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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79화 (79/200)

제79화

명패에 적힌 이름을 본 직원이 말을 더듬었다.

“잠시만, 강석찬이라고… 그럼 설마, 당신이 올킬러 님이십니까? 옆에 분들은… 은발의 천사와… 뭐시기 코리안 좀비?”

“킹갓코리안좀비예요.”

“아 네, 킹갓코리안좀비 님.”

진현과 이브도 백금색 명패를 제출했다.

세 사람의 신분을 확인한 직원이 정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에는 실례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갱신 작업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예.”

직원이 명패들을 가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남은 세 사람은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갱신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계속 옆에 서 있던 여직원이 다가왔다.

“저기 혹시….”

“네. 무슨 일이신가요?”

여직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올킬러 님이세요?”

“예. 올킬러, 강석찬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여직원이 석찬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패, 팬이에요! 올킬러 님!”

“예?”

“응?”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에 석찬과 진현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고.

“지금… 뭐 하는….”

이브는 왠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아, 죄송해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올킬러 님의 팬이라서… 반가운 마음에 그만….”

여직원의 말은 이러했다.

압도적인 무력과 재능을 바탕으로 몇 년만에 40층까지 도달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는 석찬을, 그녀는 쭉 동경했다고 한다.

“저처럼 멈춰버린 사람과는 다르잖아요. 정말 대단하세요. 아, 물론 은발의 천사 님과 킹갓코리안좀비 님도 대단하세요.”

“감사합니다.”

여직원은 들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저희 에리카의 저녁에서 세 분을 모실 수 있을까요? 물론, 숙박비는 받지 않을게요.”

역시, 예상하긴 했는데 에리카의 저녁은 저 여직원이나 그녀의 가족이 운영하는 여관인 모양이었다.

석찬이 두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굳이 무리하실 필요는 없어요.”

40층의 문제와 실태를 들은 이상 그녀에게 피해를 줄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애원했다.

“제발 부탁이에요. 제 평생의 소원입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들러붙었을까? 끝끝내 여직원은 석찬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알겠어요. 갈 테니까 이거 놓아주세요.”

“정말요? 진짜?”

“예. 한 입으로 두말 안 합니다.”

석찬의 확답에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약 5분간 붙잡힌 옷을 가볍게 편 석찬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저렇게 신나 하시는데, 안 갈 수가 없네.’

비록 필요 없다고 했지만, 석찬은 숙박비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돈이 궁한 것도 아니었고, 정보값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잠시 후, 카운터 직원이 갱신된 명패를 가져왔다.

“여기, 갱신 완료되었습니다. 40층에 출입하실 때 명패를 보여주시면 경비가 잘 들여보내줄 겁니다. 그리고 아까의 무례,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괜찮습니다.”

모든 일을 마친 후, 석찬은 추가된 일행과 함께 갱신소를 빠져나왔다.

일행의 정체는 석찬의 팬이라는 갱신소의 여직원, 에리카였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나와도 괜찮은 거예요?”

그 말에 에리카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허락도 받았고, 어차피 사람도 안 오는데요, 뭘. 아까처럼 대기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2년에 한 번 있는 일이라고 보면 되요!”

‘2년에 한 번?’

석찬이 경악했다.

자신의 대기 번호가 3번이었다. 앞에는 고작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는 말. 앞선 마을들에서는 그 정도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대기 인원이 세 명이면 적은 편에 속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네.’

[흐아암! 뭔 말이야? 뭐가 심각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라우르.

‘이제야 일어나셨어요?’

그는 요즘 들어 재밌는 일이 없다고 석찬을 가르치는 짧은 시간 외에는 건틀릿 안에서 거의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뭐가 심각하냐니까?]

‘별일 아니니까 계속 주무세요.’

[됐다. 잠 다 깼어. 그나저나, 여긴 어디냐?]

‘이제야 봤어요? 40층입니다.’

[벌써 40층 온 거야? 이야, 눈 많이 오네.]

라우르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히 좀 있어요.’

[알겠다. 음, 눈이라.]

라우르는 눈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고, 석찬은 그에 대해 별로 큰 신경을 쓰지 않고 갈 길을 갔다.

잠시 후, 네 사람과 하나의 귀신은 갱신소에 들르기 전에 눈여겨보았던 옷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 손님! 돌아오셨네요!”

“예. 막 갱신 끝내고 오는 길입니다.”

“예, 마음껏 둘러보십쇼!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하하!”

가게 사장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석찬 일행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거리에서 그들을 따라다녔다.

“우와, 예쁘다.”

옷걸이에 걸린 형형색색의 옷들을 보며 이브와 에리카가 눈을 빛냈다.

하지만 에리카는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불쌍하네.’

예전 일이 떠오른다. 진현 가족에게 발견되기 전 아직 자신이 고아였던 시절, 자신의 모습이 딱 저랬다.

“하나 사드릴까요?”

“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시길래. 필요하시면 제가 하나 사드릴게요.”

에리카가 어버버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어, 아니에요. 신세를 질 수는….”

“그냥 고르세요. 제가 사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몇 번의 제안과 거절이 이어지던 와중, 이번에는 에리카가 먼저 두 손을 들었다.

“알겠어요. 감사하게 받을게요.”

다시 미소를 되찾은 에리카가 신나서 옷가게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석찬 또한 그녀를 따라가려는 그때.

콱.

이브가 석찬의 옷깃을 붙잡았다.

“오빠, 저는요?”

“응?”

“저는 뭐 안 사주나요…?”

이브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너도 뭐 사고 싶어? 말하지 그럼. 너도 사줄게.”

“고… 고마워요.”

“근데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 더워? 온도가 너무 높나?”

“아니에요….”

이브는 잔뜩 붉어진 얼굴을 식히며 옷 구경을 마저 했다.

“진짜, 저 고자 새끼.”

진현은 답답한 친구의 등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삼키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즐거운 쇼핑이 끝나고. 네 사람은 한껏 두꺼워진 옷차림과 함께 가게를 나섰다.

밝은 표정의 세 사람과 다르게 한 사람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옷값이 많이 비싸던데 괜찮아요?”

“괜찮다니까. 별로 신경 쓰지 마요.”

계산할 때 슬쩍 가격을 본 에리카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가격에 옷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석찬은 괜찮다며 반강제로 옷을 사줬다.

에리카가 반쯤 볼을 붉히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오늘 저녁 쏘시는 건 어때요?”

“물론이죠! 저희 부모님 음식 솜씨는 40층 제일이니까, 기대하세요!”

“기대하겠습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네 사람은 에리카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여관, ‘에리카의 저녁’에 도착했다.

마찬가지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끌었다.

“예쁘게 잘 꾸몄네요, 정말.”

“예쁘죠? 제가 다 꾸민 거예요.”

마침 에리카의 부모님이 외출한 상태였기에, 석찬 일행은 1층 휴게실에서 두 분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브 님, 어떻게 이렇게 예쁘세요?”

“에리카 님도 예쁘세요. 머릿결 진짜 고우시다.”

두 여자는 어느샌가 친해져서 대화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녀들이 수다를 떠는 사이 진현도 피곤했는지 잠에 빠졌고, 석찬은 바람을 쐰다는 핑계로 잠시 밖을 나섰다.

“후아.”

찬 겨울 공기가 폐를 가득 메꿨다.

‘시원하다.’

탑에 들어온 지 벌써 몇 년이 됐을까? 아직 40층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 페이스대로 가다보면 첫 번째 고비라고 불리는 50층까지는 순조롭게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빨리 탑을 올라야지.’

라우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알렉산더 일행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예정이었다.

‘라우르.’

[응?]

‘저 진짜 열심히 오를 겁니다.’

[탑 얘기하는 거냐? 거 당연한 걸 얘기하고 있어. 빨리 올라서 내 영혼 조각이나 다 모아라.]

‘그래야죠.’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하나둘씩 거리를 밝히기 시작했다.

‘예쁘네.’

가로등 불빛도 형형색색인 게 마치 크리스마스 밤에 길거리를 내다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쿠구궁-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뭐지? 지진인가?’

짧게 이어진 진동은 금방 멈췄지만, 가로등 한 개가 쓰러지고 몇몇 건물의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주변이 금방 시끄러워지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갑자기 웬 지진?’

하지만, 사람들은 왠지 별다른 동요없이 흐트러진 거리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뭐지?’

궁금증에 석찬이 한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뭐여?”

머리가 벗겨진 남자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방금 그 지진, 자주 일어나는 일인가요?”

“한 번도 안 겪어봤수? 혹시 신입?”

“예.”

“아, 별거 아녀. 한두 달에 한 번씩 이러는데. 다 익숙해져서, 신입도 별 생각하지 말어. 별로 위험하지도 않어.”

남자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지만, 석찬은 무언가 석연찮음을 느꼈다.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지진?’

게다가 남자도 최대한 숨기기는 했지만 딱 봐도 무언가 이상했다.

라우르 또한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흠. 석찬아. 잠깐 감지 좀 써볼까? 최대한 넓게.]

‘예.’

석찬이 마력을 쫙 뿌렸다.

무한에 달하는 마력이 마을을 뻗어나가 눈이 덮인 평원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음? 이 기운은?’

탐색을 진행하던 와중, 석찬의 마력이 무언가에 막혀 사라졌다.

[뭔가 있지?]

‘예. 상당히 강해요.’

초록색 등급이 되고 몇 배는 발전한 마력 감지를 파훼할 수준의 보호막이라면,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뜻.

[역시 이상했어.]

‘뭐가요?’

[눈 말이야, 눈. 내가 알기론 ■■를 ■■한다면서 ■■■■가 이런 개 같은 환경을 만들 리가 없어. 그것도 이런 저층에 말이야. ■라면 또 몰라.]

‘뭐라고요?’

[뭐야. 필터링이야?]

‘앞이랑 뒤 하나씩만 못 들었어요. 근데 저층에 이런 환경을 안 만든다는 거, 확실해요?’

[거의 확실하다. 내가 아는 녀석이라면 말이다.]

‘그럼 어떻게 된 건가요.’

[무언가 개입이 있었다는 거겠지.]

‘개입이라.’

석찬의 직감이 외쳤다.

빠른 시일 내에,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거대한 산꼭대기.

“크르르.”

거대한 생명체가 눈을 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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