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41화 (141/200)

141. 천국은 멀지 않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황금패에 대한 축하인사를 받으면서도, 호준은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예민한 청각이 불길한 음성을 전달해주었으니까.

“가만두지 않겠어. 기필코.”

이를 빠득빠득 갈며 내뱉는 독설이 그의 귀에 콕 박혔다.

물론 호준은 들은 티를 내지 않았다.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 좋을 것 하나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는 전혀 모른 척했다.

“감사합니다, 촌장님. 많은 분들이 와주셨네요.”

“허허. 마을의 기둥을 지키는 것도 내 일이지!”

호준은 촌장님과 스미스 외 마을 주민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잠시 시간이 났을 때, 어깨에 올라탄 별이에게 눈짓했다.

별이가 그의 귓가에 대고 그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누가 낸 소리인지 알아 오겠습니다!”

끄덕―

호준이 눈짓하자 별이는 날개를 펴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별이가 사람들 발목 근처를 날아다니며 정보를 구하러 갔고, 3분도 안 되어 돌아왔다.

별이의 보고에 따르면, 그 말을 내뱉은 사람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앞 가게 주인이고 이름은 모나라고 합니다. 이번에 장사를 못 하게 되어 앙심을 품은 모양이에요. 호준 님이 없는 틈을 타 농장에 열매를 훔칠 거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걸 들었습니다. 열매 서너 개만 갖다 팔아도 돈이 된다고 그러네요.’

별이가 가리킨 방향에는 험상궂은 얼굴로 짐을 챙기는 보라색 머리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힐긋힐긋 이쪽을 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홱 고개를 돌렸다.

흠.

호준은 무표정하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욕심이 많은 자.’

100을 얻으려면 100을 노력해야 하는데, 노력은 하지 않고 턱도 없이 많이 바라는 자.

남이 가진 것을 뺏음으로써 쉽게 욕망을 채우려는 부류.

그런 사람은 세상 어딜 가나 있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본다고 해서, 그런 사람을 마주하는 게 썩 기분 좋은 건 아니었다.

호준은 별이에게 손짓해 작게 몇 마디 속삭였다.

고개를 몇 번 끄덕인 별이는 곧,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별이가 날아가는 모습을 슬쩍 바라본 호준은 다시 고개를 돌려 간판을 한번,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한번 보았다.

사람들의 눈이 빛나는 이유는 말을 찬찬히 들으면 알 수 있었다.

“미르랑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저는 다크니스랑요!”

“송이랑 핑구, 까미랑도 찍고 싶어요!”

“미소는 없네요. 음. 그러면 저는 아무랑 인증샷 좀! 그리고 사인도 받으면 좋겠습니다!”

사진과 사인.

사람들의 요구는 다소 소박한 것들이었다.

슬쩍 요정들의 반응을 보니, 요정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기는커녕.

“끼루루~”

“아무~”

“냐아~”

【미르가 쏟아지는 시선에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고 있습니다】

【미르는 사람들의 관심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무가 뿌리를 베베 꼬며 부끄러움을 탑니다】

【아무가 허공에 대고 사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크니스가 오늘은 기분이 좋으므로 특별히 인간들에게 사인해 줄 의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다크니스의 꼬리가 흥분을 주체 못 하고 빠르게 흔들거립니다】

녀석들은 관심을 즐겼다.

사인 연습하는 아무를 따라, 다크니스와 송이, 메이가 미르의 등에 발가락과 발굽을 대고 슥슥 문질러댔다.

아주 잔망스럽기 그지없다.

미르는 등이 간지러운지 끼릉끼릉 울면서도 헤헤거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웃었다.

“호준 님! 잠시 동안이라도 사인회 해주시면 안 되나요?”

“이렇게 뵌 것도 인연인데, 사인 부탁합니다!”

사람들과 요정들의 시선이 호준에게 집중되었다.

사인한다고 위험하지는 않겠지.

호준은 살랑거리는 미르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분들이 원하시니.”

그가 좌중을 한번 쓱 둘러보자, 누군가 침을 꼴깍 삼켰다.

“해 봅시다. 사인회.”

호준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빠르게 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호점 가게 앞에 요정들이 하나하나 반듯이 일렬로 서고 그 앞에 사람들이 줄 서는 방식이었는데, 줄 길이가 끝도 없이 늘어났다.

요정별로 비슷비슷하게 줄이 늘어섰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줄은 호준의 줄이었다.

진작에 줄이 사라진 호준은 심심한 표정으로 요정들을 슬쩍 보았다.

“미, 미르야. 볼 만져봐도 될까?”

“끼르!”

“오오 부드러워! 말랑말랑한 게 젤리 같네!”

“끼르르~”

“아유 귀여워라! 쪽!”

미르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가 많았다.

큼지막한 날개를 쓰다듬으며 감탄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송이와 토순이, 메이, 핑구는 사람들이 건네준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을 품에 안고 헤헤 웃었다.

아무가 사인이 담긴 종이를 흐뭇하게 내려보고, 상대에게 건네주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저마다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농장으로 간 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스윽―

호준은 조용히 사인회장을 빠져나와 건물과 건물 사이, 한적한 공간에 들어섰다.

메신저 구슬을 사용하자 별이의 생글거리는 얼굴이 화면으로 드러났다.

별이는 싱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보고했다.

“쥐를 잡았습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쥐처럼 농장을 좀먹으려던 자가 잡혔다는 보고였다.

조금 전 씩씩거리던 그 여자.

씩씩거리던 만큼 실력이 좋지는 못했던 모양이지.

호준은 생글거리는 별이에게 온화한 목소리로 답했다.

“날려버리는 것도 괜찮겠지. 어디로 날려버릴지는 네 마음대로 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쥐가 날아가는 곳이 절벽이 될지, 아니면 첩첩산중 산이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뭐. 별이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렇게 별이와 통신을 끝내고서 호준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부재를 알아차린 몇몇이 인사를 슬쩍 건네고 요정들 줄에 섰다.

호준도 마저 살짝 인사하고는 제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그의 앞에는 사인을 받겠다는 줄은 없었고, 그래서 마음 놓고 요정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한껏 들뜬 요정들을 보니, 잘 키운 자식을 보는 것처럼 흐뭇했다.

그리고 그에게도 수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별이가 플레이어 모나를 처치했습니다】

【플레이어 모나는 사망 페널티로 인해 3일 동안 접속 불가합니다】

【플레이어 모나로부터 24,233 골드를 얻었습니다!】

.

.

【플레이어 모나로부터 솜사탕 기계 1개를 얻었습니다!】

【플레이어 모나로부터 대형 오븐 1개를 얻었습니다】

알아서 돈과 아이템을 주는 사람도 있는데 뭐.

그렇게 황금패 기념 첫 사인회는 요정에게는 즐거운 추억을 남겨주고, 호준에게는 쏠쏠한 수입을 남겨주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 * *

쥐가 사라진 농장은 평화로웠다.

미르를 타고 농장으로 복귀한 호준은 동물들과 차례차례 인사하고,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레드 게이트 덕에 레벨업을 했다지만 그는 레벨업에만 목매고 싶지 않았다.

‘쉬면서 해야지.’

앞만 보고 달리는 말처럼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

그것을 그는 현실에서 많이 해봤다.

게임에서까지 굳이, 목숨 걸듯이 절박하게 피곤하게 사는 것보다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몸 편하고 마음 편한 게 제일이지.”

그렇게 태평한 마음과 몸으로 그는 촌장님에게 오는 연락도 받았다.

마을 주민이 전한 말에 의하면, 촌장님은 불법건축물 철거작업이 2시간 내로 마무리될 테니 걱정 말라 전했단다.

호준은 감사의 의미로 주민에게 김치전과 해물전을 듬뿍 안겨 보내주었다.

‘일 처리가 빠르네.’

그렇게 걱정거리 없이 느긋하게, 그는 커피콩 수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커피콩 수확을 하는 동안 요정들과 이무, 소, 돼지, 닭들은 다들 한 뭉텅이가 되어 잠에 빠져들었다.

새로 얻은 솜사탕 기계에서 솜사탕을 잔뜩 뽑아먹고 낮잠에 들은 것이다.

“군것질 많이 해도 되려나.”

호준은 잘 자는 녀석들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홀로 커피콩 작물 10개를 수확했다.

다른 작물을 놔두고 커피콩만을 수확한 이유는 커피콩으로 만들 요리를 해볼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그에게 알맞은 메시지가 떴다.

“흠.”

정말 오랜만에 보는 직업 퀘스트였다.

【직업 퀘스트】 신메뉴 만들기!

【퀘스트 목표】: 커피콩을 이용하여 새로운 요리를 만듭시다!

커피콩이 들어간 요리 1,000개 만들기 (0/1,000)

【퀘스트 설명】

*커피콩은 여러 요리의 재료로도 쓰이지만, 음료로도 각광받는 열매입니다. 커피콩을 이용한 요리에 도전해 보면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실 듯!

*커피콩을 그대로 첨가하든, 갈아서 쓰든, 원액을 이용하든 간에 세 경우 모두 동일하게 커피콩을 사용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요리 1,000개라. 지금까지 중에 스케일이 제일 크네.”

퀘스트 스케일이 조금 커졌다.

호준은 눈을 조금 크게 뜬 채로 다음 내용도 마저 읽었다.

“흐음! 괜찮은데?”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자리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을 때 짓는 미소였다.

【퀘스트 보상】

*장인이 만든 커피머신 3개 증정!

― 장인이 만든 커피머신은 동시에 메뉴 3개를 만드는 특수기능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 장인이 만든 커피머신은 음료 172가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장인이 만든 커피머신으로 요리할 경우, 설정자의 요리 스킬과 요리 재료에 따라 결과물의 등급이 결정됩니다.

보상이 꽤 좋다.

장인이 만든 커피머신 3개.

그것도 각각의 머신이 172가지 메뉴를 만들 수 있다니, 참 간편하지 않은가.

현실에 이런 커피머신이 있었다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려고 줄을 섰으리라.

“저거 갖다 놓고 카페를 하나 차릴까?”

내뱉고 나니 꽤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요정의 쉼터에서 본 식사를 마치고.

그 옆 카페에서 입가심할 수 있는 디저트와 빵, 음료를 먹는 것이다.

잘 어울릴 것도 같고.

“괜찮네.”

호준은 흐뭇한 얼굴로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칭찬하며, 퀘스트 보상을 한 번 더 훑었다.

고소한 커피 향이 풍기는 카페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재빨리 가게로 향했다.

일단은 요리 1,000개를 만드는 것이 먼저였다.

【퀘스트 목표】

커피콩이 들어간 요리 1,000개 만들기 (0 /1,000)

커피콩이 들어간 요리라는 말을 들은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 스쳐 가는 요리가 하나 있었다.

“모카번.”

커피번이라고도 불리는 모카번.

빵의 겉면에 커피 맛이 나는 쿠키가 바삭하게 굳어있어 과자 같은 식감이 났다.

그러나 겉면과 달리 속은 촉촉한 버터가 차 있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겉바속촉.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의 취향에 부합하는 빵이었다.

이전에 아침 대신 먹으려고 7시에 빵집을 갔다가 먹은 적이 있었다.

갓 구운 모카번을.

“꽤 맛있었지.”

고소한 버터와 달달한 커피 맛이 잘 어우러졌다.

호준은 레시피북을 펼쳐 모카번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모카번 레시피가 존재했다.

【모카번】

【조리 가능!】

【현재 호준님은 본 레시피의 재료를 대부분 갖추고 있습니다】

【없는 재료】: 커피콩 건조 가루

자동믹서기의 건조기능을 이용하면 커피콩 건조 가루쯤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호준은 모카번 재료를 구하러 가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찹찹찹찹―

츄르르르릅―

탁탁―

체로 잘 쳐낸 보드라운 밀가루. 노른자까지 신선한 계란.

이스트 가루를 넣고 빵 반죽을 만들고.

동글동글하게 모양을 잡아 반죽 속에 신선한 버터를 듬뿍 넣고.

달각―

한번 굽는다.

1차로 구운 빵 위에 커피콩 가루를 첨가한 반죽을 올리고

달각―

한 번 더 구우면 완성!

【특5급 모카번 완성!】

【요리 스킬 레벨업!】

【요정왕 직업 효과로 요리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퀘스트 진행 정도】

【커피콩으로 요리 만들기 (1 / 1,000)】

고소한 모카번 냄새가 가게를 가득 메웠다.

냄새 죽이네.

호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오븐에서 꺼낸 모카번을 접시에 올려놓았다.

그는 침을 꼴깍 삼키며 양손에 집게를 들고 접시로 다가갔다.

집게로 모카번 양쪽을 딱 잡고, 반으로 갈랐다.

보스락―

모카번의 겉면에 금이 가면서, 반으로 갈라지고 노오란 버터가 듬뿍 흘러내렸다.

버터를 어찌나 많이 넣었는지, 버터가 접시에 고일 정도로 많이 흘러내렸다.

호준은 모카번 조각을 하나 집고는, 뜨끈뜨끈한 버터를 듬뿍 찍어서 입에 넣었다.

이쯤 되면 모카번인지 버터번인지 모르겠지 싶다.

“……!”

커피 향을 버무린 고소한 버터 맛이 뇌를 자극했다.

입 안에서 천국이 펼쳐졌다.

아, 진짜. 끝내주네.

모카번에 감동한 그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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