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팀 유나 □
9900원에 판매되는 신발을 3000원에 공급받는다면 보통은 어떤 반응일까?
[ 와, 마진이 6900원이다! ]
장사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귀자.
일단 은성사 사장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남자 사장님의 나이는 대략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그런데 은성사의 물건은 캔버스 신발처럼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나는 20대인데도 옷을 몰랐다.
'대충 보면 평범한 도매점처럼 보이는데...'
하지만 그들 나이에 평범한 도매점을 꾸리는 자체가 대단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은 인터넷을 못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인터넷을 쓰고 있었다.
자기들 상품을 검색해서 경쟁 업체의 가격도 알아보고, 또 자기 상품에 적합한 모델인 유나까지 찾아냈다.
아마 그 정도면 그들에게 충분했을 것이다.
은성사 사장님들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노련한 동대문 상인인 게 분명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동대문에서 결혼도 하고, 집도 샀다고 했으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헐값으로 물건을 준 건...'
동대문 상인들에게 신발 일이백 켤레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액수였다.
어린 우리가 노력하는 게 귀여워서 신발을 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자기들의 물건을 꾸준히 팔아줄 일 잘하는 거래처를 찾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나야 은성사 사장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누가 날 시험한다면 통과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심리.
'만약 우리가 신발을 제대로 못 판다면?'
동대문에 널린 게 인터넷 쇼핑몰 창업자였다.
은성사 사장님들은 금방 다른 인터넷 상인들을 찾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은성사의 캔버스 신발들을 전부 팔아보고 싶었다.
'그럼 사장님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궁금해.'
하지만 유나의 의견도 중요했다.
왜냐하면 제품 코디나 가격 책정, 주력 상품 등은 전부 유나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으니까.
우린 은성사에서 준 촬영용 신발을 받아들고,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비빔국수를 먹으며 계획을 짰다.
"주원아. 이 신발들 말이야. 원가가 3000원이잖아. C마켓 판매가가 9900원이고."
"응."
유나가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그럼 C마켓 수수료까지 제하면 잘 받아야 마진 3, 4천원이잖아. 신발이 대략 백 오십 켤레니까, 우리가 전부 팔아봤자 마진은 3, 40만원. 결국 의미 없는 액수라고 생각해. 다 팔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 그래서?"
"그러니까 신발의 마진을 포기하고, 이익을 볼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어떻게?"
"이 스니커즈는 헐값에 팔면서, 다른 옷의 미끼 상품으로 쓰는 거야. 이 스니커즈를 4500원, 반값으로 올리는 대신, 다양한 코디로 사진을 올리면 분명 옷이랑 같이 팔리게 될 거야.
그럼 신발은 신발대로 빨리 팔리고, 우린 이익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거야. 분명 하이 유나 회원 가입도 늘 테고."
나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맘속으로 아재식 감탄사를 뱉었다.
'요런 귀여운 어린 장사꾼을 봤나.'
유나는 나와 접근 방향은 달랐지만, 결과는 완전히 일치했다.
이 캔버스 신발들을 헐값에, 최대한 빨리 팔아버리는 것.
약간 신기하기도 했다.
'유나는 그림도 잘 그리는데, 어떻게 이런 장사꾼 기질도 같이 가지고 있지?'
문득 남동민의 발표가 떠올랐다.
[ 저는 피카소처럼 부와 명예를 모두 갖고 싶습니다. ]
어쩌면 남동민보다 한유나가 더 가능성 있을지 몰랐다.
아무튼 나는 유나의 의견에 완전 찬성했다.
"후드 티랑, 체크 남방들은 지금 시작해도 10월까지 팔 수 있을 거야. 빨리 신상을 사입해서, 캔버스 신발이랑 같이 연출해서 촬영하자. 그럼 광고 없이도 주문이 꽤 오를 거야."
동대문은 원래 계절보다 빨리 옷이 풀린다.
벌써 얇은 가을 상품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유나는 비빔국수를 먹으며 뚝딱 촬영 계획까지 짜버렸다.
귀엽기도 하고 듬직하기도 하고, 약간 웃기기도 하고.
오늘도 유나랑 일하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 * *
원 부동산의 주문이 또 한 건 들어왔다.
일주일 동안 2건.
단 두 건이었다.
그런데 매출은 350만원.
원 디자인의 주력 쇼핑몰 디자인 가격은 30~40만원 선이었다.
그러니 디자인 10개가 팔리는 것과 비슷한 매출이었다.
생각보다 원 부동산이 좋은 출발을 끊었고, 원 디자인도 꾸준히 팔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프로그래머 한 명과, 디자이너 한 명의 구인 공고를 올렸다.
지금은 한철에게 너무 많은 일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안과 밖 건축사무소의 홈페이지 시안을 컴퓨터에 띄웠다.
합정역 스튜디오의 김동윤 작가를 만난 이후, 나는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래서 시안 작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일의 속도도 빨라졌고, 역대급 금액을 불러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 노력 3종 세트 달립니다.'
그래서 [잡생각 제거]를 투입하고 달리려는 순간.
"주원아! 이주원! 주원아!"
나를 부르는 유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 오피스텔은 넓은 거실 하나와 안쪽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쪽 방에는 소파베드와 촬영 조명이 있었고, 거실에는 원 디자인팀의 사무 공간과 여러 선반들이 있었다.
선반에는 유나와 내가 사서 모은 옷과 악세사리, 배송 포장 용품 등이 분류되어 있었다.
아무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안쪽 방에서 들렸다.
'무슨 일이지?'
유나는 웬만하면 혼자 해결하려는 성격이라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급히 달려갔다.
문을 열자, 노트북과 어질러진 메이크업 용품들이 보였다.
그리고 유나는 거울을 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큰일 났어. 나 가을 메이크업을 못 해."
다행히 급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밖에 나올 수 없는 얼굴이었을 뿐이었다.
종종 잊게 되는데, 유나는 작년까지 고 3이었다.
그리고 한국대에 단번에 붙을 만큼 모범생이었다.
그래서 유나는 화장 경력이 짧았다.
여름 화장이야, 그럭저럭 투명한 컨셉으로 잘 해결한 모양이었다.
'무심한 남자인 나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고.'
하지만 가을 상품 촬영은 달랐다.
'지금 찍어서 10월까지 쓰려면...'
가을 분위기의 메이크업이 필요했다.
언니도 없는 유나는 화장을 배울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그래도 인터넷을 찾아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 노력한 것 같았다.
난 유나의 얼굴을 보고 웃었다.
내 눈엔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유나는 언제나 예뻤다.
그냥 웃음이 났을 뿐.
"웃지 마, 바보야."
"네가 웃겨 놓고."
아무래도 C마켓에 사진을 올리면 전국의 사람들이 다 보게 된다.
유나는 나름 절망적인 모양이었다.
우린 도움이 필요했다.
먼저 이소영.
"죄송해요. 저도 화장이 서툰 편이라...그리고 아무래도 촬영용 화장은 더 몰라서....어떡하죠?"
이소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교포출신이라 그런 건지, 항상 수수한 얼굴이었다.
하긴 화장을 잘 한다 해도, 그녀는 자기 일도 많았다.
아무튼.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그들 밖에 없었다.
화장을 잘 할 것 같아서는 아니었고, 내가 연락하는 여자들이 그 둘이 다였다.
* * *
잠시 후, 그들이 도착했다.
팀 수진.
이번에도 나는 정화 선배에게만 전화했지만, 당연히 수진 선배까지 세트로 따라왔다.
"엉? 네가 왜?"
수진 선배 뒤에 김태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소심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학교에서 만났어."
김태민은 학교 작업실로 짐을 다 옮겼고, 그래서 방학 중에도 계속 나온 모양이었다.
수진 선배는 학점에 초연한 사람이라, 사라진 학점을 채우기 위해 계절 학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세 명이 학교에서 만나 우리 오피스텔로 오게 된 것이었다.
"맙소사. 너희들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정화 선배가 눈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 봤다.
세 명은 내가 웹 디자인 일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미대생의 아르바이트 정도로 여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주원의 실체는 넓은 오피스텔도 갖춰 두고, 사람까지 고용해 본격적으로 일하고 있는 젊은 사장님이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하지만 그들이 나보다 더 놀란 것은 바로 한철이었다.
'어리버리 근육맨인 줄 알았겠지.'
하지만 한철이의 본 모습은 커다란 모니터 두 개를 물려놓고, 검은 화면에 영어 코딩을 두드리는 엘리트 프로그래머였다.
수진 선배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철을 바라보자,
"에헴."
한철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일하는 척을 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넓은 오피스텔 좌우로 벽을 채우고 있는 선반들.
한 번에 많은 옷을 사입하진 않았지만, 우린 꾸준히 동대문을 다녔다.
덕분에 선반에는 온갖 옷과 장신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산만한 수진 선배는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꼬마처럼 정신없이 옷들을 들추었다.
그리고 정화 선배는 유나가 있는 그 곳.
오피스텔 안쪽 방으로 한걸음씩 다가갔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부지런한 유나는 정화 선배가 오기 직전까지, 그 동안도 쉬지 않고 혼자 계속 가을 화장을 연습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유나의 얼굴은 더 재미있게 변해 있었다.
'으...'
마음이 아팠다.
"유나야."
"언니."
정화 선배가 다가가 유나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유나야. 이제 괜찮아. 언니가 왔으니까..."
* * *
꽤 시간이 지났다.
오피스텔의 안쪽 방.
그들은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세 여자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마 인터넷을 띄워두고 서로의 얼굴에 이것저것 화장을 하며 노는? 연구하는? 모양이었다.
잘 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똑똑.
"문 열지 마!"
"우리가 부르면 와!"
"그냥 너 할 일 해!"
그렇게 나는 출입금지 당했다.
뭐, 나도 바쁜 사람이니까.
김태민은 쪽가위를 들고, 동대문에서 가져온 옷에서 실밥을 떼어 내고 있었다.
"태민아, 그냥 둬. 네가 왜 그 일을 해?"
"나도 밥값은 해야지."
정화 선배와 수진 선배는 내가 초빙했으니 시급은 물론 식사도 제대로 대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냥 따라온 김태민은 자기도 밥을 얻어먹고 갈 생각인 듯했다.
물론 밥은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굳이 실밥 정리를 하지 않아도.
'하지만 뭐, 자기가 굳이 하겠다면...'
그리고 김태민 옆에 이소영이 찰싹 달라붙어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어머, 뉴욕에 계셨구나. 어쩐지. 나는 LA에 있었어요."
어쩐지는 무슨 어쩐지.
김태민의 한국어는 완벽했다.
어쩐지 할 이유가 없었다.
일 잘하는 이소영이지만 오늘은 일에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김태민에게 집중했다.
평소 못 보던 모습이었다.
'설마 나와 한철이에겐 굳이 집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아무튼.
안쪽 방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옆에선 이소영의 속삭임이 끊이지 않았다.
넓은 오피스텔에서 방치된 사람은 나와 한철이 뿐이었다.
나야 [잡생각제거]를 써서 일에 집중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 한철이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한철아, 잘 돼 가?"
"응, 너는?"
"뭐, 나도."
오피스텔 안에는 웃음이 넘쳐나지만, 우리 둘의 대화는 건조했다.
유나의 가을 화장이라도 해결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일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딸깍.
드디어 안쪽 방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