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잠재력 무한-153화 (153/200)

제153화

이브, 김진현, 천무진 그리고 엘리자베스.

이 네 명은 석찬이 일신상의 이유로 모습을 감춘 이후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콤비라고 말할 수 있었다.

팀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올킬러가 없음에도 여전히 강력한 무력을 선보이며 탑을 오르는 그들은 더 이상 루키가 아니었다.

80층에 도달한 그들은 이제 루키가 아닌 베테랑, 어떤 집단에 들어가도 한 자리는 꿰찰 수 있는 강자가 되었다.

당연히 탑 내에서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70층의 경비병, 올라프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 당신들은?”

이브와 동료들을 본 그는 명패를 확인하면서도 당황한 모습으로 물었다.

“그… 방문 목적이? 세계수 타기? 아니지. 80층까지 오른 양반들이 왜 이런 누추한 곳에?”

“잠깐 볼일이 생겨서요. 그리고 누추하다뇨?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을 그렇게 표현하면 안 되죠.”

“예, 예.”

명패를 돌려받은 그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세계수 타기 이벤트가 진행 중이라 그런지 거리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정체를 숨기려고 후드나 모자로 외형을 가리기는 했지만, 워낙 이름값이 높아져서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와!”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한바탕 소란을 벌인 그들은 양해를 구하며 곧장 세계수 중심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녀석이 거기 있는 것인가?”

천무진의 물음에 진현이 답했다.

“당연하지, 아재. 그 녀석이면 당연히 참여했을 겁니다. 세계수 타기.”

“워낙 메리트가 크니까요. 우리도 77층까지 뚫었는데 오빠는 과연 몇 층까지 갈 수 있을까요?”

이브가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달렸다.

그들은 빠르게 세계수 중심에 도착했다. 그런데, 중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건…?”

중심 쪽에 가득 몰려든 사람들과 쓰러져 있는 나무 거인.

“앤트 가디언?”

기억에 남는 녀석이었다.

77층의 보스 몬스터, 세계수의 수호자, 앤트 가디언. 그런 녀석이 왜 70층에?

‘그리고…’

그것을 쓰러트리다니. 앤트 가디언은 본신의 무력이나 내구도 엄청났지만, 나무줄기로 공격하는 원거리 기술이 까다로워 상대하는 데 꽤나 애먹었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누가?”

그때, 이브의 눈에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질문 공세를 받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왜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거예요?”

“그건 지금은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

“전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된 겁니까?”

“원만합니다. 한 명씩 물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 질문을 동시에 받아내고 있는 흑발의 남자, 석찬을 보며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역시….”

“캬. 앤트 가디언을 잡았다니. 더 강해졌네, 괴물 자식.”

반가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수십에서 수백에 달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뚫고 가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으니, 조금 있다 사람들 빠지면 만나는 건 어떨까?”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제안에 모두가 동의하고, 몇 시간이 지났다.

“후아….”

화려한 복귀를 알린 석찬은 지친 몸을 바닥에 뉘었다.

“아저씨, 끝났어요?”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어느샌가 돌아온 렐과 라우르. 그들에게 배신감이 들었지만 화를 낼 힘조차 없는 지금은 그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몰랐는데, 다시 봤어요.”

“이렇게까지 유명해지고 싶진 않았다.”

“거짓말.”

한동안 실없는 농담이 계속되었다.

“크하!”

석찬은 웃으며 세계수를 올려다봤다.

탑의 천장에 닿아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그 높이가 감히 가늠되지 않았다.

‘앞으로 여길 올라야 한다는 거지.’

[남은 시간 – 30일]

기한은 총 한 달.

‘충분해.’

예상치 못한 팬 미팅으로 하루를 대부분 날려 먹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스윽.

누군가가 석찬에게 다가왔다.

검은 후드로 온몸을 가린 것이 꽤나 수상해 보이는 자였다.

“누구냐.”

석찬은 렐을 뒤로 물리며 후드의 남자를 노려봤다.

휘이잉.

후드의 팔 하나가 바람에 휘날렸다.

“…….”

남자는 말 없이 석찬을 노려봤다. 칠흑같이 검은 흑안과 마주 본 석찬은 주먹에 힘을 꽉 줬다.

순간.

피잉.

후드 속 남자의 눈이 붉게 변화했다. 살기가 흘러나온다. 검은 마력이 후드를 뒤덮는다.

‘공격?’

그것을 본 렐이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검은 마력 때문인지 얼어붙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할 수는 없었다.

‘…….’

석찬을 슬쩍 흘겨보니, 그 또한 여전히 자신을 감싸며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무언가 이상했다.

놀란 듯하면서도 그리운 눈빛이었다.

“아저씨?”

“어떻게?”

“죽어라.”

남자가 검을 뽑아 석찬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석찬은 가볍게 점프해 공격을 피해냈다.

콰지직!

남자의 검격에 휩쓸린 앤트 가디언의 팔이 부서졌다.

‘힉.’

간신히 공격을 피해낸 렐이 압도적인 위력에 침을 삼켰다. 정통으로 맞았다간 죽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발만 더 빨라졌군.”

“너는 여전히 강하네.”

“어디, 얼마나 강해졌는지 한번 볼까?”

남자가 후드를 벗어젖혔다. 그는 외팔인 것도 특이했지만, 여자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절대적인 미(美)가 눈에 띄었다.

천무진, 그가 검을 다시 하늘 높이 올려 들었다.

그 모습에 석찬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피곤에 절었던 눈은 사라진 지 오래. 옛 동료를 보니 다시 전투 본능이 들끓었다.

훙-

쾅!

한 합 만에 주변이 초토화된다. 거대한 앤트 가디언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뭐야, 방금 건?”

그것을 느낀 것은 세계수 주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천지를 요동시킬 만한 충격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세계수 쪽으로 집중되었다.

“굉장하군.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너야말로!”

쾅! 쾅!

석찬의 주먹이 천무진의 검날을 때렸다. 하지만 묵빛 검신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에 금세 거리를 벌렸다.

“그 무기, 예전에 쓰는 거랑 다른 것 같은데… 단단하네.”

“프레드릭 공께 부탁했지.”

“오케이. 계속해?”

“물론.”

천무진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마력이 더욱 몸집을 불려갔다.

‘저 정도면… 최소한 남작급 악마 정도로 취급해야겠군.’

고작 7년 만에 저 정도라니. 천무진의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어려운 건 아니지!’

석찬은 강화 얼티밋 피스트에 신력을 둘렀다.

“그 힘, 제대로 쓸 수 있게 된 건가.”

신력을 경험해본 적 있는 천무진은 곧바로 그 힘이 자신의 왼팔을 앗아간 것과 같은 것임을 알아챘다.

“그래. 한번 받아봐라!”

“와라!”

두 사람이 격돌하기 직전이었다.

“그만!”

불투명한 베리어 두 개가 각각 석찬과 천무진을 감쌌다.

쾅!

각자의 공격을 흡수한 베리어가 파괴되어 흩어졌다.

“이 목소린…”

석찬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 다 그만 해요. 서로 죽이려고 작정한 거예요?”

그곳에는, 이브가 있었다.

“아저씨, 그냥 말로 하면 어디 덧나요? 왜 보자마자 들이대는 건데요?”

“우리 세계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친우와 대련하는 것이 전통이다만.”

“그건 그쪽 세계고요. 오빠도 그래요. 말리면 되는 걸 굳이 싸워야 돼요?”

“미안.”

만나자마자 잔소리를 퍼붓는 그녀와 고개를 굽신거리는 석찬을 보며.

“…….”

렐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하…. 하여간 남자들은, 가만히 둘 수가 없다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천무진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사과했다. 아무래도 이런 적이 한두 번 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알면 됐고. 아니지, 맨날 알겠다면서 똑같은 짓만 하고…”

무언가 말하려던 이브는 석찬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엘프 소녀를 바라봤다.

“쟨 누구예요?”

“응? 렐?”

석찬이 렐을 가리키며 묻자, 이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째려봤다. 빨리 설명을 해달라는 것 같았다.

“그게 말이지.”

석찬은 렐을 만난 일과 겸사겸사 블랙카우를 소탕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흠, 흥미롭네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리자베스가 중얼거렸다.

“뭐가 흥미로워?”

“아까 보니까 그저 구해준 사이라고 하기에는 쟤를 너무 감싸고돌던데…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요?”

“꿍꿍이?”

“빨리 말해봐요.”

이브까지 날카롭게 해명을 요구했다.

“꿍꿍이랄 게 있나. 그저 이 아이를 새로운 동료로….”

석찬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새, 동, 료?”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악마 특유의 검은 마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천무진의 것은 감히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검은 마력이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했다.

“동료, 동료… 여자…”

“에… 엘리? 진정…”

“진정은 개뿔. 새 동료. 그것도 여자? 엘프?”

왠지 모르겠지만, 여자 특히 엘프를 강조하며 말하는 엘리자베스.

‘엘프를 싫어하나?’

[등신. 그나저나 공작급이 이렇게 날뛰면 조금 위험할 텐데.]

라우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제로, 검은 마력이 날뛰자 땅이 무너지고,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우지끈.

천둥에 맞은 세계수 뿌리 한쪽이 불타기 시작했다.

“모두 불을 꺼라! 그리고 저 여자를 저지해!”

불과 몇 시간 전에 앤트 가디언이라는 강적을 상대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몇몇 강자가 엘리자베스를 저지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꺼, 져.”

그녀의 묵직한 한마디에 전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엘리, 제발 진정…”

그때.

탓-

석찬의 앞에, 한 남자가 날아와 섰다.

“너는…”

“오랜만입니다. 석찬 님. 그리고… 누님.”

로베르트. 엘리자베스의 친동생이 그녀를 막아섰다.

“로베르트? 네가 왜 여기에…”

“누님, 일단 진정하십쇼. 계속 이러면 천계에서 제지하러 올 수도…”

“천계? 상관없어. 날 막지 마.”

엘리자베스는 상관없다는 듯 폭주하는 검은 마력을 내버려 뒀다.

‘쳇.’

설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로베르트가 결국 강수를 꺼내 들었다.

콰앙!

검은 마력을 뿜어낸 그가 엘리자베스의 뒤로 순간 이동했다.

분노한 상태라 시야가 좁아진 그녀는 로베르트의 움직임을 전부 읽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누님.”

뻑!

강하게 엘리자베스의 목덜미를 내려쳐 기절시키자, 검은 마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난리였던 주변이 진정되고, 로베르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누님께서 폐를 끼쳤네요.”

“괜찮은데… 왜 그런 거야?”

솔직히 석찬은 왜 엘리자베스가 그렇게까지 화를 냈는지 알 수 없었다.

“…….”

다시금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로베르트가 엘리자베스를 둘러멨다.

“일단 자리를 벗어나죠. 가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알았어.”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본 석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랐다.

“…저희도 가죠.”

이브 일행도 빠르게 두 사람을 뒤따랐다.

“…….”

렐은 어두운 표정으로 초토화된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석찬이 사라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