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28화 (129/287)

< 격동의 겨울(4) >

한국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늙은 남자 패널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전직 야구 선수로 현역 시절에는 제법 이름을 날렸던 연예인이다.

“그러니까 이제 만으로 31살 시즌 되는 너클볼 투수인데 그것도 사이 영 2위를 받았던 투수인데 고작 BA 14위랑 47위 유망주라뇨. 다저스가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죠. 정말 말이 안 되는 트레이드 제안이에요.”

마찬가지로 전직 야구 선수, 하지만 야구 선수보다는 프런트로 조금 더 이름 높은 안경을 쓴 패널이 그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었다.

“잠깐만요. 지금 이 이야기에서 김성민 선수가 31살 시즌이 되는 너클볼 투수인 게 대체 무슨 상관이죠?”

“너클볼 투수가 31살 시즌이라는 건 이제 전성기가 시작이라는 거 아닙니까. 아시죠? 너클볼 투수는 보통 40대 중반까지 뛰는 거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트레이드는 앞으로 15년을 써먹을 수 있는 확실한 사이 영 상급 투수를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그냥 A급 정도 되는 유망주 둘이랑 바꾸는 멍청한 짓이다. 이 말입니다.”

“일단 말씀하신 주장에 여러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일단 어째서 김성민 선수가 15년을 써 먹을 수 있는 투수가 되는 겁니까?”

“아니, 그야 김성민이가 이제 만 31세 시즌이고 너클볼 투수라 그렇잖아요.”

안경 쓴 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기 김성민 선수가 2년 뒤에 계약이 만료인 건 알고 계시죠?”

“그거야 재계약을 하면 그만 아닙니까!!”

“일단 다저스 사치세 생각했을 때 재계약이, 아니다. 이건 뒤로 미뤄두고요. 애초에 재계약은 어느 팀이건 할 수 있는 겁니다. 뭐 지금 김성민 선수 보면 QO로 잡을 수 있는 선수도 아니고 그거에 몸값 엄청 영향 받을 선수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애초에 지금 트레이드는 김성민 선수 자체와 유망주 둘을 바꾼다는 개념이 아니라, 김성민 선수의 2년과 장차 메이저 25인 안에는 거의 무조건 들어갈, 올스타는 거의 가능하다고 보는 선수 둘의 풀 서비스 타임을 교환하는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건 가능성이잖습니까. 김성민 선수는 현재 실력이고요. 사이 영 2위 선수. 그것도 평범한 해였다면 1위 너끈히 할만한 선수를 2,200만 달러에 쓸 수 있는 가치가 고작 유망주 둘은 아니죠.”

“일단 에밀리오 가르시아, 필립 탱고 두 선수 모두 당장 내년부터 빅리그 25인으로 써먹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유망주들입니다. AA에서 이미 검증 끝난 선수들이에요. 아마 보스턴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무조건 올려서 써먹었을 선수라는 이야기죠. 그런 선수들을 최저연봉으로 3년. 그리고 연봉협상으로 3년씩을 더 써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트레이드는 가치만 따져보면 무조건 다저스 쪽이 이득을 보는 거래에요.”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기껏해야 BA 14위와 47위 유망주잖아요. 1위도 아니고 한 자릿수도 아니고. 14위랑 47위에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 세계의 야구를 하는 19세부터 23세 사이에 모든 선수 가운데 두 번째로 뛰어난 우완 투수와 삼루수라는 뜻입니다. 한 세대를 10년으로 봐도 둘 다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재능이라는 뜻이에요.”

“아니!! 그래서 지금 다저스가 김성민을 파는 게 올바르다는 소립니까? 대한민국의 자랑 김성민 선수를 고작 그런 유망주 둘이랑요?”

버럭 화를 내는 늙은 남자의 이야기에 안경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오면 어차피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자랑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이게 옳다고 해봐야 매국노밖에 될 수 없다. 어차피 이 토론은 저 사람을 설득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쇼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가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다.

안경 사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물론 그건 당장 손익을 따져봤을 때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그게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말하자면 김성민 선수는 수령 기한이 2년 남은 1등짜리 연금복권이고 저 두 유망주는 3등 정도는 확정인, 그리고 1등에 당첨될 확률도 제법 높은,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비싸게 거래되는 아직 완전히 긁히지 않은 복권 두 장인 셈이죠.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결정이 날 일일 겁니다.”

-완전히 공감함. 사이 영 2위 투수인데 10위 이내 유망주도 아니고 14위랑 47위 유망주 하나씩 주고 땡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어, 말이 됨. 사이 영 2위 투수랑 연 2,200만 달러에 뭐 한 5년 6년 계약이면 좀 말이 안 되거든? 근데 꼴랑 2년임. 그리고 자꾸 14위랑 47위 무시하는데, 드래프트 1라운드가 30명임. 그리고 이게 그 나이대에 14위 47위가 아니라 마이너리거 통틀어서 14위랑 47위고. 특히 에밀리오 가르시아는 루키리그부터 100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초특급 유망주임. 보스턴 팬 입장에서 솔직히 보스턴이 미친 것 같음. 차라리 컵스의 토니 알렌이면 이해가 되겠다.-

-뭔 개소리지? 토니 알렌은 사이 영 3위잖아. 어떻게 성민이랑 트레이드는 손해인데 걔랑 트레이드하는 건 이해가 되는 거임?-

-토니 알렌은 3년 차에 9년 2억짜리 계약맺었잖아. 걔 연평균 2,222만으로 앞으로 6년을 더 써먹을 수 있는 투수임.-

-나도 보스턴 팬인데, 난 성민이랑 트레이드했으면 좋겠다.-

-역시 생각 있는 팬도 있네. 솔직히 미래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음? 현재 잘하는 선수가 최고지.-

-아니, 전력으로는 좀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성민이가 보스턴 가면 보스턴 경기 중계는 엄청나게 잘해줄 거 아니야. 공중파로 보스턴 경기나 좀 보고 싶다. MLBtv 결제도 괜찮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공짜로 보는 게 더 좋지.-

한국의 여론이 요동쳤다.

물론 요동친 것은 한국의 여론만이 아니었다. 윈터 미팅을 전후하여 미국의 여론 역시 요동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국의 여론이 성민에게 호의적인 방향으로 요동을 쳤다면, 미국의 여론은 한국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보스턴의 팬들은 자기들의 단장인 존 맥도웰이 미쳤다고 성토했고, 다저스의 팬 대부분은 정말로 이뤄지는 보스턴의 트레이드를 지켜보며 왜 케빈 맥밀란이 이 트레이드를 얼른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지를 답답하게 생각했다.

-성민아, 모리츠 코퍼레이션도 여론전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좀 구리구리한 느낌인데? 지금이라도 다저스 프런트에 연락을 넣어봐야 하지 않을까?

“뭐, 쟤들이 아무리 그래 봐야 어차피 결정권은 저한테 있다니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무조건 먼저 연락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근데 슈퍼 갑이니 뭐니 해도 어차피 다저스에서 뭐 연락이 오건 뭐건 그냥 네가 싫다는 말 할 수 있는 거 말곤 딱히 없잖아. 그러면 그냥 연락해서 상황을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이렇게 있는 게 더 상황을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거라니까요. 그리고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요.”

-오해?

“네, 왜 연락이 다저스에서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응? 그러면?

마침 타이밍 좋게 성민의 스마트폰이 우우웅 울렸다.

-빅터 모리츠-

성민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아, 네. 뭐 시간은 괜찮습니다. 어차피 12월 한 달은 LA에서 푹 쉴 생각이라서요. 아, 아닙니다. 굳이 이야기도 안 들어보고 내쫓을 필요는 없죠. 어차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인연인데, 굳이 직접 찾아오겠다는데 이야기 정도는 충분히 나눠봐도 괜찮습니다.”

필 니크로가 물었다.

-무슨 말을 한 거야?

“그냥 기다리던 연락이 온 거에요.”

-기다리던 연락?

“네, 존 맥도웰이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다고 하네요.”

-존 맥도웰이면, 보스턴 단장!? 뭐야? 보스턴에서 왜 너를? 아니, 그보다 다저스가 아니라 보스턴의 연락을 기다렸다고?

“당연하죠. 제가 트레이드 거부를 풀어준다고 다저스가 저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걸 푼다는 건, 보스턴 소속이 된다는 말이잖아요.”

-하긴,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조건을 제시하려면 당연히 보스턴에서 제시를 하겠죠. 대충 돌아가는 꼴을 보니 윈터 미팅에서 케빈 맥밀란이랑 이야기를 끝낸 모양이네요.”

성민의 예상처럼 윈터 미팅에서 두 단장은 서로 간의 합의를 대충 끝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다저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트레이드에 적극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저스의 케빈 맥밀란 단장 입장에서 의아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숀 벅 정도면 마이크 올리버랑 적합한 트레이드 같은데요.”

“맙소사,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지만 너무 후려치려는 거 아닙니까? 마이크 올리버에 숀 벅을 내놓으라니요. 그 친구는 부상 때문에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장기적으로 빅리그에 확실히 안착할 수 있는 자원이고요.”

“물론 1:1로 보면 마이크 올리버가 많이 부족하죠. 하지만 어쨌거나 올리버는 성민과 1년이나 호흡을 같이했던 포수 아니겠습니까. 빅리그에 확실한 안착으로 따지자면 올리버는 이미 안착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죠.”

“뭐, 일단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어차피 성민의 문제가 해결되고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 같군요.”

분명 성민의 영입에는 굉장히 적극적인데, 마이크 올리버에게는 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이크 올리버는 검증된 너클볼 포수다. 물론 보스턴이 여러 트레이드를 통해서 너클볼을 받을 만한 포수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능성만 가지고 도박을 하기에 보스턴이 이번 트레이드에 거는 유망주들의 면면은 너무 묵직했다.

“보스턴이랑 링크된 포수 자원이 있는지 한 번 살펴봐. 블러킹이랑 포구에 강점이 있는 녀석들로.”

“알겠습니다.”

윈터 미팅이 끝나고 고작 하루.

보스턴의 단장 존 맥도웰이 직접 LA에 있는 성민의 아파트를 찾았다.

“반갑습니다. 성민 선수. 작년부터 꼭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보게 되는군요.”

“그러게요. 저도 고작 1년 만에 이렇게 단장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성민이 쇼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할 말이 있으면 먼저 꺼내 보라는 그 제스쳐를 존 맥도웰이 완벽하게 읽었다.

“우선 저희 팀의 플랜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보스턴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트레이드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었다.

즉시 전력감인 선수를 내놓고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를 사 오는가 하면,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를 내놓고 즉시 전력감을 끌어오는 일도 있다. 게다가 그들이 단순히 선수의 가치만 가지고 트레이드를 하는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성민은 보스턴의 외부인사로는 처음으로 보스턴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듣는 사람이었다. 열변을 토하는 존 맥도웰의 민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의 이야기에는 그만큼의 열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열정적인 이야기에 필 니크로가 설득됐다.

-맙소사, 이런 생각이었다고?

‘촌스럽게 놀라고 그러지 마세요. 원래 모든 계획은 계획일 때는 항상 그럴싸한 법입니다. 계획부터 글러먹는 경우는 드물어요.’

물론 성민은 아니었다. 필 니크로의 감탄을 성민이 가로막았다.

“좋습니다.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네?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플랜에는 성민이 꼭 필요하고······”

성민이 손가락을 들어 존 맥도웰의 말을 막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쪽에서 제가 필요한 건 굳이 그렇게 구구절절 말씀하시지 않아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지금 저한테 말씀해주셔야 하는 건 보스턴에 가는 것이 저에게 어떤 이득이 되느냐죠.”

아무래도 이번 대화는 그가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대화가 될 것 같았다.

존 맥도웰이 손수건을 꺼내 머리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 격동의 겨울(4)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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