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65)화 (365/456)

365. 꿈꾸는 마음으로(4)

저녁은 다행히 쉽게 결정되었다.

점심을 준비할 때, 찜용으로 사 온 고기를 양념해서 재워놓은 덕분에.

솥에 해 보는 건 처음이라 이게 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더 맛있게 됐다.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함을 더하고 감자와 고구마를 썰어 넣어 양을 좀 늘렸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한입씩 맛은 보게 해야 할 것 같아서.

“고기를 더 사 올 걸 그랬어요.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이게 얼마 안 된다고?”

“야, 이 정도면 호사야 호사. 지환이 덕분에 우리가 호강한다.”

오목한 접시에 갈비찜을 담고, 콩나물이 있길래 무쳐놨다.

조금 재밌기도 했다.

밖에 나가면 대선배님들인데 전부 나만 보고 있다는 게.

경환 형은 진성 형님이랑 불 조절한다고 재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한참 웃기도 했다.

솜뭉치들 보여준다고 사진도 잊지 않고 찍어놨다.

우리 형은 몸빼 바지 입어도 잘생겼다고, 솜뭉치들한테 꼭 보여줘야겠다고 사진을 찍자 체념한 듯 웃었다.

“살이 아주 야들야들한 게 제대로네!”

“기름기도 많이 없고. 이야, 파는 것보다 낫다.”

다들 맛있게 먹어주니 즐겁기도 했지만, 역시 멤버들이 보고 싶어졌다.

내 새끼들 사고는 안 치고 잘 있겠지…?

밥을 넉넉히 한다고 했는데도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네 남자 앞에서는 부족했다.

배도 부르고 당장 오늘치 일은 다 했다는 생각에 기분 좋아진 나와 경환 형.

낮에는 집안일 한다고 쫓아다니느라 못 나눈 수다를 나눴다.

“내가 이걸 하다 보니까 느낀 건데, 아무리 바빠도 밥은 거르면 안 되겠더라.”

“왜요?”

“우리가 첫날에 준비도 못 하고 뭘 못해서 점심을 못 먹고 저녁만 먹었거든.”

“맞아, 그때 엄청 우울해가지고 다들 표정이 아주.”

하필 라면 끓이거나 가끔 볶음밥만 해 먹었던 경우 선배님이 제일 전문가라고 불러야 할 구성이었다.

오수 형님도, 진성 형님도 요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고.

“그때 그 한 끼 놓친 게 너무 억울하더라고. 밖에서는 일하다 한 끼 거르는 건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여기선 그 한 끼 준비가 진짜 전쟁이었어.”

하필이면 비도 많이 와서 불 지피는 데만 한참 걸렸다며 진성 형님이 한탄했다.

텃밭에 뭐가 많다는 데 위에 있는 풀만 봐서는 뭐가 뭔지 알 수도 없고.

그나마 제작진이 고구마와 감자를 알려줘서 그거라도 삶아 먹으려고 했더니 불이 안 붙고.

하다 하다 그냥 밥을 끓여서 죽처럼 간장만 넣어서 먹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불이….

비바람을 헤치고 겨우 불을 붙이고 밥을 올렸는데 실수해서 솥을 건드려서 엎고.

재난 영화 같은 상황 속에서 겨우 만들어낸 조금 타고 설익은 볶음밥이 잊히지 않는다고 경우 선배님이 말했다.

다들 질색하며 머리를 흔드는 걸 보면, 정말 고생한 모양이었다.

제작진은 분량 빵빵하게 뽑힌다고 좋아했겠지만.

그 후로는 조금씩 다들 늘어서 어떻게든 먹고살았다고 했다.

낚싯대만 들이면 물고기가 잡히고 바위만 뒤집으면 전복이 나온다던 지상낙원은 어디 가고, 장르가 갑자기 바뀌었다면서.

“아무튼 그렇게 한 끼가 너무 소중해지니까 종종 일 때문에 나갔다 다시 들어와도 우린 밥부터 올려놔.”

“당장 안 써도 불은 꼭 붙여놓고.”

“하다못해 물이라도 끓여야지.”

셋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한마디씩 보탰다.

경환 형은 눈이 댕그래져서는 그런 대선배님들을 바라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지환이 와서 밥해주는 거 먹으니까 너무 행복하다.”

“지환아, 안 가고 우리랑 여기서 살자. 형이 잘해줄게.”

“선배님, 안 돼요. 저희 소중한 토템입니다.”

“경환아, 너도 오늘 일하는 거 보니까 우리가 찾던 인재야. 여서 살자.”

오수 형님에게 저항하던 경환 형도 경우 선배님께 덥석 손을 잡히며 당황해했다.

“내일은 형이랑 낚시해 보자. 왠지 너라면 온갖 물고기를 낚을 수 있을 것 같다.”

“저희 내일 올라가야….”

“에이, 아침 일찍 가면 되지. 배는 오후에 오잖아.”

아침부터 함께 노동하자고 꼬시는 선배님이라니.

열심히 우리를 꼬드기는 형님들 모습에 진심이라는 게 절절히 느껴져서 무서워졌다.

‘포잉, 살려줘….’

‘이런 일에 요정 찾는 거 아님.’

‘너무해, 날 이렇게 버리다니!’

불길한 기운에 포잉을 찾으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냉정한 답변이 돌아왔다.

“요새는 캠핑 가서 불멍이라는 걸 한다더라.”

“확실히 불 보고 있으면 뭔가 멍하게 있게 되기는 해.”

한바탕 우리를 짤짤 거리던 형님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를 바라보며 한바탕 신나게 웃으셨다.

그러더니 희미해졌던 불을 뒤지며 불씨를 살리더니 장작을 더 넣었다.

화구 밖으로 점점 더 크게 일렁이는 불빛.

“진짜 예쁘긴 예뻐요.”

“그렇지? 이게 여기에서 얻는 유일한 행복이야.”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는 희미한 달빛에 일렁이는 파도가 간간이 보였다.

직접 쌓아 만든 것 같은 돌담과 주변을 둘러싼 나무, 생활 용구들이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가운데서 춤추는 불빛.

흔들거리는 불빛은 잔상을 만들어냈고, 타닥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홀릴 것 같은 그런 불길.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니 모두가 평온한 얼굴이었다.

문득, 멤버들이 생각나 이 자리에 멤버들이 있는 상상을 했다.

준이 형과 영빈 형은 저쪽 벽에 기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테고….

찬이랑 세빈이는 화구가 신기하다고 기웃대고 있겠지?

경환 형은 그러다 다친다고 한마디 할 테고, 나는 간식거리를 내오고.

문득 떠올린 상상이지만 근사했다.

언젠가 모두가 같이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포잉.’

‘?’

불 가까이에 누워 불길을 바라보던 포잉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투명한 구 같은 포잉의 눈동자에는 불길이 비쳤고, 내가 보였다.

‘다음에 같이 여행 가자.’

‘여행?’

얌전하던 포잉의 귀가 쫑긋거렸다.

‘응. 멤버들이랑 같이 가거나, 우리 둘이 가거나.’

‘네놈 뒤치다꺼리하느라 여행의 흥이 살겠음?’

‘에이, 그때쯤엔 나도 좀 자라있겠지.’

포잉은 콧바람만 흥 하더니 고개를 돌려 다시 불꽃을 바라봤다.

시큰둥한 척했지만, 살랑이는 꼬리를 보아하니 싫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우리 포잉, 귀엽다니까.

무척 평온하고 느긋한 밤이었다.

* * *

“환이 해산물 잘 못 먹는데 괜찮을까?”

“고기 사 간다고 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연습이 끝나고 숙소에 모인 네 명은 저 멀리 섬에 있을 둘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일 오니까 괜찮을 거야.”

“에휴….”

둘은 선배들 앞이고 촬영 중이니 핸드폰을 거의 못 쓸 것 같다고 했다.

핸드폰이 터지기는 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자기들이 핸드폰을 붙들고 있으면 싫어할 것 같다고.

자기 전에 연락을 남긴다고 했기에 그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촬영 때문에 외박하는 멤버들이라 다들 걱정이 태산 같았다.

특히나 지환은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았기에 더욱더.

“걔는 못 먹는다고 말하고 안 먹으면 될 텐데 참고 먹을 것 같으니까 더 걱정돼요.”

힘찬이 심란한 얼굴로 툭 뱉었다.

다들 말하지는 않았지만 힘찬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지환의 ‘싫다’는 보통 장난칠 때만 나오는 말이었으니까.

솔직하게 말하고 양해를 구할 수도 있지만, 그것 자체가 쉽지 않은 행동이라는 건 다른 멤버들도 알고 있었다.

편식하는 사람들은 한두 번씩은 들어봤을 그런 잔소리.

가끔은 그런 잔소리의 강화 버전을 들어야 하는 게 지금의 일이니까.

알레르기가 있어서 먹고 죽는 게 아니라면 일단 먹어야 했다.

호불호와 상관없이.

알음알음 알고 지내는, 비슷한 시기 데뷔한 다른 아이돌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그런 눈치가 누구보다 빠른 지환이라면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도 그때 PD님도 나쁘지 않았고, 진성 형님도 계시니까 괜찮지 않을까? 오수 선배님도 있다고 했고….”

영빈이 그나마 긍정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말 그대로 긍정적인 추측일 뿐.

지환과 친분이 있는 진성 배우는 그렇다고 쳐도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솔직히 모르니까.

경환은 미역국 트라우마도 이겨냈고, 그래도 대부분 잘 먹는 편이라 걱정이 덜했다.

“회사에서 얘기해놨을 거야. 팀장님이 그런 부분은 잘 챙겨주시잖아.”

처지는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하준이 입을 열었고, 멤버들도 수긍했다.

회사에서 멤버들을 꼼꼼히 챙겨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약간의 우울함을 걷어내고 평소보다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때, 단톡방에 메시지가 왔다.

“환이야? 아니면 경환 형?”

“환이 형이요. 사진 보내줬어요!”

지환은 다들 반겨주셔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피워진 불을 보니 다 같이 여행 가고 싶다는 메시지와 함께 경환의 복장 사진도.

“풉! 이거 뭐야? 꽃무늬 뭔데.”

세빈이 내민 핸드폰에서 몸빼 바지를 입고 전복을 들고 있는 경환을 본 힘찬은 웃으며 러그 위를 굴러다녔다.

가서 입는다고 챙겨간 트레이닝복은 어디 가고 저런 걸 입고 있었다.

당장 SNS에 올려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촬영분이 올라가기 전이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했을 멤버들을 위해 연락한 지환을 기특하게 여기던 하준과 영빈도 사진을 보며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와, 근데 저렇게 큰 걸 경환 형이 잡았다고?”

“엄청 크다…. 사실 경환 형은 어부가 천직 아니었을까?”

“어부는 낚시로 잡는 거 아냐? 전복은 그, 해녀분들이 잡는 그런 거 아닌가?”

힘찬과 세빈은 사진 속 전복의 크기를 가늠해 보며 경환의 천직을 고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던 영빈은 고생하고 있을 동생들에게 다치지 말라고 조심해서 촬영하고 오라고 보냈다.

다른 것보다 그저 애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 * *

다음날 눈을 나는 무언가 부산스러운 느낌에 눈을 떴다.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겨우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경환 형이 자다 자꾸 날 베개처럼 깔고 뭉개려고 해서 더 잠을 설쳤다.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고 제일 작은 방에서 둘이 잔 것도 있는데.

세상모르고 잘 자는 형을 바라보다 씻고 깨워야겠다 싶어 일단 뒀다.

한동안 잘 못 잤으니 지금이라도 좀 자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님, 오늘 못 갈 것 같은데?’

‘응?’

고개를 흔들어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밖에 나가기 위해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자, 포잉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아직 다 깨어나지 못한 머리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몸은 처음 지시 내린 대로 문을 열었다.

“…이게 다 뭐야.”

문을 열었더니 이 세계, 아니 자연재해 앞에 무력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 펼쳐졌다.

세찬 바람에 비옷이 펄럭이는 진성 형님.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돼서는 마당을 정리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일어났어. 더 자지. 어휴, 갑자기 날씨가 미쳤다.”

“…그러게요. 이게 무슨.”

일어났으니 씻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씻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바람이 어찌나 강하게 부는지 휙휙 거리는 바람 소리가 살벌하게 느껴졌다.

겨우 씻고 나와 본채 마루에 앉아서 요동치는 파도와 새까만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환 씨, 날이 이래서 배는 못 뜰 것 같아요.”

“…그러게요?”

인터뷰를 담당하는 PD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답했다.

“비는 거의 그쳐가는데 바람이 너무 강하네요. 갑자기 날씨가.”

“일기예보에는 이런 얘기 없었는데….”

분명 내려오기 전 확인한 일기예보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었다.

넋을 놓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가 어지간히 웃겼는지 카메라 뒤의 스태프분들이 웃고 있었다.

아니, 이분들은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무섭지도 않으신 건가?

밤사이 바람에 흩어진 살림살이를 정리한 진성 형님이 내 옆에 앉았다.

우비를 벗는 형님에게 옆에 있던 수건을 건네주었다.

“어, 고마워. 아침은 어떡하냐?….”

“…그러게요. 아침 어떡하지.”

태연하게 아침을 걱정하는 형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똑같은 대답을 내뱉었다.

갑자기 우리 애들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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