.”

“뭐, 그래도 살만합니다. 나무를 가꾸는 재미도 있고 이미 정이 들었거든요. 굶주리는 것만 빼면 괜찮습니다!”

카심은 씩씩하게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며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홀로 수백 년간 살아왔다고 했다.

보통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배를 탕탕 두드리며 환하게 웃는 카심을 보니 보통 성격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긍정적인 기운이 흘러넘쳐 호준에게도 전해졌다.

“씨앗의 나무라고 했나. 그 나무는 어디에 있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카심은 부른 배를 움켜쥐고는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다.

녀석의 뒤를 따라 10분쯤 갔을까.

작은 언덕이 나타났다.

“참 아름다운 나무죠.”

“볼 만하네.”

초록색 언덕 위, 새하얀 나무가 햇빛을 받아 신비로운 기운을 풍겼다.

나무의 풍채 또한 훌륭했는데 수직으로 뻗은 높이만 수십m는 되어 보였다.

위로 갈수록 넓적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졌다.

나뭇가지에는 작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유독 한 열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열매는 사람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큼지막했다.

그런데 카심은 덩치도 작은데 어떻게 저 열매를 딴 거지?

호준이 그에 대해 묻자, 카심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대답을 하는 순간에도 카심은 언덕을 차근차근 오르고 있었다.

“직접 보시면 아실 겁니다.”

자신만만한 카심의 얼굴 그 뒤편으로 꼬리가 살랑살랑거렸다.

호준은 묵묵히 카심의 뒤를 따라, 씨앗의 나무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카심은 매끈한 나무기둥을 손으로 한번 쓱 훑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다녀왔어! 몽아!”

무우웅―

씨앗의 나무가 마치 화답하듯 가지를 부르르르 떤다.

호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말 하는 나무라.

아니 정확히는 말이 통하는 나무라고 해야 하나.

나무는 카심의 말에만 신경쓰는지 호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몽아. 열매 하나만!”

무웅―

카심이 부탁하자 나무는 얌전히 가지 하나를 내렸다.

가지에는 아까 보았던 커다란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똑―

나뭇가지가 열매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가까이서 본 열매는 아래에서 올려다본 크기보다 훨씬 컸다.

아래에서 볼 때는 성인 한 명이 들어가도 될 것 같았는데 세 명도 들어갈 법한 사이즈였다.

열매 앞에 선 카심은 난쟁이 같아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카심은 열매 이곳저곳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열매에 귀를 갖다 댔다.

통통―

카심이 열매를 두드릴 때마다 공명음이 울려퍼졌다.

저 안에 가득 든 씨앗은 무지개색을 띤다고 카심이 말했다.

그렇다면 씨앗 등급이 특급 이상일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찾았다!”

카심은 환하게 미소지으며 발견한 지점을 손톱으로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그 큰 열매가 말도 안 되게도, 반으로 쪼개졌다.

쩌걱― 쩌거거걱―

반 토막으로 쩍 갈라진 열매 속을 내려다보며 호준은 미소를 지었다.

“흐음!”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열매 안에 가지런히 박혀 있는 씨앗 10개.

그 위로 뜨는 메시지가 참으로 반가웠다.

【특5급 커피콩 씨앗】

무려 특5급이란다.

경매장에서 구하기도 힘든 특급 씨앗이, 무려 10개씩이나 들어 있었다.

호준이 만족하는 얼굴이 되자, 카심도 내심 만족한 얼굴로 씨앗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는 커피콩 씨앗이네요! 오늘 과일을 주신 보답으로 씨앗을 드리고 싶습니다.”

“잘 쓰도록 하지.”

호준은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진한 커피 한잔 먹고 싶은 마음이 뭉글뭉글 올라온다.

호준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카심이 건네는 씨앗을 주머니에 잘 챙겼다.

【특5급 커피콩 씨앗 10개를 얻었습니다!】

【커피콩으로 커피를 제조할 수 있습니다!】

“고맙다. 카심.”

“헤헷. 저야말로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카심의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꼬리만 보면 그 감정을 알 수 있는 녀석인지라 호준은 소리 없이 미소지었다.

호준은 손을 거두면서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나뭇가지 곳곳에 매달린 열매들이 많았다.

크기는 작지만 언젠가는 커질 열매들.

“저 씨앗들도 곧 열매를 맺을 겁니다. 갑자기 확 자라나는 게 이 열매들의 특징이거든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미래의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난다니 참.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기분이 든다.

씨앗들을 얻을 방법이야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호준은 고개를 내리고 생글생글 웃는 카심을 향해, 마찬가지로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붙였다.

“카심. 앞으로 굶주릴 일이 없다면 어떨 것 같으냐.”

“그, 그럼…!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곳은 다 좋은데 굶주리는 시간이 너무 긴 게 유일한 단점이거든요.”

“그러면 말이지….”

호준은 두 손을 모은 카심의 어깨를 팔로 휘감고는 쓱 끌어당겼다.

그리고 속닥속닥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카심의 눈동자는 튀어나올 듯 커져 갔다.

“저, 정말입니까? 음식을 그렇게나 많이 주신다고요?”

“정말이지. 대신 씨앗이 맺히는 대로 가져다주기만 하면 된다. 네가 할 일은 그것뿐이지. 물론 어렵다면 거절해도 상관없다.”

호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카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뭉이랑 저랑은 친구거든요! 부탁하면 들어줄 겁니다. 그리고… 이 숲에서는 이상하게 씨앗들이 빨리 자라지 않거든요. 바깥에서 자라면 더 빨리 자란다고 하니 씨앗들한테도 좋을 것 같아요! 씨앗은 모이는 대로 바로 준비해놓겠습니다!”

카심의 흔쾌한 대답에 호준은 그 머리를 쓱 쓰다듬어 주었다.

특급 씨앗의 안정적인 공급처가 생긴 순간이었다.

* * *

카심은 호준의 부탁에 따라, 앞으로 씨앗의 나무에서 열리는 씨앗은 모조리 다 모아두기로 했다.

호준은 그 대가로 카심에게 과일과 음식들을 주기적으로 건네주기로 하고.

오늘은 튀김, 팥빙수, 치킨, 스테이크 등을 건네주었다.

앞으로도 더 음식을 갖다줄 생각이었다.

“으음―! 너무 맛있어요!”

“세상에… 너무 행복합니다!”

“열매만 먹고 살다가 너무 호강한 것 같아요!”

수백 년간 열매만 먹던 카심에게 치킨과 팥빙수, 스테이크, 피자 등은 너무 충격적인 음식이었다.

카심은 호준이 내미는 음식을 조금씩 맛볼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이러다 너무 기뻐서 심장이 터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카심은 가슴을 움켜쥘 정도였다.

‘어디 아픈가.’

호준은 카심이 가슴을 움켜쥔 모습을 보고 심장병이 있는 것인가 싶어 물약도 하나 챙겨주었다.

“필요할 때 써.”

“앗… 가, 감사합니다!”

카심은 호준이 내미는 물약을 두 손으로 소중히 안았다.

호준은 그런 카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게로 돌아가면 문을 설치해 둘 거야. 문을 열면 가게로 놀러 올 수 있을 거다. 놀러 오고 싶을 때 와.”

“바로 가고 싶지만 제가 가면 씨앗의 나무가 서운해할지 몰라요. 나무에게 사정을 잘 말하고, 일을 마치고 그 뒤에 놀러 가겠습니다!”

“그래!”

“헤헷! 아쉽지만 다음에 뵙겠습니다!”

카심은 수줍게 호준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무릎에도 못 미치는 작은 몸인지라 그 모습이 조금 귀엽게 보였다.

호준은 카심의 복슬복슬한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정이 가는 녀석이다.

“나중에 놀러가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호준은 문을 빠져나갔다.

쿨쿨―

“끄응?”

잠결에 인기척을 느낀 다크니스가 눈을 깜박이며 깨어났고, 이무도 그 뒤를 이어 깨어났다.

호준은 이무의 등 위로 폴짝 올라타며 말했다.

“가자. 집으로!”

“냐아!”

―집 좋다 사악!

주머니를 가득 메운 커피 씨앗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그는 집으로 복귀했다.

요정의 쉼터 본점, 호숫가 바로 옆에 도착한 순간.

호준은 뜻밖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호준 님, 큰일났어요!”

별이가 볼에 바람을 넣으며 툴툴대며 말했다.

맨날 웃던 녀석이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게…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별이와 호준은 바람 마법을 이용해 바람처럼 이동했다.

마을에 도착한 호준은, 별이가 말한 문제 상황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허…?”

마을에는 요정의 쉼터를 따라 한 수많은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20개 이상의 음식점들.

마을 곳곳에 위치한 이 음식점들은 딱 봐도 요정의 쉼터 본점과 비슷한 겉모습을 지녔다.

간판은 요정의 쉼터(마을3호점), 요정의 쉼터(원조), 요정의 쉼터(신축), 요정의 쉼터보다 맛있는 음식점 등등 대놓고 노린 간판을 내걸었다.

한 지점은 미르와 다른 요정들의 그림을 건물 바깥에 그려놓기도 해서, 몇몇 사람들이 인증샷까지 찍고 있었다.

호준은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옆에서 별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저도 까미가 알려줘서 봤는데… 저 가게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자기들이 요정의 쉼터 요리도 한다고 호객행위를 한대요. 까미 말로는 손님이 조금 준 것 같다고도 하고….”

입을 볼록이는 별이가 고개를 들었을 때, 호준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별이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호준 님?”

호준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걱정할 것 없다. 진짜는 다르니까.”

호준은 따라쟁이 음식점을 내려다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겉모습을 따라 한다고 그 맛까지 따라 할 수 있을까.

글쎄다.

상황이 아주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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