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봉식이의 마음, 고미의 마음
“이제 일주일 정도 되었느니라.”
고미가 걱정과 의아함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수다르를 바라보며 답했다.
“휴······. 다행입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으면 손쓸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뻔했군요.”
수다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마치 고미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같은 반응.
“필요한 약재가 있으니 잠시 동굴에 다녀오겠습니다.”
“아, 알겠다!”
말을 마친 수다르는 고미와 함께 빠르게 공간 통로를 지나 동굴로 사라졌다.
한편, 아버지와 어머니는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방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니?”
“나도 몰라. 일단 산신령님과 고미 능력이면 별일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내 역할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고미와 수다르라면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잠시 후, 동굴로 사라졌던 고미와 수다르가 다시 나타났다.
“우선 저분에게 이걸 먹여 주십시오.”
수다르가 건넨 붉은 단약을 먹이자, 새파랗게 질려 있던 봉식이의 얼굴에 조금은 혈색이 돌아왔다.
“그럼 이제부터 고미님께서는 웅기조식을 통해 기를 불어넣어 주십시오.”
“아, 알겠다!”
고미의 빳빳한 털침이 봉식이의 몸에 박히고, 동시에 산신령의 약탕기에서 진한 약 향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아기곰이 털을 뽑아 허공섭물로 침술을 펼치는 신기한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 테지만, 부모님의 시선은 봉식이에게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저······. 산신령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나의 질문에 수다르는 잠시 망설이며 고미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으음······. 고미 님과 함께 있어 심신과 기혈이 짓눌린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정말 고미와 함께 있어서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야?
“본디 모든 생물에게는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종종 순리를 거스른 독특한 자질이나 힘을 가진 자들이 태어나곤 하지요. 이분 역시 그러한 체질을 타고난 분입니다.”
수다르가 약탕기에 천천히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인간의 몸을 하고 있으나, 이분의 몸에 흐르는 기운은 인간보다는 야수와 더 닮아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항우나 장비 같은 이름 높은 맹장(猛將)들이 바로 이러한 체질이었지요.”
‘야수의 기운’이라는 말에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이게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피지컬, 맹수 같은 본능이라는 말 외에는 딱히 어울리는 말이 없는 감각적인 격투 센스······..
‘봉식이 스킬 이름도 다 그렇긴 하지······.’
봉식이의 스킬은 ‘야수의 심장’, ‘광기의 마수’ 그리고 ‘전투 광란’ 세 가지였다.
‘모두 야수와 관련이 있네.’
뒤이어 봉식이가 ‘만수왕’의 사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이강혁 씨가 봉식이가 미래에 만수왕의 사도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는데, 그것과도 관계가 있는 건가요?”
‘사도’가 되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것, 두 번째는 자신의 주군이 될 ‘초월자’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
즉, 계약을 하든 안 하든, 봉식이의 기질이나 어떤 특징은 만수왕과 닮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사도가 될 수는 없으니까.
“그렇군요. 어째 기질이 범상치 않다 했더니······. 확실히 이 정도 자질이라면 그 후안무치한 놈의 선택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다.”
계속되는 수다르의 설명에 고미는 안절부절 못하며 나와 봉식이, 부모님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 때문에 봉식이가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그럴 일은 없지만, 가족들이 자신을 미워할까 봐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그럼 나 때문에 봉식이가 이렇게 됐다는 것이냐?”
녀석의 눈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때,
“절대 아니야······.”
봉식이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상태에서 말을 할 수 있다니······. 정말로 놀랍군요.”
순간 부채질을 하던 수다르의 손이 우뚝 멈춰 섰다.
“영감님,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저리 가요. 이딴 건 두통약 먹고 한숨 푹 자면 나을 테니까.”
“이상한 소리가 아닙니다.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라 말씀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시끄러워······. 그런 얘기 들으면 고미가······.”
봉식이가 이를 악물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허허, 정말 대단하군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어나기는커녕 입조차 떼지 못 할만큼 기혈이 뒤엉킨 상태일 텐데······.”
“보, 봉식이! 안 된다! 누워야 한다!”
고미가 허둥지둥 손을 들어 자신을 막으려 하자,
“절대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저 수달이 이상한 소릴 하는 거라고······.”
봉식이는 다시 한번 고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걱정 마십시오. 고미 님과 떨어지라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단약과 고미 님의 웅기조식이 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저 의원으로서 이런 일이 생긴 원인을 설명해드리는 것 뿐입니다.”
이어지는 수다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봉식이는 다시 자리에 몸을 눕혔다.
“고미님은 모든 금수(禽獸)에게 있어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절대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평소 그 힘을 드러내지는 않으나, 봉식님과 같은 체질을 가진 자라면 그 기운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지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동안 봉식이가 고미를 이상할 정도로 두려워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봉식님께서는 고미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늑대 굴에 떨어진 토끼나, 뱀의 품에 안긴 개구리 같은 상태가 되셨을 것입니다.”
“아니야, 헛다리 짚었어, 영감. 내가 고미를 무서워한 건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야.”
거짓말이다. 저놈은 털 알레르기 같은 거 없다.
“허허허······.”
수다르 역시 봉식이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살짝 감격한 표정으로 코를 훌쩍이며 다시 부채질을 시작했다.
“고미님이 세상에 나와 처음 연을 맺은 사람들이 이리도 마음이 따뜻하다니······. 이 수다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수다르의 말에 따르면, 그 본능적인 공포는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공포가 마음을 짓누르고, 끝내 전신의 기혈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했다.
‘음, 일종의 심인성 질환 같은 건가······.’
과도한 불안이나 긴장, 공포 상태가 지속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도 이상이 나타난다. 이는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이미 상식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원인 불명의’ 신체질환은 장기간 스트레스나 불안, 긴장 상태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 정도로 빠르게 증상이 나타날 정도면 도저히 못 견딜 정도로 불안하고 무서웠을텐데······.
그런데도 티를 내지 않은 건······.
‘아마 고미가 부모님을 구해줬기 때문이겠지. 가족이 없다는 이야기에 자기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거고······. 그래서 무섭다고 말하지 않은거야. 혹시라도 고미가 눈치를 볼까 봐.’
봉식이가 고미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머니와 아버지도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두 분 역시 봉식이의 마음을 알고 있는 거겠지.
‘저 등신이, 그럼 나한테라도 말을 하든가.’
그때, 수다르가 인자하게 웃으며 약탕기에서 진한 갈색의 액체를 따라냈다.
“자, 이것을 드시면 웅기조식으로 몸에 흘러 들어간 천지의 기와 고미 님의 기가 경맥에 스며들어 더이상 고미 님의 기에 짓눌리지 않을 겁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물에 기름을 탄 듯 체내의 기가 서로를 배척하겠지만, 봉식님의 체질이라면 오히려 더욱 큰 힘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잔에 담긴 탕약을 건네받은 봉식이는 미심쩍은 눈으로 수다르를 훑어보고는 천천히 그것을 들이켰다.
“근데 이거 맛이 왜 이래요?”
“무슨 맛인데?”
“그, 뭐더라, 페퍼 박사? 그거랑 비슷한데? 김빠진 페퍼 박사 맛.”
······.
정말 한결같이 취향 타는 맛이군.
그래도 인삼 껌이나 민트보다는 낫네.
순식간에 멀쩡해진 봉식이의 모습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미와 수다르의 능력을 눈앞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저런 반응을 보이는게 당연하다.
“보, 봉식이······.”
봉식이의 안색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고미는 차마 녀석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힘없이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눈물만 글썽이며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혹시라도 봉식이가 나쁜 영향을 받을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약 먹자마자 힘이 불끈불끈 나네요.”
“허허, 약이 정말로 빨리 듣는군요. 과연 대자연의 신이 내린 체질을 가지신 분다운 회복력입니다.”
수다르가 놀랍다는 듯 봉식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을 마친 봉식이는 곧바로 고미를 향해 다가가더니 녀석을 번쩍 들어 올렸다.
“괜찮아. 이것 봐, 이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잖아.”
“흑, 봉식이······. 미안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고미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봉식이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봉식아, 이제 정말 괜찮은거니? 미안해, 엄마는 정말로 그냥 머리만 아픈 줄 알고······. 그냥 쉬게 두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코를 훌쩍이며 그렇게 말하자, 봉식이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어머니, 나 진짜 괜찮다니까. 그리고 내가 그냥 쉬겠다고 하고 방에 들어온건데 왜 어머니가 미안해요.”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 회 남았어요? 아들 회 먹고 싶은데.”
봉식이는 천연덕스럽게 먹을 것으로 화제를 돌리며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한 얼굴로 고미의 등을 토닥여주었고,
“흑, 봉식이······. 내가 사과의 의미로 너에게도 회를 나누어 주겠다.”
“그래, 고마워.”
“오구오구, 우리 고미 엄마 아빠한테도 회 나눠줄 거에요?”
엄마가 고미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두들겨 주며 그렇게 묻자,
“후훗, 걱정 말거라. 엄마 아빠에게도 이 몸이 직접 회를 하사할 것이다.”
평소처럼 자신감을 회복한 고미가 귀를 쫑긋거리며 거만하게 답했다.
‘음······. 어째서 만든 건 아빠인데 나누어 주는 건 고미일까’하는 사소한 의문이 들지만, 다들 즐거우니 됐지 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 보상을 선택해 주십시오. >
‘고미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세요.’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평소라면 조금 짜증이 났겠지만, 오늘만큼은 시스템 창의 메시지가 거슬리지 않았다.
이건 고미가 봉식이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줬다는 의미니까.
‘나쁘지 않네.’
이후 우리 가족과 수다르는 달이 중천을 지날 때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다음 날 아침,
수다르는 이강혁에게 넘겨받은 광우의 뿔과 마정석을 가지고 약재를 만들어야 한다며 아침 일찍 동굴로 돌아가려 했다.
반대쪽 손에는 부모님이 포장해준 연어 회와 특제 소스가 들려 있었다.
“허허허, 그럼 며칠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신령님.”
봉식이의 인사에 수다르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수다르를 떠나보낸 후, 나는 한유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 김수하입니다. 연락이 너무 늦었네요. 고미 때문에 급하게 연락 드렸습니다. 오늘 중으로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답신이 왔다.
└ 얼마든지요! 저 고미 완전 보고 싶어요! 오늘 오전에는 약속이 있으니까, 12시쯤에 찾아와 주세요!
답장에는 약속 장소가 첨부되어 있었다.
“고미, 준비됐지?”
나의 질문에 고미가 씨익 웃으며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후훗, 걱정 말거라. 그나저나 참으로 재미있는 작전을 생각해 냈구나.”
“이 작전은 모두 너한테 달려있어. 잘 부탁할게.”
“후후후후후후······.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는 구나! 어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