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푹-
귓가로 들리는 섬뜩한 관통음. 하지만, 고통은 밀려오지 않는다.
뚝뚝.
오히려 볼 위로 뜨거운 액체가 떨어진다.
“어…?”
그리고 들리는 토이몬의 당황한 음성.
‘응?’
힘겹게 눈을 뜬 내 앞에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토이몬의 검은 분명 무언가를 관통해 있었다. 방금 전 볼에 떨어진 액체도 관통한 곳에서 떨어지던 피였다.
문제는 검이 관통한 대상이었다.
콜록-
메이비가, 분명 조금 전까지 가이몬에게 붙잡혀 있던 그녀가 검에 찔린 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어… 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쓰러지는 그녀를 받아 안았다.
“메이…비?”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저, 차가운 입술로 내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한 뒤 쓰러졌을 뿐이었다.
‘메이비?’
황급히 그녀의 맥을 짚어봤지만, 점점 차가워지는 그녀의 몸이 그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나는 넋이 나간 얼굴로 죽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본 토이몬이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애꿎은 땅을 걷어찼다.
“아주 꼴값들을 떤다.”
퍽.
그의 발에 차인 내 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계속된 구타에 이미 엉망이 된 몸은 더 이상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가이몬이 메이비의 시체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죽었어?”
“응. 조금 미안한데? 너 얘 좋아했잖아.”
하지만, 토이몬의 말에 가이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좋아하기는 무슨, 대충 예쁘장하게 생겨서 조금 흥미가 생겼을 뿐이야. 죽어도 별로 상관없어. 아니, 검 한 번 찔렸다고 죽는 내구도를 가졌으면 오히려 지금 죽은 게 다행일 수도 있나?”
빠직.
죽어서도 모욕을 당하는 그녀의 모습에 화가 차올랐다. 아까 전보다 훨씬 큰 분노였다.
“그만…해.”
“응? 뭐라고 했어?”
“그만하라고 했다. 빌어 처먹을 새끼들아.”
토이몬의 물음에 나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똑바로 그들의 귀에 새겨주었다.
“풉. 들었냐? 그만하란다!”
하지만 토이몬과 가이몬은 조롱을 이어갈 뿐이었다.
“다 죽어가는 새끼가 어디서 말이 많아.”
퍽.
다시금 이어지는 구타.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런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또 얼마나 맞았을까.
“아.”
계속해서 폭력을 이어가던 가이몬이 무언가 떠오른 듯 나를 향해 말했다.
“생각해보니, 저년이 죽은 게 너 때문이잖아? 너 지키려고 몸을 던진 거니까.”
뿌드득.
“너 오늘 곱게 못 죽어. 알았지?”
손목이 으스러지는 통증과 함께 가이몬의 섬뜩한 음성이 귓가로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미 그녀가 죽은 시점에서 내 멘탈은 완전히 박살이 났으니 말이다.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냥 죽자.’
그녀가 죽었는데,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토이몬과 가이몬이 이런 극악무도한 녀석들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내 잘못이다. 그렇게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맞다, 얘 시체는 어떻게 할 거야?”
“왜, 아쉬워?”
“생각해보니 조금 아쉬운 거 같아서. 이런 애 찾는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렇지. 그러면 키메라 제작자한테 의뢰해볼까?”
“키메라 제작자?”
그 말에 나도 놀라 토이몬을 쳐다봤다.
‘키메라… 제작자라고?’
“만약 잘된다면 최고의 장난감이 탄생하는 거니까 말이지.”
“좋다, 좋아. 크크.”
‘저 개새끼들이…’
몹쓸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
화가 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도 장난감 신세가 될 거라니. 심지어 힘이 없어 막지도 못한다.
‘젠장… 젠장! 젠장!’
머릿속으로는 녀석들을 백 번 이상 죽여도 모자랐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애초에 토이몬과 가이몬이 넘볼 수도 없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내 머릿속에 어떠한 음성이 들려왔다.
[강해지고 싶나?]
‘응?’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물론 처음에는 당황했다. 갑자기 머릿속에 생판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 오히려 그게 미친 것이리라.
[강해지고 싶냐고 물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강해지고 싶어.’
[뭐라고?]
‘강해지고 싶다고. 저 녀석들한테 복수하고 싶어.’
[복수하고 싶느냐.]
‘그렇다고!’
[너에게는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이라면, 충분히 내 화신이 될 자격이 있지.]
‘재능? 화신? 그게 무슨 소리야.’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여놓는 남자. 그때였다. 토이몬의 발이 눈앞에 다가왔다.
퍽!
“크…학…”
코가 부러졌고,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뭐하냐, 다 죽은 놈한테?”
“아니, 눈깔이 조금 아니꼬와서. 크크.”
“저 정도면 곧 죽을 거 같은데, 이쯤 할까?”
“그래, 몬스터 먹이나 되라고 하지 뭐, 그럼 제작자한테 가볼까?”
“잘 있어라. 뭐, 나름 즐거웠다. 퉷.”
가이몬은 메이비의 시체를 둘러멘 채 떠났고, 토이몬도 쓰러져 있는 내 머리 위로 침을 뱉은 뒤 그를 따라 떠났다.
까득.
내 자신에 대한 한심함에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다. 그때, 한동안 멈춰 있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묻지. 내 화신이 되고 싶느냐.]
그 말에 나는 분노에 찬 눈물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겠다고? 정말이냐?]
“그래, 한다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크하하하하!]
대답에 만족했는지,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좋다. 너를 내 화신으로 임명하겠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다 죽어가던 몸에 생기가 돌며, 상처들이 하나둘 아물기 시작했다.
‘이건….’
몸에서 일어난 기현상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런 경험은…
‘마치 그때 같군.’
처음 탑에 입성했을 때.
‘그때도 모든 부상이 회복되었지.’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었다.
‘몸에 힘이 넘쳐.’
기운이 회복된 수준이 아니었다. 가슴 안에서부터 이전에는 느낄 수 없던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가뿐해진 몸을 이끌고 일어난 내게,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어떠냐? 새로워진 몸은?]
상태창을 확인해본 나는 폭발적으로 상승한 수치들을 보고 목소리가 들리는 허공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최상입니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말이 높아졌다.
[태도도 마음에 드는군. 좋아.]
“혹시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목소리는 분명 내가 자신의 화신이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나는 그의 부하가 되었다는 뜻.
[흠… 시킬 것이라…]
이제는 주인이 된 목소리가 내게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우선, 네 녀석의 인생을 망쳐놓은 녀석들에게 복수를 하도록 해라.]
주인의 말에 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감사…합니다.”
[한번, 마음껏 날뛰어 보거라.]
그 이후로의 일은 정말 간결했다.
‘뭐냐?’
‘크악!’
힘없이 당했던 예전과는 달리, 힘을 얻은 지금 나는 굉장했다.
토이몬과 가이몬, 두 사람은 내게 쪽도 못 쓰고 목숨을 헌납했다.
복수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쉽게 끝났다.
* * *
“그렇게 복수가 끝나니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아나?”
여섯 번째의 물음에 석찬은 무심하게 말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큭큭. 이상하게도 그런 기분이 들더군.”
인간들은 전부 이런 놈들뿐이다.
‘이기적이고, 추악하며, 짐승 같다.’
실제로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도 사람들의 추악한 면을 자주 보았다. 도둑질하고, 남을 헐뜯고 비난하며, 필요할 때는 살인마저도 서슴치 않는다.
“아까 보여준 영상구 기억하지?”
그것에서도 인간의 추악한 면이 많이 드러났었다. 평소에는 마냥 착하고 성실할 것만 같은 이들의 본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었다.
“인간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주인께서 다른 임무를 주셨지.”
[가증스러운 인간을 처단하라. 그것이 너의, 내 모든 화신들의 목표이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앞으로 너는 ‘여섯 번째’다. 곧 다섯 번째를 보낼 테니, 준비하고 있도록.]
이후로, 다섯 번째 키메라 제작자를 만나 키메라 제작자로서의 지식을 쌓았다.
“궁금할 거야.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여섯 번째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보기만 해도 살이 베여나갈 것 같은 예기였다.
“나도 주인과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어 마땅한 생명체다.”
그의 눈에 강렬한 기운이 맺혔다.
“이브!”
석찬의 말에 이브가 즉시 사람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보호막을 둘렀다.
콰과광!
강한 검격이 보호막을 훑고 지나갔다. 보호막에 보호받지 못한 건물들은 정확히 반으로 잘려나갔다.
“꺄아악!”
“도망쳐!”
“멈춰요, 밖에 나가면…”
그 위력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어?”
“가만히 있으렴. 죽고 싶지 않다면.”
엘리자베스에 의해 간단히 저지당했다.
“나이스, 누님.”
사람들을 저지하려던 진현이 그녀의 힘에 엄지를 들어올렸다.
보호막 안이 안전한 것을 확인한 석찬이 보호막을 해제하며 여섯 번째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큭큭, 왜? 날 죽이려고?”
여섯 번째는 죽여보라는 듯 목을 슥 내밀어 보았다. 하지만, 석찬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너, 나한테 하고싶은 말이 뭐냐.”
“킥.”
이에 여섯 번째가 슬슬 웃으며 말했다.
“너, 내 ‘주인’의 밑으로 들어와라.”
“…….”
“너도 탑을 올라오면서 봤을 거 아니야. 인간의 추악함을.”
맞다. 몇 번 보긴 했다.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릴 정도로 추악한 행위를 하는 인간을 보지 못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리라.
“너는 강해. 너라면 분명 우리 주인님께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우리 주인님도 너에게 더 큰 힘을 줄 수 있을 거고.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석찬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싫어.”
“왜?”
약간의 호기심이 담긴 물음에 석찬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난 너처럼 미친개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빠직.
그 말에 순수했던 여섯 번째의 눈이 다시금 악귀로 에 물들었다.
“방금 뭐라고…”
“다시 듣고 싶어? 미친개.”
“너, 후회할 거야.”
그 말에 석찬이 그의 눈 앞에 살며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지구의 욕설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기분 나쁘네, 그거.”
일그러진 얼굴의 여섯 번째가 품에서 또 다른 캡슐을 꺼냈다.
“도라X몽이냐. 뭐가 계속 나오게.”
석찬의 비아냥에 여섯 번째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여유로울 수 있나 보자.”
여섯 번째가 캡슐을 떨궜고.
파직-
캡슐이 깨지는 순간, 엄청난 마력의 폭풍이 석찬 일행을 덮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