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87)화 (387/456)

387. 별이 빛나는 밤(1)

위캠의 언래블 공식 계정에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영상의 제목은 ‘평화로운 어느 날(The Story Of A Starry Night).’

배경음으로는 언래블의 ‘Pluto’가 피아노 버전으로 은은하게 깔리고 있었다.

어두운 화면에 몽글몽글한 글씨체로 떠오른 영상의 제목.

점차 밝아지며 숙소 내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제목도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화면은 언래블의 숙소 거실을 비추고 있었다.

멤버들은 어디 갔는지 모두 보이지 않았고, 거실은 쿠션과 인형들로 따뜻하게 채워져 있었다.

얼마 후,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하나, 둘 열리고 솜뭉치들에게는 익숙한 얼굴이 빼꼼 나왔다.

“엇? 벌써 찍는 거야?”

“나가야 하나? 형, 우리 이제 나가요?”

막내 둘이 문이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얼굴만 빼꼼 내밀고 속닥거렸다.

그런 막내들이 귀여웠는지 등 뒤에서 다른 멤버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가운데 방의 빼꼼 열린 문틈으로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옷 다 갈아입었어?”

“네!”

“그럼! 진즉 다 입었지.”

“그럼 나가도 되지. 준비된 사람은 나가서 솜뭉치들 심심하지 않게 말 걸어주자.”

지환이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자, 제일 처음 방과 끝 방의 문이 열리며 힘찬과 세빈이 폴짝 나왔다.

한때 유행하던 동물 잠옷을 입은 둘.

힘찬은 길게 늘어진 원숭이 꼬리를 잡아당기며 재밌어하고 있었고, 세빈은 토끼 귀를 톡톡 치고 있었다.

“짠! 오늘은 다 같이 파자마 파티하는 날이에요!”

“솜뭉치들도 잠옷 갈아입고 와요!”

“형들은 시간이 좀 걸리나 봐요.”

잠옷을 부끄러워하더란 이야기를 카메라를 향해 속닥거리던 둘은 키득거리며 바닥에 철푸덕 누웠다.

“벌써 누우면 어떡해.”

둘이 바닥에 눕자마자 가운데 방에서 경환이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판다 잠옷을 입은 경환이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려서 막내 둘은 멍하니 셋째 형을 바라보았다.

“왜?”

“형 모자 써봐!”

“모자?”

모자를 안 썼는데도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자리에서 발딱 일어난 힘찬과 세빈이는 경환에게 달려가 모자를 씌웠다.

“아, 앞이 안 보여. 이거 불편한데.”

“준이 형! 히스 형! 화나! 빨리 나와서 이거 봐봐!”

경환의 손을 잡아 바닥에 앉도록 세빈이 도와주는 사이, 다른 멤버들도 방에서 나왔다.

“왜?”

“경환 형 진짜 잘 어울리지 않아?”

“그래, 다들 잘 어울리네.”

지환은 잔뜩 신난 힘찬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왜 나 고양이….”

“환이도 잘 어울린다.”

“기쁘지 않아요….”

예상대로 하준은 늑대 잠옷이었고, 양은 없었는지 영빈은 조그만 뿔이 귀여운 염소 잠옷이었다.

잠옷이 어색한지 셋 모두 약간의 심란함을 담은 얼굴이었지만, 금방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서로가 보기에도 잠옷이 제법 웃겼던 모양이었다.

“자, 예쁘게 앉자. 솜뭉치들한테 인사해야지.”

하준의 다정한 목소리에 멤버들은 호다닥 자기 자리를 찾아가듯 차례대로 앉았다.

평소 인사하는 대형 순서 그대로였다.

“솜뭉치들, 잘 지냈어요? 언래블 1주년을 기념하는 첫 번째 영상입니다. 오늘은 어떤 내용일지 누가 설명해볼까?”

“저요!”

“저요!”

힘찬과 세빈이 손을 번쩍 들었고, 의외로 경환이 진지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먼저 나서는 법이 없었던 경환이기에 하준은 경환에게 대답해보자고 했다.

“오늘은 솜뭉치들과 함께하는 파자마 파티에요. 그리고 진실게임도 할 겁니다.”

“형, 너무 진지하게 말하니까 꼭 누구 하나 보낼 것 같은 분위기잖아.”

경환의 진지한 목소리에 지환이 웃으며 답했다.

지환의 목소리에 ‘아, 그래?’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에도 경환의 얼굴은 진중했다.

“파티니까 당연히 먹을 것도 있어야겠죠?”

“그래서 우리가 준비했어요!”

“솜뭉치들도 간식 챙겨와요!”

솜털처럼 가벼운 목소리들이 즐거움을 가득 담고 외쳤다.

그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멤버들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누구는 밥 먹을 때 쓸 것 같은 상을 가져와서 펴고, 누구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고.

또 누구는 부엌에 숨겨둔 군것질거리를 들고 와서 상에 차렸다.

상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앉은 멤버들.

“원래 예쁘게 꾸며주신다고 했는데, 그냥 저희 집에서 평소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어요.”

“솜뭉치들도 각자 집에서 편하게 보는 거잖아요?”

“제일 편한 장소에서 편하게 입고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면서 수다 떠는 그런 분위기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멤버들은 활기차게 오늘 영상의 의미를 설명했다.

가장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어딘지 비밀스럽고 몽글몽글한 시간.

덕분에 멤버들 얼굴에는 은은한 설렘이 묻어났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린 물기 어린 수국처럼.

홀로 피어나지 않는, 올망졸망한 꽃들이 모여 마침내 아름다운 그 꽃처럼.

“솔직히 평소에 같이 시간 보내기가 힘들잖아요. 다들 일상이 있고, 그 바쁜 하루 중에서 시간을 쪼개서 저희와 함께해주시는 거니까요.”

반짝거리는 동생들의 눈동자를 보고 흐뭇해하던 하준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시간 날 때 아무 때나 볼 수 있도록 영상을 찍기로 했어요. 라이브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보는 것도 좋지만, 라이브는 언제든 해도 되니까.”

“형, 그치만 덕질이라는 건 원래 없는 시간까지 만들게 되는 법이라고 했어요.”

지환이 툭 던진 말에 하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금세 웃어버렸다.

“그래, 그래도 이왕이면 편한 시간에 즐겼으면 좋겠으니까.”

영상은 언래블 멤버들이 친구와 편하게 이야기하듯 이어졌다.

최근에 어떤 연습을 하고 있는지, 다음 앨범 준비하고 있다는 말 등.

따로 대본은 준비하지 않은 건지 편하게 말을 꺼냈고, 그러다 보니 말이 겹치기도 했다.

평소라면 그런 상황을 조율했을 멤버들까지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느라 바빴다.

힘찬이 어떤 장난을 쳤고, 거기 휘말린 영빈이 무슨 꼴이 됐는지.

세빈과 힘찬이 몰래 밥을 해보겠다고 꼬물거리다 경환의 고자질로 지환에게 혼났던 일.

다 같이 거실에서 자던 날, 하준이 잠꼬대로 막내들을 혼냈던 일.

잠깐 깼던 영빈이 그 잠꼬대를 녹음해서 동생들에게 들려주었던 일.

솜뭉치들이 궁금했을 그들의 일상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건지 지환이 슬쩍 하준에게 눈빛을 주었고,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이쯤에서 멈추자. 더 끄집어냈다가는 솜뭉치들에게 우리 이미지가 남아나질 않겠어.”

“음, 형, 이미 그 이미지 없지 않을까?”

하준의 만류에 경환이 뼈가 아플 만한 말을 던졌다.

씩 웃으며 던진 그 한마디에 하준의 눈꼬리가 아래로 향하자, 지환이 냉큼 말을 덧붙였다.

“물론 솜뭉치들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해주니까 괜찮을 거예요!”

서럽게 내려앉으려던 눈꼬리가 다시 원래 높이로 돌아오자, 지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형, 우리 리더님은 마음 약하니까 함부로 팩트 던지면 안 돼요.”

“…네가 더 나쁜 거 같아, 환아.”

경환을 타박하는 지환의 모습에 힘찬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분위기가 정리되자 이번에는 영빈이 입을 열었다.

“진실게임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그냥 질의응답 시간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영빈의 말이 끝나자 세빈이 등 뒤에서 작은 상자 여섯 개를 꺼내왔다.

뿅 하고 튀어나온 멤버들의 이름이 적힌 상자.

그 상자를 보는 멤버들의 표정이 다채로웠다.

“짜잔! 여기에는 솜뭉치들이 남겨줬던 질문이랑 우리가 서로에게 남긴 질문이 있어요. 돌아가면서 하나씩 뽑아서 답하는 거!”

“질문 패스는 없나요?”

“없어요!”

힘찬이 손을 번쩍 들고 세빈에게 물었지만, 세빈은 세상 단호한 얼굴로 답했다.

힘찬은 세빈에게 자신에게만 너무 단호하다며 투덜거렸지만, 지환의 다독임에 불만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한 사람당 상자 하나씩.

자신 앞에 놓인 상자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무슨 질문이 튀어나올지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고.

“순서는 나이순?”

“우리 여기서까지 나이 따지지 말자….”

맏형의 힘없는 대답에 동생들이 한바탕 웃느라 소란스러웠지만, 금방 정리되었다.

“그럼 그냥 앉은 순서대로 해요. 하준 형부터.”

“이렇게 또 나부터 하겠네.”

장난스럽게 으쓱한 하준은 주저 없이 상자에 손을 넣어 종이 하나를 쏙 뽑았다.

곱게 접힌 종이를 펼치고 내용을 읽은 하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거 힘찬이가 쓴 거 같은데?”

“응? 질문이 뭔데?”

하준이 은근한 눈으로 힘찬을 바라보자 옆에 있던 경환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살려주세요’ 액자를 버릴까 말까 고민한 적이 있다 or 없다]

하준이 보여준 질문지 내용에 힘찬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적은 거!”

“…우리 솜뭉치들이 이런 걸 물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하준은 배신감에 어깨를 떨었다.

“자, 대답해주시죠?”

“절대 버릴 생각은 한 적 없습니다.”

“진짜로?”

“그럼요. 비록 저한테는 수치스러운 장면이지만 솜뭉치들이 즐거워했다면 전 괜찮아요.”

그린 듯 정석적인 대답을 하는 하준에게 막내 라인의 은은한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사실로 믿는 수밖에.

“자, 일단 그렇다고 해둡시다. 그럼 다음!”

진행자가 된 지환의 외침에 경환은 주저 없이 상자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작업실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or 없다]

“음, 이건 좀 질문이 애매하네요.”

경환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종이를 팔랑거렸다.

“있다, 없다만 우선 말한다면?”

“당연히 있죠. 정확히는 작업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거라.”

진지하게 답하는 경환의 목소리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가끔 작업하다 막히면 제가 산책하러 나가잖아요?”

“네. 산책 갈 때 제발 저 좀 끌고 가지 마세요.”

“그건 생각해볼게요.”

진행자가 된 지환의 투덜거림에 경환은 부스스하게 웃으며 답을 이어갔다.

“작업실은 뭐, 저를 가두는 공간은 아니니까요. 그냥 일이 잘 안될 때는 잠깐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숨 좀 돌리고 싶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은데.”

평소에는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경환이지만, 멤버들과 있을 때는 조금 달랐다.

더 자주 웃고, 더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었다.

찡그리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고.

그리고 멤버들은 그런 경환의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적어도 멤버들을 누구보다 편하게 여겨준다는 거니까.

“대답 잘 들었습니다! 그럼 다음은 찬이!”

기다렸다는 듯 불쑥 상자에 손을 넣어 종이를 뽑아낸 힘찬.

마치 트로피를 들어 올리듯 종이를 높이 들어 올린 힘찬의 모습에 영빈이 웃었다.

[룸메이트를 바꾸고 싶다 or 만족한다]

“어…. 저는 지금 제 룸메에 만족합니다!”

“너 왜 망설이다 대답해.”

한 박자 늦은 대답에 하준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화들짝 놀란 힘찬은 자신은 결백하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니, 처음에는 형이랑 쓰는 게 좀 무서웠는데 지금은 좋아요!”

“왜 무서웠는데?”

무서웠다는 말에 경환이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음…. 하준 형은 잘 정리된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데 알다시피 저는 좀 어수선한 사람이잖아요. 가뜩이나 잘 못 자는 형이 나 때문에 힘들 것 같았어요. 피해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힘찬의 대답에 하준의 눈이 잠깐 커졌다 금방 온화하게 휘었다.

“우리 찬이가 이렇게 기특해요, 여러분. 그래도 지금 힘찬이는 제법 정리 정돈을 잘한답니다.”

하준 목소리에는 동생에 대한 대견함이 담뿍 담겨있었다.

“앞으로도 사이좋은 룸메이트이길 바라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지환은 지나치게 분위기가 노곤노곤해지기 전에 다음 순서로 넘겼다.

이름이 적힌 상자를 품에 끌어안고 있던 세빈은 조심스럽게 종이를 하나 꺼내 들었다.

[형 중에 제일 좋아하는 형 이름을 말해보자]

종이가 공개된 순간, 세빈의 얼굴에는 곤란함이 서렸고 나머지 멤버들의 얼굴에는 기대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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