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40)화 (440/456)

440. 어쩌나(5)

포잉은 포포에게 지환을 만났던 이야기를 들었다.

기특한 계약자 놈이 제 몸을 아끼겠다고 답한 것도 몹시 흡족했다.

그동안 후드려 패면서 주입해둔 것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찡해지기도 했다.

툭하면 몸부터 튀어 나가서 그거 붙드느라 고생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몸이 흠칫거려도 이름을 부르면 얌전해졌다.

가끔 지환은 자기가 강아지냐며 불퉁한 얼굴을 하긴 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포잉이 아니었다.

강아지들은 훈련하면 금방 알아먹기라도 하지, 네 놈은 강아지들보다 더 본능에 약하다고 혹평을 쏟아주었다.

그러자 시무룩해져서 땅굴을 파고 있었지만, 혼낼 때는 누구보다 단호한 포잉이었기에 달래주지 않았다.

그런 여러 번의 우격다짐을 거친 후에야 제대로 이해한 계약자.

포잉은 왠지 그간의 고충들로 살짝 눈물이 날 뻔했지만 참았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있으니, 감정적인 것들은 잠시 넣어두어야 했다.

장로들이 종범의 집안과 소현이 연락한 무속인에게 도움을 구했다.

멤버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외부 스케줄 조절이 필요했던 것.

이런 현상으로는 지환이 회사에 직접 말하는 것보다 전문가의 입을 빌리는 게 더 나았다.

앞으로 지환이 오늘의 일로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고.

회사 사람들을 믿는다고 했지만, 아직 포잉은 그들을 온전히 다 믿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건강검진을 핑계 삼아 멤버들을 평소 연줄을 만들어 두었던 병원에 전부 입원시켰다.

종범과 우진이 병실을 지켰고, 바로 옆 병실에는 새벽 멤버들까지 불러들여 놓았다.

이전 콜라보 앨범 발매 지연에 대한 보상의 일종이라는 명분을 붙여, 겸사겸사 다 같이 종합검사나 하자고.

그러면서 짧게 서로 소감 정도를 녹화하는 것으로 차후 써먹을 영상까지 뽑았다.

처음에는 한 병실에 모두 넣을 생각이었지만, VIP용 병실이다 보니 최대가 2인실이었다.

모두를 모아두는 것과 외부 매체로부터의 신변 보호 두 가지를 놓고 회사는 머리를 싸매야 했다.

결국 병원과 협의 끝에 3명씩 한 병실에 밀어 넣었다.

얼떨결에 끌려온 멤버들은 처음에야 어리둥절하더니 금방 적응해서 자기들끼리 까르륵거리고 있었다.

세 명씩 넣어놨지만, 결국엔 한 병실에 죄다 모여서 자기들끼리 노느라 바빴다.

‘그래도 네 녀석 혼자 있는 것보다야 이렇게 다 같이 넣어두는 게 나도 마음 편하니까.’

‘내가 이렇게 신뢰가 없구나….’

지환의 아련한 중얼거림은 포잉에게 닿지 못했다.

‘얌전히 있어라, 계약자 놈아.’

‘네엥….’

포잉은 미심쩍었지만,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음.’

계약자를 혼자 두는 것은 불안했지만, 포잉은 이 사건의 당사자로 끝까지 지켜볼 의무가 있었다.

지환은 그런 포잉을 바라보다 가만히 웃었다.

많은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가벼워 보이는.

혹은 후련해 보이는 미소였다.

‘기다리고 있을게.’

포잉은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움찔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대답은 다녀와서 들려주면 될 테니까.

* * *

포잉이 현장에 도착할 때쯤, 그 여자가 머무르는 현장을 둘러싼 상급 요정들과 포포.

“둘이 들어가고 난 여기를, 히노는 그 여자의 본가를 지키고 있기로 했다.”

“네.”

포포는 포잉을 힐끔 보고는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호텔 최상층 룸에 머물던 그들은 최후의 반항이라도 하는지,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명계의 사자들은 현실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결계를 유지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알뜰살뜰 잘 써먹고 계시네요?”

“자기들이 실수했으니 당연히 수습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포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창문 밖에서 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푸른 불꽃을 품에 감싸 안고 룸 안의 장로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온갖 사특한 것들을 불러내어 공격하기도 했고, 룸 내부의 집기들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저런 게 통할 분들이 아닌데.”

“알면서도 저러는 것이니라. 곱게 끌려가지 않겠다는 거지.”

포잉은 이해되지 않았다.

어차피 승산이 없는데 왜 저렇게 더 기운을 빼는 거지?

장로님들 표정은 한점의 흔들림조차 없이 담담했다.

지금도 많이 봐주고 있는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

그저 강경한 수단을 쓰면 여자도, 유리도 영혼에 타격을 받게 될 테니 힘이 빠지길 기다리는 중.

가뜩이나 유리뿐만 아니라 여자의 혼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확실했다.

“왜 저렇게 혼이 너덜너덜하죠?”

“평범한 인간이 그 많은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일으킬 수 있을 리가.”

왜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때의 사특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처음엔 유리가 지환에게 접근하는가 싶더니 그마저도 얼마 안 가 포기했다.

그 후로 생긴 일들은 전부 사람의 짓이다.

포잉은 그것이 요정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쓸 수 없는 거네요.”

“더 쓰면 그때는 정말 소멸할 테니까.”

유리를 두고 스스로 숨을 끊을 여자가 아니었다.

여태까지의 집착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포포는 포잉에게 이 이 자리를 빌려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다.

포잉은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고, 가끔은 책이 아닌 현실에서 배워야 했기에.

그때,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유리의 푸른 불꽃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여자는 미친 듯이 웃더니 유리를 꼭 껴안고는 창밖의 포잉을 정확히 응시했다.

“지금 저희 본 거죠?”

“가만히 있거라. 아무런 반응도 하지 말고.”

포포는 놀란 건지 털을 바짝 세우는 포잉에게 일갈했다.

여자는 그들의 주변을 한번 바라보더니 화사하게 웃었다.

“유리, 괜찮아. 이제 아프지 않을 거야.”

여자의 속삭임이 뚜렷하게 귓가에 울렸다.

그와 동시에 장로들이 달려들어 여자와 유리가 서 있던 곳에 여러 겹의 보호막을 쳤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저 미친 작자들이!”

“쟤네가 언제는 정상이었어요? 빨리 가봐요!”

포포가 기함하자, 포잉은 그런 포포를 질책하며 등 떠밀었다.

저들이 하려는 행위는 명확했다.

자신들의 혼을 매개체 삼아 터트리겠다는 것.

혼의 크기는 육체와 비례하지 않는다.

누더기 조각처럼 너덜거리는데도 버티고 있을 만큼 강력한 혼이다.

“내가 갈 것도 없다. 둘이 알아서 할 테니까.”

잠시 당황했던 포포는 금방 평정을 되찾고는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포잉을 앞발로 살짝 눌렀다.

그 여파가 작지 않을 테지만, 그것조차 막지 못할 장로들이 아니었다.

여자가 육체를 벗어나 혼을 드러내며 터트리는 순간.

새까만 폭발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주변의 모든 빛을 앗아갈 정도로 거대하고 짙은 어둠.

그마저도 찰나여서 안타깝기까지 한, 그런 어둠을 뿌리고 여자는 사라졌다.

육신도, 영혼도, 어느 것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지워버렸다.

품 안에 있던 유리도 여자와 함께 사라졌다.

폭발에 외부가 휘말리지 않도록 지켜낸 장로들은 피곤한 듯 보였다.

어지간히 독한 마음을 품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지독한 것.”

포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버둥거리는 포잉을 무시했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포포는 똑똑히 들었다.

-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아.

유리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자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장로들에게 살려달라고 의탁하지도 않았고, 원망하지도, 무엇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눈으로 여자를 가만히 바라볼 뿐.

마지막으로 여자의 가슴에 기대 눈을 감은 유리는 한편으로는 편안해 보였다.

유리가 장로들에게 살려달라고 했다면, 장로들은 어떻게 해서든 유리를 살렸을 것이다.

차라리 살아서 정당한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하지만 유리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계약자를 선택했다.

서글플 만큼 맹목적인 어린 소원 요정의 최후가 포포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조차 사치라는 걸 알기에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 때문에 희생당한 생명이 너무 많았다.

“아, 좀 비켜봐요!”

“크흠.”

그런 포포의 감상은 기어코 포포를 밀어낸 포잉에 의해 깨졌다.

잠시 잡아둔다는 걸 그만 깜박해버렸다.

“이상하지 않아요?”

“응?”

포잉은 포포와 달리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두 장로가 남아있던 기운을 치우고 명계의 사자들은 지친 얼굴로 결계를 해제하고 있었다.

이제 저들은 근처 인간들에게 기억 왜곡을 펼칠 것.

공간을 분리해 현실에는 영향이 없게끔 했지만, 마지막 폭발로 인해 어떤 인간들은 이질적인 것을 느꼈을 테니까.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그 긴 시간을 버텼던 인간이?”

“너도 방금 보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이상하다고요. 왜 보란 듯이 자폭한 거지?”

포잉의 촉이 울고 있었다.

분명 이게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그런 촉.

포포는 이해 못 했다는 듯 포잉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람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포잉은 알 수 있다.

인간의 집착은 그렇게 쉽게 포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 가봅니다!”

포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계약자에게 향했다.

등 뒤에서 포포가 무어라 소리쳤지만, 지금 포잉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 저 인간은 뒤통수 때릴 준비를 해놨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제발 얌전히 있어라, 지환아.’

* * *

포잉은 언제 오지….

위험한 곳에 포잉을 보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 작은 요정님,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제발 이제 너희 병실로 돌아가지 않을래?”

“시른데~ 시른데~.”

생각할 게 있다는 핑계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던 내게 찬이가 까부는 소리가 들렸다.

저 목소리는 어찌나 선명하게 들리는지 촐랑거리는 표정까지 다 보이는 것 같았다.

“아, 지짜!”

“우리 세비니 혀 반 토막 어디 갔을까~.”

세빈이는 흥분하면 가끔 소리를 먹는다.

혀가 풀리는 건지 아니면 혀가 꼬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혀 짧은소리가 나올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그리고 우리 찬이는 그런 작은 것 하나까지 다 놓치지 않고 주워 먹는 뒤통수 때려주고 싶은 장난꾸러기였고.

아무래도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게 진실인 듯했다.

저렇게 이불 밖에 무서운 인간들이 가득한 걸 보니.

병실에서 우당탕거리며 놀고 있는 멤버들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안전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러니 이제 포잉이 어서 나타나서 포잉도 무사하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파닥거리는 멤버들 사이로 이상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무언가 ‘텅’하고 울리는 듯한 소리가 침대를 타고 소리인지 느낌인지 모를 정도로 미세하게 들렸다.

“얘들아.”

“넹?”

“여기는 우리 숙소 아니고 병원이니까 조용히 있자.”

멤버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지는 것 같자 준이 형이 멤버들을 말렸다.

아무리 따로 배정받은 병실이고 사람이 없다 쳐도 어디서 소문이 어떻게 날지 모르니까.

금방 얌전해진 멤버들이 도로록 눈동자만 굴리는 사이,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선생님 오셨어. 얘들아.”

우진 형의 목소리에 안심하게 문을 열자, 인자한 얼굴을 한 의사 가운을 입은 분이 서 있었다.

힐끔 가운 위에 이름을 확인한 나는 조심스럽게 멤버들을 손짓으로 불러 모았다.

등 뒤의 멤버들에게 몰래 보여준 손가락 세 개.

우진 형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 그때, 준이 형이 평소랑 다를 바 없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어? 아까랑 다른 분이 오셨네요?”

“저희 다른 검사 받을 게 있었나요? 내일인 줄 알았는데.”

“허허,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미안합니다. 저희 딸아이가 팬이라 혹시 사인 한 장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우진 형의 시선이 매서워졌고, 급히 휴대폰을 꺼내는 것까지 확인했다.

“아, 당연히 해드려야죠. 혹시 종이나 앨범 있으세요?”

준이 형의 침착한 대응에 속으로 감탄했다.

의사 선생님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을 때, 나는 그 사람에게 달려가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얌전히 있기로 포잉과 우리 애들과 몇 번이나 약속했으니까.

아까 잠깐 준이 형과 나갔다가 만난 선생님은 훨씬 젊은 분이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길래 선생님 이름이 써진 가운을 입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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