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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09화 (109/225)

109화 대탐광시대(4)

가토 기요마사를 돌려보낸 히데요시는 혼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기요마사, 그 아이가 낼 만한 계책은 아닌데. 어쨌거나 나쁠 일은 없겠지. 그보다도 코가 쿠보를 이용하려면…….’

후지산 동쪽 사면은 전통적으로 호조 가문의 영지. 그리고 그들의 본거지인 오다와라 성의 코앞이기도 했다. 요구한다고 해서 순순히 내어줄 만한 동네는 아니었다.

‘결국은 무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나.’

손에 든 패라면 썩 괜찮은 녀석이 하나 있었다.

배다른 동생에게 쫓겨난 호조 우지마사. 그가 기요스 성에 머무르고 있었으니,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이면 충분할 터였다.

하지만 우지히데는 이쪽에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황. 괜히 건드렸다가, 오다 가문의 명성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정보를 더 모아 봐야겠군.’

*       *       *

우지마사는 반가운 손님을 맞았다.

통치를 방기하고 있는 오다 노부나가를 대신하고 있는 세 명의 가신 중 하나, 하시바 히데요시가 그를 찾아왔다.

“드디어 군을 움직이기로 한 것인가?”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공의 말씀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겠지요.”

그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은 아니었지만, 몸이 달아오른 우지마사는 상대의 말을 덥썩 물었다.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해 주겠네. 무엇이 필요한가?”

“우지히데가 공격해 온 날,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말이네…….”

온갖 미사여구와 욕설을 제외하면, 그 내용은 전에 들었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대군이 오다와라 성 앞에 나타났고, 가신들 중에서 내통한 자가 성문을 열었다는 것.

예전에 들었을 때에는, 성을 허망하게 내준 것이 무사의 수치라며 속으로 비웃기만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계책으로 쓰려면 쓸 구석이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히데요시가 방문을 나오는 동안에도, 우지마사는 애원하듯이 그에게 매달리며 도움을 청했다. 그 추한 모습을 떨쳐내듯 고개를 휘휘 저은 뒤, 히데요시는 자신의 주군을 찾아갔다.

“오랜만이군.”

“주, 주군!”

평소처럼 술에 절어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히데요시는 멀쩡한 노부나가의 모습에 놀랐다.

“취한 모습이 아니라 이상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꽤 많은 일이 있었지.”

그의 주군은 가신의 오해를 납득할 수 있다는 듯, 관대한 어조로 말했다.

“가신들 중 대부분이 독단으로 일을 처리할 때도, 네 녀석만이 나를 찾더군.”

“가신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 당연한 걸 하지 않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겠지.”

그렇게 말한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용건을 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그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내보였다.

“믿기지가 않는군. 하지만 아무리 세입이 많다고 해도, 고니시군의 화약 소모는 상식을 뛰어넘었지.”

정말 모래톱이라도 파서 화약을 빚어내지 않는 이상에야, 그 비싼 소모품을 펑펑 써 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호조 가문을 어찌해야 할지 내게 물으러 왔다고?”

“그렇습니다.”

노부나가는 한참을 껄껄 웃더니, 농담조로 그의 가신에게 호통을 쳤다.

“네 녀석은 그래도 머리를 좀 쓸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

“예, 옛?”

“비단 염초가 걸린 일이 아니라고 해도, 호조 가문을 한번쯤 손보기는 해야 했다. 너무 한 가지에만 몰입한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한 노부나가는 더 설명해 주지 않고, 심부름꾼을 불러다가 가신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자, 니와 나가히데와 시바타 카츠이에를 비롯한 오다 가문의 가신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노부나가의 멀쩡한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모두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고생이 많았다. 다들 천하인의 풍모가 보이더군.”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상납할 세금을 속이고, 심지어 노부나가의 아들들과 결탁해 파벌을 형성하기까지 했다. 주군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괴짜 중의 괴짜. 함부로 변명 따위를 했다가는 되려 목이 날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오다 가문의 가신들은 모두가 고개를 조아릴 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꽤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를 찾아온 자가 어찌 하시바 히데요시 하나뿐이었단 말이냐!”

오직 노부나가의 목소리만이 오다 저택의 알현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카츠이에. 너는 원래 내 동생의 편을 들었었지. 그래도 나는 너를 용서하고 중용했다. 헌데 어찌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했냐는 말이다! 지금 해명할 기회를 줄 때 냉큼 입을 열어!”

노부나가의 지목을 받은 카츠이에는 쩔쩔 맸다. ‘귀신 시바타’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주군께서 완전히 속세를 놓아 버리신 줄 알았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하하하하. 네가 그렇게 아츠모리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구나. 어디 한 곡조 뽑아 보거라.”

어느 무사나 현세의 명예를 추구했지만, 카츠이에는 특히 그런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인간 세상의 허망함을 노래하는 아츠모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죄를 지은 것은 본인이고, 주군의 명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카츠이에는 안 나오는 목소리를 억지로 내가며, 필사적으로 아츠모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노부나가는 고개를 돌려 다음 가신을 불렀다.

“니와 나가히데, 내 오랜 친구여. 자네는 영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도 내게 고하지 않았지. 그 이유가 무엇인가?”

다음으로 지목받은 가신은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다.

“간레이가 오다 가문의 마지막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흠, 제법 세련된 변명을 하는군. 하지만 내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감히 후계를 논하다니, 괘씸하다.”

그렇게 말한 노부나가는 시바타 카츠이에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명을 내렸다.

“하지만 네가 시바타의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춘다면, 그 괘씸함을 용서해 줄 순 있지.”

나가히데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역시 주군의 명을 거부할 도리가 없었다.

가신단의 두 필두가 춤과 노래를 끝낸 뒤, 노부나가는 다시 가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하시바 히데요시만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석고 일만석을 가증하고 다이로(大老 대로, 우두머리격 가신.)로 세우려 하는데, 불만이 있는 자는 지금 나와라.”

설령 불만이 있다 해도, 이 자리에서 감히 드러낼 자는 없었다.

*       *       *

“아무래도 노부나가가 작심한 모양이군.”

호조 우지히데는 오와리에서 온 서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곁에 있던 시메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주군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전포고라도 날린 겁니까?”

“차라리 그게 속편할 것 같군.”

오다 측의 요구 조건은 두 가지였다.

호조가문의 본거지인 오다와라 성을 코가 쿠보의 치소로 넘길 것. 그리고 성의 관리자는 호조 우지마사로 할 것.

코가 쿠보는 마땅히 코가(古河 고하)에 치소를 두어야 할 터이나, 궁벽한 곳에 둘 수 없으니 오다와라 성을 양보하라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호조 측으로서는 거절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하필 성주로 거론된 이름이 호조 우지마사였기에, 섣불리 쳐내기도 어려웠다.

비록 호조 우지마사가 가신들에게 인망을 잃어 쫓겨나기는 했으나, 아직 그의 편을 들 자들은 남아 있었다.

“혹시 다른 밀사가 잡히지는 않았나?”

“그 자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성중의 경계를 철통같이 하고 있으니, 더 들어오지 못하는 듯합니다.”

얼마 전, 우지마사가 보낸 밀사가 잡힌 적이 있었다. 역시 내통을 부탁하는 편지를 품에 지닌 채였다.

시메온은 자신의 주군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우지히데는 안색을 풀지 못했다.

“아무래도 오다와라 성은 너무 취약하지 않은가.”

쉽게 얻은 성은 잃기도 쉬운 법이다. 우지히데가 오다와라 성을 접수했을 때의 일이 재현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아예 오다 가문이나 도쿠가와 가문에게 넘기라는 것도 아니니…….”

오다와라 성의 주인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지키기 어려운 성이라면, 아예 친족에게 넘겨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우지히데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민을 거듭했다.

“오다와라 성을 내어놓지.”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시메온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군의 결정을 확인했다.

“아예 오다나 도쿠가와가 차지한다면 몰라도, 우지마사 역시 호조 일족. 게다가 코가 쿠보를 품에 안게 되는 셈이니, 가문의 입장에서 나쁠 건 없네.”

거기다가 가신들 중 의심스러운 자들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장점은 덤이라며, 우지히데는 쓰게 웃었다.

“가마쿠라로 옮겨 가실 겁니까?”

“거긴 오다와라 성과 입지가 크게 다르지 않지.”

“그러면……?”

시메온의 질문을 들으며, 우지히데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 천하의 중심은 물론 기나이지만, 정말 잠재력이 좋은 땅은 따로 있네.“

- 혹시 큐슈 북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거기도 물론 요지 중의 요지라 할 만하지. 하지만 내가 말하는 곳은 호조 가문의 영지에 속해 있네.

우지히데를 후원했던 자는 무사시(武蔵)국을 지목한 바 있었다. 지금은 늪지대에 불과하지만, 개간을 끝낸 뒤에는 그 어느 지역도 거기를 따라갈 수 없다고도 했다.

- 자네 부친도 무사시국을 개간하려 애쓴 걸로 기억하네만…….

- 그러시긴 했습니다. 하지만 품이 너무 많이 드는 일이라, 지금도 여전히 늪지대일 겁니다.

- 거길 한번 개발해 보게.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걸세.

회상을 마친 우지히데는 호조 가문의 영지를 그려놓은 지도를 펼쳤다.

“치요다, 치요다(千代 천대) 성으로 옮기지.”

역시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지만, 사방이 늪지대라 적을 막기에 유리할 터였다. 그리고 정말로 고니시 유키나가의 말이 옳다면, 여기에 눌러앉아 천하를 노리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을 정리한 호조 가문의 당주는 가신들을 불러 모았다.

*       *       *

“결단을 내려주어서 고맙군.”

“동국 무사의 하나로서, 코가 쿠보를 받드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지히데의 판단은 모두를 만족시켰다.

오다 노부나가는 원하던 자원을 얻었으며, 호조 우지마사는 자신의 본거지를 되찾았고, 호조 우지히데는 안정을 얻었다.

원래 상태를 생각하면, 가장 손해를 본건 역시 우지마사라고 할 수 있을 터. 이리저리 땅을 갈라준 만큼 불만을 품을 만도 했건만, 정작 그 본인이 가장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물론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우지히데가 가져간 무사시국은 고작해야 늪지대에 불과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대가로, 험악한 산악지대쯤은 얼마든지 넘겨줄 수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땅은 사가미(相模 상모, 오늘날의 요코하마에서 후지산에 이르는 지역.)국의 평야지대였고, 거기야말로 가문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성과를 얻은 세력은 오다 가문이었다.

염초 광산을 얻을 수 있었고, 동시에 후방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인 호조 가문을 반으로 갈라 놓았다.

“그런데 정말로 우지히데가 오다와라 성을 쉽게 내놓을 거라고 생각했나?”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아예 무사시로 도망가 버린 건 의외였지만 말입니다.”

“우지히데는 보기보다 겁쟁이였던 모양이다.”

노부나가가 그렇게 말한 뒤, 주종은 나란히 마주보며 박장대소했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다시 주군 쪽이 입을 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를 상대하는 건 미뤄야겠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대신 다른 방향으로 세를 키워야겠더군. 히데요시, 북으로 가라.”

“알겠습니다,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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