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86)화 (386/456)

386. Desperate(3)

“종범 매니저님, 이거 드실래요?”

“야, 그건 너니까 좋아하는 거지. 저거 말고 이거 드세요!”

우진 형처럼 새로운 매니저와도 친해지고 싶었던 우리 애들은 먹을 걸 들고 왔다.

먹을 걸 나누어 먹으면 친해진다는 이상하지만 그럴듯한 근거를 들면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들 취향이 제멋대로였던 터라, 자기가 좋아하는 걸 들고 와서 새 매니저에게 들이대고 있었다.

“둘 다 거기까지 해. 매니저님이 불편해하잖아.”

“우리 불편해요?”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건데….”

경환 형의 한마디에 금방 시무룩해져서는 종범 매니저님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는 막내들.

준이 형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고, 영빈 형과 나는 그런 멤버들을 귀엽다는 듯 구경했다.

그리고 이 일의 당사자인 종범 매니저님은 안절부절못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우진 형을 바라봤다.

물론 우리 우진 형은 평소처럼 푸근한 얼굴로 네가 알아서 하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우진 형도 은근 장난기가 심하단 말이지.

결국 우리 새로운 매니저님은 두 막내의 서글픈 눈동자를 외면하지 못하고 빵 두 개를 다 받아 들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좋아하는 빵은 아닌 것 같은데….

“그나저나 얘들아, 너희 거까지 빵 사 온 건 아니지?”

우진 형의 부드러운 질문에 막내 둘 다 조그맣게 움찔했지만, 날카로운 우진 형의 눈을 피하진 못했다.

“다이어트 기간이라 빵 먹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자, 전부 가져오자.”

“아니, 그러니까….”

“그게요….”

찬이와 세빈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우물쭈물했다.

“이미 먹었구나?”

“….”

화들짝 놀란 둘이 눈동자만 굴리는 모습에 한마디 툭 곁들였을 뿐인데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빵 같은 거 이미 먹고 없겠지!’

에휴, 이렇게 거짓말 못 하는 내 새끼들.

내 말에 잔뜩 찔린 둘은 슬그머니 우진 형의 곁에 붙어서는 열심히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새로운 매니저님한테 맛있는 거 주고 싶어서 갔는데 너무 맛있어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마침 배가 너무 고파서 딱 하나씩만 먹고 왔다고.

칭얼거리는 강아지들 같은 우리 막내들의 하소연에도 우진 형의 미소는 시종일관 똑같았다.

“찬이랑 세빈이는 30분씩 운동 더 하자.”

“네엥….”

“너무해….”

양손에 빵을 쥐고 그 모습을 놀랍다는 듯 바라보던 새 매니저님.

앞으로 익숙하게 겪게 될 일이라 슬쩍 옆에 가서 다독여주었다.

“저희 애들이 원래 잘 안 나가는데 먹을 거에는 약해요.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힘들겠어요. 먹을 거 못 먹는 게 제일 힘든데.”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매니저 형을 바라보자 이내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동을 했어서 감량 때문에 저도 좀 힘들었습니다. 뭐, 이제는 괜찮지만요.”

“말 편히 해주세요, 이제 우리는 한 식구잖아요.”

어느새 곁에 다가온 준이 형이 건넨 말에 겸연쩍은 듯 웃던 매니저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해보겠다고.

며칠 지켜본 새로운 매니저님은 무뚝뚝하고 단단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속은 폭신한 사람 같았다.

조직의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소속감에 안정을 느끼는.

직업 군인이 됐어도 굉장히 잘 해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아직 우리 애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게 재밌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우리가 어리다는 이유로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을 많이 봤기에, 매니저님 쪽으로 점수를 더 준걸지도 모르고.

“아, 시험지 많이 왔어요?”

“응. 딱 한 번만 보낼 수 있다고 해놨더니 첫날에는 몇 개 안 왔는데 이제는 꽤 많이 왔대.”

“우리가 채점하면 더 재밌을 텐데….”

“그러기엔 일정이 있으니까 다른 거로 참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돌아올 솜뭉치들의 시험지를 기대했던 우리.

직접 채점해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접수량에 소현 팀장님이 저지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채점하는 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입술을 삐쭉거리는 막내들을 잘 달랜 우리는 겨우 다음 일을 위해 몸을 움직였다.

솜뭉치들을 위한 세 번째 영상을 오늘 찍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 공개될 첫 번째 영상을 본 솜뭉치들의 반응도 구경해야 했고.

“바쁘다, 바빠!”

“입만 바쁜 거 같다?”

“그럴 리가!”

찬이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미리 섭외한 스튜디오에 도착한 우리.

“우와! 진짜 교실 같다.”

“우와! 그래서 더 싫다….”

“요새는 이런 책상 쓰나?”

스튜디오에 들어간 반응은 극에서 극을 달렸으니.

이미 졸업한 형들은 책상을 보며 괜히 아련한 얼굴을 했고, 학교에 다니는 미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형들은 누가 보면 졸업한 지 엄청 오래된 줄 알겠네.

“자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준비하자.”

결국 우진 형에게 붙들린 우리는 서포트 팀 누나들에게 던져졌다.

“근데 왜 환이가 선생님이에요?”

“왜냐면 네가 선생님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의상을 갈아입으면서도 입을 쉬면 가시가 돋치는 찬이는 끊임없이 종알거렸다.

그런 찬이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종범 매니저님과 그런 매니저님을 더 신기하다는 보는 우리 누님들.

서포트 팀분들은 이미 우리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얌전한 사람이 보이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지난 촬영을 되짚어 보았다.

우리는 총 6개의 영상을 기획했고, 마지막 7번째는 라이브로 할 예정이었다.

첫 번째 영상은 숙소, 두 번째는 회사, 오늘 세 번째는 학교 분위기의 스튜디오.

그전에 미리 찍어둔 영상들도 각각 다른 콘셉트여서 더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대본을 다시 확인한 나는 슈트를 입고 알이 없는 안경을 건네받았다.

“누나, 안경은 왜….”

“환이 너는 안경이 잘 어울려. 지적인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사심 채우기라는 거죠?”

“어머, 얘는! 팬들도 좋아할 거야!”

하핫 하고 웃으며 내 등짝을 탕탕 내리치는 가희 누나 손길이 제법 매섭다.

모른 척 그냥 안경을 쓰는 걸 택한 나는 교복 차림을 한 멤버들을 훑었다.

음, 멤버들 사이에 지금 내가 서 있으면 학생들에게 삥 뜯기는 회사원으로 보일까?

“환이는 역사나 음악 선생님이 잘 어울릴 것 같아.”

“과목이 되게 구체적이네요.”

“그럼. 선생님들은 과목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잖아.”

“그런 면에서 체육이나 수학 선생님은 환이랑 안 어울리지. 문학도 좀 어울릴 것 같아.”

어느샌가 희주 누나와 가희 누나는 쿵짝이 맞아서는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당사자 앞에 두고 놀리는 건 그만 해요.”

“놀리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요.”

우진 형은 한숨을 푹 쉬더니 누나들에게 놀림당하던 나를 구해줬다.

아무래도 누나들은 우리 누나와 연령대나 분위기랄까….

연상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어딘지 모르게 좋으면서도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누나 얼굴을 본지도 조금 됐는데, 왜 요새는 회사에 안 오지?

달랑달랑 나를 뽑아낸 우진 형은 대본 보고 있으라고 나를 앉혀두고는 멤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옆을 어미 닭 쫓아다니듯 쫓아다니는 종범 매니저님이 있었고.

‘네가 선생님이라니. 배울 게 뭐가 있다고.’

‘뭐? 포잉 너무하네! 왜 배울 게 없어!’

‘뭘 가르칠 수 있는데, 이 모자란 계약자 놈아.’

‘음…. 티 안 나게 돌려서 상대방 욕하는 법?’

‘….’

‘아니면 선생님에게 걸리지 않고 몰래 자는 법?’

‘하아….’

뚱한 포잉의 뺨을 남몰래 콕콕 찔러주며 아무 말이나 했다가 결국 포잉에게 한심하다는 시선을 받았다.

돌려 까는 법은 여러모로 쓸모 많은데, 너무해!

* * *

방금까지 시시덕거리며 어디 하나 나사 빠진 것처럼 뒹굴뒹굴하던 애들이 큐사인이 들어가자 달라졌다.

“자자, 조용. 거기, 최힘찬. 얌전히 있어야죠.”

지환은 능숙하게 선생님처럼 출석부를 탁탁 두드리며 수군거리는 분위기를 잠재웠다.

“누가 반장이죠?”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며 묻는 게 무척 깐깐할 것 같은 분위기를 폴폴 풍겼다.

“선생님! 저희 반엔 반장 없는데요.”

“그럼 첫 번째 시간에는 반장을 뽑는 거로 하죠.”

씩씩하게 대답하는 세빈이 대사를 능숙하게 받아 분위기를 주도해갔다.

반장을 추천하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서로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앉아있는데도 오디오가 단 한 순간도 비지 않는다는 게 종범의 눈에는 무척 신기했다.

우진은 잠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고, 종범은 촬영장의 끝부분에 서서 멤버들을 지켜봤다.

“새로 오신 매니저님이신가 봐요?”

“아, 네. 박종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나가던 스태프 중 한 명이 종범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고, 그 뒤로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부분이 언래블이 지난 촬영에서 보인 모습들에 대한 평가였다.

손이 많이 안 가고, 자기들끼리 결속력이 강한 애들, 착실하고 착한 애들.

스태프는 그렇게 자기 멋대로 이야기를 늘어놓고 웃으며 사라졌다.

종범은 그와 비슷한 일을 몇 번 겪으며 우진이 왜 그렇게 멤버들에 관해 걱정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꽤 많은 사람이 언래블의 매니저라는 것만으로 호의적으로 다가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부분 호감 어린 이야기였지만, 아닌 척하면서 흉을 보는 이들도 있었다.

저 조그만 애들이 이런 사람들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자라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친해지고 싶다며 은근슬쩍 다가와 먹을 걸 찔러주던 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듣기만 해도 질릴 것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한마디 불평 없이 익숙하다는 얼굴로 해치웠다.

복잡해지는 속을 표정 아래로 잘 감추고 한창 촬영하고 있는 멤버들을 살폈다.

누가 반장을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서로 낄낄거리며 장난치던 애들을 지환이 한숨 쉬며 정리했다.

결국 반장 최종 후보에 오른 건 하준과 세빈.

진지한 얼굴로 투표지를 나눠주고 각자 이름을 적는 동안 멤버들을 바라보던 지환이 갑자기 종범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잠시 지환의 눈동자가 무언가를 찾는 듯 방황하다 웃었다.

그제야 종범은 지환이 우진을 찾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서 있던 자리가 우진이 서 있던 자리라는 것도.

그러자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선배님은 늘 이런 시선을 받고 또 돌려주시는 거겠지?’

자신이 바라보면 늘 그 자리에서 웃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항상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찬 시선으로 지환은 우진을 바라봤다.

우진이 잠시 자리에 없어서 종범이 대신 받은 시선이었지만, 종범은 나름대로 지환을 달래고 싶었다.

웃는 건 어색했지만, 그래도 아이를 다독이려는 마음은 진심이니까.

어설프게 웃던 종범을 지켜보던 지환의 시선은 어딘지 모르게 집요했다.

사실, 일하는 내내 마주한 지환의 시선은 늘 그러했다.

믿어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듯.

가끔은 지환이 없는데도 그런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어서 오싹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내 지환도 종범을 향해 씩 웃어 보이더니 멤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없이 녹아내릴 듯 따뜻한 눈으로 멤버 한명 한명을 바라보던 지환.

멤버들이 고개를 들자 언제 그렇게 봤냐는 듯 짓궂게 웃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빈이 반장이 되고, 앞으로 불려 나가 인사까지 했다.

볼이 발그레해진 막내는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후다닥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왔다.

힘찬은 세빈에게 반장으로 찍어줬으니 햄버거 쏘라는 말을 하다 경환에게 옆구리를 가격당했고.

다른 아이돌은 겪어보지 못했기에 무어라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종범은 점점 언래블의 멤버들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

그리고 우진처럼 그들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니던 그때도 종범의 시선은 멤버들을 향하고 있었다.

“자, 오늘은 최근에 우리 시험 봤었죠? 그 시험문제를 오늘 한번 되짚어주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멤버들이 책상 서랍에서 ‘솜뭉치 덕력 테스트’라고 적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직접 문제를 냈다는 그 시험지였다.

아이돌이라고는 가장 인기 있다는 여자 아이돌 그룹만 알았던 종범.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언래블에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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