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_트윈 헤드 오우거(3)
설화 속 도깨비는 언제나 장난꾸러기로 묘사된다.
도깨비가 좋아하는 음식은 메밀이고, 가장 즐기는 운동은 씨름이다.
거기다가 이야기 속 도깨비는 못된 양반이 있으면 도깨비 방망이로 혼내줬다.
반대로 착한 사람은 도깨비 방망이로 금은보화를 선물했다.
서민의 음식을 좋아하고, 서민의 스포츠를 즐기며, 신분의 고하 상관없이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도깨비.
이걸 통해서 도깨비는 가장 인간과 친밀한 요괴였다.
그러면 도깨비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설화가 괜히 존재하지 않았듯이 도깨비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거기다가 나라별로 도깨비와 비슷한 존재도 있었다.
그렇다면 도깨비가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가이아의 명령으로 인간계를 지키는 거였다.
수천 년간 인간들 몰래 마족과 싸워왔던 도깨비는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했다.
인류가 가이아의 축복으로 능력을 개화했을 때도 도깨비는 인류 몰래 마족들과 싸웠다.
아람은 그렇게 마족들과 싸웠던 도깨비 중 하나였고, 단 세 번밖에 죽지 않은 최고의 도깨비 전사였다.
그렇게 마족과 도깨비의 기나긴 접전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아람의 형제이자, 또 다른 최고의 전사 도깨비인 하람이 도깨비들을 배신했다.
“아드득 하람!!!”
지친 아람이 배신자 하람을 생각하자, 분노로 인해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가장 순수했던 최고의 도깨비 전사 아람은 이제 마기에 물들어 버렸다.
찬란했던 푸른 도깨비불은 어둡고 더럽혀진 검은 도깨비불이 되었고, 자랑스럽던 자신의 가슴, 팔, 정강이에 있던 털도 빠져버렸다.
“내 영혼을 갈아 넣어서라도, 네놈의 영혼을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버릴 것이야!!”
잔잔하게 피어올랐던 검은 불꽃이 이제는 아람을 뒤덮었다.
“쿨럭!”
흥분했던 아람이 검은 피를 토해내자, 검은 불꽃이 점점 가라앉았다.
불꽃이 다 사라진 아람은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슥 닦아내고는 공허하게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혼잣말한다.
“이런이런 제가 흥분했군요. 무턱대고 화부터 내는 건 적성에 맞지 않는데 말이죠. 우선 하람이 있는 곳부터 알아봐야겠군요··· 그리고 복수를 하려면 역시 몸부터 회복해야겠어요.”
아람이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 땅에 내려찍었다.
펑!
방금까지 아람이 있던 숲은 이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아람이 뱉어낸 검은 피만이 조용히 식어갔다.
***
드디어 내일이다.
내일이면 나는 트윈 헤드 오우거와 결전을 지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대비를 다 했다.
어마무시하게 포스를 잡아먹는 새로운 기술을 숙달하기 위해 포스가 회복되는 족족 사용했다.
그러면서 포스 호흡법을 꾸준히 사용해 포스의 순도를 올렸고, 가장 중요한 새로운 기술명의 명칭을 정했다.
스카이 블루 블레이드 샷과 다크니스 쉐도우 같은 멋진 이름을 짓고 싶었지만, 그렇게 짓는 순간 선배들이 또 얼마나 놀릴지 걱정도 됐다.
그렇게 기술명을 정하기 위해 여러 후보군이 있었지만, 고민하고 고민해서 하나의 이름을 정하게 됐다.
“막내 브로~ 그 새로운 기술은 뭔데?”
이제는 ‘브로’라는 단어만 빼면 스피치가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 다리우스 선배의 질문에 나는 검을 뽑았다.
“브로~ 뭐야? 지금 한판 하자는 거야? 나야 좋지.”
아무리 다리우스 선배가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니라 트롤을 손으로 찢어버리는 악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선배라지만, 이런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저승길을 재촉하는 짓이다.
“에이~ 다리우스 선배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하세요.”
“그럼 브로가 왜 칼을 뽑아?”
“기술명만 알려주면 느낌이 안 살잖아요. 그래서 제 새로운 기술을 보시라고요.”
“으흠? 미심쩍지만 믿어주겠어.”
다리우스 선배는 괜히 13기동 타격대에서 날 놀리는 3인방 중 한 명이 아니었다.
눈치가 귀신같다.
나는 다리우스 선배를 필두로 13기동 타격대의 인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시범을 보여주기로 했다.
‘어? 그런데 유호 선배는 어디가 불편한지 배를 부여잡았고, 강문 선배는 벌써 입을 막는다. 뭐지?’
“강문 선배, 유호 선배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 웃을 준비하는 건데?”
“유호, 그건 너무하다. 나처럼 웃음 참을 준비를 해야지.”
“그런가?”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지만, 빨리 시범을 보이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겠다.
“후읍~ 파~”
나는 포스 호흡법을 운용하며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1초
검에 포스 막을 씌웠다.
2초
포스 막 위로 포스를 밀어 넣으며 압축하기 시작했다.
3초
검이 서서히 하얀 빛으로 물들어갔다.
4초
완성됐다.
처음 이 기술을 만들 때 5초가 걸렸다.
하지만, 꾸준한 숙달과 반복으로 무려 1초나 줄였다.
그렇다고 포스 소모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최대한 빨리 선배들에게 내 기술을 선보여 줘야 했다.
“하압!!”
내 앞에 있는 집채만 한 바위를 향해 가로 베기를 시도했다.
바위는 위아래가 구분되게 잘렸으며, 내 검이 지나간 구간은 말 그대로 소멸했다.
나는 내 기술의 파괴력에서 놀랄 틈이 없다.
곧바로 땅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쓰압~
역시나 손끝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고, 땅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약 10M정도 쩍하고 갈라졌다.
이제 시간이 없다.
나는 곧바로 남은 포스를 담아 조금 떨어진 바위에 검을 찔러넣었다.
쑤욱~
바위는 두부인 것처럼 너무나 손쉽게 검이 들어갔다.
나는 어마어마한 포스 소모로 인해, 바위에 박혀있는 검을 놓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챙그랑
내가 주저앉자, 바위는 가루가 돼서 바람에 휘날렸고, 검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하아~ 하악~ 어떠세요? 제 새로운 기술···”
“오러네.”
“응 오러야.”
“막내 브로가 벌써 오러를 쓸 줄이야.”
강문, 유호, 다리우스 선배가 질서정연하게 말했고, 그 뒤로 신무, 철호, 라이언 선배가 고개를 끄떡이며 맞장구쳤다.
“아니 선배님들 대체 오러라니요? 이건···”
강문 선배가 말을 자르며 내 의문을 해결해 줬다.
“아!! 유신이 너는 모를 수도 있겠구나. 포스의 상위 단계의 힘이야. 그러니까 검기를 응축해서 만든 게 검강이잖아?”
“······네.”
“포스를 응축해서 만든 게 오러야. 오러를 쓸 수 있는 포스 유저가 드물기도 하고.”
“······”
“하여튼 수고 많았다. 그런데 실전에는 아직 못 쓰겠다. 만드는 데 4초나 걸리면, 전투 중에 나 죽여 주십시오 하는 거니까.”
강문 선배의 조언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생각하고, 고민하고, 고생해서 만든 ‘순백의 광검’이 이미 ‘오러’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에 좌절할 뿐이었다.
내 오리지널 기술이 카피였다니!!!
이로써 나의 새로운 기술 ‘순백의 광검’은 ‘오러’가 되었다.
***
13기동 타격대는 사흘간 한 장소에 머물면서 수많은 몬스터를 퇴치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13기동 타격대가 이 장소에 머물면서 잡은 몬스터 사체가 시장에 풀리면 한동안 가격이 폭락할 정도로 잡았다.
그만큼 북한은 몬스터가 많았고, 사흘이라는 시간이 한 지역의 몬스터의 씨를 말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아주 약간 정든 이 야영지를 떠나는 날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야영지를 정리했고, 강문 선배가 컨테이너 사무실을 아공간에 집어넣는 걸로 출발 준비가 끝났다.
“대장 다 끝났습니다.”
“하유신 할 수 있겠나?”
나는 대장의 질문에 검을 꽉 쥐고선 대답했다.
“네 준비됐습니다.”
“좋다. 출발하지.”
대장의 출발 신호에 우리는 GPS가 알려준 트윈 헤드 오우거의 서식지로 향했다.
이제 곧 트윈 헤드 오우거와 나의 대결이 성사된다.
나는 중앙에 위치해서 처음으로 선배들에게 보호받으면서 움직였다.
그렇게 빠르지도 그렇다고 늦지도 않은 형태로 이동했고, 그동안 나는 쉬지 않고 포스 호흡법을 운용했다.
솔직히 긴장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를 믿고 내 새롭지만 새롭지 않는 ‘오러’를 믿었다.
아니 믿어야 한다.
트윈 헤드 오우거에게 향하는 길목에는 몬스터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사흘간 선배들이 몬스터를 다 정리해서 보이지 않는 거였다.
그렇게 뻥 뚫린 도로를 달리듯이 우리는 트윈 헤드 오우거의 서식지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녀석과 맞닥뜨렸다.
“크어어엉!”
“크어어엉!”
트윈 헤드 오우거가 우리를 발견하고 두 개의 머리에서 2채널 효과음을 뿌리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은 달려오는 트윈 헤드 오우거를 바라보며 뒤로 몸을 날려 피했고, 나 홀로 트윈 헤드 오우거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선빵필승! 모 아니면 도!’
나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다가오는 동안 이번에 새롭게 익힌 ‘오러’를 준비했다.
‘4, 3, 2···’
거리 계산을 잘못한 건지 아니면, 시간 계산을 잘못한 건지 오러가 솟아오르기 1초 전에 트윈 헤드 오우거의 방망이가 내게 휘둘러졌다.
나는 겨우 몸을 옆으로 틀어서 방망이를 피했지만, 괜히 트윈 헤드 오우거가 아니었다.
쾅!
트윈 헤드 오우거가 휘두른 방망이의 충격파와 풍압만으로도 내 몸이 살짝 날아갔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정신을 놓게 됐다.
소위 말해서 기절했다. 그리고 기절한 순간 [노오력가]라는 능력을 부여받았던 중학교 때가 생각이 났다.
“어? 유신이 기절했네?”
강문 선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고, 아직 트윈 헤드 오우거가 자신의 방망이를 회수하지 못할 정도의 찰나에 가까운 기절이었다.
“아닙니다. 선배님.”
정말 찰나인 0.5초? 아니 0.2초 정도 기절을 한 것 같은데, 저 귀신같은 선배들이 그걸 알아차린 것 같다.
“기절한 게 아니면 뭔데?”
나는 후속타로 날아오는 트윈 헤드 오우거의 발길질을 피하며 뒤에서 언제 꺼냈는지 육포를 씹고 있는 선배들에게 헤픈 웃음을 지으며 몸을 굴렸다.
“잠깐 어렸을 적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오호~ 이제 트윈 헤드 오우거 상대하면서 정신을 팔 정도가 되는 거네?”
“우리 유신이 트윈 헤드 오우거는 껌이라는 소리잖아.”
역시 저 악마보다 더한 선배들은 무력보다 입이 더 악마 같다.
나는 트윈 헤드 오우거의 방망이질을 몸을 뒤로 젖혀 피한 후 일어나면서 반동으로 높게 뛰어올랐다.
검에 집중하면서 트윈 헤드 오우거를 피하느라 이제야 검신에 날카로운 오러가 솟아올랐다.
그렇게 생성된 오러는 트윈 헤드 오우거의 두 개의 목을 깔끔하게 절단냈다.
농구공만 한 목이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하늘 높이 떠올랐다.
씨익, 나는 멀리서 내 모습을 지켜보던 선배들에게 미소 지었다.
선배들은 분명 나의 폭발적인 성장에 놀랐을 것이다.
“저 X신”
“?”
나는 죽어가면서도 나에게 주먹을 내뻗는 목 없는 오우거의 발악에 머리가 터질 수도 있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래 나 하유신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A급 헌터 10명이 모여야 잡을 수 있다는 트윈 헤드 오우거와 동귀어진을 하게 됐다.
[노오력가]라는 능력을 얻고 무능력자라고 놀림을 받은 삶이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게 스스로에게 참 대견스럽다.
‘그런데 왜 안 아프지?’
살짝 앞을 바라보니, 트윈 헤드 오우거가 나를 공격했던 왼손이 통째로 보이지 않았다.
선배들을 슬쩍 바라보니 강문 선배의 총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수십 번 죽을 뻔하게 만들고, 정말 죽기 직전까지 날 괴롭혔던 선배들이었다.
하지만, 이 하나밖에 없는 막내를 끔찍이 생각하는 것도 선배들이다.
나는 울먹이며 선배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선배님.”
“약속은 약속이다. 작전 끝날 때까지 네가 선두에 서고, 매일 밤에는 대련 30분 추가다.”
“그래도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목을 먼저 날렸는데요.”
“그리고 죽을 뻔했지.”
“젠장.”
“우리 막내 유신이 많이 컷네 욕도 하고?”
내 입을 꿰매고 싶다.
평소에는 속으로만 하던 욕을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내뱉고 말았다.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럴 때일수록 두꺼운 철판을 깔아야 한다.
“욕이라뇨 선배님. 전 된장을 말한 겁니다. 오늘 저녁 된장찌개 어떠세요?”
“캬~ 그럼 내 귀가 잘못된 건가? 난 젠장이라고··”
“크아아악~!!”
우리들의 대화는 또 다른 트윈 헤드 오우거의 난입에 멈추게 되었다.
“닥쳐!”
펑!
새로운 트윈 헤드 오우거는 출현과 동시에 ‘크아아악’ 한마디를 내뱉고는 유호 선배의 주먹에 머리가 박살 났다.
머리가 박살 난 오우거의 모습과 잠시 후의 내 모습이 왜 겹치는 걸까?
“우리 [노오력가] 막내 오늘 저녁 대련에서 노오오오오력 좀 해봐. 대련은 오랜만이지? 기대할게?”
‘가이아 여신이시여.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