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하늘이 어두워진다. 맑은 하늘 아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들어간다!”
피라미아고를 잔뜩 몰아온 석찬은 미리 쳐두었던 거대한 보호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직후 유턴해 피라미아고 보호막 밖으로 빠져나온 석찬은 입구를 봉하며 외쳤다.
“지금이야!”
“네.”
그와 동시에, 보호막 안의 바다로 번개 한 줄기가 떨어졌다.
콰과광!
기가 라이트닝. 페널티를 받지 않고 온전히 발현된 번개가, 직격한 피라미아고는 물론 주변 녀석들까지 연쇄적으로 감전시켰다.
쿠구궁-
‘이거… 대박인데?’
물과 번개의 상성에서 떠올린 간단한 사냥법이었다.
혹시나 모를 감전에 대비해 보호막까지 완벽하게 치고 실행한 번개 몰이 사냥법은 상당히 좋았다.
번개가 그치자, 새카맣게 탄 피라미아고 떼가 바다 위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예상보다 더 뛰어난 결과에 석찬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앞으로 피라미아고 사냥은 이렇게 하면 되겠어.”
자이언트 피시, 특히 시호스 같은 경우는 찾는 데 약간 고생할 수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사냥 시간이 이 정도만 줄어드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이득이다.’
석찬과 이브는 시험 삼아 몇 번 더 사냥해봤고, 그때마다 사냥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리자 오히려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사냥법을 왜 안 쓰는 거지?’
하지만 만약 이 말을 남들에게 뱉었다면, 석찬은 분명 몰매를 맞고 마을에서 쫓겨날 것이다.
사실 석찬이 제시한 사냥법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는 바로 피라미아고에 있었다.
비록 석찬과 이브가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강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석찬의 주먹에 부러지는 피라미아고의 이빨은 단단하기로 소문나 저층의 장비 재료로도 많이 쓰이고, 외피는 화염이나 번개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 문제점은 바로 스킬 출력의 부재다.
피라미아고가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웬만한 원소 마법으로는 녀석들에게 제대로 된 상처조차 낼 수 없다. 때문에 피라미아고 사냥법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 공격이라는 게 정설인 마당이다.
오히려 이브의 기가 라이트닝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아마 스킬로 나온다면 극상급으로 분류되는 최고의 스킬일 것이다.
‘신기하네.’
물론 이를 모르는 석찬은 궁금증만 가질 뿐이었다.
그리고 석찬의 사냥법이 불가능한 마지막 이유.
이는 말도 안 되는 마력 소모량에 있었다.
이 문제는 당장에 석찬 일행에게도 적용되었다. 기가 라이트닝은 위력이 엄청난 만큼 파랑 등급의 이브조차 상당량의 마력을 소모해야만 발동될 수 있었고, 계속해서 사용하다 보면 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의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몰이를 할 사람을 한 명 더 구하고, 자신이 이브의 대타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브에 비해 마법의 화력은 떨어질지언정, 석찬에게는 무한의 마력 회복이라는 치트키가 있었다.
‘이참에 마법 수련도 하고 좋지.’
그래서 몰이를 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사실상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을 점찍은 석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이브, 이쯤이면 테스트는 다 된 것 같은데, 슬슬 돌아가자.”
“네.”
만족스러운 결과와 함께 석찬 일행이 1층으로 돌아가는 명령어를 읊었다.
* * *
“이이….”
석찬과 이브의 말도 안 되는 사냥법에 결국 천사장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저런 파렴치한… 가엔.”
“네, 네!”
“만약 저 스킬과 함께라면 강석찬 일행이 40층까지 오르는 데 얼마나 걸릴 것으로 보시나요.”
기합이 바짝 들은 가엔이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해 말했다.
“만약 강석찬, 이브 올가, 김진현 이렇게 셋이서 쭉 탑을 오른다면… 5개월, 늦어도 6개월 안에는 40층에 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6개월도 많이 쳐준 것이었다. 녀석들의 무력으로 훈련 없이 스트레이트로 탑을 오른다면 5개월은 무슨, 과장 조금 보태 3개월 안에도 탑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뿌득.
분노한 천사장이 이를 갈았다.
“저기….”
그때, 천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뭔가…요.”
두 장의 날개를 단 천사는 떨면서 입을 열었다.
“이전처럼… 강석찬 일행에게… 페널티를 부여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천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탑을 오르는 일개 인간에게 페널티를 부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두 번의 페널티를 부여한 전적도 있어서 이 이상의 페널티를 가하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만약 페널티를 또 줬다가 다른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성장할 수도 있는 법이고요.”
천사장은 더 이상 석찬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경계 레벨을 최상으로 올리고 가능한 모든 변수를 없애려고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페널티로 인한 미지의 성장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강마력이란 것에 의존하면서 감이 떨어질 법한 순간에 다시 초심을 찾은 놈이야.’
더 이상 다른 수단으로 성장할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판단한 천사장이 머리를 문지르며 방에서 나섰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알아서 들어가 보세요.”
그 말에 몇몇 천사가 반박했다.
“그치만, 천사장 님! 제대로 된 제재가….”
“제가 여기까지라고 말했을 텐데요?”
천사장의 주변으로 엄청난 신력의 파장이 일었다.
아직 날개가 없는 하급 천사들은 파장을 견디지 못하고 날아갔다.
“크윽… 죄송합니다!”
방 안의 모두가 고개를 숙이자, 천사장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을 숨기지 않고 방을 나왔다.
건물을 나서자, 아름다운 천계의 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부신 태양빛을 그대로 받은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고, 건물들은 하나같이 백옥 같은 자태로 우뚝 서 있었다.
꽃이 가득 핀 정원을 거닐던 천사장을 향해 상·중·하급 천사들이 경의를 담아 고개를 숙였다.
“후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름도 모를 안내자와 중급 천사가 석찬의 사실을 은폐하고 제대로 성장을 할 시간을 줬을 때부터? 아니면 멋모르고 달려든 사냥꾼 지부라는 곳의 녀석들이 오히려 녀석의 자양분이 되면서부터일까.
‘아마 40층에 도달할 시점부터 녀석은 50층의 인간들을 훨씬 상회하는 실력을 가지겠지.’
조금은 나아졌나 싶었던 두통이 다시금 도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곁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에피아.”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장발이 인상적인 남자가 보였다.
“아이테르 님.”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또 다른 천사장, 아이테르가 천천히 에피아를 향해 걸어왔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요즘, 인간 하나 때문에 많이 힘드시다죠.”
“…….”
처음부터 정곡을 찌르는 말에 에피아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부끄럽지만, 네. 그렇습니다.”
“고생이 많으시군요.”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아이테르 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에피아의 질문에, 아이테르가 웃음을 유지하며 말했다.
“흐음. 그리 걱정할 필요 있으시겠습니까.”
“하지만, 이브라는 녀석은 이미 50층 이상의 무력을 지닌 상태입니다. 강석찬이나 김진현도 곧 그렇게 될 것 같군요.”
“그럼, 오히려 다행인 거 아닌가요?”
“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에피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말씀은….”
“뭔가, 오해를 조금 하신 것 같군요.”
“오해라고요?”
“50층의 시험을 잊으셨습니까?”
“50층의 시험이라고요?”
에피아는 천천히 50층의 시험을 떠올렸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 말의 의미를 깨달았습니까?”
“예. 오해를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굳이 죄송할 것까지야.”
“꺄, 꺄악!”
탁.
그때, 한 천사가 발을 헛디뎠는지, 아이테르를 치며 넘어졌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든 천사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아이테르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옷을 털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뭐가 그리 죄송합니까. 별거 아니니 괘념치 마세요. 다리는 괜찮으신가요?”
“가, 감사합니다! 아, 아이테르 님, 무언가를 떨어트리셨어요.”
천사의 말에 발 밑 주변을 보니 작은 상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아마 부딪히면서 품에서 흘린 모양이었다.
“이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천사가 도망치듯 떠나고 아이테르는 한동안 상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물건은 뭡니까? 처음 보는군요.”
주먹만 한 크기의 상자는 품에 들고 다니기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그럼에도 아이테르는 상자를 품 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물건 중 하나입니다.”
아이테르의 눈에는 천사로서는 보기 힘든 그리움의 감정이 묻어 있었다.
“소중한 물건….”
댕- 댕-
그때, 천계 전체에 울려 퍼질 만큼 거대한 종소리가 두 천사장의 귀를 때렸다.
“이 소리는….”
“아마, 저를 부르는 것 같군요.”
“아이테르 님이요? 설마….”
“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이테르가 등 뒤의 날개를 가리켰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아이테르 님이라면 분명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원래 미리 축하받는 것은 사절이라고 배웠지만, 이번만큼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댕- 댕-
“가보시죠. 늦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에피아의 배웅과 함께, 아이테르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슥.
촤악!
순백의 날개 6장을 곧게 펼친 아이테르가 창공을 비행했다.
비단처럼 찰랑거리는 흑색의 장발을 날리며 비행하는 아이테르. 그의 눈에는 좀 전의 미소가 보이지 않았다.
날카롭고 사나운, 마치 사냥꾼 같은 눈빛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 * *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어느 여름 날.
“후딱 후딱 몰아라!”
“으아악!”
진현이 검은 무언가를 피해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다.
“살려줘!”
“캬아아!”
진현의 뒤를 쫓고 있는 피라미아고 떼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거리며 그를 위협했다.
정신없이 헤엄치는 와중, 좌측에서 몇 마리의 피라미아고가 진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캬아!”
“우왁!”
펑!
진현의 얼굴에 닿기 직전, 석찬의 주먹에 맞은 피라미아고들의 사체가 바다에 흩뿌려졌다.
“야, 맞을 뻔했잖아!”
“그러게 누가 느리게 헤엄치래? 뒤에 애들 달라붙는다, 계속 헤엄쳐!”
“우와아아악!”
처음 석찬에게 사냥법을 제안받았을 때, 진현은 별 생각이 없었다. 평소처럼 몹몰이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라미아고 떼는 생각보다 더 강하고, 끈질기고, 많았다.
게다가 물이라는,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 몹몰이를 하려니 피로가 배로 늘었다.
“사. 람. 살. 려!”
바다 위에 진현의 비명이 가득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