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5화 상단주와 그의 장녀
* * *
늦은 밤, 거리와 골목을 가득 채웠던 열기도, 인기척도 서서히 줄어들고,
건물과 점포마다 켜져, 한 낮의 빛만큼은 아니지만 주위의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서 충분하다고,
불편이 없을 정도의 광원들도 하나, 둘 씩 꺼져, 치안 유지를 맡은
자경단들이 들고 다니는 횃불에서 나오는 빛 외에는 찾을 수가 없는,
문자 그대로의, 어둠과 정적만이 인류의 거주지에 드리워졌다.
“음…”
간간이 순찰을 위해 지나다니는 자경단원 이외의 사람 이라고는 눈을 크게 뜨더라도 찾을 수 없는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머리까지 후드를 푹 눌러 쓴, 체형으로 보아하니 여자라고 추측되는
한 사람이 태연하게 걷고 있었다.
“하아…”
고작, 자신의 주위를 밝힐 정도 밖에 안되는 광량을 발하는 램프를
들고,
어둑어둑한 골목과 거리를 마치 한 낮에 지나는 것처럼 거칠 것 없이 움직이던 여인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몸을 은폐 시키고,
주변을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살피고,
다시 걷기를 수 차례, 목적지 근처에 도달하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뒤와 주위 경관에 수상한 것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 본 그녀는 불빛 아래에서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는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아버지는 어디죠?”
“남은 일거리를 처리 중이십니다.”
“알았어요, 수고가 많네요.”
목적지인 위층으로 향하기 위해 계단에 한쪽 발을 걸치자, 입구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불편한 기색을 비추며 말했다.
“아가씨,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까 모르겠습니다.”
“그럼 하지 마요.”
여인이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끊고 계단을 오르려고 하자, 남자는 망설이지
말고 터놓고 말 해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야에 혼자 다니는 것은 슬슬, 지양했으면
합니다.”
“맨날 나오는 것도 아닌데 무슨 호들갑을 그리 떠는건가요?”
아무래도 자신의 제안에 귀를 기울일 것 같은 느낌이 도무지 들지 않았기에 사내는 짧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얼마 전에 넷째 아씨에게 불상사가 터진지 얼마 안 지난 마당이잖습니까, 이런 뒤숭숭한 때에 아씨께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우리 목은 확정적으로 날라갈겁니다.”
“알았어요,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해줘요.”
제발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남자는 그녀가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도 않는 조언을 그만뒀다,
그리고 여인은 계단을 가볍게 올라 안쪽에 있는 어느 방문 앞에 섰다, 가볍게 노크를 하자, 방 안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밀은?”
“두 여인들의 곁에서 찾을 수가 있지.”
여인의 대답이 적절 했는지, 잠시 동안 쇳소리와,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굳게 닫혀있던 두꺼운 나무
문이 열렸다, 그러자 익숙한 기색을 보이며 방안에 들어선 여인은 후드를 젖혀 얼굴을 드러냈다,
그 후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이유로 이런 늦은 밤에 부르신거에요?”
책상에 앉아있던 사내는 처녀에게 손바닥을 보여 잠시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사내에게 말했다.
“죤,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나.”
“알겠습니다.”
죤이라고 불린 깐깐한 인상의 사내가 밖으로 나가자 책상 앞에 앉아있던 깡 마른 체구의 사내는 벽난로의 조리대에
주전자를 걸고,
차를 우려내기 위해서 별도로 준비 해뒀던 물을 부어넣었다.
“앉거라, 다소 길어질
테니 말이다.”
몇 번이나 밝힐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의심을 담은 뾰로퉁한
표정을 보이며,
이 근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문양으로 구성 된 쇼파에 엉덩이를 마주대게 했다.
“오늘은 다른 일정이 없다고 알 고 있는데, 왜 그리 신경이 곤두서 있는게냐?”
“있어요, 제 권한으로
회식을 하기로 했었는데, 취소하고 온 거예요.”
그 순간 처녀의 아버지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회식에는 한스도 오는게냐?”
“당연하죠, 그도 우리
상단에서 일하는 사람 중 하나니까요, 물론 바쁘지 않은, 일정이
없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회식이었어요.”
“음, 그러냐.”
“그럼요.”
“술도 적당히 준비하고 괜찮은 음식도 준비해서 분위기도 좋게 만들었겠지.”
“당연하죠, 누구 자식이라고
생각하세요.”
“모두가 적당히 취하면 침소로 데려가 달라고 하겠지.”
“그건 뭐…,무, 무슨 말씀이시죠?”
“루시…”
사내는 처녀의 이름을 무게감이 느껴지도록 부르고는 한 동안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이윽고 마음의 결단을 내린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네가 우리 가문을 위하든 아니든 간에, 그 동안, 네가 많은 일을 해왔고,
노력해왔기에 너의 행동을 제약 않고 있었다만, 한스는 안됀다.”
“어째서죠?”
“후우…”
벽난로의 조리대에 걸어뒀던 주전자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자, 사내는
고뇌감이 느껴지는 걸음걸이로 이동하여 주전자를 빼냈다,
그리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 중인 잔 두 개를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서 찻 잎이 적당량 들어간 뜨끈한 온수를 잔에 부으며 사내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한스에게는 네가 신경 쓰지 않더라도, 그 간의 공을 치하하는 보상이 내려질게다, 그리고…”
사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예측한, 아버지의 사고를 예지 한
처녀가 아름답게 균형이 잡힌 미간을 찌푸리고,
그 누구라도 그녀의 얼굴에서 감히 나타나리라고 상상 할
수 없었던 혐오라는 표정을 안면에 드러냈다.
“아버지, 저는 그 사람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싫어요.”
“하지만 말이다 얘야, 전에는
동의하지 않았느냐.”
“그랬었죠, 그 때는 한스도
없었고, 우리 집안의 상황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었으니까, 받아들였어요.”
처녀는 목이 많이 탔는지, 어느 새 미적지근하게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들이키고, 테이블에 내려치듯이 내려 놓았다.
“그리고 저는 그 작자들이 정말 싫어요, 끔직할 정도로 싫다구요.”
“네가 그렇듯이 나도 그다지 다르지 않단다.”
처녀의, 루시의 얼굴은 한 순간, 아버지인
사내가 자신의 생각과 같다고 하는 말 덕에 환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다오, 명분도 없이 계약을 백지로, 없던 일로
만든다면 세간에서 우리 상단을 뭐라고 생각하겠느냐?”
“한스가 있으니 그 정도 손실이야 금방 메울 수 있을 거예요.”
“네 말이 맞다, 얘야, 그렇다 한들, 손실을 메울 수단이 있다고 한들, 신용을 져버린 상단에 미래가 있겠느냐?”
처녀는 무어라 반박 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아직은 앳된 기가 남아있는, 시집 가는 날은 한참 뒤의 일이라고
생각 했었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딸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이 아리를 보내야 한다는 것,
상단의 명운이 걸린 계약이라는 것, 그 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계약
이행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이야기를 하고,한스에게 포상을 내릴게다,
그 때까지 마음을 다잡도록 하거라.”
사내 또한 입 안이 바싹 말랐는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아버지, 한스가 앞으로도
우리 상단에 남아 있다면 굳이 그 자들을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상단의 미래가 한스 단 한 사람으로 인해서 보장이 된다면,
나 또한 이 따위 계약, 당장이라도 파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게다,
후우, 이 이상의 논쟁은 하덜랑 말고, 돌아가서 정리나 하거라!”
“!”
그 다음 순간, 처녀는 자리를 박차고 방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문 밖에서 듣고 있었던 죤이 불편한 기색을 비추며 들어왔다.
“가르시아 아가씨께 조금 심한 처사가 아니었을런지요?”
“그 애에게 부드럽게 대한다고 해서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 우리
상단에게 닥쳐온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죤?”
“하지만 어르신, 굳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영민한 가르시아 아가씨라면 분명 이해…”
“아비의 마음 따위 몰라줘도 상관없네, 이 가문과 내 자식, 후손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무슨 일이든지
할 걸세, 무엇이든지 말이야.”
“어르신…”
“아무 말 말게.”
사내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쓰러지듯이 소파에 앉았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남자는 항상,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고 항상 속으로 되내어 왔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딸의 진심을 마주하니 거품처럼 사라졌고, 확신도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불확실 해졌다,
점점 깊어져 가는
밤과 함께 한 사내의, 상단주로써의, 또한 아버지로써의 고민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