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동의 겨울(3) >
-김성민 결국 사이 영은 못 땄네. 마지막 퍼펙트도 있어서 좀 기대했는데 아쉽다.-
-그래도 7점 차이면 엄청 선방했네. 1위 표 한 장 차이잖아.-
-난 그것보다 MVP 7위가 더 개깜놀.-
-왜? 성민이 정도면 MVP 7위 할 수도 있지.-
-원래 투수는 사이 영 상. 타자는 MVP 이게 정석임.-
-타자도 행크 애런 상 있잖아.-
-그건 급이 좀 떨어지지. 발표일만 봐도 월드 시리즈 중간에 발표하잖아. 신인왕이랑 사이 영 상, MVP는 끝나고 이 주 뒤에 발표하고.-
-MVP를 타자만 주려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상 나눠 먹기가 아니라 야구에서 Most Valuable Player. 가장 가치 있는 선수라는 말에 더 부합하는 건 닷새에 하루 등판하는 선발이 아니라 1년 내내 경기에 출장하는 타자이기 때문임.-
-맞는 이야기임. 그래서 비슷한 급의 투수랑 타자가 있을 때, 타자 쪽의 WAR이 더 높게 측정되는 거기도 하고.-
-그래도 등판하는 한 경기 한정으로는 투수 쪽이 훨씬 영향력이 크잖아.-
-그래서 월시 MVP는 성민이었고 챔피언십 시리즈 MVP는 디아고였던거임. 등판하는 경기 한 정으로는 선발의 영향력이 더 크니까, 5경기에 2경기씩 등판해서 두 경기 다 자기 몫 하면 MVP 가져가는 거지. 근데 162경기 중에서 33경기 등판으로는 비중이 떨어진다 이 말이지.-
-어쨌거나, 그래서 성민이의 MVP 7위가 더 놀라운 것임. 이번 시즌 포수 중에서 제일 잘했던 3할 포수 에드 맥밀란이 6위고 페데리코 수는 4위 표 한 장으로 공동 27위임. 다저스 1번 타자로 이번 시즌 커리어하이 기록한 마르타 블랑코도 14위밖에 안 됨.-
한참 동안 인터넷에 성민의 MVP 7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역설하던 전직 마린스 팬 하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이 미친 소식은?”
그는 비록 30대 중반의 나이에 엄마가 주선해주는 소개팅이나 하고 다니는 남자였지만, 애초에 부모님 세대에서 선, 아니 소개팅이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것은 다른 건 몰라도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그는 대기업에서 진급 누락 한번 없이 과장까지 다이렉트로 올라간 능력자였다. 특히 영어에 한해서는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는 그 어학 능력을 활용하여 SNS에 메이저의 기자들을 꾸준히 팔로잉 해왔는데, 이것이 MLB에 크게 관심이 없던 그가 거의 준전문가급의 식견을 빠르게 갖출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그가 팔로잉하고 있던 LA다저스 전담 기자인 잭 슈나이더가 자신의 SNS에 카더라 하나를 올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뇌내망상으로 치부할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잭 슈나이더의 카더라는 그것이 LA다저스의 소식일 경우 높은 확률로 사실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에밀리오 가르시아, 필립 탱고)-LA다저스(김성민) 트레이드 링크설이 돌고 있음. 다저스에서도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함.]
“에밀리오 가르시아랑 필립 탱고면 분명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그들의 개인적인 부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교 시절부터 마이너까지 모든 기록을 찾아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BA리포트 14위와 47위. 서비스 타임 역시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완전 신제품이다.
이건 가치로만 따지면 충분히를 넘어서 보스턴이 손해를 보는 거래다. 당장 전지적 성민 시점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그조차도 보스턴이 미친 건가? 싶은 수준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성민이 아니라 디아고를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아니다. 디아고는 컨트롤 기간이 내년으로 끝이니까. 트레이드 가치는 2년 확정인 성민이가 조금 더 높긴 하겠네.”
[얘들아, 잭 슈나이더 발 소식임. 보스턴에서 지네 유망주 박박 긁어서 성민이랑 트레이드 요청했다고 함. BA 14위 우완 투수 에밀리오 가르시아, BA 47위 삼루수 필립 탱고인데 다저스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하네?]
-다저스가 제정신이면 이걸 트레이드를 하겠음? 내년에도 디아고랑 성민이면 우승 각인데. 이 역대급 원투 펀치를 꼴랑 1년 써먹고 팔아치운다고?-
-근데 다저스 올해로 디아고 재계약하면 사치세 라인을 엄청 크게 넘기는 거 아닌가?-
-다저스만 한 팀이 사치세로 고민하겠음? 그냥 가는 거지.-
-아니, 다저스는 지금도 거의 사치세 라인 간당간당하게 가고 있는데, 올해 성적 좋았던 서비스 타임 이내 선수들 연봉 협상하면 디아고 재계약 아니더라도 사치세는 무조건 넘기거든. 거기에 디아고 재계약까지 들어가면 그냥 사치세가 아니라, 사치세에 최고 부가세까지 폭탄으로 처맞음.-
-다저스나 양키스는 그래도 되는 구단들 아님?-
-사치세 4천만 달러 이상에 부가세 신설된 이후 다저스고 양키스고 딱 1년씩밖에 그거 유지 못 해봄. 거기다가 문제는 성민이 계약이 3년이라는 거임. 2년간 부가세로 거의 1억 달러 넘게 냈다고 치자고. 그리고 다시 재계약? 무조건 불가능임. 사치세로 6~7천만씩 내는 건 아무리 양키스 다저스라도 진짜 개에바지. 특A급 선수 두 명을 더 쓸 수 있는 돈인데.-
-그래도 2년은 끌고 가겠지.-
-2년 뒤에는? 지금 보스턴 딜은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임. ‘니들 어차피 성민이 빠져도 우승권 전력이잖아. 우리한테 성민이 보내면 니네 사치세 덜어내고 당장은 조금 약해지더라도 2년 뒤에는 지금 수준의 전력으로 올릴 수 있을 거야.’-
-성민이가 빠졌는데 2년 뒤에 어떻게 지금 수준으로 전력을 올림.
-에밀리오 가르시아면 진짜 유망주 최대어임. 보수적으로 봐도 올스타급 선수라고 평가받는 애야. 거기다가 필립 탱고도 30홈런을 칠 수 있는 골글급 삼루수 포텐셜이라는 소리 듣고 있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가능성이잖아. 당장 사이 영 컨텐더에 신인왕까지 수상한 애를 팔아치운다고?-
-사이 영 2위에 신인왕이니까 저런 선수들 받는 거지. 저 정도면 거의 디아고 헤밍턴 급 대우인데 다저스 생각에는 저게 고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야, 근데 성민이 12개 구단 트레이드 거부권 있지 않냐? 보스턴 어차피 나가리일 것 같은데. 성민이가 애초에 우승권 전력 갖춘 팀 아니면 가기 싫다고 했었잖아.-
“반응은 좀 어떤가?”
“여론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양호합니다만, 그래도 역시 부정적인 의견이 많습니다.”
“거기야 당연하지. 애초에 사치세 같은 걸 신경 쓰는 팬이 누가 있다고. 그 녀석들이야 돈을 얼마를 쓰건 성적만 나오면 좋다고 하겠지.”
메이저리그 구단은 기업이다. 적자를 보면서 운영할 수는 없다. 물론 양키스나 다저스 같은 메가마켓 팀들은 사치세 라인을 가끔 넘어가는 투자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그만큼 투자를 해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그들이 어떻게든 성민에게 2년 계약만을 주려고 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성민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의 페이롤 상황이 그랬을 뿐이다.
“지금이 성민의 트레이드 가치에서 최고점일 겁니다.”
“뻔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이만한 투수를 2,200만 달러에 2년을 더 쓸 수 있는 상황인데 당연히 최고점이겠지.”
그의 실력이 지금 최고점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2년 뒤 성민은 연평균 3천만 이상의 계약을 맺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지금보다 나이가 더 먹은 상태로 말이다. 트레이드 가치로 따졌을 때 사이 영 컨텐더의 전성기 2년을 2,200만 달러에 알짜로 빼먹을 수 있는 상태보다 더 높아질 수는 없다.
다저스의 단장인 케빈 맥밀란 입장에서는 성민의 몸값이 고점에 이르렀을 때, 그 고점보다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해가겠다는 제안을 단번에 잘라내기 힘들다. 만약 다저스가 아닌 적당한 빅마켓 팀이었다면 고민할 일도 아니었다.
적당한 빅마켓 팀이라면 이겨야 할 때는 계속 이겨야 한다. 유망주를 받고 즉전감을 내주는 거래는 상상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다저스는 이겨야 할 때만 이겨야 하는 팀이 아니다. 다저스는 ‘앞으로도 계속’ 이겨야 하는 팀이다.
성민이 빠지는 것이 다저스의 현재를 파는 일인가?
아니다.
에밀리오 가르시아와 필립 탱고가 장차 얼마나 대단한 선수가 될 것인가?
“에밀리오 가르시아의 경우 특별한 부상이 없다면 3년 이내로 프런트 라이너급 투수로 성장할 겁니다. 필립 탱고의 경우는 장차 저희 팀의 주전 삼루수가 될 포텐셜이 있고요.”
다저스의 전력분석팀에서 내놓은 결과였다.
결국, 어떤 조건으로 따져본다고 해도 여론을 제외한다면 이건 트레이드를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나의 물건은 고점에서 매각하고, 상대방의 물건은 저점에서 매수하는 격이니 말이다.
“잭 슈나이더쪽 활용해서 연기 좀 더 피워보라고 하자고. 그리고 보스턴 쪽도 조금 더 압박해보고. 그쪽 이상하게 저 자세야. 어디까지 질러도 따라오는지 한번 지켜보자고.”
“네.”
***
“보스, 지금 SNS 통해서 이상한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
“네, 보스의 트레이드에 관한 이야기던데요?”
“트레이드?”
토니 이시카와가 성민에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잭 슈나이더의 SNS가 떠 있었다.
-이거 뭐야? 사이 영 2위를 한 투수를 트레이드라고? 게다가 너한테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잖아.
‘뭐, 트레이드를 어디 선수랑 상의해서 하나요. 그리고 아직 결정도 아니고 그냥 보스턴에서 제의를 했다잖아요.’
-하지만 잭 슈나이더면 다저스 프런트랑 거의 다이렉트로 연결된 기자잖아. 이 정도면 거의 간 보는 거라고 봐야지.
성민이 토니에게 물었다.
“그래서, 사람들 반응은 좀 어떤데?”
“미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래?”
“네, 근데 주로 보스턴 쪽 팬들이 미쳤다고 소리치고 있어요. 그 정도 유망주들이면 디아고 헤밍턴을 데리고 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러네요. LA 다저스 쪽 팬들은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꽤 되고요.”
성민이 그리 실망하지 않았다.
“뭐, 이제 고작 1년 뛴 투수에 대한 의리는 딱 그 정도라는 거겠지. 한국 팬들 반응은 좀 어때?”
“그쪽이야 뭐, 다저스가 배은망덕하다고 비토하는 여론이 대부분이죠.”
“역시 고국밖에 없구만. 그런데 사실 뭐, 미국 애들이 뭐라고 떠들건 간에 별로 상관없긴 해. 어차피 결정권은 나한테 있으니까.”
“네?”
“나 트레이드 거부권으로 지정한 팀 중에서 보스턴 포함되어 있거든.”
“그러면 여기서 떠드는 이런 이야기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네요.”
“그렇지. 진짜 트레이드를 시키고 싶으면 구단에서도 나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야.”
필 니크로가 성민에게 물었다.
-그래도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구단에 확실하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아뇨, 원래 그런 건 급한 놈이 하는 겁니다. 애초에 제가 슈퍼 갑인데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죠. 게다가 뭐,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인 상황이라서. 사실 내년 시즌 성적에 따라서 시즌 중반, 혹은 내년 겨울에 트레이드될 거로 생각했는데, 타이밍이 좀 빠르기는 하네요.’
-그래도 보스턴에 갈 생각은 당연히 없는 거지? 야, 너도 이번 시즌 그 팀 상황 봤잖아. 엉망진창인 거. 월클 선수가 되고 싶다며. 그러려면 우승 최대한 많이 하고 화려한 팀에서 뛰어야 하잖아. 다시 말하지만 보스턴은 아니다.
‘글쎄요, KBO에서 제가 재규어스에서 우승했다면 지금 같은 임팩트를 남겼을까요? 마린스라서 그랬던 건 아닐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야. 성민아. 너 지금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물론 그렇다고 보스턴을 가겠다는 소리는 아니고요. 일단 상황을 좀 지켜보죠. 거듭 말하지만 보스턴이 상대라면 제가 슈퍼 갑인데 벌써 머리 쓸 필요 없잖아요?’
윈터 미팅까지 일주일.
보스턴이 두 건의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트레이드 블록에 올렸던 이름들이 블러핑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 격동의 겨울(3)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