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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08화 (108/225)

108화 대탐광시대(3)

“그렇잖아도 성주께 드리려고 가져온 것들입니다. 모두 이번에 잡았는데, 가죽이 무척이나 곱습니다.”

기요마사가 내민 것은 아주 질이 좋은 사슴가죽이었다. 역시 그는 히데요시의 충직한 가신이라 할 만했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이번 겨울도 네 덕에 아주 따뜻하겠어.”

그렇게 공치사를 했는데, 오히려 기요마사의 반응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진짜 중요한 사냥감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곰이라도 본 게냐? 사람은 만족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네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아무리 뛰어난 사냥꾼이라 해도, 곰이나 멧돼지는 잡기 힘든 사나운 맹수. 히데요시는 대충 그쯤 되는 짐승이라도 봤겠거니 하고 넘기려 했다.

“그래, 어디에 사는 녀석이더냐? 사람들에게 조심하라 일러야겠는데…….”

“후지산 동쪽 사면 동굴에 있었습니다.”

“그쪽이라면 호조 가문의 영지가 아니더냐.”

사냥꾼이 짐승을 쫓다가 경계를 넘는 일은 제법 흔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오다 가문의 영지와 호조 가문의 영지 사이에는 도쿠가와 가문도 있었다.

비록 도쿠가와가 오다에게 종속된 형태의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경계를 무려 두 번이나 넘은 셈. 히데요시가 보기에는 기요마사가 그야말로 정신줄을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이 녀석! 정신이 있는 게냐, 없는 게냐!”

그렇게 적당히 호통을 치고 넘기려는데, 기요마사의 반응이 오히려 이상했다. 평소라면 송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을 터. 하지만 지금 그의 눈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주군. 질책이라면 얼마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우선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히데요시도 산전수전 다 겪은 몸. 고작 이정도에 위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충직한 가신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일단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이번 산행은 사냥보다도 다른 것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기요마사는 그렇게 운을 떼며, 내막을 밝혔다. 큐슈에 다녀오는 뱃길에서 선원에게 들은 이야기며, 박쥐를 찾기 위해 산의 온갖 동굴을 들쑤신 일. 그리고 마침내 후지산 아래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낸 것까지.

무사가 탐광일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지만, 히데요시가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기요마사 역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찬물 더운물을 가리지 않았다.

이야기가 흐를수록, 히데요시의 태도도 신중해져갔다.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더없이 중요한 문제다. 염초를 남만 상인에게 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수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니. 하지만 네가 말한 곳은, 바로 오다와라 성 바로 위쪽이 아니더냐.”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과연 순순히 호조 가문이 그 지역을 내놓을 것인가.

“흠…….”

히데요시는 당장 조세이를 불러다 의논하고 싶었다. 가신들 중에서 이런 일에 적당한 상담역은 그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요마사를 달래기 위해 불러놓고, 다시 조세이를 호출할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이 정보를 가져온 장본인이 바로 기요마사가 아니던가.

“일단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호조 우지히데가 유화적으로 나오는데, 먼저 선공을 취한다는 것은 꽤 곤란한 일이니 말이다.”

그렇게 돌려보내려는데, 무골인 줄로만 알았던 가신이 계책을 내놓았다.

“코가 쿠보를 활용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코가 쿠보라…….”

히데요시가 듣기에도 나쁘지 않은 계책인 듯했다. 기요마사가 이런 수를 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그저 조세이에게 자극을 받은 결과겠거니 하고 넘겼다.

“지금 코가 쿠보는 폐하께 그 지위를 공인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소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침 후지산은 천하의 명산이니, 그곳에 치소를 마련하자고 하는 겁니다.”

물론 그 까닭은 오다 측에 있었다. 쇼군직 승계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아시카가 분가의 마지막 후예도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곧 세태인 법. 쓸모가 있다면, 과거지사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이런저런 사정을 차치하고서라도, 히데요시가 보기에 꽤 괜찮은 책략이었다.

그 내용은 상당히 투박했지만, 조금 더 다듬으면 될 일. 히데요시는 기요마사가 내놓은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공이 더 필요하겠지만, 꽤 괜찮은 생각이구나.”

*       *       *

기분 좋은 낯으로 주군의 저택을 나선 기요마사는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애초에 그가 내민 계책은 온전히 그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발안자가 바로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하신 대로 잘된 모양입니다.”

“이시다 공.”

코가 쿠보를 이용하자는 구상은 원래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석전삼성)의 생각이었다.

원래라면, 기요마사는 최소한 근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정작 돌아오자마자 다시 산으로 나가 버렸고, 그 이상함에 이시다 미츠나리가 주목했던 것이다.

도토야 조세이는 굴러들어온 돌이지만, 미츠나리는 기요마사만큼이나 오래 봉직한 무사. 아무리 성향이 다르다 해도, 기요마사가 함부로 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이시다 공은 조세이, 그자와 더 친하지 않았소이까.”

“친분이야 사적인 것이고, 가신들 간의 불화는 주군께 누가 되는 일이지요.”

만약 기요마사가 그 자리에서 계책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또 조세이가 기회를 얻었을 터. 그렇게 되면 둘 사이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게 뻔했다.

그것이 미츠나리가 계책을 준비해 준 이유였다.

“먹물을 가까이 하면 다 공이나 조세이처럼 되는 거요? 이번이야 공의 도움을 받았지만, 다음에는 내 힘으로 올라설 것이외다.”

“모쪼록 그래주시길. 그거야말로 주군께 유익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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