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4개월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석찬 일행은 오로지 탑을 오르는 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물론 훈련을 통한 성장도 중요하다. 하지만, 급이 맞지 않는 곳에서 싸우는 것이 과연 성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석찬이 생각할 때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훈련의 비율을 최대한 줄이고 닥치는 대로 사냥만 했고, 레벨도 오르고 탑도 꽤 많이 오를 수 있었다.
현재 석찬이 머물고 있는 곳은 39층.
땅도 산도, 모두 돌로 이루어진 딱딱한 곳이었다.
보스 몬스터인 스톤 골렘 킹 말고는 필요한 모든 몬스터를 처리한 상태였다.
“상태창.”
[이름 : 강석찬]
[레벨 : 191]
[HP : 40625/40625]
[MP : 5340/5340]
[힘 : 326.5 + 65.3]
[민첩 : 325 + 65]
[체력 : 325 + 81.25]
[내구 : 339.5 + 84.875]
[마력 : 445 + 89]
[잔여 포인트 : 100]
[잠재력 : 무한]
못 본 새에 레벨도 많이 올랐고, 잔여 포인트도 다시 모여 100개가 쌓여 있었다.
‘이정도면 슬슬 다시 사용해 볼까?’
원래 석찬은 잔여 포인트를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꾸준히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가 생기면 한 번에 투자하기로 다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라우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거 굉장히 안 좋은 방법이야.]
라우르가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 스탯에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균형을 어긴다면 몸이 힘을 컨트롤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맞나?]
‘네.’
[그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다. 한 번에 본인의 힘의 몇 배가 되는 힘을 얻게 된다고 쳐보자. 몇 번에 걸쳐서 조금씩이 아니라 단 한 번에 말이다. 그럼 어떻게 될 것 같냐?]
‘한 번에…’
석찬이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자, 라우르가 먼저 답을 알려줬다.
[전자처럼 본인의 힘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폭주할 우려가 있다. 힘 조절을 못해 물건을 부술 수도 있고, 제 기량을 다 파악하지 못해 전력을 내지 못하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
‘아.’
마치 모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헐X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인가.
이해가 확 된 석찬은 이후로 천천히 스탯을 투자하며 힘을 다스려왔다. 라우르의 말로는 잔여 포인트가 많고 분할해서 투자한다 하더라도 한 번에 적지 않은 양을 투자하는 만큼 적응하는 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 의심한 내 잘못이지. 내 잘못이야.]
석찬은 짧은 시간 안에 무려 200이 넘는 잔여 스탯을 소화해냈다.
‘이번에도 각 스탯에 25개씩.’
그간 여러 효과도 보고, 마력에 스탯을 투자하지 않기도 해서, 석찬의 육체 스탯은 레벨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기이한 상승 폭을 보였다.
[힘 : 351.5 + 70.3]
[민첩 : 350 + 70]
[체력 : 350 + 87.5]
[내구 : 364.5 + 91.125]
[마력 : 445 + 89]
이제는 모든 스탯이 400을 넘어간다. 점점 성장하는 스탯을 보니 절로 마음이 뿌듯해졌다.
쿠국.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또 늘어난 스탯의 근력을 조절하지 못한 것인지, 바닥이 조금 파였다.
‘좋았어. 이번에도 화이팅이다.’
다짐과 함께, 보스가 있는 곳으로 탐지된 산을 올랐다.
“쿠오오.”
“쿠어어….”
산을 오르는 와중 주변 환경에 위장해있던 골렘들이 몇 마리 튀어나오긴 했지만.
“오랴!”
콰광!
진현의 주먹에 모조리 박살이 났다.
“너무 오버하지 좀 마라. 부끄럽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서? 으럇챠!”
콰직! 쾅!
“…가자.”
“그러죠.”
별 난리를 다 치며 골렘을 사냥하는 진현을 가볍게 무시하며 석찬과 이브는 보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의 정상에 오르자, 거대한 실루엣의 골렘이 보였다.
‘저게 보스인가.’
척 봐도 5m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크기에 딱 봐도 보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스, 스톤 골렘 킹이 출현했습니다.]
“인…간?”
“그래, 인간이다.”
“인간… 말살한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일어난 스톤 골렘 킹이 석찬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크네. 딱 패기 좋아.”
뚜둑. 뚝.
주먹의 핏줄이 꿈틀거렸다.
“죽어…라!”
쾅!
스톤 골렘 킹의 주먹에 땅이 움푹 파였다. 하지만, 진즉에 공중으로 몸을 피한 석찬이 스톤 골렘 킹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광!
단 한 방에 스톤 골렘 킹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오, 생각보다 많이 센데?’
새로운 스탯을 시험할 겸 전력을 사용해 봤는데, 한 방에 보스를 잡다니.
‘대박….’
이라고 말하는 순간. 부서졌던 스톤 골렘 킹의 잔해가 다시 모이더니 원래대로 복원됐다.
“뭐야, 설마 자유형이냐?”
본래 골렘은 심장부에 움직임의 근원인 핵을 가지고 있다. 핵이 없으면 골렘은 움직일 수 없다. 그저 무거운 돌덩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가끔 핵이 심장부가 아닌 다른 곳에 위치한 골렘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자유형’이라고 불렀다.
“자유형은 상대하기 귀찮은데.”
특히 상반신이 거의 다 무너졌음에도 핵이 보이지 않았다.
가볍게 마력을 흩뿌려 핵의 위치를 알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탐지가 안 되는 핵인가.’
후우.
한숨과 함께 석찬의 눈이 조금은 또렷해졌다.
“조금 귀찮지만, 다 부숴보는 수밖에.”
석찬이 다시금 주먹을 뻗었다.
쾅!
그의 주먹을 막은 스톤 골렘 킹의 주먹이 산산이 조각났다.
“막지 마라. 부서진다.”
“인…간. 우쭐하지 마라.”
특유의 회복력으로 금세 팔을 회복한 스톤 골렘 킹이 다시금 주먹을 내질렀다.
쾅!
쾅!
계속해서 박살 나도, 스톤 골렘 킹은 계속해서 돌진하고, 공격을 이어갔다.
‘회복력을 믿고 내가 지치길 기다리는 건가?’
몬스터치고는 꽤 괜찮은 생각이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힘으로 소모전을 하기에는 너무 건방졌다.
쿵!
그렇게 몇 번을 더 주먹을 맞닿았을까? 석찬이 이변을 느꼈다.
‘뭔가 조금… 단단해진 것 같은데?’
쾅!
“크흠.”
생각보다 빠른 일격에 처음으로 공격을 허용한 석찬이 볼에 묻은 돌가루를 털어냈다.
‘확실히 빨라지고, 묵직해졌어. 일반적인 스톤 골렘이 아닌 건가.’
하긴, 왕인데.
“조금은 재밌어지겠어!”
“오빠, 너무 끌지 마요! 뭔가 이상해요!”
“오냐!”
쾅!
아무리 단단해졌다 한들, 스톤 골렘 킹의 몸은 여전히 약했고.
쿵!
“간지럽다고!”
공격은 간지러운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석찬은 최대한 빨리 핵을 부수기로 마음먹고 골렘의 몸 전체를 두들겼다.
쿠궁- 쿠구궁.
무너지고 있는 몸 가운데, 보석 하나가 보였다.
밝게 빛나는 푸른 수정. 핵이 분명했다.
“발견.”
주먹에 힘을 꽉 준 석찬이 핵을 강타했다.
콰직!
그의 주먹에 핵은 간단히 제거되었고, 그렇게 보스전이 끝날 듯싶었다.
쿠구궁.
실제로 핵이 사라지자마자 스톤 골렘 킹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메시지 창이 안 떠?’
항상 보스 몬스터로 분류된 몬스터를 처치하면 메시지로 확인을 시켜주던 시스템이 이번에는 메시지를 띄워주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건가?’
“인…간!”
그와 동시에, 부활한 스톤 골렘이 석찬에게 달려들었다.
‘이 속도는….’
부활하기 전보다 족히 두 배는 빨라진 것 같다.
훙.
그래도 여전히 느리다.
쾅!
번개처럼 빠른 카운터에 스톤 골렘 킹이 산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까불고 있어.”
잠시 후, 비틀거리며 정상으로 돌아온 스톤 골렘 킹이 고함쳤다.
“인…간!! 죽여…버리겠다!”
그 순간, 녀석의 눈이 붉게 빛나며 정상이 요동쳤다.
그리고 땅 아래에서 수많은 생체 반응이 느껴졌다.
‘이 느낌은….’
쿠과광!
땅이 무너져 내렸고, 어둠 속에서 수십의 눈빛이 석찬을 바라봤다.
[당신의 압도적 강함에 스톤 골렘 킹이 잊었던 기억을 각성합니다.]
‘나는 왕 따위가 아니다. 나는… 황제다.’
[잠들어 있던 스톤 골렘들이 깨어납니다.]
[스톤 골렘 군단이 출현했습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갑자기 몬스터 웨이브라고?’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
말 그대로 몬스터의 파도. 수년 전 1층에서 일어났던 돌발 퀘스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몬스터 웨이브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백 마리의 스톤 골렘이 튀어나왔다.
“사나이끼리 대결에 치사하게 부하냐?”
“인간을… 죽여.라!”
“구어어!”
엄청난 숫자의 골렘들이 석찬과 이브에게 달려들었다.
“이브!”
“알아요! 오빠나 잘 싸워요!”
‘하긴.’
이브는 지금의 자신보다 몇 배는 강하다. 굳이 그녀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석찬의 앞에서만 수백의 스톤 골렘이 달려들었다.
그 수를 보며 석찬이 한탄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당량 덜 채우고 올걸.’
쾅!
주먹 한 방에 한 마리의 스톤 골렘이 무너져 내린다.
“괜히 시간 버리고 있었잖아, 이 새끼들아.”
뿌드득!
주먹을 뽑은 석찬이 스톤 골렘 떼를 향해 달려들었다.
쿵! 쿵! 콰직! 쾅!
한 방에 한 마리 씩.
[레벨이 올랐습니다.]
얼마나 많은 스톤 골렘이 몰려왔는지 레벨이 하나 오를 정도였다.
계속해서 주먹질을 하다 보니 어느덧 스톤 골렘 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스톤 골렘의 시체가 산의 높이를 올려놓았다.
“이제 또 너만 남았네?”
스톤 골렘 킹을 보며 석찬이 웃었다.
그런데, 어쩐지 스톤 골렘 킹도 웃는 것 같았다.
‘지금 상황에 웃을 수 있다고?’
그때, 스톤 골렘의 시체에 깃들어 있던 마력이 전부 스톤 골렘 킹에게로 모이기 시작했다.
‘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마력을 충당한 스톤 골렘 킹의 몸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3m 50cm, 3m, 2m….
그리고 어느덧 석찬과 비슷한 체형까지 줄어든 스톤 골렘 킹.
고요함 속에서 녀석이 눈을 떴다.
“인간.”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띠링.
“너를 인정하마. 너는 내가 만난 인간 중 가장 강하니.”
[히든 보스, 스톤 골렘 엠퍼러가 출현하였습니다.]
스톤 골렘 엠퍼러가 된 스톤 골렘 킹은 무시무시한 마력을 뿜어대며 석찬을 위협했다. 하지만, 석찬은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우베보다는 강해.’
확실히 녀석은 몇 배는 레벨업했다는 게 느껴졌다.
‘만약 30층에 있을 때 나였다면 쪽도 못 쓰고 당했겠어.’
하지만, 그게 전부다.
지금 나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결론을 내린 석찬이 강마력을 발동했다.
“뭐라고…?”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그 날, 석찬은 한 개의 레벨을 더 올리고 40층에 도달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