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1. 게이트를 닫는 남자(2)
“실장님! 인천 지역의 게이트가 사라졌습니다!”
다급한 남자의 보고에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를 뒤적이던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사실이야?”
“예! 정찰대 보내서 최종 확인했습니다.”
“뭐야? 어떻게 사라진 거야? 드론 확인해 봤어?”
“확인해 봤습니다만…….”
실장의 질문에 남자가 난감하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확인했는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사람이 그랬습니다.”
“……뭐?”
남자의 말에 실장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로라하는 한국의 과학자들과 각성자들이 조사를 시도했다가 포기한 것이 게이트였다.
그런데 사람이 게이트를 없앴다고? 대체 어떤 사람이?
“예. 저희도 믿기지 않지만…… 드론에 사람이 게이트를 닫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그게 누구야? 확인은 해봤어?”
“예! 다행히 신원 조회가 가능했습니다.”
“그래? 그럼 뭐하고 있어!”
실장이 책상을 탁! 하고 내려치며 남자에게 소리쳤다.
“빨리 그 사람 신병 인도해 와!”
* * *
“그럼 내일 저녁은 외식이라도 하실래요?”
―그럴까?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이라도 하면 좋겠네. 아버지한테도 말해놓을게.
“네. 그럼 제가 내일 낮에 집으로 갈게요.”
며칠 전 집 근처의 게이트가 소멸되었다는 뉴스 덕분인지 세은의 어머니 목소리는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집이 팔리지도 않아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던 세은의 부모님은 게이트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세은 역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계로 강제로 소환된 후에 얼마나 뵙고 싶었던 부모님이었던가.
그러나 결국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다시는 볼 수 없었던 분들이 부모님이었다.
비록 원래 자신이 알고 있던 지구와는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가족을 지킬 만한 힘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이 들지 않았다.
거기에 뉴스를 보면 게이트 때문에 더 이상 크게 피해를 보는 국가도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이번에 외식을 하면서 학교 휴학에 대한 얘기도 슬며시 꺼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행복은 세은의 집을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딩동.
“계십니까?”
벨소리와 함께 절도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런 손님에 세은이 대답했다.
“누구세요?”
“도세은 씨 되시죠? 정부에서 나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남자의 대답에 세은의 눈에 살짝 당혹감이 감돌았다.
‘설마 벌써 알아챘나?’
세은은 자신이 게이트를 없앤 사실을 벌써 정부가 알아챈 것 같은 상황에 당황했다.
분명히 각성자들을 잘 피해서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에 꼬리가 남았던 게 분명했다.
일이 귀찮아졌다고 생각하며 세은은 우선 발뺌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정부에서 무슨 일로 저를……?”
“본인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일단 문부터 열어주시죠.”
무엇인가 알고 온 뉘앙스를 풍기는 남자의 말에 세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결국 걸렸나.
그러나 세은은 우선 할 수 있는 만큼 말로 거절했다.
국가도 세은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못하지만.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요. 쉽게 타인을 믿을 수가 있나요.”
약간 과장되기는 했지만, 세은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는 세은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문 안 여시면 강제 집행합니다.”
‘……검사 셋에, 마법사 하나인가?’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은 남자의 태도에 세은은 사람들을 스캔했다.
능력을 봐서는 자신이 교황으로 있던 이계에서 중간도 되지 않는 실력자들.
하지만 현재 지구에서는 꽤나 강한 축에 속하는 사람들인 거 같았다.
하긴, 어차피 누가 와도 세은을 이기기는커녕 위협을 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계에서도 세은과 대적할 만한 사람은 두 명에 불과했다.
쾅!
“대답이 없어서 강제 집행하겠습니다.”
세은이 어떻게 대응을 할지 고민을 하느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 생각한 남자가 힘으로 세은의 원룸의 문을 열었다.
철로 된 문이었지만 각성자의 힘에는 버틸 수가 없었다.
“……인간들이 경우가 없네.”
세은은 마치 자신들이 갑인 것처럼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남자의 행동에 기분이 팍 상했다.
좋게좋게 넘어가려 했던 생각을 머리 한구석으로 처박았다.
남자는 그런 세은의 생각을 모른 채 원룸의 문을 완전히 뜯어냈다.
“일단 신병 확보해!”
“예!”
지잉―
“어딜 들어와?”
이미 남자의 말만 존대인 강압적인 태도에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세은은 신성력을 사용해서 각성자들의 몸을 구속했다.
그들은 현관 앞에서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정지해 버렸다.
“큭?”
“이게 무슨?”
갑자기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게 된 상황에 네 명의 각성자는 모두 당황했다.
오직 세은만이 유유자적하게 벽에 걸려 있던 자신의 운동복 상의를 꺼내 천천히 걸치고 있었다.
“남의 집에 올 때는 그만한 예의를 가지고 와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세은은 운동복의 지퍼를 위로 올리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태연한 세은의 말과는 다르게 네 명의 각성자들은 절대로 태연할 수가 없었다.
한 번에 네 명의 각성자를 제압하는 힘이라니.
이런 건 들어보기는커녕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들은 한국에서도 상위에 손꼽히는 실력자들.
그런 자신들이 인지도 하기 전에 구속되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 안 그래?”
“이게…… 무슨 속임수냐?”
세은의 집 문을 뜯어냈던 남자가 소리쳤다.
세은은 그런 남자의 외침에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들었다.
“속임수?”
주스가 세은의 목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갔다.
각성자들은 모두 홀린 듯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지금 이 상황이 속임수로 보이나?”
“꿀꺽…….”
마법사로 보이는 여자의 목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모두의 귀에 크게 들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게이트가 사라진 현상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각성자 한 명의 신병을 확보하는 임무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임무 전에 전달받은 정보가 한참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눈앞의 이 청년은 여태까지 적립된 각성자에 대한 상식을 철저하게 벗어나 있었다.
심지어 자신들은 구속하고 있는 이 힘이 마나인지 오러인지도 불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신발을 신고 집으로 들어오려 하면 안 되지.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동방예의지국. 몰라? 공부 안 했어?”
그런 말도 이유로 자신들을 막았다고?
그러나 세은의 말로 인해 세은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남자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는 입을 열었다.
“크흠. 방금 전…… 무례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남자의 사과에도 세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대답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세은의 모습에 아직 자신이 사과하지 않은 것이 있나 고민하던 남자는 이내 다시 세은에게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들어가도 될까요?”
“조용히 들어와요.”
남자의 공손한 부탁에 세은의 말이 다시 존대로 변했다.
동시에 각성자들을 구속하던 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이건 대박이다.’
단순히 게이트의 소멸에 관한 사실을 조사하다가 발견하게 된 세은이지만, 남자는 세은이 엄청난 존재라는 걸 단 한 번에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세은을 정부 소속의 각성자로 영입하면 각성자가 곧 힘인 국제사회에서 그는 분명 국가 급의 이익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런 인재와 가장 먼저 접촉하게 된 상황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남자의 머릿속을 채웠다.
남자는 처음과는 딴판인 공손한 태도로 세은에게 인사를 건넸다.
“방금 전에는 실례했습니다. 저는 게이트 사태 이후로 원활한 대응을 위해 새로 설치된, 국가안보원의 게이트 분야 제1팀장을 맡고 있는 박동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자신의 설명에도 너무 담담한 세은의 태도에 박동원은 당황했다.
신분을 전부 공개하면 태도가 확 바뀌지는 않아도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은의 시선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너무 담담해서 박동원이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이계에서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본 세은에게 실장은커녕 대통령이 직접와도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자신의 힘을 보여준 이상 이곳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 자신이라는 사실을 세은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하, 말이 별로 없으신 편인가 보군요.”
“그래서 본론은요?”
박동원은 세은의 태도에 식은땀을 흘렸다.
직설적인 세은의 물음에 박동원은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포기하고 본론을 얘기했다.
“안보원에서는 이번 게이트가 소멸된 사태에 대해 파악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제 한국에는 게이트가 없지 않나요?”
세은의 대답에 박동원은 세은이 게이트를 소멸시킨 사람이라는 안보원의 정보에 확신을 가졌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 왜 자신을 찾아왔냐고 묻는 것이 순서였다.
“아닙니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태백산맥 깊숙한 곳에서 하나의 게이트가 더 발견됐습니다.”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군.
세은이 애초에 정부에서 자신을 추적할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상보다 빠르게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게이트가 이렇게 하나씩 늘어난다면 단순한 경계를 서는 것조차 한계가 올 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정체를 들킨 이상 조용히 살기는 틀린 상황이었다.
부모님의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게이트로 나섰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앞으로 매우 귀찮아질 것 같은 상황에 세은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박동원은 그런 세은의 한숨을 게이트가 생겨서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국가는 세은 씨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박동원을 따라온 세 명의 각성자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세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 각성자는 여러모로 자신들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에 그들이 목도한 세은의 힘이라면, 몬스터 웨이브 때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뭐…… 가는 건 좋은데 말입니다.”
잠시 말이 없던 세은의 입이 열렸다.
모두의 귀가 세은의 말 한 마디에 쫑긋거렸다.
“너무 성의 없이 데리러 온 거 아닙니까? 어차피 나도 씻을 시간이 필요하니까, 다시 오시죠.”
예상치 못한 세은의 대답에 박동원은 순간 멍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는 표정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만…….”
“제가 그쪽 사정에 맞춰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그렇게 말하며 세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도 어린 놈이 오냐오냐하니까…….’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막나가는 세은의 태도에 박동원은 슬슬 속이 부글거렸지만, 이미 세은의 힘을 본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나중에 세은이 정부에 소속되면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며 입가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한 시간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뭐, 그러세요.”
세은의 대답에 박동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잠시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살짝 굳어 있는 박동원의 입꼬리를 보며 세은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지금 박동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표정을 통해서 뻔히 유추할 수 있었다.
세은은 정부에 소속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귀찮은데 스스로 더욱더 귀찮은 곳으로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세은이 순순히 박동원의 초대에 응한 이유는, 앞으로 생길 귀찮을 일에 대한 방지일 뿐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면 자신을 더 이상 귀찮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방문 고쳐놓고요.”
“하하, 알겠습니다.”
“강제 주거 침입이나 문 파손에 대한 보상은 없나요?”
“예?”
“엄연히 범죄 아닌가……?”
세은의 말에 꽉 쥔 박동원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지금은 박동원이 철저하게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박동원은 재빨리 마음을 진정시키며 세은에게 대답했다.
“위에 말해서 충분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세은은 박동원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급여가 나올 때까지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박동원은 세은이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자 다시 인사를 건네고는 세은의 집을 나섰다.
“그럼, 한 시간 뒤에 준비되시면 아래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일행과 함께 세은의 집을 나서던 박동원에 뒤통수에 마지막으로 세은의 말이 꽂혔다.
“아! 올 때 메로나요.”
세은의 말에 너무 어이가 없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박동원은 상부에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품에서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