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7화 (17/225)

# 17

5. 1서클 마법사 정재호(2)

딸랑― 딸랑―

정재호는 에소프레소 기계를 점검하다가 가게 문에 달린 방울이 흔들리는 소리에 재빨리 밖을 내다보았다.

“오빠! 저 왔어요!”

“왜 이렇게 자주 와?”

“에이. 자주 오면 안 돼요?”

오매불망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던 서채연의 입장에 재호는 재빨리 바에서 뛰쳐나가 채연에게 인사를 건넸다.

“채연 씨! 안녕하세요. 오늘도 오셨네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은 뭘로 드시겠어요? 평소처럼 카페모카에 휘핑크림 많이 올려드릴까요?”

“네. 오늘도 그걸로 주세요. 기억하고 계시네요?”

“하하. 그럼요! 다른 분도 아니고 채연 씨인데요.”

매일 오는 채연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재호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요즘 정재호는 이외로 흔쾌히 채연을 소개해 준 세은 덕분에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그럼! 금방 만들어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자신을 향해 방긋 웃는 채연을 보며 재호는 속으로 짙은 감동을 삼켰다.

고시를 포기하고 취업을 준비로 고민할 때 게이트가 열려, 각성자가 되었다.

그러나 국가안보원에 들어가기에는 능력이 너무 부족했다.

이후 각성자 관리법 개정으로 안보원의 각성자들이 길드로 빠져나가자,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한 공채 덕분에 정재호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민간 길드에 들어가기에는 실력이 부족했지만, 정부에서는 국가안보원에 각성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공무원도 합격하고, 채연 씨와 인사도 하고 정말 행복해. 그동안의 고생은 다 지금을 위해서였나 봐.’

정재호는 오늘도 카페 테이블에 앉아서 세은과 얘기를 하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서채연을 바라보며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웅― 우웅―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이 씨가 되었는지, 갑자기 내려온 긴급 연락에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현재 서울 명동 시내 산발성 게이트 발생. 근처에 있는 모든 안보원 요원들은 게이트 봉쇄 투입. 발령 대기자들은 이번 게이트 성과를 발령 순서에 반영.』

“게, 게이트? 하필 명동에?”

하필 명동이라는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아직 발령대기 중인 자신에게도 이런 연락이 온 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안보원의 인력 부족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성과가 발령 순서에 반영된다는 문구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말이 발령 순서에 반영이지, 참가하지 않을 시 발령을 질질 끌다가 취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세은 씨!”

정재호의 부름에 세은이 그를 돌아보았다.

“내가 일이 생겨서! 지금 잠깐 나가봐야 하거든. 사장님한테 말 좀 잘 해줘. 알았지?”

“저 음료 만들 줄 모르는데요.”

“그래도 샷은 추출할 줄 알잖아. 커피만 받아줘. 부탁할게!”

말을 마친 재호는 세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카페를 뛰쳐나갔다.

인사 고과 역시 문제지만, 명동이라는 번화가에서 게이트가 생겼다는 사실이 그의 책임감을 건드렸다.

‘아, 채연 씨한테도 부탁할걸.’

그러나 이미 카페 밖은 난리가 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피신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에 조금의 시간도 아깝게 느껴져 재호는 사람들과 반대로 달려갔다.

“정지! 앞에 게이트 발생으로 대피하기기 바랍니다.”

“현재 국가안보원 발령 대기 중인 정재호라고 합니다!”

정재호의 말에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고 있던 박동원이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지? 하여튼 당장 한 손이 급한데 잘됐네. 자네 능력이 뭐야?”

“마, 마법입니다.”

“마침 원거리 딜러가 부족했는데 잘됐군. 다행히 아직 몬스터 웨이브는 발생하기 전이니까 들어가서 자리 잡아.”

“네!”

정재호는 긴장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경계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허공에 난 구멍처럼 생긴 게이트와 그 주변의 엄폐물을 이용해서 자리를 잡고 있던 각성자들이 보였다.

정재호는 주변의 살피다, 눈치껏 한 노점상 뒤에 엄폐했다.

크륵.

크르륵.

“몬스터들이 나온다! 나오기 전에 원거리 딜러들은 집중사격!”

박동원의 명령에 마법사들의 입에서 마법 영창이 시작되었다.

“어? 어?”

갑작스런 상황 발동에 당황하던 정재호도 뒤늦게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가장 순수한 마나. 매직 애로우!”

팡―

가장 뒤늦게 마법을 영창한 정재호였지만, 가장 빠르게 마법을 시전했다.

정확한 발음은 마법사에게 마나량 다음으로 필요한 능력이었다.

정확히 사용하고자 하는 마법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주문을 발음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나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원리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발음이 꼬일 시에는 마법이 발동되지 않는다.

거기에 조금 심하게 발음이 꼬이면 마나가 폭주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야 이! 누가 매직 애로우로 깔짝거리래?!”

“…….”

하지만 문제는 정재호가 매직 애로우밖에 발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마나량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탓이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내 앞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의 마나, 타오르는 화염의 구. 파이어 볼트!”

정확하고 빠르면 뭐하겠는가.

기본적으로 마법의 위력이 다른데.

박동원의 호통에 움찔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매직 애로우 하나였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다시 매직 애로우를 발사했다.

팡― 팡― 팡―

그래도 남들 보다 세 배는 빠른 캐스팅 덕분에, 전체적인 데미지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어보였다.

“크르릉!”

그러나 마법을 뚫고 나온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근접 각성자들도 준비해!”

박동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몬스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긴 주둥이에 쫑긋 솟은 세모난 모양의 귀. 개과의 특징을 가진 놀이었다.

“컹! 컹!”

후웅―

놀들이 들고 있던 둔기를 각성자들에게 휘둘렀다.

근접 각성자와 놀이 뒤엉키니 원거리 딜러들은 섣불리 공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뭐해! 계속 게이트에서 몰려나오잖아 지원 올 때까지 게이트에 마법 난사해!”

팡― 파앙―

“깨앵!”

다시 게이트로 발사되는 원거리 공격에, 막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던 놀이 가격당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정재호는 긴장으로 온몸이 축축하게 젖는 것도 모른 채 쉴 새 없이 매직 애로우를 난사했다.

“매직 애로우!”

그러나 개떼처럼 몰려나오는 놀들을 전부 처리하기에는 화력이 부족했다.

“막아! 여기 명동이야! 뚫리면 끝이다. 금방 지원이 올 테니 물고 늘어져!”

악에 받친 박동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돌발성 게이트의 특성 탓에 각성자의 수가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놀들의 공격에 각성자들 몇 명은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크헉! 여기 지원……!”

고통에 찬 비명 소리와 함께 지원을 요청하던 헌터의 말이 끊겼다.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한 시선 끝에는, 놀에게 목덜미를 물려 쇼크에 빠진 각성자가 보였다.

“헉, 허억…….”

너무 많은 마법을 난사해서 그런지 정재호는 탈진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거기다 처음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탓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주, 죽는다…….’

첫 실전에 정재호의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 순간…….

강렬한 파공성과 함께 기합이 들려왔다.

“하압!”

파아앙―

어디선가 강력한 화살이 날아와 게이트를 정확히 강타했다.

콰앙!

그 충격에 각성자들을 공격하던 놀들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잠시였지만 그 틈을 타서 각성자들은 호흡을 정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박 팀장님!”

“채연 씨!”

정재호의 귀에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같은 카페에 있던 서채연이었다.

“인사는 나중에 해요. 우리!”

서채연이 시위를 당겼다가 놓을 때마다 놀들이 한 마리씩 쓰러졌다.

놀들은 서채연이 화살을 쏠 때마다 동족이 쓰러져 나가자 안절부절못했다.

덕분에 상대하던 근접 각성자들의 행동에 더욱 여유가 생겼다.

“다 죽여 버려!”

“크아아악!”

악에 받친 각성자들이 틈을 놓치지 않고 더욱 거세게 놀들을 몰아붙였다.

순식간에 대부분의 놀들이 바닥에 누워 있거나 게이트 주변으로 밀려났다.

오직 서채연 한 명으로 만들어진 광경이었다.

“대, 대단해…….”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본 정재호의 표정이 동경으로 물들었다.

괜히 길드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팡― 파앙―

쉴 새 없이 채연의 화살이 공기를 갈랐다.

너무 허무하게 쓰러지는 동족들의 죽음에 놀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바로 채연의 화살이 파고들었다.

마법보다 빠르고, 정확도가 더 높은 채연은 놀들에게 말 그대로 사신이었다.

“채연 씨! 정말 고마워. 채연 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아, 아니에요. 다행히 근처에 있어서……. 팀장님은 괜찮으세요?”

“나야 괜찮지. 채연 씨가 근처에 있을 줄은 몰랐네.”

“우연히 이 근처에 올 일이 있어서요.”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

적절한 채연의 등장 덕분에 최소한의 피해로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수 있게 된 박동원이 거듭 감사를 표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명동에서 포위가 뚫렸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팀장님! 정리 끝났습니다.”

“그래, 다들 고생했다. 사상자 파악은?”

“사망 네 명, 중상자 세 명, 경상자 열세 명입니다. 중상자 세 명 중 한 명은 아무래도 곧…….”

남자는 보고를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아마 자신의 입으로 동료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힘든 듯 보였다.

“……어쩔 수 없지.”

박동원도 우울한 표정으로 남자의 보고를 받았다.

아무래도 일선에서 싸우는 근접 각성자들의 피해가 제일 클 수밖에 없었다.

정재호는 피를 흘리고 있는 근접 각성자들을 보며 자신이 마법사인 것에 감사했다.

“중상자가 있다고?”

“세은 씨!”

채연에 이어 또다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재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얼마 전 새로 온 알바생인 도세은이 서 있었다.

심지어 박동원은 서채연을 만났을 때보다 더 환하게 그를 맞이했다.

“중상자, 아직 숨 붙어 있습니까?”

“예. 아직은…….”

“어디 있습니까?”

“예?”

“중상자 어디에 있냐고요.”

세은의 닦달에 박동원이 처음 자신에게 사상자를 보고한 남자에게 물었다.

“어디야?”

“저쪽입니다.”

남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한 세은은 재빨리 그쪽으로 다가갔다.

적어도 살릴 가능성이 있다면 그냥 매정하게 지나칠 수 없었다.

‘뭘 하려고 하는 거지?’

자연스럽게 박동원을 압도하는 모습에 정재호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곧 정재호의 의문을 경악으로 바뀌었다.

“에일린. 리커버리.”

마법과는 전혀 그 궤를 달리하는 시동어와 함께, 세은의 손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중상자의 상처 부위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쿨럭. 쿨럭.”

“헐! 상처가 치유됐어!”

“이게 가능한 일이야?”

믿을 수 없게도 목의 3분의 1이 놀에게 물려 겨우겨우 생명만 붙어 있던 각성자의 상태가 치유되었다.

물론, 그런 기적을 시행한 세은의 뺨에는 어느새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아……. 이 정도 부상자는 오랜만에 치유하네.”

“세, 세은 씨!”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박동원의 모습과, 놀란 토끼눈이 된 서채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크게 정재호의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이 지난 열흘간 질리도록 봤던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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