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51)화 (451/456)

451. 너에게 닿기를(1)

언래블의 새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한 솜뭉치들의 얼굴에는 역시 우리 애들이라는 감정이 넘실거렸다.

- 나 오늘부터 수험생이야

몰라, 일단 그렇게 됐어.

이걸 보고 어떻게 안 해 ㅠㅠㅠㅠ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설명 이어가는 교수님과 작가분을 초롱초롱하게 보는 언래블 사진)

ㄴ 받고 이것도.

(세빈이 활짝 웃으며 교수님께 너무 멋있다고 꼭 공부하겠다고 하는 사진)

ㄴ 이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 건가 봐…ㅋ.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ㅠㅠㅠ

ㄴ 우리 애가 멋있다는데 어쩔 수 없지zzzz………….

ㄴ 작곡이랑 암호학으로 부족했어, 얘들아?ㅠㅠㅠㅠ

처음에는 우리나라에 관해 더 깊이 알아가자는 방송 취지에 솜뭉치들은 흐린 눈을 했다.

당장 하루하루가 빠듯하고 힘들어 죽겠으니, 지난날에 관심 두기 힘든 사람이 대다수다.

게다가 하필이면 왜 이런 인기 없을 것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는지도 의문이었다.

이제는 더 유명한 예능에 출연할 만하지 않냐는 게 많은 팬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언래블은 예능 출연이 많지 않다.

그나마 경환, 힘찬, 세빈이 예능 쪽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편이긴 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보기가 힘들다.

물론 다른 아이돌도 모든 멤버가 예능에 자주 출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건 알지만, 팬으로서의 욕심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

자체 제작 영상은 지금도 꾸준히 업로드되니 좋다.

떡밥이 끊기지 않는 건 무척 행복하지만, 이쯤 되니 ON 엔터가 방송국과 잘 지내지 못하나 싶었다.

장수 프로그램이나 인지도 있는 프로그램에 종종 출연하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은데.

그러던 와중에 예능 쪽으로 유명하던 PD가 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기사에 기뻐했다.

그게 이런 프로그램일 줄은 몰랐지만.

혹시라도 조기 폐지되면 우리 애들이 속상해할까 봐 팬들은 꼭 방송을 챙겨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런 우려 속에서 첫 방송이 있던 날.

“벌써 끝났다고?”

홀린 듯이 TV를 바라보던 팬들은 아쉬움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고리타분한 역사 얘기만 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생각보다 이야기는 술술 넘어갔다.

멤버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고, 온몸으로 신기함을 외쳤다.

그 와중에도 영빈은 꽤 깊이 있는 지식으로 교수님의 설명을 동생들에게 더 쉽게 풀어주었다.

- 우리 히스는 노래만 잘해도 되는데 왜 저렇게 지적인지 아는 사람

내 묘비명 하게 빨리 알려줘….

심장아 그만 나대 ㅠㅠㅠ 미치겠다ㅠㅠ

ㄴ 책 엄청 많이 읽는다던데 진짜였다. 우리 애는 진짜였어ㅠㅠ

ㄴ 반면 우리 찐빵은…!(말잇못)

ㄴ 우리 곰돌이는…!

ㄴ 막내는 그런 거 몰라도 괜찮아.

ㄴ 작은환이니?ㅋㅋㅋㅋㅋㅋ

ㄴ 너무 단호해서 작은 환인줄ㅋㅋㅋㅋ

첫 방송이었지만 출연진 간의 대화 흐름이 매끄럽고, 친근했다.

밥을 먹을 때도, 가볍게 거리를 거닐며 대화를 나눌 때도.

터만 남은 탑의 모습에 숙연해 하는 모습과 마지막에 놀이공원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리던 모습도.

출연진 간의 뛰어난 케미와 지루하게 늘어지는 법 없이 핵심을 찌르는 설명에 보는 내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계속 이런 텐션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시청자 게시판에도 나쁘지 않은 평이 올라왔다.

시청률과 대중의 반응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PD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언래블을 넣었던 게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온 것 같았다.

그들은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촬영 내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해줬다.

어디 하나 모난 구석 없는 애들처럼 넉살 좋게 먼저 다른 출연자들에게 엉겨 붙었다.

특히나 작가는 히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히스가 품에 들고 있던 손때묻은 책을 내밀며 사인을 부탁할 때부터 이미 함락된 듯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겠지만, 이 정도 시작이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복덩이네.”

* * *

“떨려?”

“당연하지. 넌 안 떨려?”

“당연히 떨리지.”

휴식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일본으로 날아왔다.

이미 미뤄진 일정이었기에 더 완벽하게 해내자고, 몇 번이나 우리끼리 다짐했다.

일본 앨범은 새 곡이 들어있기도 했지만, 기존 곡을 일본어로 재녹음한 곡도 들어있다.

같은 곡을 다른 언어로 부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처음 앨범을 만들 때 느꼈다.

미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에 몇 번이나 같은 구절을 다시 녹음했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녹음했는데 공장에 불이 났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던가.

그 후 소현 팀장님과 멤버들은 여러 번 회의를 거치며 세부 일정을 빈틈없이 조율했다.

방송국의 편파적인 태도에 잔뜩 화가 난 팀장님.

지난번에 방영한 드라마의 특별 영상으로도 트집을 잡았다고 했다.

그믐달 뮤직비디오만으로는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저 그 시대의 분위기만 따온 거니까.

처음에 뮤직비디오 제작할 당시에도 그 부분을 특별히 신경 썼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 드라마에 우리가 참여했다는 것 가지고 그렇게 꼬투리를 잡을 줄은 몰랐다고.

회사에서는 우리가 제작한 게 아니라 방송국의 요청으로 한 거라 설명했지만, 듣는 척도 안 한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일정이 엉킨 건 어차피 사고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회사에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일본 활동을 계획할 당시부터 각오한 문제라며 정윤 실장님은 담담한 얼굴을 했다.

많은 연예인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피해를 받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한국 연예인들의 활동이 활발한 것도 결국에는 돈이다.

이쪽이고 저쪽이고 결국 누가 더 이득을 보느냐의 싸움.

돈이 되니까 뭉갤 때는 뭉개고, 꼬투리 잡고 싶을 때는 별걸로 다 트집을 잡고.

지금도 저러는게 결국 돈 때문일 거라고 하셨다.

알아서 고개 숙이고 돈 가져오라고.

아마 그것뿐만 아니라 이전에 이치카가 수작을 부린 것도 한몫했을 테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사정들은 덮어놓고 어차피 우리는 방법을 찾았고, 더는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었다.

당장 무대하러 튀어나가야 하는데 그런 생각할 시간이 있을 리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요.”

“아무래도 뭔가 설치하니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거 아닐까?”

게릴라 공연이라 해도 준비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본 무대나 방송국처럼 거창하게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시설은 갖춰야 했다.

그 때문에 우진 형도 종범 형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평소라면 형들을 붙들고 장난치면서 긴장을 풀었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확인하면서 오늘 부를 세 곡을 계속해서 연습했다.

먼저 두 곡을 하고 나머지 한 곡은 분위기를 보고하기로 했다.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점차 진정되어 갔고, 멤버들은 하나, 둘 가사지를 내려놓았다.

이미 가사는 외운 지 오래지만, 실수할까 봐 놓지 못했던 것.

‘너희는 겁많은 것 좀 어떻게 해야 함.’

‘걱정이 많으니까 더 대비하는 거지.’

‘열심히 했으면 후회 없이 쏟아내면 되는 거임.’

포잉은 시큰둥하게 툭툭 내뱉으며 각자 긴장을 풀고 있는 멤버들을 바라봤다.

우리의 하루를 온전히 다 아는 포잉이다보니 응원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좋게 말하는 법 없는 우리 포잉이지만, 그 모습마저 고마워서 싱긋 웃었다.

‘고마워, 포잉.’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여전히 적응 안 되는 지 새초롬하게 흥 하고 콧방귀를 끼더니 훌쩍 가버렸다.

‘밖에 상황 살피고 온다, 계약자야.’

훌쩍 가버려서 내가 삐질까 걱정했는지 뒤늦게 말을 남겼다.

여전히 귀여운 우리 요정님.

일본 앨범의 타이틀 곡은 ‘Peony’.

모란이 아닌 작약을 뜻했다.

겹겹이 아름답게 피어난 작약을 떠올리며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번 곡은 준이 형과 외부 작곡가가 함께 만들었다고 했다.

거기에 외부 작사가분과 준이 형과 영빈 형이 가사를 쓰고.

그동안은 우리끼리 해내는 일이 많았지만, 이 앨범부터 활동의 폭을 넓히려 애썼다.

우리끼리 있다 보면 정형화되고 고일 수밖에 없다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우리 애들은 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잘 자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뻐근해지는 심장께를 살짝 누르며 나갈 준비를 하는 멤버들을 바라봤다.

“뭐해?”

“어디 아파?”

“아뇨, 그냥 기대돼서요.”

갑자기 가슴을 누르는 내 모습에 걱정한 건지 경환 형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왔다.

멤버들이 내 건강에 무척 민감하다는 걸 알기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저 새로운 무대가 너무 기대돼서, 심장이 떨린다고.

너희와 이렇게 무대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떨리고 행복한지.

말하기 부끄러운 마음은 삼켰다.

“싱겁긴. 잘할 거야.”

“맞아. 우리 연습 엄청 많이 했잖아.”

어깨를 툭 치며 나를 달래주는 경환 형의 손길도, 양손을 야무지게 쥐고 힘내라는 포즈를 취하는 찬이도.

시선이 닿으면 웃어주는 멤버들 모습에 같이 웃었다.

“얘들아, 준비됐어?”

“네!”

“그럼요!”

어느새 우진 형이 다가와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다.

쓰다듬다가 머리가 흐트러지면 가희 누나가 무서운 얼굴을 할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

밖의 웅성거림은 점점 더 커졌다.

“잘하고 와. 일본에서 데뷔 날이나 마찬가지니까.”

현장을 지휘하던 소현 팀장님도 언제 오셨는지 우리 곁에 다가와 방긋 웃었다.

“인사 제대로 하고 오자.”

“예아!”

“우리 안 까먹게 하고 오자!”

준이 형이 손을 내밀고 격려하자 그 손 위로 멤버들의 손이 하나, 둘 얹어졌다.

해외에서의 첫 공연.

시작을 제대로 끊어야 그 기세를 이어받아 앞으로도 쭉쭉 풀릴 거라 믿었다.

“We‘re?”

“We‘re ‘Unravel’!”

그래서 그럴까?

무대에 오를 때면 서로를 위해 외치던 구호가 오늘따라 더 우렁찼다.

* * *

[この歌手が誰なのかご存知の方はいらっしゃいますか]

(이 가수가 누군지 아는 사람 있어요?)

일본의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다.

글에는 짧은 영상이 함께 담겨있었다.

상설무대 위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 언래블이었다.

좁은 무대였음에도 서로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과 스피커가 터질 것 같은 성량.

아직 더운 날씨라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행복한 얼굴로 관객들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이 짧게 담겨있었다.

더불어 질문자는 자신이 급한 일로 금방 자리를 떠나야 했지만, 잠깐 본 금발 머리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얼핏 시선이 마주친 것도 같은데 날카롭던 눈매가 상냥하게 변하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는 말도 함께.

그 글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다.

누군가는 자기도 이 공연을 봤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고, 누군가는 무슨 꽃과 폭발 같은 것을 노래했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이런 내용이었다.

영상 속 가수가 언래블이라는 말과 함께 이번에 일본 앨범을 발매한 한국 가수라는 설명.

일본 앨범 발매를 기념하며 게릴라 공연을 진행 중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이라 말했다.

더불어 글쓴이가 말한 멤버는 언래블의 메인보컬 히스고, 그는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무척 다정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아래에는 ON 엔터가 미리 만들어둔 언래블의 일본 공식 SNS와 홈페이지 링크가 달려있었다.

어떤 솜뭉치는 히스의 이전 앨범 사진과 이번 공연 때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올렸다.

생각보다 빠른 답변에 질문자는 놀라기도 했지만, 답변에 감사하며 꼭 영상을 보겠다고 남겼다.

이런 글은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이미 솜뭉치가 되어있던 팬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영업을 시작했다.

자고로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

누구라도 흥미를 느끼고 있는 사람은 모두 붙잡아 솜인형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왜 TV가 아닌 길거리 공연으로 시작한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도 좋았다.

기회만 닿는다면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아이돌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언래블의 일본 활동은 생각보다 많은 관심 속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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