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1. 게이트를 닫는 남자(3)
부웅―
온통 검은색으로 고급 세단이 중후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단을 앞뒤로 두 대의 다른 세단이 경호하듯이 달리고 있었다.
경호를 받는 검정 세단에는, 청바지에 반팔 티를 입은 청년이 타고 있었다.
“언제쯤 도착합니까?”
삼십 분이 지나자 이동하는 것이 지겨워진 세은은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운전기사는 세은의 물음에 정중하게 대답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운전기사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는지, 십 분 후 세단은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한눈에 봐도 도심과는 적잖이 떨어진 위치 때문에 세은은 정확히 어느 지역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은은 별다른 걱정 없이 차에서 내렸다.
“국가안보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도세은 씨. 저는 국가안보원 실장 이지호입니다.”
“아, 예.”
세은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아, 미리 나와 있던 국가안보원 게이트 분야 실장 이지호.
자신의 인사에도 세은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보고대로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 새로 생성된 게이트를 막는 것이 급했다.
강력한 각성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꾹 참았다.
그리고 어차피 이곳으로 순순히 온 이상 잠시 후부터는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었다.
“하하. 보고 받은 대로 과묵하신 분이군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건물이었지만, 입구부터 경계가 삼엄했다.
지문 인식은 기본, 홍채 인식까지…… 철저한 보안을 지나 세은은 이지호와 함께 건물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꽤 높은 직위인 실장과 나란히 걷는 세은의 모습에 지나갈 때마다 직원들의 시선이 세은에게 향했다.
“여기 앉으시죠.”
이지호는 아무리 봐도 접객실은 아닌 곳으로 세은을 안내했다.
그러나 그곳에도 테이블은 있었기 때문에 세은은 별다른 의심 없이 자리에 앉았다.
둘이 자리에 앉자마자 비서가 재빠르게 다과를 내왔다.
“도세은 씨는 각성자로 등록이 안 되셨더군요.”
각성자로 등록하지 않은 세은 때문에 처음에 게이트 소멸의 원인으로 세은이 지목됐을 때 보고서를 믿기 어려웠다.
게이트의 소멸이 국가적 과업이 아니었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세은을 찾지도 않았을 터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문제는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힘을 각성한 사람들은 높은 보수를 받기 위해 스스로 등록하는 것이 당연시하게 여겨졌다.
심지어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한 연구도 진행 중이라, 정부 소속이 아닌 각성자들이 외국에 나가서 프리랜서로 뛰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능력을 가지고도 각성자로 등록하지 않은 세은의 상황은 매우 특이했다.
“각성자로 등록하지 않은 이유라도 있으신지?”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딱히 길게 얘기를 할 생각이 없는 세은은 이지호의 말을 끊고 본론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말을 끊는 세은의 모습에 이지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하지만 세은 씨에 대해 궁금한 게 많습니다.”
“별로 대답할 생각은 없으니 본론만 얘기하죠.”
세은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이지호의 얼굴에서 미소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 모습에 세은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왜? 기분 나쁜가요?”
“…….”
이어지는 세은의 도발에 이지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박동원이 순식간에 네 명을 제압하는 능력자라고 했지만, 그 보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능력을 보일 수 있던 것은 집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로라하는 각성자들이 있는 안보원에서, 이런 안하무인 같은 행동에 이지호는 분노를 참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분노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이지호의 모습에 세은이 피식 웃었다.
“기분 나쁘신 것 같은데. 할 말 있으면 하시죠?”
이지호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세은은 입꼬리를 올리며 결정타를 날렸다.
“뭐, 할 말이 있어도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몸 생각하면요.”
“이 미친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계속되는 세은의 도발에 결국 이지호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지호도 국가안보원의 실장으로 임명될 정도의 실력 있는 각성자.
항상 사람을 부리던 그는 더 이상 세은의 태도를 참아내지 못했다.
거기다 이 장소에는 각성자를 제압할 수 있는 결계가 준비되어 있었다.
화를 참지 못한 이지호는 결국 결계를 발동해 버렸다.
“흐음.”
벽과 천장 곳곳에 숨겨져 있던 마법진이 발동하며 세은을 가뒀다.
“건방진 놈.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마.”
“하늘이라…….”
세은의 건방진 콧대를 누를 수 있다는 기쁨에 이지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이지호에게 살풋 비웃어주며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억?”
준비해 놓은 결계가 순식간에 빛무리만 남긴 채로 사라지는 게 이지호의 눈에 들어왔다.
안보원의 마법사들이 힘을 모아 설치한 이 마법진은 몬스터 웨이브에서도 가장 큰 공적을 발휘한 차단 결계였다.
여태까지 그 무엇도 부수지 못한 절대방어의 결계가 세은의 손짓 한 번에 너무 허무하게 사라졌다.
이지호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보고를 제대로 못 들은 것 같은데…….”
당황해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각성자들을 호출하던 이지호에게 세은이 담담하게 말했다.
“니들이 다 덤벼도 나 못 이겨.”
애초에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순순히 여기까지 따라온 세은이었다.
다른 각성자들이 방 안으로 진입해 옴과 동시에 세은은 신성력을 개방했다.
명확한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세은에게서 느껴지는 처음 보는 거대한 힘에 이지호가 입술을 떨었다.
“너…… 누구야?”
“알면서 부른 거 아니야? 도세은이잖아.”
“어떻게 이런…….”
“그러니까 애초에 나를 찾지 말든가, 그렇게 겉으로만 정중하지를 말든가.”
이지호의 부름에 안으로 빠르게 진입한 각성자들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바로 세은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파이어 볼!”
“차압!”
그러나 세은은 코웃음을 치면서 가볍게 신성력으로 방어막을 만들었다.
각성자들이 더 발전한다면 모를까.
지금 정도의 수준으로는 자신은커녕 트롤 같은 중형 몬스터조차 일대일로 상대하기는 요원해 보였다.
“이러니 게이트를 못 막지.”
어째서 정부에서 게이트를 소멸시키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세은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검사들은 평균적으로 오러 유저, 마법사들은 3클래스 정도.
세은이 눈을 감고 신성력 방출만 해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예상대로 별다른 위협이 될 만한 실력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세은은 방어막 안에서 느긋하게 더욱 각성자들이 몰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증인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각성자들은 세은의 방어막에 함께, 들어가 있는 실장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세은의 방어막을 두드렸다.
“자, 잘 봐.”
세은은 자신의 만들어낸 방어막 안에서 자신과 같은 풍경을 보고 있는 실장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홀리 파이어.”
작게 시동어를 읊은 세은이 신성력으로 된 불덩이를 허공에 생성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빠르게 늘어나는 하얀 불덩이에 사무실의 모든 각성자들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어느새 불덩이는 사무실의 천장을 가득 채운 것이다.
화려하게 불을 내뿜는 불덩이 때문에 시야가 밝혀질 정도였다.
그리고 타는 듯한 열기는 덤이었다.
“이게…… 가능해?”
사무실에 모인 각성자들 중 한 명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압도적인 광경에 세은을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얼이 빠진 것은 이지호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네 명의 각성자를 제압해?
아니, 겨우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는 충분히 오만할 자격이 있었다.
은연중에 흘러나온 자신들의 강압적인 태도가 세은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당신은…….”
“뭐, 아직도 대답이 필요한가?”
“…….”
압도적인 무력을 보이면서도 힘든 기색이 하나 없는 모습에 이지호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 이곳의 최고 권력은 세은에게 있었다.
“아닙니다.”
힘이 곧 능력인 세상.
아직 한국은 큰 피해가 없지만, 외국에서는 더 강한 몬스터들이 게이트를 통해서 나오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능력자의 등장은 한국에 호재였다.
세상이 어지러워질수록 세은은 자신보다 더 높은 명성과 지위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네.”
세은이 손가락을 튕기자 이지호를 구속하고 있던 힘이 사라졌다.
“에일린.”
시동어로서 작용하는 여신의 이름과 함께 허공을 메우고 있던 불덩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으아…….”
불덩이가 찰나의 순간에 전부 사라지자 사무실에 있던 각성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시 대화해 볼까?”
* * *
세은의 말에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공손해진 이지호가 말했다.
“게이트를 없앤 것이 맞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굳이 물을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그거 말고, 게이트가 새로 생겼다며.”
세은의 말에 이지호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 말은 세은이 확실하게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게이트를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면 국제 사회가 한국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지호는 씩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꼭 도움…… 부탁드립니다.”
“뭐, 하는 거 봐서.”
세은의 그 말 한 마디는 이지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 * *
각성자들의 능력 차이는 운에서 기반한다.
이는 각성자들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지 않아 현재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건 오러나 마나라는 것을 확인한 세은은 각성자들도 노력 여하에 따라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특히 마나를 느끼는 재능이 필요한 마법사와는 달리, 검사들은 실전을 통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수월하게 경지를 끌어올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나를 느끼는 수련이 필요한 마법사들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지호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 부분을 파악한 세은은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를 없애기 위해 마나 컨트롤을 알려줄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은은 이 사실을 공짜로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부모님께 효도할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거기다…….
‘지구에서는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이지호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확신이 생겼다.
사람은커녕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도 끽해야 트롤 정도가 최고인 상황.
집 근처의 게이트와 달리 모든 영지가 마왕의 영지와 이어져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복잡하게 이리저리 치이느니, 적당히 각성자들의 성장을 도와주고 편안하게 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미 명예와 부는 이계에서 교황으로 누릴 만큼 누렸기 때문에 별다른 미련도 없었다.
다만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해 돈은 조금 필요할 뿐.
만약 자신의 실력만 증명할 수 있다면 앞으로는 편해질 게 분명했다.
그렇다 보니 더 윗선에게 보여줄 만한 실적이 한 번은 필요했다.
‘한 번 정도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다면 이득이지.’
이지호도 공적을 나누어주겠다는 세은의 말에 계획을 돕기로 한 상태였다.
어차피 당장 급한 눈앞의 게이트가 소멸되고, 서서히 각성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 게이트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각성자들의 능력 개발 방법을 이지호 자신의 공으로 돌릴 수가 있었다.
이래저래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
그래서 세은은 설악산 국립공원 공룡 능선에 새로 생긴 게이트를 토벌하는 역할을 한 번 수행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게이트 내부에 들어가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부 소속의 각성자들에게 알려줄, 일종의 과외 선생 같은 역할이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약속한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그리고 그동안 이지호는 열심히 상부에 게이트의 토벌에 대한 서류 결재 승인을 받고 있을 것이다.
“역시 삼겹살이 최고지!”
가족의 회식은 삼겹살에 소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