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복무 □
생각보다 공익들도 열심히 훈련을 받는다.
그래서 하루 6시간의 노력을 채우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나는 특히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야 임마, 넌 공익이야. 자기를 망각하지 말라고. 무슨 현역처럼 훈련 받냐?"
같이 입소한 내무반 동기들이 놀리기도 했지만 솔직히, 훈련이 조금 재밌기도 했다.
첫 번 째 인생이야 4주 훈련조차 지루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번 째 인생.
매일매일 다시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은 생각보다 잘 갔다.
특히 동기들의 수다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들 내 또래긴 하지만 신분은 제각각이었다.
특히 남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밖에서의 자기 무용담들을 허세부리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대부분 여자 이야기였다.
아주 가끔은 돈 자랑.
"내가 이제까지 만난 여자가 한 40명쯤 되는데, 그 중 제일 예쁜 애가 아이돌 연습생이었거든. 내가 걔를 어떻게 꼬셨냐면······"
"나는 주로 연상만 만나는데, 위로 열두 살 연상까지 만나봤어. 여기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여자 만나본 놈 있냐?"
"나는 아버지랑 소를 먹이는데, 한우가 백 마리도 넘어."
대강 이런 식이었다.
전생이랑 다른 시기, 다른 훈련소로 입소했는데 어쩜 이리 레퍼토리들이 똑같은지.
전생에서는 이런 자랑들을 듣고 있으면 조금 부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유나 한 명이 40명의 여자 친구나 백 마리의 소보다 훨씬 더 가치 있었다.
"야, 넌 밖에서 뭐했냐?"
"나, 뭐, 그냥 대학생."
옆자리를 쓰는 녀석이 내게 물어왔다.
영 아트는 보는 사람만 보는 방송이고, 또 나는 거기서도 비중이 적었다.
게다가 머리까지 깎았으니.
그래서 내무반의 대부분이 나를 못 알아봤다.
"오올, 먹물이네. 여자 친구는? 여자 친구는 있냐?"
"어, 운 좋게."
"이야. 촌놈처럼 생겨서 능력은 있나보네. 여자 친구도 학생이야? 몇 살이야? 이야기 좀 풀어봐."
그럼 난 대답대신 웃고 말았다.
"야, 왜 말을 못해? 여친 없으면서 있다고 거짓말 친 거야?"
내가 대답을 못 한 이유는 유나를 많이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많이 좋아해서 이런 가벼운 자리에서는 이름조차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 만으로 가슴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2주가 조금 넘어서 어머니와 유나에게 각각 편지가 도착했다.
'어머니는 잘 계시는 구나.'
역시 나는 불효자가 분명했다.
어머니 편지는 간단하게 한 번 읽고 그만이었다.
하지만 유나 편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꼼꼼히 읽고, 또 읽고, 잘 때는 가슴 위에 얹고 잤다.
[ 태민이도 입대했어. 입대 전에 머리를 깎고 사무실에 왔는데, 수진 언니랑 태민이가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울었어. 마음이 안 좋기도 했는데, 솔직히 조금 웃기기도 했어. 그래서 참느라 혼났어. ]
유나는 미대생답게 편지 구석에는 그림도 같이 그려 보냈다.
첫 장에는 수진 선배와 울고 있는 김태민이 같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을 보니 나도 웃음이 나기도 하고, 또 마음도 아프기도 했다.
'솔직히 나도 한 달 훈련이니까 안 울었지.'
현역이었으면 유나를 끌어안고 울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 친구들 다 같이 모여서 태민이 훈련소까지 배웅해줬어. 김용철 작가님이랑 최관장님도 같이 오셔서 우리들 밥도 사주셨어. 태민이한테 너랑 같이 꼭 면회 가겠다고 약속했어. ]
나도 김용철 작가를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아쉽군.'
아무튼 김태민은 잘 입대한 모양이었다.
[ 유미도 서울에 올라왔어. 이제 나랑 같이 살 거야. 기숙사에 들어가도 되는데, 쇼핑몰에서 알바하고 싶은 가봐. 그래서 나랑 같이 지내려는 것 같아. 귀찮아. ]
별로 안 귀찮으면서.
유나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한다.
[ 그리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듣고 궁금했는지, 이번엔 아빠도 같이 올라 왔어. 그래서 두 분이서 같이 이틀 머물다 내려갔어. 엄마가 이번에 널 못 보고 내려간다고 많이 아쉬워하셨어. 엄마가 전복이랑 말린 도미도 가져오셨는데, 나오면 요리해줄게.]
으음.
뜻밖에 고급 요리를 먹게 되겠구나.
그런데 편지 어디에도 아버님이 아쉬워하셨다는 말은 없었다.
'그런데 왜 아버님을 못 만난 사실이 안도감이 들지?'
훈련소에 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단 한 순간이라도 군대가 다행으로 여겨지다니.'
나는 본능적으로 유나의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유미까지 같이 있게 되었으니 아버님이 어쩌면 다시 올라오실 지도 몰라.'
밖에 나가면, 아버님에 관해 철저히 정보를 수집해야지.
그래서 어머님보다 두 배는 더 확실히 대비할 생각이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잘 보이고, 말고를 넘어서 이번에는 생존의 문제처럼 여겨졌다.
[ 편지를 쓰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편지로도 간지러운 말은 못하겠다. 네가 오래 없으니까 허전하기는 하다. 빨리 나와라. 어깨 조심해서 훈련 받고. ]
그렇게 유나의 편지는 끝났다.
이 녀석.
그냥 보고 싶다고 말해 주지.
예술가 지망생 주제에 이렇게 무미건조한 편지를 쓰다니.
그런데 그때였다.
"으어어엉. 으엉."
같은 내무반의 한 녀석이 편지를 들고 울음을 터뜨렸다.
"쟤 왜 저래?"
무슨 심각한 일인가 싶어서 옆의 동기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런데 우는 녀석 주위로 동기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이 새키 여친이 헤어지자고 했대. 기다리기 힘들다고."
"엉? 진짜?"
그리고 온 내무반의 동기들이 우는 녀석을 같이 놀려댔다.
실연당한 동기는 편지를 쥐고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이제 겨우 2주 지났는데, 기다리기 힘들다고 헤어지다니.
'이렇게 헤어질 수도 있구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뻔 했다.
그리고 유나의 편지를 쥐고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메마른 편지라고 불평할 때가 아니구나. 기다려준다는 사실 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구나.'
2주, 3주 지나니까 훈련소 생활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니 먹고 싶은 것도 생겼다.
단 것은 뭐든지 다 먹고 싶었다.
'거들떠도 보지도 않던 초코파이가 이렇게 끌리다니.'
그리고 커피가 땡겼다.
비싼 커피말고, 자판기 믹스 커피가 땡겼다.
괴로울만큼.
나는 담배는 안 피우니까 상관없었는데, 다른 녀석들은 커피와 담배, 초코파이까지 3중고를 겪는 모양이었다.
"야, 그런데 넌 전공이 뭐냐?"
"나? 그림 그렸어."
내무반의 휴식시간이었다.
"뭐? 미대생? 그럼 나 한 번 그려봐라."
옆의 동기가 연필과 편지지를 가져왔다.
어디서나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미대생이라고 말하면 꼭 뭘 그려보라고 시킨다.
밖이라면 거절했겠지만, 훈련소 안이라서 나도 좀 심심했다.
그래서 쓰으윽.
나는 연필로 쓱싹 동기의 얼굴을 그렸다.
"허얼! 대애애박! 모두 여기 좀 봐!"
"어이, 뭐야 이거, 사진인줄?"
"천재다, 천재!"
어이, 사진까지는 아니잖아.
그냥 크로키 하듯 설렁설렁 그린 그림이었다.
그런데 곧 내 주위로 내무반 사람들이 전부 모여들었다.
"야, 나도 그려줘."
"이거 내 여친인데 그려줄 수 있냐?"
"나는 김태희 그려주라."
아이, 참.
그런데 이런 열렬한 반응이 싫지 않았다.
내가 쓱싹 선을 그릴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수십 명의 동기들이 모두 숨죽여서 내 그림을 관찰했다.
'여기서는 내가 김태민이구나.'
"야, 뭐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교관들이었다.
교관들이 들어오자 동기들은 모두 자기자리에 앉았다.
"뭐야?"
"제가 미대생이라서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습니다."
"가지고 와 봐. 헐, 대박."
교관들도 반응이 똑같았다.
아무래도 지루한 군대다보니, 모두들 별 것 아닌 것에도 과하게 반응했다.
결국 난 교관들의 여친도 다 그려줬다.
물론 계급이 높은 교관들은 여친이 없어서 맥심 모델을 그려줬다.
그날 저녁.
결국 난 소대장한테까지 불려갔다.
소대장은 형원 선배 또래로 보였다.
"나도 부탁해도 될까. 이걸 그릴 수 있겠나?"
역시 소대장 또래의 젊은 여자 사진.
"여자 친구 분이십니까?"
"그렇지. 약혼자다. 벌써 3년 사귀었다. 네가 그려주면 여자 친구가 참 좋아할 것 같은데."
"정말 예쁘십니다! 이렇게 예쁜 분이라면 꼭 그려보고 싶습니다."
회귀자는 아첨도 잘한다.
그리고 소대장은 내 앞에 스케치북과 4B 연필도 내밀었다.
내가 쓰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군대에서 이것저것 다 따질 수는 없지.
사각사각.
나는 1시간 정도 집중해서 8절 스케치북에 초상화를 그렸다.
'나도 미대생이라고, 입시 때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네.'
내 실력에 좀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보다 조금 더 예쁘게 그려주는 것은 화가의 기본이었다.
소대장의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헐, 진짜 신기하네. 사진이랑 똑같네."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더 예쁘게 그렸으니까.
만약 정말 똑같아 보인다면, 3년을 사귀고도 아직 콩깍지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림을 받아든 소대장은 꽤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필요한 것 있나? 먹고 싶은 거라든지."
"괜찮습니다."
"말해 봐. 그림 값이니까."
"괜찮습니다. 동기들도 있는데 어떻게 혼자 먹겠습니까. 그리고 소대장님께 그림 한 장 선물하는데 굳이 대가는 필요 없습니다."
다음 날 휴식 시간.
내무반으로 캔 커피가 사람 수 만큼 배달되었다.
"우와!"
"이주원! 이주원!"
이 맛이지.
동기들의 환호도 좋긴 하지만, 역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까 내가 살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의 훈련이 끝났다.
퇴소 날.
가방 한 개 매고, 홀가분하게 훈련소를 빠져 나왔다.
"이주원!"
어?
익숙한 목소리가 날 불렀다.
형원 선배와 한철이와 유나였다.
날 데리러왔구나.
생각도 못했는데.
'지금이다.'
나는 후다닥 달려가 유나를 끌어안았다.
"우이씨."
유나는 불평은 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원래 친구들 앞에서는 절대 스킨십 금지다.
하지만 오늘은 뭐라고 안하겠지.
영리한 회귀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어이 동기들? 보고 있나? 한유나는 가상 인물이 아니라고.'
고개를 들어 확인하진 않았지만, 어디선가 동기들이 날 보고 있기를 바랐다.
유나는 포근하게 내 품에 꽉 찼다.
"머리 많이 자랐네."
이렇게 마중까지 나올 거면서 편지는 그렇게 매정하게 쓰다니.
나는 한 번 더 힘을 줘서 유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한 달 간 고생 아닌 고생이 사르르 녹아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 * *
그리고 나는 특수학교로 배정받았다.
중학교로 분류된 곳인데 장애 학생들의 특성 때문인지, 학생들의 나이는 다양했다.
"너도 참 운이 없는 놈이구나. 내 생각에 여기가 공익 중에 제일 힘든 곳 같아. 여기서 몇 달만 지내면 차라리 현역으로 가걸, 후회하게 될 걸."
먼저 근무하던 선임이 그렇게 나를 겁줬다.
내가 담당한 일은 수업 지원.
주로 학생들의 체육 활동 보조였다.
장애 학생들은 운동량이 적기 때문에 체육이나 레크레이션 수업의 비중이 컸다.
그런데 체육 수업 시간에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수업 도중에 학생들이 돌발 행동을 하기도 해서, 항상 여러 명의 수업 보조가 필요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운동하다보면 대소변 문제도 종종 있었고, 때로는 운동 기구에 구토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은 화장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와, 이건 너무 더러워서 도저히 우리가 못 치우겠다. 이럴 땐 네가 하지 말고, 청소 아주머니 호출해서 치우라고 말씀드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할 만 했다.
나는 중년의 회귀자.
덕분에 전에도 말했듯, 더럽고 지저분한 일에는 어린 또래보다 내성이 강하다.
그리고 청소 아주머니를 보면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 청소 아주머니를 부르지 않고 웬만하면 전부 내가 직접 치웠다.
'전생에는 동사무소에서 일했지.'
확실히 업무의 강도는 동사무소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내가 힘든 만큼 남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남들이 갖지 못하는 회귀의 기회를 누리는 만큼, 이번 생은 의미 있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일단 예술가 지망생이니까.'
이건 조금 이기적인 생각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생각도 들었다.
'조금이라도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내 그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동사무소에서 전에 해봤던 일을 다시 하는 것보다, 특수학교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훨씬 내게 이로운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복무요원들이 피하는 일을 내가 전부 도맡아 했다.
그렇게 몇 달을 열심히 일했더니,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이거 우리 애가 먹고 싶다고 해서 빵집 갔다가, 이 선생 줄 것도 같이 샀어요. 이것 좀 드세요."
학교에서는 나를 편하게 '이 선생'이라고 불렀다.
내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열심히 돕는 걸 보고, 학부모들이 그렇게 먹을 것을 사다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었다.
"이 선생님! 가사 시간에 만든 거예요. 쿠키랑 아이스 모카커피에요. 힘드시죠? 이거 드시고 하세요. 입에 맞으면 내일도 수업 끝나고 커피 드릴게요."
특수학교다 보니까, 수업 내용도 다양했고, 자원 봉사자들도 많았다.
그 중엔 이렇게 커피나 과자를 만드는 수업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학생들을 돌보는 게 좋게 보였는지,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자꾸 나만 몰래 불러서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했다.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선물을 받으면 뿌듯했다.
"이 선생님, 대학생이라고 했죠? 오늘 자원봉사자들 회식 있는데 같이 가죠. 나이도 비슷한데, 함께 놀아요. 네?"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들도 꽤 생겼다.
"와, 진짜. 나도 대학생이고 같은 복무요원인데 사람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불평도 옆에서 자주 들어야 했다.
그러면 겉으론 덤덤한 척 했지만, 속으론 꽤 뿌듯했다.
'아마 지금이 이주원 인생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시기겠군. 이번 생, 지난 생 통틀어서.'
하지만 나는 칼퇴근하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책도 많이 읽어야 했고, 영어도 공부하고 그림도 연습해야 한다.
'2년 후에도 김태민한테 또 질 수는 없으니까.'
나와의 약속이었다.
놀 시간은 없었다.
하루는 저녁에 사무실에서 유나와 일하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주원입니다."
"이 선생님? 지금 나올 수 있어요? 지금 미술 선생님이랑, 댄스 선생님이랑 같이 있는데, 한 잔 해요! 우리끼리 마시다가 선생님 이야기 나왔거든요. 나올 수 있죠?"
"죄송해요."
"이 선생은 왜 그렇게 바빠요? 혹시 알바해요?"
적당히 둘러대고 전화를 끊자 유나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여자 목소리 들리던데. 누구야?"
"아, 학교 선생님들. 근처라고 나오라고 해서. 못 간다고 했어."
"뭐야? 선생들이 뭐 그래? 밤늦게 술이나 마시고. 네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 거야? 네가 가르쳐 준 거야?"
"당연히 알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인데."
담담히 대답했지만, 투덜대는 유나를 보자 속으로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주원, 많이 컸다.'
유나가 질투를 다 하다니.
나는 더 이상 고백도 제대로 못하고, 놀림이나 당하던 예전의 그 찐따 같은 이주원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다보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유나가 투덜대는 얼굴이 내게는 가장 큰 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