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9화 (19/225)

# 19

5. 1서클 마법사 정재호(4)

“아직도 안 느껴져요?”

“아, 아마도 그런 거 같습니다.”

“이건 너무 심한데?”

오늘로 삼 일째 정재호의 수련을 지도하던 세은은 표정을 굳혔다.

경직된 그의 표정에 정재호의 어깨가 자동으로 움츠러들었다.

마치 고시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나.”

되도록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 정석으로 정재호를 지도하려고 했던 세은이었지만, 아무래도 약간의 편법을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이리 와서 편하게 앉아봐요.”

“이, 이렇게요?”

세은의 손짓에 재호가 엉거주춤하게 앞에 와서 앉았다.

잔뜩 긴장한 재호의 모습에 또다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앉아요. 긴장하면 될 것도 안 되니까.”

“네, 네!”

그러나 세은의 말에도 잔뜩 긴장한 정재호의 어깨는 힘이 빠질 줄 몰랐다.

결국 세은은 또다시 한숨을 쉬며 정재호에게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우웅―

“하아…….”

신성력이 따뜻하게 정재호의 신체를 감싸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기분 좋은 느낌에 자연스럽게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느끼지 말고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정재호의 몸에 잔뜩 끼어 있던 긴장이 확실하게 풀린 것이 눈으로 보였다.

세은은 재호의 등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내가 넣는 힘이랑 다른 게 있으면, 그게 마나니까, 느껴봐요.”

“예?”

정재호의 물음이 다 끝나기도 전에 세은의 신성력이 그의 몸으로 들어갔다.

신성력은 부드럽게 정재호의 몸 안을 돌아다녔다.

정재호는 이질적인 기운에 당황했다.

“하나도 해가 안 되니까, 당황하지 말고, 지금 들어간 기운이랑 다른 기운을 찾아봐요. 비교 대상이 있으니까 느껴질 거예요.”

세은의 말에 정재호는 다시 마나를 느끼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으음.”

그렇게 정재호가 신성력을 바탕으로 마나를 느끼게 하기 위해 시도한 지 십 분 정도 되었을 때였다.

“뭐, 뭔가 있는데요?”

“그럼 그 느낌을 잘 잡아봐요.”

드디어 들려온 희망적인 말에 세은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이렇게까지 해서 도와줬는데 못 느끼면 완전히 반쪽짜리 마법사가 분명했기 때문에 내심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그나마 재능이 아예 바닥은 아니네.’

이런 각성자가 많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할 정재호의 고생길은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내가 고생하는 건 아니니까.’

어느새 정재호가 마나를 느끼는 데 집중한 것을 확인한 세은은 그의 등에 대고 있던 손을 뗐다.

“자, 대답하지 말고 들으세요.”

세은은 혹시 정재호의 집중력이 깨질 까 봐 대답을 하지 못하게 지시한 다음, 말을 이었다.

“이제 그 상태로 마나를 심장으로 가져가 링을 만든다고 생각하세요.”

위잉―

제멋대로 정재호의 몸을 돌아다니던 마나가 통제를 벗어나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이 고비라는 것을 알아챈 세은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링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심장을 보호한다고 생각해요. 조급해하지 말고.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어차피 재호 씨 마나니까요.”

다행히 정재호가 잘 컨트롤 했는지 천천히 마나가 안정화되는 것이 보였다.

“후우…….”

그렇게 오 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정재호의 입에서 깊은 숨이 새어나왔다.

“심장에 링이 느껴져요?”

세은의 질문에 정재호의 감았던 눈이 서서히 떠졌다.

그의 눈에서 순간 마나와 같은 푸른빛 섬광이 살짝 빛났다.

“예. 심장을 둘러싼 링이 생긴 게 느껴집니다.”

“링이 몇 개예요?”

“두 개입니다.”

“두 개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살짝 놀란 세은이 중얼거렸다.

의외라는 눈빛으로 재호를 바라보았다.

“링이 두 개요? 그럼 2서클 러너라는 얘긴데…….”

마나링을 생성하기 전에는 1서클 러너였던 정재호가, 순식간에 2서클 러너가 된 것이다.

“몸에 퍼져 있던 마나가 한 곳으로 몰리면서 불필요한 낭비가 없어진 건가? 아니면 마나링으로 변환되는 과정에 마나의 순수성이 진해졌나? 그럼 다른 각성자들도 마나링을 만들면…….”

세은은 정재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기실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심장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마나링의 충만한 느낌에 심취한 재호는 세은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이게 마나링?”

심장에 차오르는 충만한 느낌에 감격에 찬 정재호의 말에 정신을 차린 세은이 그에게 말했다.

“자, 그럼 어디 마법을 캐스팅해 봅시다. 시전 방법은 똑같은데, 다만 마나를 확실하게 마나링에서 끌어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 예!”

정재호는 습관처럼 매직 애로우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가장 순수…….”

세은은 정재호의 캐스팅을 막고 다른 마법을 지시했다.

“아아. 매직 애로우 말고요.”

“저는 매직 애로우밖에 쓸 줄 몰라서…….”

그러나 여태까지 매직 애로우 말고 다른 마법을 시전해 본 적이 없던 정재호가 쭈뼛거렸다.

“이제는 될 겁니다. 파이어 볼트 한 번 캐스팅 해보세요.”

“그, 그래도…….”

“해보세요.”

세은의 강경한 지시에 계속 머뭇거리던 정재호는 결국 입 안에서만 맴돌던 말을 실토했다.

“저는 매직 애로우 말고 다른 주문은 몰라서…….”

“…….”

상상조차 하지 못한 재호의 말에 어이가 없어진 세은은 잠시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알려줄 테니 잘 외우세요.”

결국 정재호는 세은이 천천히 읊어준 마법 주문을 듣고 나서야 2서클 마법을 캐스팅해 볼 수 있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내 앞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의 마나, 타오르는 화염의 구. 파이어 볼트!”

화륵―

재호의 캐스팅이 끝나자 심장에 위치한 마나링에서 마나가 훅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며 파이어 볼트가 생성되었다.

“허, 헐?”

펑!

자신이 시전 한 마법에 스스로가 놀란 재호의 집중력이 깨졌다.

결국 공중에서 파이어 볼트를 터트리고 말았다.

“아! 뜨, 뜨!”

덕분에 불똥이 튀어 정재호의 머리 일부가 살짝 타는 바람에 순식간에 탄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그 모습에 세은의 한심하다는 시선이 정재호에게 꽂혔다.

하지만 이내 곧 짧게 박수를 치면서 마나링을 만들어낸 정재호를 격려했다.

“수고했습니다. 이제 마법사의 기본 지식에 대해서 배우면 되겠네요.”

“마법사의 기본 지식이요?”

“마나링을 키우는 법, 각 써클에 맞는 원소 마법들 같은 것들이요. 아무래도 여기 마법사들은 쓰는 마법이 한정되어 있어서 말이에요.”

각성하면서 뭘 어떻게 지식을 얻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단편적이란 말이야, 라고 세은이 중얼거렸다.

‘여기 마법사들?’

세은의 말에서 위화감을 발견했지만 정재호는 지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세은은 그런 정재호를 따라 바닥에 주저앉아 마법사의 기본 개념에 대해 열심히 강의하기 시작했다.

* * *

“세은 씨!”

일주일에 한 번 올리기로 한 정재호의 보고를 받은 이지호는 만사를 제쳐두고 세은을 찾아왔다.

“어? 실장님 안녕하세요.”

“채연 씨도 있네요. 반갑습니다.”

“여긴 무슨 일로?”

정재호에게는 명상을 통해 마나를 모으는 법을, 채연에게는 오러를 수련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던 세은은, 이지호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고를 받았지만 제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지호는 아직도 손에 꽉 쥐고 있는 정재호의 보고서를 세은의 눈앞에 들이밀며 물었다.

“이, 이 보고서에 적힌 대로 마나의 절대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맞습니다.”

“헉! 어떻게 그럴 수가.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겁니까? 대체 어떻게…….”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이지호에게 세은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마나를 모을 수 있는 그릇이 있으면 됩니다.”

“그럼 그릇은 어떻게 만듭니까?”

“이제는 정재호 씨가 방법을 알고 있으니 나중에 물어보세요.”

세은의 고갯짓에 그제야 이지호 실장의 시선이 옆에서 명상을 하고 있던 정재호에게로 넘어갔다.

단 일주일 동안만이었지만 명상과 마나를 느끼는 데 익숙해진 그는, 이지호가 와서 난리를 치는 데도 집중력이 깨지지 않고 있었다.

“하여튼! 정말 대단합니다. 대체 세은 씨의 능력은 어디가 끝입니까?”

“뭐, 저도 신은 아니니까요.”

이지호의 말에 세은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미 이지호의 두 눈에 비치는 세은의 모습은 거의 신앙에 가까웠다.

엄청난 무력에, 이해할 수 없는 치유 능력, 거기에 각성자들의 능력을 계발하는 방법까지.

마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았다.

“아, 실장님. 오셨습니까?”

어느새 명상을 끝낸 정재호가 이지호 실장을 발견해 인사했다.

이지호는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인사를 받고는 열정적으로 정재호의 성취를 확인했다.

“마나링이라는 걸 만들었다고 했나?”

“예. 세은 씨의 도움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걸 만들면 마나를 모을 수가 있고?”

“가능합니다. 마나만 느낄 수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 마나는 어떻게 느끼는 건가?”

당장 안보원의 각성자들의 실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지만, 이지호 본인 역시 마법 각성자였기 때문에 정재호의 말에 관심이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는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 몸에 퍼져서 익숙해져서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처음에는 세은의 도움을 받아 마나를 느낀 재호였다.

하지만 점차 명상을 하면서 보다 확실히 마나와 교감하고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된 상태였다.

덕분에 보고서에는 세은이 도와줘서 겨우 마나를 느꼈다는 문구를 뺐지만, 이지호의 질문에 잘 대답할 수가 있었다.

“이, 이럴 게 아니라 당장 안보원에 가서 다 같이 해보는 것이 어떤가?”

“아…… 그, 그게…….”

자신의 직속상관인 이지호의 말에도 정재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힐끗힐끗 옆을 쳐다보던 정재호의 시선을 알아챈 이지호가 옆을 바라보았다.

정재호의 시선 끝에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세은이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지호가 헛기침을 두어 번 뱉고는 정중하게 세은에게 물었다.

“험험. 제가 너무 흥분해서…… 혹시 정재호 요원을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흐음.”

아직 수준이 부족하기는 한데 말이야. 세은은 이지호의 부탁에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완성된 마나링에서 나오는 마법은 지금 각성자들이 몸 안의 마나를 사용해 시전하는 마법하고 그 위력이 달랐다.

그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이걸로 크게 뭘 원하는 것도 아니고 빨리 다 강해지면 편하고 좋지.’

이내 생각을 정한 세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다만 마법 캐스팅에 대한 숙련 연습은 계속해야 하니 일주일 뒤에는 다시 여기로 보냈으면 합니다.”

“아! 물론입니다. 일주일이면 충분할 겁니다.”

세은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지호는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빠르게 정재호에게 이동을 지시했다.

“흠. 잘 가르치려나?”

“그럴걸요? 어차피 안보원에 남은 사람들 수준은 다 비슷비슷해요. 간부급을 제외하고요.”

세은의 혼잣말을 들은 채연이 대답했다.

“물론, 길드로 나간 사람들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오빠가 알려주신 오러 익스퍼트 정도의 사람은 영한이 포함해서 열 명 정도 될 걸요?”

“진짜 심각하구나.”

“이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수련하는 방법을 모르니까요. 저야 오빠를 만나서 다행인 거 같아요.”

헤헤, 웃으며 채연이 빛나는 눈으로 세은을 바라보았다.

세은은 그런 채연의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더 열심히 해서 채연이 네가 1등해.”

“에이. 오빠가 있는데 어떻게 1등을 해요? 2등 할게요!”

애교 넘치는 채연의 행동에 세은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크게 번졌다.

채연 같은 미인이 살갑게 구는데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딱히 채연에게 흑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남자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예쁜 여자를 가르치는 것이 미관상으로도 좋았다.

“말은 잘해요. 하여튼 그럼 다시 시작하자.”

“네!”

“오러를 모을 때는 일단…….”

다시 세은의 오러에 대한 강의가 수련장을 가득 채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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