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8) >
이것은 팀이 망하는 데 있어서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것이 있더라도 흥하는 팀은 흥한다. 하지만 모든 망하는 팀에는 언제나 이것이 하나는 있는 법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마찬가지 수준이 아니다. 심지어 얘들은 이게 두 개나 있었으니까.
지난 2026년이 끝났을 때 일이다.
랄로 가야르도가 부상으로 나가리 된 직후. 보스턴 레드삭스는 아낌없이 지갑을 풀었다. 당시 사람들은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이 와일드카드에서 미끄러진 것은 오직 랄로 가야르도의 빈자리 때문이라고 떠들었다. 물론 실제로 그의 공백은 매우 컸다.
당시 FA 최대어는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의 타자인 에드윈 필립스였다.
2037년으로 만 32세에 접어드는 이 타자는 11년의 커리어 통산 성적이 0.324/0.409/0.607에 297홈런이라는 터무니없는 수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메이저 최고의 타자구장인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쓰는 만큼 여러 가지로 이득을 본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원정 경기만을 표본으로 해도 커리어 통산 성적이 0.297/0.381/0.501이야.”
콜로라도 로키스가 소속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대부분이 투수 구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훌륭한 성적이다. 랄로 가야르도만큼은 아니지만, 리그에서 녀석보다 괜찮은 타자는 찾기 힘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게다가 에드윈 필립스는 운동능력이 괜찮은 중장거리 타자였고 펜웨이 파크는 이루타 파크팩터만 따진다면 쿠어스 필드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보스턴 레드삭스 에드윈 필립스와 8년 2억 6천만 달러 계약 체결!!]
[에드윈 필립스 ‘금액적으로는 더 매력적인 제안을 한 곳도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금액이 아닌 더 많은 우승이다.’]
보스턴 사람들은 에드윈 필립스의 발언에 열광했다.
실제로 그는 FA 첫해인 2037년에 4.2의 WAR을 기록했다. 물론 완전히 만족할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35세 이후로 성적이 떨어질 것을 생각하면 저만한 돈을 받는 타자라면 조금은 더 해줘야 했으니까.
“그래도 슬슬 산에서 내려온 적응을 하는 것 같으니까 내년에는 더 좋지 않을까? 실제로 하반기에는 더 좋았잖아?”
그리고 4년이 더 흐른 지금.
FA 이후 5시즌 동안 그가 기록한 총 WAR은 3.9에 불과했다.
하지만 2038년 에드윈 필립스가 2년 차에 0.3이라는 처참한 WAR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스턴은 우승을 차지했었다. 심지어 2039년에는 –0.4를 기록했음에도 기어코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보스턴도 딱 거기까지였다.
존 맥도웰은 분명 맥스 슈피겐을 꼭 잡아야 한다고 구단주 그룹에 강하게 어필했다. 6년 1억 8천만 달러라는 시장 가격 이상의 금액은 그렇게 책정됐다. 하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무려 7년 2억 3천만을 비딩하며 그를 낚아챘다.
브라이언 보일과 맥스 슈피겐. 원투 펀치의 연봉만 무려 6,300만이다. 물론 지극히 볼티모어스러운 30년짜리 디퍼를 감안하면 그보다는 많이 줄어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터무니없이 커다란 금액이었다.
“볼티모어가 그렇게 나올 수 있으리라는 건 예상했어야 했어.”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는 매우 오래된 도시로 그런 도시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인 도시 공동화와 할렘화가 진행되는 것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화 역시 볼티모어를 황폐화하는 데 크게 한몫했다. 덕분에 60년대 이후 볼티모어의 치안은 미국 최악을 달렸고 빈부격차 역시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2020년대 후반 그들은 새로운 산업을 도시에 유치시켰고 그것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도시의 발전은 곧 그곳을 기반으로 한 볼티모어의 재정적 여유로 돌아왔다. 그들이 이번 시즌 지출하는 2억 6천만 달러는 절대 무리가 아니다.
어쨌거나 보스턴은 맥스 슈피겐을 놓쳤다.
당장 구상하던 선발 라인업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셈이다. 그들은 랄로 가야르도 때 이미 2년 연속 우승을 하고 바로 포스트시즌을 떨어지는 것으로 주전 선수의 빈 자리를 제대로 메우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이미 경험했다.
“에이스는 역시 텍사스 산 우완 파이어볼러지.”
산에서 내려온 산 사나이들이 어떻게 폭망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에드윈 필립스를 질렀던 보스턴 역시 큰코를 다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믿고 쓰는 텍사스 산 우완 파이어볼러를 선택했다. 물론 팀이 텍사스라는 건 아니고 텍사스에서 태어난 선수라는 의미다.
당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2.89의 평자책을 기록했던 우완 에이스 앤드류 딘이 그 주인공이었다. 최고 98마일을 던지는 정통파 에이스.
[보스턴 레드삭스 앤드류 딘과 6년 1억 8천만 달러 계약 체결!!]
[앤드류 딘 “보스턴 레드삭스는 항상 뛰어보고 싶던 팀.”]
사람들은 ‘이거라면 절대 안 망하겠지.’라고 생각했다. 못 해도 기본은 가는 게 강속구 투수 아니겠는가. 갑자기 구속이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망할 리가 없다!!
천만에.
갑자기 구속이 뚝 떨어지지 않더라도 충분히 망할 수 있었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펫코 파크는 투수 친화적 구장이었고 펜웨이파크는 타자 친화적 구장이었다. 물론 그 정도는 보스턴 프런트도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앤드류 딘은 충분히 에이스급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 투수였다.
문제는 의욕이었다.
의욕이 없던 것이 아니다. 의욕이 너무 넘쳤다. 그는 너무 성실했다.
“펫코 파크에 비해서 펜웨이파크의 좌측 외야는 너무 좁아. 펫코 파크라면 그냥 외야뜬공 아웃이 될 공도 거기선 이루타로 이어지지. 그러니까 땅볼을 조금 더 유도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훈련을 했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폭망했다. 그리고 쿠크다스와 같은 선발투수의 멘탈은 한 번 부서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바스러지는 법이다. 제구가 흔들렸다. 투구 수가 늘어났고 쉽게 지쳤다. 하지만 훈련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과는?
[앤드류 딘, 팔꿈치 인대 파열!! 시즌 아웃!! 재활까지는 최소 1년은 걸릴 것으로 보여······.]
FA 고액 먹튀가 있다고 해서 팀이 꼭 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망하는 팀에는 이런 선수가 꼭 하나는 있는 법이다. 그리고 보스턴 레드삭스에는 그런 선수가 무려 둘이나 있었다.
에드 맥밀란이 에드윈 필립스를 바라보며 성민에게 속삭였다.
“근데 쟤는 발목 문제 이제 다 해결됐다고 하지 않았어?”
“해결됐지. 근데 알잖아. 발목 신경 쓰느라 폼 망가지고. 예전 폼 찾으려고 해도, 그 사이에 몸 자체가 바뀌었고. 그거 감각 다시 끌어올리는 거 쉬운 일 아닌 거.”
“앤드류 딘은?”
“재활은 얼추 끝났고 이제 슬슬 마이너에서 리햅 시작할 거라고 하던데 경과는 지켜봐야지. 뭐, 게다가 요즘 토미 존이야 대단한 수술도 아니니까 금방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에드 맥밀란이 보기에 팀 자체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3년 전에는 우승까지 여러 차례 했던 팀이다. 올스타급 선수가 여럿 빠지고 대형 먹튀가 둘 늘기는 했지만······. 아니다. 그러면 확실히 나쁘다. 당장 WAR을 짱깨식으로 계산해도 최소 25승은 날아간 셈이다.
“에드.”
“응?”
“그런 것 신경 쓰지 마. 여긴 다저스가 아니야. 굳이 네가 팀 전체까지 신경 써 줄 필요는 없어. 네가 신경 써야 할 건 네 몸뿐이야. 너만 이전의 절반 정도로 돌아와 준다면 충분히 가능해.”
“고작 절반?”
“에드 맥밀란 전성기를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절반이면 올스타급 포수 아닌가?”
가끔은 빈말인 걸 알아도 기분 좋은 말이 있는 법이다. 성민의 립서비스에 에드 맥밀란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래, 그건 또 그렇지.”
***
“악!!”
라만 그레고리가 자신의 오른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갈라졌다. 세밀하게 관리했지만, 연습량 자체가 너무 많았다.
“젠장.”
이래서야 최소 일주일은 쉬어야 할 판이다.
그의 나이도 이제 서른다섯.
마음이 초조했다.
너클볼로 사이 영을 받았던 투수인 R.A디키나 그에게 너클볼을 전수해주는 성민이 37세에 사이 영을 받았다지만 그건 정말 특별한 재능을 지닌 그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너클볼 투수도 결국 사람이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수록 더 강력하다. 성민이 그것을 증명한다. 40세의 성민 역시 여전히 강력한 사이 영 컨텐더지만 30대 중반 전성기의 성민은 감히 비길 사람이 없던 아메리칸리그의 지배자였다.
“달리자.”
하지만 라만 그레고리는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그 초조함으로 실패를 경험해봤다. 손톱을 본드로 붙이고 공을 더 던져본다? 의미 없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연습을 하겠다. 목표는 내년 시즌 스프링 트레이닝이다. 스플릿 계약으로라도 들어가서 한 자리를 따내 보겠다.
늙어가는 투수가 오늘도 몸부림쳤다.
***
“그레고리를?”
“네. 몇 번 말씀드렸지만, 너클볼이 이제 제법 쓸만한 수준이에요. 물론 당장 어떻게 하자는 건 아니고, 마이너에서 좀 써보면 어떤가 싶어서요. 우리 팀은 저 때문에 너클볼을 받아줄 포수도 있으니까 다른 팀보다 여러모로 유리하고요.”
너클볼 투수가 평균 수준의 투수만 한 위력을 발휘한다면 사용할 수 있을까?
어렵다.
너클볼을 받기 위해서는 특별한 포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포수의 경우 보통 라인업을 하나 차지하게 되는데 이걸 감쇄하기 위해서는 너클볼 투수의 기량이 특출나지 않으면 곤란하다.
하지만 이미 보스턴에는 김성민이라는 너클볼 투수가 존재하고 그의 공을 받아줄 포수도 존재한다. 이건 만약의 경우 라만 그레고리를 불펜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너클볼 투수처럼 불안한 녀석들을 불펜으로 사용하고 싶은 감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 실전을 경험하는 편이 더 낫기도 할 거고. 일단 긁어보는 용도라면 저희가 선점하는 편이 더 좋지 않겠어요?”
“흐음, 성민 네가 보기엔 포틀랜드 시독스 정도면 적당할 거라고 보는 건가?”
“네. AA 정도라면 감각도 익히고 여러모로 괜찮겠죠.”
재작년 새롭게 부임한 드와이언 머피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단장님께는 내가 일단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
“이봐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아 이번에 앤드류 딘이 리햅 하려고 우리 팀에 온다는 거? 그게 뭐 중요해? 어차피 한두 경기 뛰어보고 다시 사라질 사람인데? 뭐 비싼 밥은 몇 번 사긴 하겠네.”
“아니, 그거 말고.”
“그러면 또 뭔데?”
“라만 그레고리가 온대.”
“라만 그레고리? 그 라만 그레고리? 필라델피아 로키스의 대형 먹튀?”
“어.”
“그 아저씨 완전히 망가진 거 아니었어? 이제 와서 뭐 먹을 게 있다고 AA를 오는 거야?”
5월.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지구 1위를 달리고, 토론토가 지구 2위를 기록 중인 이상한 계절.
AA리그 포틀랜드 시독스에서 완전히 망가진 에이스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에이스가 만났다.
< 외전(8) > 끝
ⓒ 묘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