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대탐광시대(2)
모리 테루모토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나날이 세를 더해가는 오토모 가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오토모 역시 속편한 나날을 보낸다고 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류조지 다카노부. 그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묵인 아래 명과 밀무역을 행하며, 큐슈 서부를 규합했다.
“이대로라면 큐슈를 일통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물론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무척이나 많았다. 당장 눈앞의 오토모 소린은 물론이고, 남쪽에서 급격하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시마즈 일족까지.
거기다가 큐슈의 혼란을 저 교활한 모리 가문이 내버려둘 리 없었다.
“역시 사카이 쿠보는 버리고 간토 간레이와 손을 잡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흠······.”
류조지 가문을 섬기는 무사 중에서,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과도직무)라는 자가 그렇게 입을 놀렸다.
“물론 쥬나이곤(中納言 중납언, 여기서는 정시 관위가 아닌 류조지 다카노부의 자칭.)께서 사카이 쿠보의 도움을 얻으신 건 있지만 말입니다. 먼 길을 가는 데, 배도 갈아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류조지 다카노부가 이렇게 세를 키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원래 큐슈 서쪽에서 제일가는 세력은 류조지가 아니라 마츠라 일족. 그러나 그들이 조선을 건드리면서, 그 대가로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토벌당했다.
그리고 당시 그 유키나가에게 줄을 댔던 류조지가 마츠라 일족의 공백을 틈타 큐슈 서쪽의 지배자가 되었던 것이다.
히젠(肥前 비전, 큐슈 서부) 내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와 연이 있는 세력은 류조지 하나 뿐이었고, 덕분에 다카노부는 순조롭게 히젠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현재의 큐슈 내 세력들에 순위를 매기자면, 1위가 오토모였고 2위가 바로 류조지였다. 하지만 그 뒤를 매섭게 추격해오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시마즈 가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시마즈야말로 2위일지도 모를 일이긴 했다. 비록 히젠이 상국(上国)에 속하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사츠마는 중국(中国)을 셋이나 차지한 상황. 결코 남쪽의 촌놈에 불과하다 얕볼 수 없는 세력이었다.
류조지 다카노부는 히젠 하나에 만족할 수 없는 야심가. 하지만 이제 그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시마즈와 손을 잡고, 오토모를 치느냐. 아니면 시마즈를 쳐서 세를 키우느냐. 일견 보면 전자가 쉬운 듯해도 복잡하게 꼬인 정세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하카타 일대에서 나는 석탄은 거의 대부분이 기나이로 보내졌다. 소문에 의하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석탄의 수급을 매우 중시한다고 했다. 그러니 수급처의 혼란을 내버려둘 가능성은 극히 낮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마즈를 친다는 건, 간단하게 어리석은 일이었다. 1위가 세를 보전하고 있는 판에, 2위와 3위가 알아서 힘을 빼준다는 의미였으니.
“오토모 소린이 모리 테루모토와 한판 벌여주면 차라리 고맙겠는데 말이야.”
“그럴 리 없다는 건 쥬나이곤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해본 말이네.”
만약 다카노부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소린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적이 될 터. 그렇게 되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 일이었지만, 역시 오토모 소린은 어리석지 않았다.
“나중에 변화가 생기면 몰라도, 지금 사카이 쿠보에게 등을 돌리는 건 대단히 바보 같은 짓이야.”
류조지 다카노부는 그렇게 선을 그었다.
“그보다도 말이야. 하카타 일대에서 석탄이 나온다면, 히젠에서도 나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나.”
지금 오토모 가문이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지니는 가치란 결국 석탄의 주요 수급처라는 것 하나 뿐이었다. 그러니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굳이 그쪽과 척을 지게 되지 않더라도, 오토모 가문을 칠 수 있을 터였다.
* * *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류조지 가문 단독으로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상대할 수 없지만, 간토 간레이쯤 되는 대세력가가 같이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터. 하지만 역시 주군의 방침까지 거슬러가면서 강행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집에 머무르고 있는 손님에게 전말을 설명했다.
“그렇게 되었네.”
“안타까운 일이군요.”
하시바 히데요시가 보낸 자는 갑갑함을 느꼈지만, 그 한마디로 자신의 감정을 마무리지었다.
“물론 주군께서도 언제까지고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계시지만은 않을 걸세. 그때 다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하지요.”
결국 임무를 실패한 가토 기요마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자청한 일이니, 그의 주군은 따로 책하지는 않을 터. 하지만 스스로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고 말았다.
하시바 히데요시에게는 대를 이어 섬겨온 후다이(譜代 보대) 가신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그리고 기요마사는 그 먼 친척으로서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토야 조세이가 기요마시가 받는 석고의 다섯배인 일천 석을 받으면서, 그는 초조함에 시달렸다.
조세이는 굴러들어온 돌. 그리고 자신은 하시바 히데요시가 영지를 받기 전부터 따라다닌 무사. 하지만 지금 그의 주군은 기요마사보다 조세이를 더 중용하고 있었다.
이 경쟁자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군은 임무를 달성했다며 총애를 거두지 않았다.
- 고작 세치 혓바닥을 놀린 공이 그렇게 크다면, 저 역시 공을 이루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호기롭게 나섰지만, 이제 기요마사는 빈손으로 돌아갈 처지였다.
히젠에서 오와리까지 곧장 가는 배는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편히 가려면 어쨌든 기나이까지는 배편을 이용해야 했다.
물론 바다는 간토 간레이의 적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역이었지만, 지금 그는 신분을 감추고 멀리 나온 상황. 머나먼 타지에서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 육로 대신 해로를 선택한 그의 선택은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지루한 배 위에서 할 일이라곤, 문자 그대로 잡담하는 정도가 한계였다. 그리고 뱃사람들은 온갖 이야기를 품속에 담고 있었다.
“세토 해는 바다도 아니지. 그냥 호수야, 호수라고. 배 좀 탔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망망대해에서 한 달은 지내봐야지.”
기요마사는 선원들에게 흔한 선객(船客) 중 하나였고, 뱃사람들은 자기 과시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자기네끼리 모여서 누가 가장 험한 바다를 경험했는가를 이야기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육지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경험했노라 자랑했다.
“파도는 또 얼마나 거친지 알아? 육지가 가까우면 그나마 그걸로 길이라도 잡지, 먼 바다에서는 별자리로 위치를 잡아야 한다고.”
그런 자랑거리는 기요마사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그냥 심심풀이로 흘려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그의 관심을 끌어당길 만 했다.
“염초? 그거 다 바가지야, 바가지. 코쟁이 놈들은 엄청나게 비싼 값을 받아먹어가면서 쥐꼬리만큼 내놓지? 근데 사실은 새똥으로 만드는 거라고.”
“방금 새똥이라 했나?”
“그, 그렇소.”
고니시군이 사용하는 화약은 막대한 편이었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 밑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 고니시군을 주적으로 생각했다.
압도적인 화력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이 주제는 오와리의 무사들이라면 한번쯤 논해본 화두였다.
그런 화약의 재료에 관한 이야기. 그것도 손쉽게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의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을 기회라 할 수 있었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군. 좀 자세히 들려줄 수 있겠나?”
기요마사는 그렇게 말하며, 선원의 품에 은화 한 닢을 찔러 넣었다.
“허, 험험······. 고작 이야기 하나에 뭐 이런 걸 다.”
말은 그렇게 해도,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 뱃사람은 은전을 그대로 자기 품에 간직한 뒤,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류큐 왕국 동쪽의 섬에는 새똥이 가득 쌓여 있는데, 그걸로 염초를 구워낸다는 이야기. 기요마사는 섬의 위치보다는 재료 자체에 주목했다.
‘새똥이나 박쥐똥이나. 차이가 얼마나 날지 모르지만, 해봐서 나쁠 건 없겠지.’
바다새 정도나 얼마 되지 않는 면적에 모여 사는 법. 그리고 육지에서는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기요마사가 생각하기에, 육지에서도 그 비슷한 사례가 없지는 않았다.
바로 동굴 속 박쥐. 히데요시가 처음 영지를 받은 곳은 시나노였고, 이 산지에는 박쥐도 많이 사는 편이었다. 만약 박쥐의 분변이 새의 그것과 같다면, 염초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복귀한 기요마사는 그의 주군에게 죄를 청했고, 역시 히데요시는 관대하게 넘겼다. 애초에 실패한 일이라고는 해도, 이 일로 인해 생긴 손실은 없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 * *
“쌀값이 또 올랐군.”
이유는 간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농지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시정봉행이 걱정하는 것은 역시 쌀값이 오르는 그 자체였다. 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이제 크게 우려할 만한 것이 되지 않았다.
감자의 도입 덕에 절대적인 기근 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 맛이 조금 떨어지기는 해도, 최소한 배고플 일은 없었다.
어찌 보면 쌀밥을 먹고 사는 계층의 투정쯤 될까.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문제에 불과했다.
- 평범한 돌이 아니면, 일단 캐고 봐라!
대충 이런 분위기가 일본 전역에 조성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권 발급 신청이 크게 늘었습니다.”
“탐광업에 뛰어들겠다는 사람들인 모양이군.”
“바로 보셨습니다.”
여권이 없이도 밖으로 나가는 것은 가능했다. 굳이 막을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여권을 발급하는 목적이 중요 인물의 보호인만큼, 아무에게나 발급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물론 어지간해선, 신청하는 대로 모두 여권을 발급받는 편이었다. 애초에 아와지국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시민의 재산 보호는 중요한 문제고, 광산은 당연히 발견한 사람의 몫으로 돌아가야겠지.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 심하군.”
내 영지에서야 무사로 대변되는 사족이 그리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바깥의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몇몇 탐광업자들이 여권도 없이 나갔다가 맨 몸으로 쫓겨나는 일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여권을 지닌 자들은 현지의 다이묘가 눈치를 볼 정도였고, 그 차이를 깨달은 사람들은 모두 이 증서를 발급받으려 하는 추세였다.
“아무에게나 여권을 줄 수는 없다. 이 방침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니, 신청자들에게 주지시키게.”
“알겠습니다.”
베드로의 보고가 끝난 다음은 역시 이치로의 차례였다.
“큐슈의 상황은 어떤가?”
모리 테루모토는 오토모 가문의 대두를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는 없었기에, 나 역시 닌자들을 파견해서 변화를 살피게 했다.
“오토모가 모리를 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어째서지?”
“류조지와 시마즈의 세력이 커지면서, 오토모 역시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류조지의 성장이야 이쪽에서 반쯤 밀어준 거나 마찬가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그 인근 해역은 기나이 다음으로 고니시 수군이 빼곡하게 배치된 곳이었다.
하지만 시마즈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도 역시 전국시대 군웅 중 하나. 언제고 존재감을 드러낼 거라고는 생각했고,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시마즈라······. 그쪽의 상황은 어떻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