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50화 (50/300)

EP.50 봉식이가 이상하다

“어머! 아들, 이번에는 또 뭘 데리고 온 거니?”

수다르를 본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반면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수다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로 이분이 산신령님이니?”

“허허, 수하님, 이제 내려 주시지요.”

내 품을 벗어나 바닥으로 내려간 수다르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지리산을 지키고 있는 산신령 수다르 8세라고 합니다. 수하님께서 왜 그리 온후하고 신실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가 하셨더니, 부모님의 얼굴만 뵈어도 이유를 알 것 같군요.”

“안녕하세요, 수하 엄마예요. 산신령님이 엄청 귀여우시네. 어머, 이런 말 하면 안 되나?”

그러자 또 금세 적응한 어머니는 언제 놀랬냐는 듯 친절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수하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싱긋 웃으며 산신령에게 인사를 건넨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들, 그건 가지고 왔어?”

나는 대답 대신 지난 2년간 고이 간직해 온 ‘회칼’과 숫돌이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회칼, 일명 사시미.

한 뼘도 넘는 것부터 내 손바닥보다 작은 것까지, 아버지의 20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보물이자,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온 장사 도구.

가게는 정리하며 다른 것은 다 버렸지만, 언젠가 부모님이 깨어날 거라 믿으며 한곳에 고이 모셔놓았던 물건이다.

“음······. 날을 좀 갈아야겠네.”

말을 마친 아버지는 곧장 싱크대 위로 자리를 옮겨 날을 갈기 시작했다.

칼을 만지는 아버지의 표정은 딴사람처럼 진지했다.

평소에는 엉뚱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칼을 잡으면 한없이 진지한 남자, 그게 우리 아버지거든.

그 장면을 지켜보던 고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우며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는······.

“깨달았느니라!”

뭘 알았다는 걸까.

“수하는 검을 만져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어쩐지 햇병아리치고는 검을 너무 잘 다룬다고 생각하였느니라!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검을 잘 다루는 것이었구나!”

음, 상당히 신선한 사고방식이군.

저걸 검으로 분류하다니······.

무서운 아저씨들이 영화에서 자주 휘두르는 물건이니까, 무기로 보는 것도 가능은 하겠다.

내가 검을 잘 다룬다는 말에 어머니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겨났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지만, 아들이 칼 휘두르고 다닌다는 말이 썩 달갑지는 않겠지.

“자, 오늘 이 몸에게 대접할 요리는 무엇이냐!”

고미가 식탁 위로 폴짝 뛰어오르며 그렇게 묻자, 어머니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고미, 식탁 위에 올라가면 안 돼요. 밥 먹는데 발 올리면 지지예요.”

“지지? 그것이 무엇이냐?”

고미의 질문에 어머니의 눈빛에 묘한 살기가 깃들었다.

“식탁 위에 먼지나 흙 떨어지면 더러워서 안 돼요. 그리고 들어왔으면 얼른 손발부터 씻고 와야지. 엄마랑 약속했잖아요.”

청결 관념이 확실하신 분이니, 아무리 고미라고 해도 식탁에 뛰어 올라가는 걸 허락할 리가 없지.

[ 우, 우웃······. 수하, 어머니는 무슨 무기를 쓰느냐? 살기가 보통이 아니다! ]

그 살기를 감지한 고미는 나에게 전음을 날린 뒤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갔다.

“허허허, 그럼 이 몸도 손발을 씻고 오겠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수다르 역시 곧바로 고미를 따라 화장실로 걸어갔다.

음, 산신령과, 산신령조차 경의를 표하는 슈퍼 먼치킨조차 긴장하게 만드는 살기라······. 어떤 의미에서 최강자는 엄마일지도 모르겠네.

고미와 수다르가 돌아오자, 다시마에 덮여있던 연어의 오렌지빛 속살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야?”

“산신령님이 왔는데 이 정도는 돼야지.”

말을 마친 아버지는 곧장 미리 손질해 놓은 하얀 생선 살을 꺼냈다.

“혹시 모자랄까 봐 광어도 사 왔다. 활어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방법이 없어서 시장에서 산 다음 기본적인 손질만 해서 냉장고에 숙성시켜놨지.”

“허허허허허, 매일 산중에 있어 이런 귀한 음식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어찌 보답을 해드려야 할지······.”

연어와 광어를 본 수다르는 보기 드물게 긴 웃음을 지으며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심지어 평소의 그 점잖은 모습은 어디 가고, 사람처럼 생긴 두 손을 비벼대며 연신 마른 침을 꼴딱꼴딱 삼켜댔다.

“이것보다 더 좋은 걸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죠. 다음에 꼭 한번 놀러 오세요. 제일 좋은 거로 대접할게요.”

어머니가 온화한 웃음을 머금은 채 밑반찬을 깔며 말했다.

“허허허허, 아닙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회입니다. 하지만 산중에만 틀어박혀 지내다 보니 제대로 된 회를 먹을 기회가 없지요.”

역시, 수달답게 생선을 좋아하는구나.

게다가 곰도 원래 연어를 먹으니까 회가 고미와 수달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저것이 대단한 것이냐?”

하지만 고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수다르와 회를 썰고 있는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볼 뿐, 그다지 기대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허허, 저것은 회라는 음식입니다. 아무런 조리도 하지 않은 생선을 그대로 썰어 먹는 것이지요. 얼핏 간단해 보이는 요리이지만, 어떤 방향으로 써느냐, 어느 정도의 두께로 써느냐, 숙성을 얼마나 시키느냐, 심지어 재료가 되는 생선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보관했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심오한 요리입니다.”

음, 회에 대해서도 상당히 해박하시구나······.

그렇게 수다르의 지식에 감탄하고 있을 때,

“그럼, 고작 몇 미리의 차이로 식감이 달라지고, 칼을 넣는 방향이 조금만 달라져도 맛이 달라지죠. 한번 비교해 보세요.”

아버지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썬 광어 회 네 점을 고미와 수다르의 앞접시에 놓아주며 말했다.

앞접시 옆에는 간장과 초장, 쌈장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쌈장이라고는 하지만, 쌈장에 다진 마늘과 고추를 뿌리고, 참기름을 얹은 것으로, 의외로 저걸 좋아하는 손님들도 많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먼저 시식을 해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수다르는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들어 와사비를 푼 간장에 얇게 썬 회 한 점을 살짝 적시더니, 그것을 입안에 넣고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한 두 번 먹어본 솜씨가 아닌데 이거······.

“으, 으음······. 굉장하군요. 비린 맛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사실 너무 얇게 써신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이 정도 횟감이라면 이 정도가 딱 적당하군요. 그야말로 내공이 느껴지는 맛입니다.”

말을 마친 수다르는 곧바로 그것보다 조금 더 두껍게 썬 회를 맛보더니 충격을 받은 듯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산신령님?”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수다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아주 천천히, 천천히, 회를 씹었다.

오랜만에 칼을 잡으셔서 뭔가 실수를 하신 건가?

괜히 나까지 긴장되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조금 전에는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다시 눈을 뜬 수다르가 엄숙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되묻자,

“제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뛰어난 맛이라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말하였건만, 이 두 번째 것은 그 이상의 맛을 가지고 있군요.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고, 이 수다르 8세, 지금껏 알고 있던 맛의 하늘 밖에는 더 드넓은 맛의 우주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괴, 굉장해. 요리만화에나 나올법한 표현력이야.

중국집 아들은 중국 음식 안 좋아한다고,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왠지 저 회는 꼭 먹어봐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수다르의 표현에 감화됐는지, 조금 망설이며 눈치를 살피던 고미도 서둘러 간장에 찍은 회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으음!?”

그리고는 와사비 맛에 조금 놀란 듯 코를 찡그리며 몸을 움찔거리다가, 말없이 두 번째 회를 집어 맛을 보았다.

“이, 이럴 수가······. 어째서 그냥 칼로 썰었을 뿐인데 이런 맛이 나는 것이냐?!”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을 뜬 고미의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155 / 100 ) >

꿀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호감도 상승. 회가 퍽 입에 맞는가보다.

“여, 연어. 연어도 맛볼 수 있겠느냐?”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 뜬 고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이에 아버지는 자신감이 넘치는 손놀림으로 연어의 가시를 모두 발라낸 뒤, 연어회와 함께 채 썬 양파와 비전의 소스를 내놓았다.

“흐음, 이건 처음 보는 소스군요.”

수다르가 흥미롭다는 듯 어두운 주황색의 소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뒤가 비출 정도로 얇게 썰어낸 양파와 함께 연어회를 집어 소스에 찍었다.

산신령이 왜 연어회 먹는 법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걸까.

“음······. 이것은······.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식초와 설탕을 넣어 만들었군요. 그리고 다진 양파와 고추까지······. 이 외에도 한 가지가 더 들어간 듯한데······.”

심지어 들어간 재료까지 거의 다 맞춘다. 대체 뭐냐고, 이 미식 수달은.

“된장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수다르는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요네즈에 된장이라······. 정말로 신선합니다.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가 절묘한 맛을 끌어내고 있군요.”

수다르의 시식 평(?)이 끝나자, 고미도 기다렸다는 듯 연어회를 집어삼켰다.

꼭 어른들이 맛있는 거 먹으면 옆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똑같이 따라 먹는 어린애 같은 모습.

그렇게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려던 찰나, 문득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엄마, 근데 봉식이는?”

“으응, 몸이 좀 안 좋다고, 저녁 안 먹는다고 하네.”

“그놈이 끼니를 거른다고?”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도,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던전에서 통수 맞고 죽을 뻔했을 때도 끼니는 안 거르던 놈이 봉식이다.

게다가 이놈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바로 아버지가 해주는 회다. 광어랑 연어라면 사족을 못 쓰고.

그런데 2년 만에 먹는 회를 마다하고 방 안에 드러누워 있다고?

“야, 민봉식.”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파랗게 질린 채 끙끙거리며 누워있는 봉식이가 눈에 들어왔다.

온몸에서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입술까지 파랗게 질린 꼴이 당장 응급실에 실려 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엄마! 애 병원 안 보내고 뭐 했어? 그냥 안 좋은 게 아닌 것 같은데?!”

“응? 아니야, 아까는 괜찮았어. 그냥 머리가 좀 아프다고······.”

내 말을 듣고는 방안으로 달려와 봉식이의 상태를 확인한 어머니도 갑자기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하긴, 어머니 성격에 애가 아프다는데 그 정도도 확인하지 않으셨으려고······.

그럼 갑자기 이렇게 상태가 나빠진 건가?

“산신령님! 도와주세요!”

봉식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나는 곧바로 수다르를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수다르는 곧장 젓가락을 내려놓고 달려와 봉식이의 맥을 짚어보았다.

잠시 후, 수다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봉식이와 뒤쫓아온 고미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미님······. 송구스럽지만, 이 분과 함께 지낸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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