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_가족을 건드려(2)
상대는 그렇게 강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신출귀몰한 능력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고속이동인가?’
상대가 사라지자, 방어를 위해 호신강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감각은 계속 피하라고 외쳤고, 이내 몸을 옆으로 피했다.
촤아아악
몸에서 약 1m 정도 위에 떠 있는 호신강기 안쪽으로 클로가 나타나면서 공격이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어서, 클로를 피했고, 다행히 옷만 찢어졌다.
긴장감을 극도로 유지해야 했다.
상대가 언제 어디서 나타나 공격할지 몰랐다.
“언제까지 그렇게 피할 수 있을까?”
상대는 자신을 농락하듯 이미 죽어있는 부하의 몸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앞으로 쏘아지듯 상대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솨아아아
따악
미세한 소리와 함께 놈은 언제 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머리 뒤로 서늘한 느낌이 지나쳤다.
‘그실.’
까앙
반투명한 그레이트 실드가 상대의 공격을 막고는 그대로 깨져나갔다.
“오호~ 방어 마법인가? 그런데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
따악
역시나 들릴락 말락 할 정도로 미세한 소리와 함께 놈이 다시 사라졌다.
호신강기를 일으켜 방어하려다 그만뒀다.
호신강기는 멀쩡한 채, 그 안으로 놈의 공격이 치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피부 바로 위에 띄운 그레이트 실드는 한 번뿐이지만, 공격을 막았다.
이 모든 걸 종합해보면
‘고속이동 능력자는 아니야.’
생각과 동시에 포스를 몸 밖으로 뿜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까강
촤아악
놈의 클로가 포스막을 그대로 찢어냈다.
포스막이 일차로 방어를 해내서 그런지, 아까와 다르게 이번에는 검을 휘둘러 반격할 수 있었다.
촤아악
따악
이번에도 허상을 베었는지 손끝에 걸리는 감각이 없었다.
“오호~ 머리 좀 쓰는데?”
이죽거리는 놈은 죽은 자신의 부하 근처에서 나타났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게 일정한 패턴이 있어. 아니. 능력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거였어. 괜히 손가락이 자유로운 클로를 무기로 쓰는 게 아니었군.’
이론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탄검기를 날렸다.
스르륵
역시나 탄검기는 놈의 허상만을 베어냈다.
예상하고 있어서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대신에 칠성검을 역수로 쥐고는 그대로 땅에 찔러 넣었다.
푸욱
땅을 찌른 느낀 게 아니었다.
손끝에서 확연히 지방과 근육을 찔렀다는 게 느껴졌다.
“크윽…”
쓰러져 있는 부하 중 한 명의 근처에서 다시 나타난 놈은 왼쪽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역시 세상은 넓어 별의별 능력이 다 있으니까. 사람의 그림자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능력이라니 말이야.”
호신강기가 통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놈은 호신강기 안에 있는 그림자로 이동했었다.
그래서 ‘그레이트 실드’와 피부 위에 덮어 씌워진 포스 막에는 클로가 막혔던 거였다.
“알게 됐다고 변하는 건 없다.”
“그건 두고 볼 일이지.”
다시 한번 탄검기를 날렸고, 역시나 적은 허깨비가 되어 사라졌다.
까강
클로가 등을 가격했지만, 범위를 좁힌 호신강기에 튕겨났다.
당황한 놈이 다시 사라지기 전에 검을 움직였다.
쾅쾅쾅
스르륵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이렇게 검을 휘두르면 사라졌는데, 놈은 쉽게 사라지지 못하고, 약간의 딜레이가 있었다.
‘역시 그림자 이동. 발동 조건이 핑거 스냅이었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놈은 날 한 번 노려보더니 핑거스냅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공격이 들어올 차례이기에 칠성검에 포스를 집어넣어서 바닥에 있는 그림자에 폭발하듯이 찔러넣었다.
콰아아앙
그림자에서 왼쪽 팔이 사라져 있는 놈이 튀어나왔다.
쓰러져 있는 놈을 향해 재빨리 칠성검으로 목을 겨눴다.
“체크 메이트.”
놈이 오른손에 핑거 스냅을 하려고 하자, 발로 손을 짓밟았다.
그러자, 그림자 이동술을 사용하지 못한 놈이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피를 뱉어냈다.
중상에 가까운 피해를 받은 놈을 향해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의뢰자가 누구지?”
“쿨럭~ 크크크. 그걸 말하는 순간, 이 업계에서는 더는 일 못 하지.”
“그럼 말해도 되겠네. 이제 평생 휠체어 신세가 될 테니까.”
서걱
어느새 칠성검을 휘둘러 놈의 양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잔인한 행동이었지만, 이놈은 가족을 건드렸다.
“크아아아아악!!!”
악다구니를 쓰는 놈을 향해 검을 역수로 쥐었다.
“역시 독하네. 알았어. 이제 끝내줄게.”
겁을 줄 요량으로 검이 천천히 심장 쪽으로 향했다.
솔직히 이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심장에 검을 쑤셔 박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놈은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죽기 싫었는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양현도! 거삼 그룹 셋째 아들 양현도가 시켰어.”
“진작에 말했으면 좋았을걸. 그래 그는 지금 어디 있지? 그리고 어둠의 성녀가 여기 있다는 걸 또 어떻게 알았지?”
“크크크.”
손쉽게 대답해 줄 것 같았지만, 놈은 그저 거슬리는 웃음소리만을 내뱉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생각해보니까,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죽을 것 같은데, 내가 괜히 말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틀린 말이 아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
아공간에서 붉은 포션을 꺼냈다.
“크크. 포션? 겨우 그거 하나로 내가 살 수 있을까?”
포션의 뚜껑을 열어서 그대로 놈의 입에 붉은 포션을 부었다.
방금까지 삶을 포기했으면서 놈은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포션을 모두 받아먹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비꼬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응? 바드득. 너 대체 내게 뭘 먹인…크아아아악!…”
혀를 깨물 수도 있기에 놈의 옷을 찢어서 입을 틀어막았다.
“그게 도움이 될 거야. 살지 죽을지는 네가 정하는 거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각을 향해 검을 들었다.
그러자, 백여 명의 로브를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이놈이랑 연관은 없는 것 같고…너희가 레이지를 납치한 놈들이구나.”
로브인들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흉흉한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다가오는 로브인들을 향해 허공에다가 연속으로 아주 빠르고 짧게 검을 찔러 넣었다.
두두두두두
기관총이 발사되는 것 같은 소음이 울렸고, 다가오는 로브인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 단 하나의 핏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쓰러졌던 로브인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달리듯이 다가왔다.
‘일점술이 먹히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이거다.’
***
유신이 밖에서 싸우고 있을 때,
마리는 레이지와 유신의 가족과 함께 벙커에 있었다.
싸움으로 인해 벙커가 붕괴될 수도 있기에 마리는 벙커 안에 신성력으로 장막까지 만들어 두었다.
그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안심한 마리가 옆에 있는 레이지를 바라봤다.
“레이지. 괜찮아?”
끄떡끄떡
예전에는 레이지가 수다를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행동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십 년 넘도록 얼마나 고생했는지, 가슴이 아파왔다.
그때 희선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도와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희선이 성녀인 자신의 얼굴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은 철저하게 외부에 얼굴을 밝히지 않았다.
즉, 얼굴을 아는 사람이 정말 극소수라는 거였다.
“아닙니다. 이게 다 유신이 교황청의 일을 하다가 생긴 건데요. 차후 이와 관련된 것은 모두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주신다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통해 확실히 유신이 누구를 닮았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다가 희선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우물쭈물하는 모습까지 유신과 닮아 있었다.
“묻고 싶으신 게 있으시면, 편안히 물어보셔도 됩니다.”
“아니 저 그게….”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성녀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자한 표정을 지었고, 희선은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사실. 아들이 걱정돼서요. 괜찮겠죠?”
부모로서 충분히 할 걱정이었지만, 아직 이들은 유신의 강함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희선이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더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벙커가 흔들렸다.
아직 장막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벙커에 신성력을 더 불어 넣었다.
이내 시간이 지나고, 지진이 가라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불안한 눈빛을 한 희선이 보였다.
“어머님?”
“네. 네?”
“걱정하지 마세요. 하유신은 3천의 영웅 이후 새롭게 지정된 영웅입니다. 그의 강함은…”
그때 벙커 문이 열렸다.
“선배 죄송한데요. 올라오시기 전에 여기 좀 치워야 하는데, 사람들 좀 불러주실 수 있으세요?”
“알았어.”
유신의 말에 대답한 후에 희선을 돌아봤다.
“아직 위험하니까. 가족분들과 함께 여기 계세요.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죠? 유신이는 영웅입니다. 아니 그 강함은 3천의 영웅을 넘어섰죠.”
***
유신은 새로운 검술을 펼치기 전에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들이 누구인지 기억해 냈다.
“저번에 제이미를 납치했던 놈들과 한패였네. 그럼 봐줄 필요가 없겠어.”
로브인들은 동료가 죽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움직이는 꼭두각시술을 사용한다.
칠성검을 양손으로 잡은 후, 우에서 좌로 검을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솨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원형태의 오러가 날아가서 로브인들을 휩쓸었다.
방금 휘두른 일격은 고작 오러를 뿜어내서 베는 게 아니었다.
검을 베면서 일점술의 묘리를 일으켜 점을 선으로 만든 일격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격이네.”
툭.두툭
말이 끝나자, 로브인들의 로브가 찢겨나가고, 그들의 몸은 상하체가 나누어져서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로브인들을 처리하고, 포션 때문에 아직도 부들거리는 놈을 바라봤다.
부르르르
아직 10분이 지나지 않았는지, 계속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단된 부위에 피가 멈춘 걸 확인한 후에, 다가가서는 입에 물린 천을 빼냈다.
“크아아악!! 죽여! 날 죽여!! 이 악마야!!!”
“나중에 고맙다고 하지나 마.”
툭툭툭
점혈을 이용해 마혈을 짚고 놈의 떨어진 왼쪽 다리를 들었다.
퐁
새로운 붉은 포션을 연 후, 놈의 다리에 떨어진 다리를 맞춘 후, 붉은 포션을 부었다.
부글부글
절단면이 끓어오르더니, 이내 다리가 붙었다.
반대 다리도 똑같이 해준 후 마혈을 풀었다.
그런데, 고통의 비명을 지를 줄 알았던 놈은 조용했다.
“응?”
놈의 얼굴을 보니, 입에서는 거품이 올라왔고, 눈은 흰자위만 있었다.
“뭐야? 암살자라는 놈이 겨우 이것도 못 버텨?”
기절했지만 놈을 이대로 둘 생각은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정신을 차린 후에 도망갈 수도 있기에, 다시 한번 마혈을 짚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시체와 핏자국이 있는 것을 가족이 본다면, 놀라 자빠질 게 뻔했다.
그래서 벙커 문을 살짝만 열었다.
“선배 죄송한데요. 올라오시기 전에 여기 좀 치워야 하는데, 사람들 좀 불러주실 수 있으세요?”
“알았어.”
벙커 문을 다시 닫은 후 유신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놈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애애애앵
사이렌 소리와 함께 뒤늦게 기동대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기동대원들이 주위에 널린 시체를 보고선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어리바리해 보이는 기동대원 중 한 명이 총을 꺼내서는 자신에게 겨눴다.
“소.손들어 움.움직이면 쏜다.”
그 모습에 다른 기동대원들이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총 내리지 못해!”
타앙
선배 기동대원의 말에 깜짝 놀라 총을 발사한 기동대원은 스스로 놀라서 총을 떨어뜨렸다.
“내…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자책하는 그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신처럼 어리바리한 사람이 기동대 정식 대원이라고요?”
“어? 어?! 사.살아 있어?”
당황하는 기동대원을 보며 잡아챘던 총알을 떨어뜨렸다.
“지금 제가 살아 있다는 것만 보이십니까?”
“죄.죄송합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기동대원은 주저앉은 채 사과했지만, 난 표정을 굳히며 그에게 다가갔다.
“뭐. 저니까 살 수 있었던 겁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알겠습니다.”
기동대원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 자리에서 일어나 책임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제가 누군지 아시죠.”
“네. 그렇습니다. 한국의 자랑 하유신 영웅님입니다.”
“그렇게까지 금칠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소속이?”
“3기동대 17조 팀장입니다.”
“네. 팀장님. 저랑 이야기 좀 하실까요?”
“알겠습니다.”
팀장과 함께 한 쪽 구석으로 간 후, 웃으며 말했다.
“언제부터 기동대에서 저런 어리바리한 인원을 뽑았죠?”
“아…저 그게…죄송합니다. 제가 교육을 제대로 못 해서.”
“기동대는 최소 2년 동안 훈련만 받습니다. 그리고 사과를 듣고자 이렇게 둘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요. 누굽니까? 누가 기동대를 이렇게 바닥까지 끌어 내린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