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처음의 밤
몇 년 만에 귀향하는 제국군에게 부어진 환호는 엄청난 것이었다.
제국에는 적의 신발 한 짝 넣지 않은 채 다른 나라를 손에 넣고 돌아오는 황제와 그 병사들에게 모두가 열광했다.
제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물론 백성의 환호는 열렬했지만 황도는 그 열기 자체가 다르다. 신이 지상에 내려왔다고 해도 이 정도로 열렬한 환영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제국군이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켜켜이 묻은 옷 위로 꽃잎이 뿌려졌다. 황도 전체가 꽃잎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정규병, 노예병 할 것 없이 모두 환영받았다.
루디는 말을 타고 나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사람들이 폐하라고 소리치며 양 팔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나온 아이들도 많다. 꼬마들의 작은 손이 허공에서 파닥파닥 바쁘게 움직였다.
그 아이들을 보자 리리샤가 어릴 때 일이 생각났다. 그 어리던 아기가 이제 성인이라니, 세월이 정말 빠르다.
황궁에 도착한 루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시가 난리 법석인 것 이상으로 황궁도 난리였다. 황궁 전체가 꽃으로 바뀐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오늘을 위해 다른 곳에서 옮겨 심은 것인지, 도시 몇 개 크기의 거대한 황궁은 루디가 말을 몰아가는 길마다 꽃이 만발했다.
"우와, 시종들의 기합이 엄청나군요."
레빈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자신도 시종이면서 그 사실은 잊어버리고 있는 걸까.
본궁에 도착했을 때, 건물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루디가 도착하자 모두 몸을 숙여 절을 했다.
제일 앞에는 리리샤가 있었다. 아마 그럴 거다. 황제를 맞이하는 무리에서 유일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루디는 말에서 내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천천히 몸을 낮추면서 그녀가 정중하게 말했다.
"오랜 시간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심을 축하드립니다."
뭔가 공식적인 인사를 더 말하고 있었지만 루디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이게 리리샤인가? 왠지 이상하다.
"폐하."
레빈이 어느새 바닥에 내려 말고삐를 쥐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듯이 루디를 올려다본다. 왜 말에서 내리지 않으시나요, 라고 레빈이 눈으로 물었다.
루디는 여성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레빈에게 말했다.
"이봐, 레빈. 처음 보는 여자가 있다."
"네?"
레빈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성, 아마도 리리샤의 어깨가 움찔 흔들렸다.
놀란 듯 당황한 듯, 리리샤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떨군다.
루디는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자는 몇 년 안 보았다고 이렇게까지 바뀌는가. 맙소사, 정말 아름다워졌구나."
그 말에 리리샤가 파뜩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얼굴 전체가 환하게 빛난다. 굉장히 기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처럼 달려오지 않는다. 어린 강아지처럼 자신을 졸졸 쫓아다니던 리리샤는 이제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누구나 변한다. 하지만 그녀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열 살이 되어도 스무 살이 되어도 여전히 어린 리리샤 그대로일 거라고.
갑자기 꽃이 된 듯 아름다워진 리리샤를 앞에 두고, 심장이 약간 두근거렸다.
***
사람들이 모두 늘어서 고개를 숙인 가운데, 루디가 말에서 내리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리리샤를 보았다. 굉장히 드문 일이지만, 정말로 놀란 것 같다.
처음에는 당황한 것 같던 귀족들도 루디의 말에 조금씩 웃음소리를 흘렸다.
리리샤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되었다. 얼굴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고개를 올려도 좋다는 루디의 허락이 뒤늦게 떨어지고, 귀족들이 시선을 들었다.
몇몇 귀족 아가씨가 그 사이 남자다워진 루디의 모습을 보고 약한 비명소리를 내며 기절했다. 툭,툭, 바닥에 드레스 쓰러지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그 기분 안다. 리리샤도 기절할 수만 있다면 쓰러지고 싶다. 하지만 튼튼한 몸과 강인한 정신이 그걸 용납해 주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루디는 키가 더 커진 것 같다. 예전에도 많이 올려다보아야 했는데 지금은 고개가 꺾일 것 같다.
어깨도 넓어졌다. 목소리는 더욱 낮아지고 눈동자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처럼 깊다.
루디가 자신을 낯선 여자라고 말한 것처럼, 그 역시 리리샤에게는 조금 낯설어 보였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대했는지,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더욱 난처한 일이 있는데, 성교육 그림의 남자 얼굴이 어느새 루디가 되었다.
'맙소사.'
저 얼굴이 옷을 벗고 이런 일 저런 일을...저 얼굴로, 저 손으로 이런 일 저런 일이....
루디가 가까이 다가오는데 리리샤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리리샤는 멍하니 루디의 입술을 보았다. 윤기나는 입술이 움직이면서 그 안에 있는 혀가 살짝 보였다. 붉다. 물기 있는, 부드러운 혓바닥이 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꿀꺽, 침이 넘어갔다.
성교육 선생님이 설명해 주었던 [초보자도 능숙하게 따라 할 수 있는 키스의 비법]이 떠올랐다.
남자의 혀와 여자의 혀가 만나는 것이 키스입니다.
첫 번째 단계, 거절하지 않는다.
두 번째 단계, 혀를 내미는 거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초대입니다.
세 번째 단계, 주어지는 대로, 되어가는 대로 따릅니다.
중요한 것은 거절하지 않고, 혀를 내미는 겁니다. 모든 것은 거기에서 시작되는 거죠.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해서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다. 그게 왜 밤의 작법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째서 밥 먹는 입으로 그런 걸 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열심히 외웠다. 모두가 좋아한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었지만 이해는 가지 않았다. 전혀 좋아질 것 같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맹렬하게 알 것 같다. 키스, 하고 싶어요. 루와 입 맞추고 싶다.
'초,초,초,초,초대, 초대하자.'
자기도 모르게 혀를 뾰족 내밀었다. 루디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라, 뭔가, 아, 지금은 낮이다. 심지어 밖이었다.
입을 벌리면 이상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아니, 그 전에 울 것 같다. 기절하고 싶어졌다. 이 부끄러움을 누군가가 훔쳐가 줬으면.
게다가 리리샤의 머릿속은 현재 난리다. 그림 속의 남자가 루디가 되어 여자 몸에 올라가 있었다.
지워, 지워, 지워, 지워. 당장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해.
하지만 다음 순간, 남자 밑에 있는 여자의 얼굴이 리리샤가 되었다.
도저히 머릿속 상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얼굴이 너무 달아올라 모닥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기분이 되었다.
리리샤가 혀를 내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타이라가 뒤에서 쿡쿡 허리를 찔렀다.
"마마, 폐하가 말씀하시잖아요. 대답하세요.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물으세요. 마마, 마마?"
"...."
타이라의 목소리는 들린다. 하지만 가까이 와 있는 루디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녀의 목소리는 한쪽 귀로 들어가 다른 쪽으로 술술 빠져버렸다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남자와 나는 오늘 밤 그런 걸 하는 거야. 그림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에 황소가 들어가 날뛰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졌다. 큰일 났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아, 근데 혀가 아직도 밖에 있네. 어떻게 하면 혀가 들어가는지, 혀 움직이는 방법도 잊어버린 것 같다.
루디의 표정이 점점 변했다. 처음에는 놀란 것 같았는데 점점 눈이 반달이 되면서 마침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를 번쩍 안았다. 흔히 말하는 공주님 안기다. 어릴 때 루디가 곧잘 해주었던 거.
"리리샤, 얼굴을 내 어깨에 묻어. 지금 코피가 나고 있다."
"...."
죽자. 지금 당장 죽어버리자.
리리샤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루디의 옷에 피가 묻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짝 얼굴을 어깨에 댄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이미 눈치챈 자들이 있는 것 같았다. 어디에선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진짜로 죽어야겠다. 살 수가 없다.
리리샤는 얼굴을 가리지 않은 손으로 루디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게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루디에게 닿는 거야. 조금 있으면 그녀는 수치로 죽어버릴 테니. 마지막 정도는 조금 욕심을 내도 되겠지.
'미안, 루. 정말 좋아했어. 하지만 이제 끝이야. 영원히 안녕.'
문득 자신이 죽고 난 뒤 루디는 누군가와 다시 혼인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겠지. 루디는 황제다. 황후가 없으면 안 된다. 분명히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될 거다.
'하지만 루가 다른 여자랑 그런 거 하는 건 싫은데.'
왈칵 눈물이 나왔다.
아, 그리고 키스는 하고 죽었으면 좋겠다.
***
그러면 그렇지. 리리샤는 역시 리리샤다.
갑자기 혀를 내밀고 코피를 흘리더니, 그 뒤에는 혼자서 중얼중얼, 영원히 안녕이라든가, 정말 좋아했다든가, 그런 거 다른 여자랑 하지 말라든가, 등등을 말하며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왜 코피 흘린 게 죽음이랑 연결되는 거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리리샤는 자신이 소리 내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타이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한데 그런 거는 또 뭐야.'
설마 그런 거가 바로 그건가. 루디는 고개를 약간 옆으로 비틀었다. 리리샤를 남작 부인에게 맡긴 게 실수는 아니었을 텐데, 어째 이상한 걸 가르쳐놓은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리리샤를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자. 황후가 코피 흘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의 축승회는 이틀 뒤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때까지 외국 사절과 축하를 위해 황도로 올라온 귀족들은 황궁에 있는 건물 한곳에서 머물게 된다.
지금 방으로 돌아가 리리샤를 쉬게 해도 문제없을 것이다. 시선으로 시종장에게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루디는 웃으면서 귀족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환영해 주어 고맙다고 치하한 뒤 황후의 몸이 안 좋은 것 같아 가봐야겠다고 말하자, 귀족들이 공손히 절을 하며 몸을 숙였다.
그중 한 명이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폐하의 전승을 축하드리며, 황자님이 두 분께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건강한 황태자를 바라는 말이 들려왔다.
'압박감이 장난 아니구나.'
리리샤가 이런 식으로 모두에게 등을 떠밀려 왔다고 생각하면 측은해졌다.
그나저나 모두 오늘이 첫날밤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흠.
황제와 황후라는 위치가 그런 거긴 하지만, 함께 밤을 지내고 안 지내고의 여부가 모두에게 드러난다고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워졌다.
시종들이 루디 양쪽으로 빽빽하게 둘러서서 리리샤의 모습을 숨겼다.
"괜찮아, 리리샤. 아무도 보지 못했어. 눈치를 챘을지는 몰라도 확실하게 본 사람은 없다."
"...."
리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보인 얼굴이 처참하다. 모처럼 예쁘게 치장한 리리샤의 얼굴은 눈물과 코피로 엉망이었다.
딸꾹 딸꾹 딸꾹.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안심했는지, 루디가 안고 황궁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리리샤의 몸이 딸꾹질로 톡톡 튀었다.
"풋!"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리리샤가 슬그머니 목에 둘렀던 손을 내리고, 딸꾹, 두 손으로 얼굴을, 딸꾹, 가리고 훌쩍 훌쩍, 딸꾹, 운다. 그리고 딸꾹 딸꾹.
침울해진 리리샤의 귓가에 루디가 작게 속삭였다.
"나의 황후는 딸꾹질도 귀엽게 하는군."
"딸꾹."
이제야 집에 온 실감이 났다.
***
굴을 팔 수 있다면 제발 땅속으로 파고들어 영원히 나오지 않고 싶어요. 두더지가 되고 싶다.
리리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황후궁에 도착했다.
다행히 방은 어두웠다.
방의 창문마다 햇빛을 차단하도록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언제 방으로 들어와도 두 사람이 침소에 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낮에도 밤에도 아침에도, 깊은 밤과 다름없이 잠들 수 있도록.
리리샤는 안도의 숨을 쉬고 얼굴에서 손을 뗐다.
코피는 어느 틈엔지 멈춰 있었다.
덩달아 죽자는 마음도 없어졌다. 그것은 잠깐 동안 너무 당황해서 생긴 충동이었던 모양이다.
침실에는 피부에 닿는 듯 안 닿는 듯 부드러운 감촉의 이불이 깔렸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향이 은은하게 피워져 있었다.
방 안의 장식도 오늘을 위해 대부분 바꾸었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방해할 만한 것들은 모두 치웠다. 당분간은 이런 기조로 방을 치장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침실 한편에는 욕조가 두 개 놓였다. 욕조 주위에는 하얀 천과 높은 파티션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었다. 천정에서 늘어진 천이 바닥까지 길게 닿아 안쪽은 희미한 그림자로만 보였다.
따뜻한 물이 채워진 욕조 안에는 특별히 향이 좋은 장미 꽃잎이 띄워져 있었다. 아마 루디와 리리샤가 이곳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급히 띄워놓았을 것이다.
벽을 따라 밝혀진 촛불 아래, 은은한 그림자가 춤을 추듯 방 안에서 움직였다.
시종과 시녀가 각자 칸막이 안으로 루디와 리리샤를 데리고 들어갔다. 옷이 사락사락 벗겨지는 소리가 들리고 건너편 욕조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같은 방, 흰 천 너머에서 루디가 목욕을 하고 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자신의 욕조에서도 물소리가 똑같이 일어나 저쪽에 들릴 거라고 생각하면 순식간에 부끄러워졌다.
코피 때문에 긴 목욕은 할 수 없다.
리리샤는 따뜻한 물로 머리를 헹구고 온몸을 두루두루 씻은 뒤에는 바다 건너의 먼 나라에서 생산되었다는 실크로 만든 옷을 입었다.
같은 재질로 된 부드러운 가운을 입고 머리는 한쪽으로 내려서 느슨하게 땋는다.
긴장 때문에 가슴이 터질 듯하다. 심장이 피부를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아니면 입으로 튀어나오든가.
리리샤가 먼저 침대에 다소곳이 걸터 앉았다.
조금 뒤에 루디도 욕조가 있는 칸막이 뒤에서 나왔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만큼 긴장했다. 나무인형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들자, 루디가 가만히 그녀를 보았다.
하인이 욕조와 사용한 물건들을 치우고, 시종과 시녀도 고개를 숙여 절을 한 뒤 모두 물러갔다.
방에는 루디와 리리샤 둘만 남았다.
"리리샤."
루디가 가까이 와서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꿀꺽 침을 삼키자, 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렸다.
"괜찮아, 긴장하지 마. 그대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테니."
"...."
루디가 부드럽게 말하며 옆에 앉았다.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계속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머리를 만졌다.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몇 년 동안 낯설었던 루디의 모습이 한꺼번에 시간을 단축하며 가까워졌다.
"루, 보고 싶었어요."
"그래."
"나, 어른이 되었어."
"알고 있어, 리리샤."
"루, 나는 루의 마음에 흡족한가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물론이야. 너무 아름다워서 몰라볼 뻔했어.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지 뭐야. 정말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었어요."
루디의 목소리가 너무 다정하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 같았다. 조금 용기가 생겨서, 리리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 나 사랑해?"
"...."
루디의 손이 멈췄다.
약간 불안해졌다. 사랑은 하지 않는 건가? 루디한테는 여전히 빽빽 우는 아이에 불과한 걸까.
루디가 침대에서 내려 리리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약간 낮은 높이에서 그녀를 올려다본다. 벽에 붙은 촛불이 루디의 얼굴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리리샤, 내 귀여운 꼬마 아가씨."
루디가 웃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손등에, 그리고 손바닥에 입술을 댔다. 여전히 그녀의 눈을 바라본 상태였다.
조용한 가운데 다시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사랑해, 리리샤. 어릴 때부터 줄곧 좋아해왔지만 어느새 사랑이 되어버렸어."
루디가 몸을 약간 올려 리리샤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리리샤, 나와 결혼해 주세요."
"...이미 결혼했는데."
"상황이나 부모의 결정이 아닌, 그대의 의지로 내 부인이 되어 줘. 부탁, 리리샤."
"...."
말이 나오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루디가 부드럽게 웃으며 두 손으로 리리샤의 뺨을 감쌌다. 조용히 루디의 얼굴이 다가온다. 코가 스칠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에서 루디가 속삭였다.
"눈을 감아, 리리샤. 키스는 눈을 감고 하는 거야."
"...."
첫 키스는 달콤했습니다.
루디의 팔에 안겨 몸이 허공으로 떴다. 여전히 입술은 서로 맞닿아 있는 상태였다.
혀와 혀가 얽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온몸이 녹을 것 같은 게 바로 키스라는 거구나. 머릿속이 몽롱해졌다.
침대 위에 내려지자, 루디가 훌렁 옷을 벗었다. 어두운 촛불이 루디의 몸을 비춘다.
이것이 남자. 이것이 어른의 루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다시 키스가 이어졌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끊이지 않고 루디의 입술이 닿는다. 자신이 달콤한 과일이 된 느낌이었다.
루디는 설탕으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달콤했지만, 첫날밤은 생각과 달리 조금 아픈 것이었다. 아니, 실제로는 많이.
***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거야. 이렇게 아프다는 말은 듣지 못했어!'
분노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