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5. 1서클 마법사 정재호(3)
“…….”
세은은 오늘 출근 이후로 계속해서 부담스런 눈빛이 쏟아져 신경이 거슬렸다.
모른 척하고 무시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할 말 있으면 하시죠.”
세은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재호는 폭풍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세은 씨 각성자였어? 능력 중에 치유 능력도 있어? 그 정도 각성자인데 왜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해?”
“하아…….”
정신없이 쏟아지는 정재호의 질문에 한숨을 내쉰 세은이 적당히 질문에 대답했다.
“개인 사정입니다.”
“개인 사정?”
딸랑딸랑―
세은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정재호가 무엇을 더 물어보려고 할 때 카페의 문이 열리며 방울이 흔들렸다.
“어서 오세…….”
“오빠!”
세은이 고개를 돌려 미처 인사를 다 꺼내기도 전에 채연의 맑은 목소리가 영롱하게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채연의 뒤를 따라 이지호 실장이 카페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시죠?”
“아, 어제 명동 게이트에서 저희 요원을 살려주신 일에 대해 감사를 표하러 왔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별일 아니라니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엄청난 치유 능력이 있다고 왜 말씀 안 하셨습니까?”
“제가 말을 해야 하나요?”
“그, 그건 아니지만…….”
무심해도 너무 무심한 세은의 대답에 이지호가 순간 움찔거렸다.
아무래도 세은이 조금이라도 정색하는 모습이 보이면, 그의 엄청난 무력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움찔댔다.
“하여튼, 어제 일에 대해 감사를 표하러 왔습니다. 정말…… 세은 씨의 능력은 알면 알수록 놀랍습니다. 왜 그런 능력을 두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틀 하시는지…….”
“지겨워서요.”
“예?”
세은이 이계에서 수없이 몬스터를 상대한 사실을 모르는 이지호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귀찮기도 하고…….”
“오빠! 귀찮다고 하면 안 되죠! 사람들 목숨이 걸린 일인데요!”
세은의 마지막 말에 채연이 끼어들어서 버럭 세은에게 호통을 쳤다.
하긴, 어제도 고작 놀에 각성자들이 죽었으니까.
채연의 호통에 얼마 전 미로형 게이트에서 생각했던 일을 실행해 볼까 마음먹었다.
마침, 옆에는 안보원 소속의 신입 마법사가 한 명 있으니까.
슬쩍 시선을 돌려 정재호를 바라본 세은은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오빠! 길드장님이 명동에 게이트 생겼다고 가까이 있으면 지원 나가달라는데요?”
“명동이면 여긴데?”
어쩐지 정재호가 갑자기 급한 일이 있다고 나가더라니.
안보원에 합격해서 발령 대기 중이라 하더니 급하게 소집된 것처럼 보였다.
“일단 우리도 도우러 가야죠.“
“하아…….”
다행히 사장님은 항상 직원들에게 카페를 맡겨서 잠깐 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세은은 귀찮은 티를 팍팍 흘리며 채연을 따라 카페를 나섰다.
아마 여기가 명동이 아니었다면 안보원 요원들에게 맡기려 했을 터였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기에는 사람의 목숨값이 세은에게 무겁게 다가왔다.
“헐! 오빠 밀리고 있어요!”
다행히 사람들이 도망치던 방향의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금방 놀과 대치하고 있던 각성자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음?”
세은의 눈에 빠르게 난사되던 매직 미사일이 들어왔다.
매직 미사일이 1서클 마법이기는 했지만, 저렇게 빨리 난사하려면 마법의 영창이 매우 정확하고 빨라야 했다.
‘저 정도 실력인데 왜 매직 미사일만 쏘는 거지?’
그런 의문에 매직 미사일을 쏘는 사람을 찾아서 보니 방금 전에 카페에서 뛰쳐나간 정재호였다.
‘마나량 때문에 매직 미사일밖에 못 쏘는 건가.’
엄청난 연사 속도에 설마 했지만, 정재호의 얼굴은 이미 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건 마나 고갈의 대표적인 징후였다.
‘하긴, 1클래스 러너였지.’
“크헉!”
그때 각성자들 사이에서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그 비명에 채연이 재빠르게 휴대용으로 가볍게 만들어진 활을 꺼내 빠르게 화살을 내쏘았다.
“하압!”
파아앙―
순식간에 날아간 화살에 놀들의 움직임이 주춤했다.
그 틈을 타서 각성자들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는 게 보였다.
거기에 서채연의 실력도 일취월장하여 굳이 세은이 나서지 않아도 더 이상의 피해자 없이 정리될 것으로 보였다.
“매직 미사일.”
“예?”
갑작스런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되물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이지호를 무시한 채 정재호에게 물었다.
“재호 씨. 매직 미사일밖에 못 쏘세요?”
“그, 그건 아닌데. 갑자기 왜?”
세은의 갑작스런 부름에 정재호가 물었다.
그러나 세은은 자신이 할 말만 했다.
“한 번 쏴보세요.”
“응?”
“지금 여기서 저한테 쏴보라고요.”
“지금? 여기서?”
같은 말을 반복하던 세은의 미간에 길게 금이 생겼다.
그러나 이지호와 채연도 갑작스러운 세은의 행동에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은 씨, 무슨 일입니까?”
결국 세은은 한숨을 쉬고 간략하게 설명에 들어갔다.
“저 사람이 이번에 안보원에 합격했던데,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키워드리려고요.”
“……예?”
“예?”
뜻밖의 말에 이지호와 정재호가 놀랐다.
그러나 세은은 설명은 끝났다는 듯이 다시 재호에게 매직 애로우를 요구했다.
“얼른 쏴봐요.”
“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한테…….”
“그 정도 마법으로는 간지럽지도 않으니, 빨리 쏴요.”
도발적인 세은의 말에 재호는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마법 미사일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가장 순수한 마나. 매직 애로우!”
팡―
“3초 정도 걸리네.”
예상보다 빠른 정재호의 캐스팅 속도에 세은까지 조금 놀랐다.
그러나 마법을 시전한 재호는 오히려 순식간에 허공에서 사라진 자신의 마법에 더 놀란 상태였다.
“3초면 일단 가능성은 있는데…….”
“세은 씨. 무슨 일인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이지호가 세은에게 물었다.
“음……. 그러니까 보통 마법사들은 마법을 영창하면서 마나의 흐름을 느낍니다. 마법사마다 마법의 발현 속도나 주문 영창의 리듬이 다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본인들은 잘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몸이 아는 겁니다.”
말을 잠시 멈춘 채 아직도 놀라고 있던 정재호를 흘깃 바라본 세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보니 이 사람은 그 리듬이 매우 빠르고, 발음도 정확합니다. 훌륭한 전투 마법사의 전제 조건 중 하나가 빠른 마법 캐스팅이니, 한 가지 조건은 채운 셈이죠.”
“그럼 다른 전제 조건은 뭡니까?”
“뭐, 마법사한테 다른 게 필요해요?”
이지호의 너무나도 당연한 물음에 세은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바로 넘치는 마나죠.”
“하여튼 그럼 이 사람, 그러니까…….”
“정재호입니다!”
여태까지의 대화를 통해 이지호가 안보원 소속이라는 것을 눈치로 알아챈 정재호는, 이지호가 자신을 바라보자 빠릿빠릿하게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니까 정재호 요원이 재능이 있고, 세은 씨가 직접 지도해 주신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아무래도 다들 너무 약해서 안 되겠네요.”
매우 굴욕적인 말이었지만, 세은의 실력은 그런 말을 용인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세은 씨가 도와주신다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괜찮습니다. 미국 얘기를 미리 해주신 호의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요.”
“감사합니다.”
이지호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세은의 능력이라면 아주 훌륭한 자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대한 길드장인 이성우의 말로는 옆에 있는 서채연 역시 세은의 지도를 받고 하루 만에 일취월장했다고 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어제 현장을 지휘했던 박동원 역시 채연의 실력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고 보고했다.
각성자들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설레게 했다.
세은에게 배운 정재호가 그 방법을 안보원에 공유하면,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단숨에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탓이었다.
“정재호 요원?”
“예!”
“자네는 일주일 안에 안보원 게이트 분야로 발령 날 것이네.”
“감사합니다!”
“자네의 첫 임무는 세은 씨에게 교육을 받는 것이네. 그리고 보고는…….”
습관적으로 보고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하려던 이지호는, 말을 하다가 세은의 눈치를 보았다.
이지호의 시선을 받은 세은이 별다른 감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는 일주일에 한 번이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카페를 울릴 듯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재호의 대답에 카페 내의 모든 손님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낯 뜨거워진 세은은 그들을 버려둔 채 자리를 슬쩍 피했다.
채연도 마찬가지였는지 어느새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판을 살펴보는 척을 하고 있었다.
“험험.”
그리고 둘이 사라지고 나서야 뒤늦게 다른 손님들의 시선을 눈치챈 이지호와 정재호도 자리를 이동했다.
이지호와 서채연이 음료를 고르는 동안 돌아온 정재호에게 세은이 말했다.
“당장 오늘 밤부터 시작할 테니 퇴근하고 남아요.”
“아, 알겠어. 아니, 알겠습니다!”
세은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챈 정재호가 빠르게 말투를 바꿨다.
여태까지는 자신이 연장자인데다가 아르바이트 선배라 말을 편하게 했지만, 차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세은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말하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 맞다. 그리고 말인데요.”
“예?”
“교육 끝날 때까지는 알바 그만두지 마세요. 사람 새로 오면 피곤하니까.”
“……예.”
* * *
“마나가 더 이상 모이지 않는 이유는 하납니다.”
가장 편한 자세로 바닥에 앉아 있던 정재호에게 세은이 말했다.
“마나가 모일 만한 저장소가 없기 때문이죠. 그릇이 없는데 물을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릇을 만들어야죠.”
자신을 바라보는 정재호를 보며 세은은 마나링을 생성하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몸 안의 마나를 느껴보세요.”
“어떻게 느끼죠?”
“항상 느끼고 있을 겁니다. 이미 재호 씨와 한 몸이니까요. 다만 너무 익숙해서 구분하지 못할 뿐입니다.”
“으음…….”
“제가 마나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서 더 설명하기가 애매하네요.”
“오빠는 오러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마나도 아니에요?”
오러 유저가 아닌 마법사의 수련을 구경하러 온 채연이 물었다.
세은은 입가에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내가 사용하는 건 둘 다 아니니까.”
“네? 그럼 오빠는 무슨 힘을 사용하는 거예요?”
“비밀.”
“에이. 그러지 말고 가르쳐 줘요.”
“싫어. 안 가르쳐 줘.”
“그러지 말고요오. 네에?”
시끄러운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정재호는 열심히 정신을 집중해서 마나를 느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은의 말대로 마나가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재호가 쉽게 마나를 느끼지 못하자 채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세은이 한 마디를 더했다.
“매직 애로우를 캐스팅 할 때를 생각해 보세요. 무엇인가 간질간질하지 않았나요? 그런 느낌이라고 합니다.”
‘합니다?’
합니다, 라는 세은의 어미가 마음에 걸렸지만, 정재호는 일단 다시 마나에 집중했다.
‘마나에 대한 친화력은 재능이 없나.’
눈을 감은 지 10분이 지나도록 정재호가 마나를 느끼지 못하자 세은이 생각했다.
캐스팅 리듬과 정확한 발음은 전투 마법사와 정말 어울리는 재능이지만, 정작 마나 친화력은 특출 나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낮은 서클의 마법도 연사를 하면 그 효용성이 무궁무진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이계에 있을 때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4서클 마법사가 간혹 5서클 마법사를 잡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대마법사의 척도인 6서클부터는 경험으로 상대할 수 없는 차이가 있지만, 그 아래 서클에서는 개인의 전투 센스나 전략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했다.
‘봐서 친화력이 너무 낮으면 그런 식으로 지도를 해야겠어.’
생각보다 더 귀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앞에서 진지하게 눈을 감고 있는 정재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